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20화 변절자 투표에 주민들이 ‘빈 종이’를 제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히에로미르와 더 시티 상층부는 빈 투표용지를 낸 사람들을 색출해서 ‘변절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처형대에 세우기로 했다. 물론 색출이라고는 했지만 제대로 된 검증은 없었다. 태반은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갔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온갖 거짓 제보가 판쳤다. 그렇게 더 시티의 광장에 최초로 열 명의 사람들이 처형을 앞두고 있었다. “이 중에, 누군가는 무고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처형 책임자인 수색꾼이 창을 든 채 돌아다니며 말했다. 끌려온 사람들은 모두 팔이 결속된 채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고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위잉! 윙! 죄수들의 등 뒤에 선 열 명의 수색꾼들이 일제히 손에 든 창을 작동시켰다. 보라색 불꽃이 살벌하게 일렁였다. “너희가 죽는 이유는 변절자들 때문이다. 그들이 더 시티를 어지럽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처억! 수색꾼들이 일제히 죄수들의 목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지켜보던 관중 사이에서 짧은 비명이 울려 퍼진다. 몇몇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죽는 순간까지, 그리고 죽어서도 잊지 마라. 너희를 죽인 건 위선에 빠져 혁명이라는 망언을 일삼고 다니는 변절자라는 사실을.” 그가 손을 움직이자 모든 수색꾼이 창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켜보는 모두가 명심해라. 변절자가 뿌리 뽑히지 않으면 다음은 너희 차례다.” 선임 수색꾼이 팔을 내렸고, 모든 수색꾼이 죄수들에게 창을 내질렀다. “?!” 그런데 창이 뭔가에 막힌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낑낑대며 창에 힘을 주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선임 수색꾼이 짜증스럽게 외쳤다. “다들 뭘 하나!” “대, 대장! 창끝에 뭔가가……! 아!” 촤아아아아! 모든 창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다른 10명의 수색꾼들도 한쪽 다리가 번쩍 들리더니 그대로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들의 아아아악-! 하는 비명이 멀찍이 울려 퍼졌다. [어머나, 헛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능력이 있는 분들이와요.]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분홍색 머리의 여성이 부채를 흔들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선임 수색꾼이 손에 든 창을 작동시키며 경계했다. “누구냐!” [그런 장난감은 좋아하지 않사와요.] 그녀가 부채를 펼쳐 든 채 휘두르자, 손에 든 창이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선임 수색꾼이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으나, 그 또한 다리가 거미줄에 붙들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처형식을 보란 듯이 깨뜨린 모습에 관중들이 열렬한 환호성을 쏟아냈다. 에르제베트가 오호호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송장거미들이 다가와 날카로운 다리 끝부분으로 죄수들을 결박한 밧줄을 잘라주었다. 그때 선임 수색꾼이 버둥거리며 외쳤다. “우, 우리는 히에로미르 님의 명을 받아 집행하는 중이다! 이러고도 너희가 무사할 것 같으냐!” [소녀는 위대한 군단장님의 명령을 받아 온 것이와요.] 에르제베트가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린 뒤 눈을 가늘게 떴다. [히에로미르? 그런 잡것을 감히 어디에다 갖다 붙이는 것인지요?] “잠……!” 뻐엉! 그녀가 선임 수색꾼의 엉덩이를 걷어차 멀리 날려 버렸다. 관중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왁자지껄하게 웃어댔다. “와우! 벌써 다 처치한 거야?” 펄럭! 뒤이어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매달고 다비나와 혁명군의 일원들이 내려와 처형대 앞에 도착했다. 그들도 후방에서 오던 수색꾼들을 쓰러뜨리고 막 도착한 길이었다. 처억! 척! 이내 처형대에 혁명군의 녹색 깃발과, 7군단의 검은 깃발이 서로 교차된 채 펄럭였다. 다비나는 죄수들을 챙기고 에르제베트에게 감사 인사를 보냈다. “시몬이 말한 대로 솜씨 확실하네.” [오호호! 이 정도는 기본이와요.] 에르제베트가 뒤로 물러섰고, 다비나가 처형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나는 혁명군의 부대장 다비나야! 이런 사실을 알리게 되어 유감이지만, 히에로미르의 탄압은 지금보다 더 거세질 거야! 우리에게 처형식이 열리는 장소를 제보해 주면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해볼게! 그리고 전함의 포격 지점도 우리가 사전에 알릴 테니까 최대한 빨리 대피하면……!” “집어치워라!” 앞줄에 서 있던 한 남성 관중이 버럭 소리 질렀다. 다비나는 말을 멈췄고 즉각 주위가 정적으로 휩싸였다. “뭘 잘했다고 앞에서 지껄이고 있나! 아까 그 수색꾼이 했던 말 중에 틀린 거 하나 없어! 네놈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폭격에 죽는 일도! 사람들이 끌려가 처형당하는 일도 없었어!” “너희 때문에 벌어진 일을 수습한다고 칭찬이라도 바랐나!” 우우우우! 즉각 흉악한 분위기의 함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러자 반대편 관중에서도 즉각 혁명군과 다비나를 옹호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누가 명령권자인지 직시하시오! 우리를 죽이라 명령하는 건 히에로미르잖소!” “우리를 도우려는 분들이에요!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만 진정하고……!” 서로 의견이 다른 관중들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목이 붉어진 사람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항의했다. 성난 관중들이 던진 돌멩이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중에 하나가 다비나의 이마에 맞았다. 그녀의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괜찮사와요?] 놀란 에르제베트가 다가왔지만 다비나는 괜찮다는 듯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혁명가처럼 위인은 못 되나 봐.”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즉각 혁명군 대원에게 박격포를 건네받아 하늘을 향해 쐈다. 격렬한 발포음이 들리자 관중들이 놀라며 자리에 엎드리거나 몸을 낮추었다. 비로소 주위가 조용해졌다. 박격포를 쿵! 소리와 함께 떨어뜨린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그럼 거기 아저씨! 아저씨한테 딱 하나만 물을게!” 처음에 다비나를 비난했던 남자가 움찔하며 그녀를 응시했다 “나는 평화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여러분이 원한다면 내 목숨 따위 얼마든지 내어놓을 수 있어.” “그, 그럼 당장 자수하……!”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봐. 과연 내가 처형당하면, 히에로미르가 순순히 이런 짓들을 멈출까?” 일순 좌중에 지독한 정적이 내려왔다. 다비나가 불쑥 던진 질문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금까지 당해왔던 일들을 생각했다. 빈말로라도 다비나가 죽으면 히에로미르가 탄압을 끝낸다고 말할 수 없었다. 변절자는 애초에 핑계라는 걸 그들도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으면 변절자들의 잔당을 처리해야 한다고 또 사람들을 죽이겠지! 잔당들이 전부 죽어도 멈추지 않을 거야. 변절자가 없어도, 계속 계속 죽일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야!” 처억! 다비나가 팔을 뻗어 상층부. 더 시티에서 가장 높은 탑을 가리켰다. “히에로미르를 몰아내야만 해!” 관중 모두의 시선이 홀린 것처럼 더 시티의 가장 높은 탑으로 향했다. 히에로미르. 그랬다. 사실 원인은 분명했다. 그저 어쩔 수 없다고,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만만한 옆 사람을 변절자라고 제보하거나 함정에 빠뜨리는 등, 더 가깝고 쉬운 길을 택했을 뿐이다. “바보 같은 소리!” 남자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히에로미르를 죽일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다들 알잖아?” “다른 세상에서 온 자라면 어때?” 다비나의 말에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히에로미르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납치해 노동력으로 충당해 왔지. 하지만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오고 있어.” 그녀가 손뼉을 쳤다.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우린 영영 히에로미르의 압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지금이 유일한 기회야.” * * * 처형식이 중지되고 혁명군이 주민들을 구출하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졌다. 히에로미르의 입장에서 ‘변절자 투표’와 ‘처형식’은 체제의 근본. 이를 거부하는 행동에 더더욱 격노한 히에로미르는 함선을 보내 사형수들이 구출된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포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더욱 민심은 돌아섰다. 많은 이들이 혁명군에 새롭게 가입했고, 이제 더 이상 혁명군은 작은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히에로미르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무장한 뒤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잡아라!” “저쪽이다!” 좁은 골목 사이로 비행 보드를 탄 수색꾼들이 창을 세우며 날아들었다. 마찬가지로 보드를 탄 혁명군 대원이 도시의 좁은 틈으로 이들을 유인했고, 수색꾼들은 멋도 모르고 뒤쫓다가 송장거미의 거미줄에 걸려 지상으로 떨어졌다. -크르르르르! -캬륵! 쓰러진 수색꾼들을 무수한 스켈레톤과 좀비들이 달려가 붙잡았다. 반대편에는 혁명군의 녹색 깃발을 든 주민들이 조잡한 무기를 들고 나아가 쓰러진 수색꾼들과 맞서 싸웠다. 곳곳에서 군단이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색꾼들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부대장 다비나다!” “저자를 잡아라!” 이번에는 수십 명의 수색꾼들이 보드를 탄 다비나를 쫓으며 몰려들고 있었다. 다비나가 어깨에 얹은 언데드 하나를 가슴에 안아 들었다. “부탁해! 라미아!” -삐융! 콰르르르릉! 7군단의 어린 라미아가 즉시 머리 위에서 주특기인 물벼락을 쏟아보내 수색꾼 수십 명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기동성이 좋은 다비나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라미아의 조합은 대단히 뛰어났다. “잘했어 라미아! 최고야!” -삐유웅! 촤촤촤촤촤촤! 그러나 수색꾼들도 만만치 않았다. 반대편 공장 뒤에서 수색꾼들이 우회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이 다비나를 체포하기 위해 일제히 박격포를 들어 올렸다. “조심하시오, 다비나.” 감지탑에서 그 모습을 본 남자가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것만으로 허공에 검격이 번뜩이더니 수색꾼들이 닥치는 대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크윽!” 동료들이 당하자 보트를 탄 수색꾼 한 명이 다급히 방향을 돌려 공장을 등지고 도망쳤다. 쥴이 마검의 손잡이를 쥔 손을 바꿔 쥐며 눈을 감았다. “벽 뒤에 있다고 해서.” 쩡! 그 거대한 공장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뒤에 숨어 있던 수색꾼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쥴은 태연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시몬과 레테가 빠졌지만 마검 사용자 쥴을 필두로 혁명군이 적극적으로 수색꾼들과 교전하고 있었다. 여기에 군단까지. 이제는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응, 응. 알겠어.” 다비나가 통신을 받고는 쥴에게 말했다. “쥴! 포격 5분 전!” “알겠소. 도망치도록 하지.” 쥴과 다비나, 그리고 군단이 사람들을 대피시키며 다른 지역으로 도망쳤다. 그 이후에 함선의 코랄 포격이 쏟아져 주위를 초토화시켰다. 다비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히에로미르 측에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하는 건 히에로미르의 전함 조종사들 중에서도 상당히 갈등이 심한 일이었고, 그중 한 명이 혁명군에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었다. 가장 격전지인 중앙 지역에는 장갑차를 탄 수색꾼들이 밀고 내려오고 있었고, 이를 좀비집사와 마코, 그리고 군단의 병력이 막아내고 있었다. 우측 전선은 대장인 카미바레즈가 지휘했으며, 좌측 전선은 지금처럼 쥴과 다비나가 맡았다. 가끔 히에로미르가 직접 나서기도 했는데, 그가 강림한 전선은 과감하게 버리는 식으로 싸워 나갔다. “시몬이 빌려준 이 군대의 힘으로, 반드시 이길 거야.” 다비나가 다음 전선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그녀의 옆 보드에 올라탄 쥴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강한 건 좋지만, 우리는 ‘전이 팀’이 전이기를 작동시키는 동안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당연하지.” 쥴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렌디아가 보이지 않소.” “아. 그 녀석.” 다비나가 쓰게 웃었다. “혼란을 틈타 시그문드를 구하러 간다고 했었던가? 그 사람을 데려오면 전세가 뒤바뀔 만큼 큰 전력이 될 거라고.” “무모하군.” 쥴이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다는 감옥탑을 응시했다. * * * 더 시티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는 틈을 타, 그 감옥탑의 벽을 기어 올라가는 한 여성이 있었다. “허억! 헉!” 벌써 벽을 절반 이상 올라온 아렌디아가 까마득한 아래를 응시했다. 그러다 정신 차리듯 고개를 두어 차례 흔든 뒤, 다시 위를 보며 손을 뻗었다. 기억도 없는 사람을 위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만날 거예요. 시그문드!” 그녀는 이미 합리성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큰일을 저질러도 단단히 저지를 것 같은 표정의 그녀가 탑을 쭉쭉 치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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