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19화 시작의 동굴에 남은 구원자 시엘 공략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바다 위에는 시엘이 직접 통제하는 피라미드 모양의 삼각 구조물이 떠 있었고, 그 안에서 이형의 모래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에 맞서는 암흑연합, 신성연방, 그리고 중립지대의 전투원들은 시작의 동굴을 요새화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와중에 심판의 성녀 다나와, 까마귀 요원 퀸터는 직접 휘하 부하들을 이끌고 구조물 안으로 진입했다. 한편 전투의 흐름이 워낙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기에, 합동 지휘부에서는 난리가 나 있었다. 펼쳐진 마나 스크린을 보며 온갖 논의와 지시 하달이 쏟아지고 있었다. “부상자 20명으로 급증!” “구조물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너무 많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 네크로맨서가 뒷짐을 진 채 로레인에게 말을 걸었다. “제2사령관님, 생각보다 전투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대륙 각지에서 추가 지원을 요청하시는 게…….” “아니에요.” 제복 차림의 로레인이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룬 리그에 전력이 집중되는 바람에 다른 지역의 방비가 취약해졌어요. 이게 결사의 노림수일지도 모릅니다. 더 병력을 이쪽에 집중시켰다간 다른 지역이 위험에 빠질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은 전력을 데려간 룬 리그 자체가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간신히 구축한 평화와 협력의 상징이 깨지게 된다. “어떻게든 지금 있는 가용 병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로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전투의 성격은 섬멸전이 아니에요. 구원자에게 ‘포탈’을 쓰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죠. 구원자가 빠져나간다면 저 던전은 무용지물이 될 거예요.” 다행스러운 건 민간 피해가 없다는 점. 전투를 계속할 명분은 충분하다. 로레인이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3군단의 함대에 해상 방비를 더더욱 철저히 하게끔 다시 한번 강조하세요.” “예!” 푸훗. 대기하던 세르네가 꼴값이라는 듯 입가를 가린 채 피식피식 웃었다. 로레인은 애써 못 본 척하며 생각에 잠겼다. ‘구원자가 아직 포탈로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게 두렵다면, 던전에 들어간 지금은 괜찮을 텐데. 다른 상부의 허가가 필요한 걸까?’ 사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마음이 초조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시몬이 넘어간 세계의 시간과 대륙의 시간은 다를 거라고 네프티스도 말했다. 이쪽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른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느리게 흐른다면? 이쪽의 한 시간이 저쪽의 하루, 혹은 일주일일 수도 있고 그사이 구원자가 시몬을 어떻게든 찾아내 위기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 ‘포탈을 써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 외부에 몬스터가 흘러나오지 못하도록 더 강하게 포위해야 해. 하지만 지금 있는 전력만으로는…….’ “사령관님!” 한 남자가 헐레벌떡 로레인에게로 뛰어왔다. “접근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선박 두 척이 모래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통신을 요청해 왔습니다!” 로레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누가……! 바로 연결하세요.” * * * 쏴아아아아아아! 암흑연합의 깃발을 휘날리는 한 척의 배가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가자 가자!” 유령함대의 엘리사가 갑판 위를 방방 뛰어다니며 요란하게 외쳐댔다. 나머지 암흑연합 대표들도 전투준비를 하며 장비와 언데드를 점검했다. 헥토르가 시룡의 날개를 등 뒤에 붙였고, 에이젤은 샤텔의 장비 착용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는 이번 암흑연합 대표팀의 인솔자인 메도우, 그리고 메이린이 수정구를 붙잡고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연결음이 들리더니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합동 본부 제2사령관! 허가받지 않은 선박의 현장 접근은 불허합니다. 위험하니 속히 물러나세요! “아! 로레인! 그 목소리 로레인 맞지?” 메이린이 얼굴을 환하게 펴며 말했다. 다른 동료들도 로레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우르르 몰려들었다. “메도우 경에게 이야기는 다 들었어! 시몬이 비밀 작전을 수행 중이라고? 우리도 싸우게 해줘!” -……메도우 경. 잠시 로레인이 유감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나갔다. -작전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할게. 너무 위험해, 메이린. 너희들은 암흑연합에 승리를 안겨준 영웅들이야. 폐막식을 앞두고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한 명이라도 전력이 부족하잖아!” 메이린이 팔을 휙 휘둘렀다. “이쪽에 군단장도 있고 연방 애들 쪽엔 성녀도 있어! 이 전력을 그냥 폐막식에 대기하도록 썩힐 거야? 다들 싸울 수 있어! 시몬도 룬 리그를 치르느라 지쳐 있을 텐데 싸우고 있다며!” -하지만……! “메도우입니다. 일이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때 감독관 메도우가 끼어들었다. “룬 리그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 종료까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고, 결사는 엄연히 진행 중인 룬 리그를 급습한 겁니다. 우리는 이에 맞설 의무가 있습니다.” 로레인의 고민이 수정구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다 신성연방 측에서도 같은 연락을 받았는지 연방 측 지휘관과 상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은 대표들은 긴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래, 알겠어. 로레인의 말에 암흑연합 대표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던전 내 침투와 구원자와의 전투는 불허야. 인근 몬스터를 상대하는 선에서 부탁할게. “맡겨줘!” 통신이 끊기고, 다들 새로운 전투를 준비했다. 신성연방 측에서도 허가를 받았는지 전투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3번 테르곤, 4번 르바임이 새 전투복으로 환복했고 룬 리그에서는 다소 빠르게 탈락했던 5번 디아나와 6번 하미엘까지 앞으로 나섰다. “온다!” -케에에에에에엑! -끼르륵! 시작의 동굴로 향하려던 던전의 모래 몬스터들이 가까이 오는 두 척의 배를 보고는 머리를 돌렸다. 몬스터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도 나설 수 있겠네!” “마나 스크린으로 보기만 하느라 몸이 근질거렸지.” 룬 리그에 참전하지 못한 암흑연합 대표팀의 예비 멤버들. 힘이 쌩쌩한 말콤, 제이미, 피츠제럴드가 선두로 나왔다. “그럼 나도 한번 껴볼까!” 하운드 키즈 중에서는 유일하게 아이비 골드빈이 합류했다. 이내 삼각 구조물에서 튀어나온 길고 지렁이 같은 모래 몬스터들이 입을 쩍 벌리며 배를 향해 가까이 왔다. 뿌우우우우우우! 신성연방 측 배 위에서는 정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식탁보를 뒤집어쓴 듯 눈알만 통통 튀어나온 정령들이 나팔과 플롯을 들어 올렸다. “솔리스 성가 제 1악장!” 척! 상대적으로 활약이 적었던 신성연방의 6번. 천사의 성악대 하미엘이 지휘봉을 휘저으며 말했다. “리바르센도!” 콰콰쾅! 수십 마리의 정령들이 나팔을 불자, 강렬한 신성 음파가 퍼져 나가 몬스터들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암흑연합 측까지 커버하는 압도적인 범위 음파 공격. 지켜보던 메이린이 감탄성을 흘렸다. “여, 역시 대표로 뽑힌 이유가 있구나.” 모래 몬스터들이 평범한 모래가 되어 하나둘 터져 나갔지만 몰려드는 수가 워낙 많았다. 이에 암흑연합 후보생들이 준비했다. “위치스케치(Witchsketch).” 제일 먼저 저주학과의 제이미 빅토리아가 실력을 발휘했다. 저주를 언어로 형상화한 거대 글자들이 튀어 나가 결계처럼 펼쳐졌다. 하미엘의 음파 공격을 피해 우회하던 몬스터들이 글자에 닿자, 힘이 빠진 것처럼 축 늘어지며 바닷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도플갱어> <서먼 베히모스> 말콤, 피츠제럴드, 아이비도 공세에 합류했다. 상대적으로 쌩쌩한 그들의 화력에 몬스터들이 녹아내리며, 점점 더 삼각형 모양의 거대 구조물이 가까워졌다. “큰 놈이다!” 쿠쿠쿵! 구조물의 벽 일부를 박살 내며, 모래로 이루어진 악어 두 마리가 입을 쩍 벌리며 다가왔다. 그때 갑판 위에서 누군가 한 명이 뛰어올랐다. 4번, 치유의 거인 르바임이었다. <그레이트 힐> 화아아아아악! 힐링을 건 그녀의 몸이 거인화되어 더더욱 커졌다. 거대한 주먹이 모래 악어를 강타해 벽면에 처박아 버렸다. 타아! 그리고 에이젤의 바람 마법을 받아 날아가는 샤텔이 두 번째 모래 악어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영역장악> 샤텔은 모래와 지반으로 이루어진 악어의 몸통을 단숨에 장악하더니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을 직접 움직여 빠져나오려는 던전의 몬스터들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터엉! 텅! 뒤이어 두 강대한 전력이 갑판을 딛고 날아올랐다. 암흑연합 쪽은 새까만 드래곤으로 변했으며, 다른 한쪽은 여천사로 변했다. [발목 잡지 마라.] [그럴 리가요!] 헥토르가 어둠의 브레스를 쏘아댔고, 리사라는 손톱을 검처럼 늘려서 휘둘러 댔다. 군단장과 성녀의 공세가 몬스터들을 불태우고 절단하며 연이어 활약했다. “우리도 가자!” “출발해!” 시몬을 돕기 위해. 이곳에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다른 대표들도 질세라 쏟아져 나가며 공세에 합류했다. * * * 대륙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더 시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좀비집사와 마코의 방해로 시몬 일행과 혁명군을 놓쳐 버린 히에로미르는 즉각 더 시티 전체에 가혹한 탄압을 시작했다. -변절자와 관련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하늘 위로 히에로미르의 전함들이 날아다니고, 거리에는 수색꾼들이 쫙 깔리며 흉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외부에 시몬과 레테를 찾으러 갔던 수색꾼들도 속속 더 시티로 복귀하고 있었다. 수색꾼들이 흩어져 뒷골목을 들쑤시고, 지하 세계와 투기장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고문했다. 이에 보다 못한 혁명군도 무장하여 반격을 시작했고, 거리 곳곳에 숱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 사실을 들은 히에로미르가 말했다. -폭격해라. -하, 하오나 이쪽 지역은 대규모 밀집 거주지라……. -내가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냐. 히에로미르가 히죽 웃었다. -얼마든지 죽여도 된다. 사람은 다른 차원에서 또 데리고 오면 그만이다. 전함이 주포 포격을 거주지에 퍼붓기 시작했다. 무수한 사람이 죽어 나갔다. 제보를 제대로 검증하지도 않고 신고 지역이면 일단 폭격이었다. 히에로미르는 본보기로 죽인 사람들을 공장 굴뚝 곳곳에 걸어두며 선언했다. <모든 건 변절자 때문이다.> <그들 때문에 죄 없는 너희가 변절자 투표를 하는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변절자를 찾아서 데리고 와라.> 지금까지 히에로미르가 더 시티를 다스려 온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서로 간의 증오. 그러나 이번만큼은 혁명군도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부터 변절자는 없었다.> <상층부가 없는 변절자를 찾으려 했기 때문에 변절자가 되었다! 우리를 이유 없이 증오한다면 증오할 이유를 만들어주자!> 처억! 척! 혁명군은 지하 골목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낙서를 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히에로미르는 더더욱 잔혹하게 탄압했다. 히에로미르는 ‘변절자 때문이다’를 외치며 도시를 폭격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했다. 혁명군은 ‘변절자는 없었다’를 외치며 끌려간 사람들을 구하고, 폭격의 정보를 알아내 대피시켰다. 예전이었다면 여론전은 히에로미르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점점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지금까지 속아줬는데 또 넘어갈 정도로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지.” 변절자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였다. 긴 세월 동안 이어진 투표. 서로에 대한 증오와 핍박과 신고. 히에로미르는 너무 오래 주민들을 서로 대립시키는 방법을 써왔고. -싸우자!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변절자 투표 시즌이 다가와 주민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다 결국. “히에로미르 님! 큰일 났습니다!” 그의 참모가 히에로미르에게 보고했다. 변절자를 찾는 투표.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빈 투표용지를 던졌다는 보고였다. “…….” 그야말로 히에로미르의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 히에로미르는 빈 투표용지를 보다가 흐흐흐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 이제는 정말 위험합니다!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입니다! 이제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회유책을 펼쳐야……!” “그래서 저들이 무엇을 바꿀 수 있지?” 히에로미르가 삐딱하게 웃었다. “나는 여기 있다.” “!” “나는 저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강하다. 저들이 정신을 차려도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원래 순리가 그런 것.” 히에로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의 광경을 한번 본 뒤에 뒤를 돌아보았다. “변절에 머리가 물들어 버린 자들은 필요없다. 전부 없애고 새로운 인간들을 데려와 다시 한번 도시를 세우겠다.” 대규모 섬멸 명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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