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18화 [함대, 제6주포부터 8주포까지, 쏴라.] 히에로미르의 지시가 떨어지자, 하늘의 함대에서 발사된 보랏빛 광선이 벽을 부수고 짓쳐 들었다. 좀비집사가 잽싸게 마코를 안아 든 채 피했고, 광선을 등지고 서 있던 히에로미르는 느긋한 동작으로 팔을 들었다. 그의 팔 앞으로 공간의 틈이 열리며 광선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나.] 촤아아아아! 히에로미르가 두 검지를 세워 들자, 허공에 구멍이 연달아 열리며 방금 빨아들인 보라색 광선을 뿜어냈다. 벽을 타고 달리거나 천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등 정신없이 광선을 피해내던 좀비집사가 바닥을 거칠게 짓밟았다. 우우우웅! 바닥에 우유를 엎지른 것처럼 하얀 웅덩이가 퍼져 나가고, 그 안에서 우락부락한 좀비 언데드, ‘백귀’들이 솟구쳤다. 마코는 즉시 자신의 능력으로 여러 청소 도구들을 생성하여 던졌다. 처억! 척! 백귀들이 일제히 팔을 뻗어 밀대 걸레를 받아 든 뒤 전투 자세를 취했다. 좀비집사 또한 마코를 바닥에 내려준 뒤 직접 밀대 걸레 하나를 들어 올렸다.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군. 청소라도 할 생각인가?] 히에로미르가 비웃음을 흘리며 사방으로 광선을 방사했다. 좀비집사와 백귀들은 피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파괴광선을 향해 밀대 걸레를 앞세우다가, 타이밍 좋게 다가오는 광선을 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밀대 걸레가 미는 방향을 따라 광선이 옆으로 비스듬히 틀어지며 건물의 벽이나 지붕에 부딪혔다. 퍼어엉! 쿠쿠쿠쿠쿠쿵! 밀대 걸레를 휘두른 타이밍이 느렸던 절반의 백귀는 몸에 터져 박살 났지만 나머지 절반의 백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 좀비집사는 특별했다. 촤아아아아! 마코의 밀대 걸레로 파괴광선의 방향을 비껴내다 못해 몸을 크게 빙글 회전시키며 자신에게 날아오던 광선을 역으로 돌려보내는 묘기를 선보였다. [과연.] 히에로미르가 다른 광선을 쏘아보내 그것을 상쇄시키며 말을 이었다. [걸어 다니는 시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전투 센스구나. 이게 에이션트 언데드인가.]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고맙게 받아들이죠.] 좀비집사의 정밀한 카운터로 히에로미르의 공세가 주춤해진 사이, 이번엔 백귀들이 밀대 걸레를 창처럼 앞세우며 돌격했다. [어디 볼까.] 저벅 저벅. 전력을 가늠할 생각인지 히에로미르가 직접 걸어갔다. 자신에게 내질러지는 밀대 걸레를 어깨를 틀어 피하며 장대를 손으로 붙잡았다. 콰직! 밀대 걸레가 반쪽으로 갈라지고, 이어지는 히에로미르의 주먹이 백귀의 복부에 꽂혔다. 퍼어어어어엉! 마치 하얀 풍선이 터지는 듯한 모습으로 백귀 하나가 폭발했다. 이어서 히에로미르가 본격적으로 육탄전에 돌입했다. 힘과 속도를 모두 갖춘 모습. 짧게 전진하면서도 진행 방향을 휙휙 틀면서 움직일 때마다 백귀들이 주먹에 맞아 펑펑 터져 나가고 있었다. ‘놀랍군.’ 좀비집사가 밀대 걸레를 바꿔 잡으며 상황을 분석했다. ‘공간을 다루는 능력을 떠나서, 저 육체능력만으로도 구원자라 불릴 만하다.’ [약해 빠졌다!] 히에로미르가 다시 한번 하늘에서 전함의 포격을 받은 뒤, 그것을 전면으로 쏘아보냈다. 이에 좀비집사가 지시를 내렸다. [양동이 들어!] 처억! 척! 이번엔 백귀들이 양동이를 세워 들었다. 쏟아지는 광선을 양동이로 담으려 시도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양동이가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펑펑 터졌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히에로미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다가, 고개를 젖혔다. 촤아아아아! 등 뒤에서 기척 없이 나타난 마코가 빗자루를 휘둘러 왔다.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피해낸 히에로미르가 손등을 휘둘러 빗자루의 봉을 부숴서 파괴했다. 그러나 무기를 잃은 마코의 순발력도 대단했다. 바닥에 떨어진 밀대 걸레를 발등으로 차서 띄운 뒤, 그것을 붙잡고 힘껏 내질렀으나. 후웅! 공간이 열리며 공격이 애꿎은 텅 빈 허공을 찔렀다. 이 틈에 히에로미르가 미끄러지듯 옆으로 돌아와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앙! 몸이 크게 꺾인 마코가 벽면을 뚫고 날아가 버렸다. 히에로미르가 훗 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으나. 쩌어어어어어엉! 이번엔 바닥을 스치듯 이동한 좀비집사가 히에로미르의 가슴을 두 발로 걷어찼다. 에이션트 언데드 특유의 괴력에 밀려난 히에로미르 또한 벽을 부수고 날아가 반대편 공장의 벽을 부수고 내부로 들어갔다. 쿠쿠쿠쿠쿵! 그가 공장의 설비들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터업. 좀비집사 또한 공장으로 따라 내려와 부러진 외눈 안경을 추켜올렸다. [마코를 상처 입히는 건 용서 못 합니다.] [시체 놈이!] 후우우우웅! 히에로미르가 집어 던진 커다란 금속 재단기가 날아와 좀비집사의 얼굴에 부딪혔다. 가히 얼굴이 박살 나고 목이 꺾여야 할 일격이었으나, 좀비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비틀어진 목을 붙잡고 삐걱 소리와 함께 다시 원래대로 맞췄다. 언데드다운 내구력과 회복력. 히에로미르가 혀를 차며 통신구를 붙잡았다. [다음 주포. 쏴라.] 다시 한번 하늘에서 발사된 보라색 광선이 공장의 벽을 뚫고 날아와 히에로미르가 펼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 준비.] 동시에 좀비집사도 바닥에서 백귀들을 여럿 소환했고, 밀대 걸레와 양동이 등 마코의 청소 도구들을 붙잡게 했다. [그래, 오랜만에 제대로 즐겨보자!]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입꼬리를 올린 히에로미르가 공간을 열어 파괴광선을 날려보냈고, 좀비집사와 백귀들이 밀대 걸레를 앞세운 채 돌진했다. * * * 공세는 계속되었다. 좀비집사와 백귀들은 밀대 걸레로 공장의 온갖 장치를 뜯어내 날렸고, 히에로미르는 불에 타고 폭발에 휘말리고 전기에 지져지고 쇳물에 데였으나 멀쩡하게 성큼 성큼 걸어 다니며 백귀를 하나하나 터뜨려 죽였다. 공장 내부는 어느새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가히 팽팽한 전투 양상이 지속되고 있었으나. 촤아아아아아아! 허공에서 발사된 보랏빛 섬광이 좀비집사의 다리를 꿰뚫는 것으로 팽팽하던 전세가 기울어졌다. 좀비집사가 쓰러졌고, 그대로 돌진해 벽에 꽂아 넣은 히에로미르가 좀비집사를 비스듬히 내려다 보았다. [그 도구, 공간을 비트는 장비라고 생각했는데 사물에 영향을 주어 굴절시키는 정도인가. 미천하군.] 히에로미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희들에게 더 이상 흥미는 없다. 시몬 폴렌티아는 어디 있지?] 좀비집사가 웃었다. [그 솜주먹, 안 쓸 겁니까?] 쩌어어어어어어엉! 히에로미르가 그대로 좀비집사의 안면을 후려쳤다. 외눈 안경이 형체도 없이 깨지며 단번에 그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쩌어어엉! 쩌어어어어엉! 히에로미르가 그의 위로 올라가 연달아 주먹을 가격했으나 에이션트 언데드의 내구력은 어마어마했다. 좀비집사는 주먹으로 맞으면서도 큭큭 웃고 있을 뿐이었다. [시몬 폴렌티아의 위치를 말해라.] [집사는 어떤 경우에도 주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쓰윽. 그때 좀비집사가 팔을 뻗더니 히에로미르의 찢어져 삐뚤어진 옷깃을 제대로 고쳤다. [이거, 내내 불편하더군요.] 히에로미르의 눈에 싸한 분노가 드리워졌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너희같이 대륙에만 존재하는 고대의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 우우웅! 그가 허공에 연달아 구멍을 만들어냈다. [코어를 부수면 파괴된다면서?] 다시 돌아간 목뼈를 붙잡은 좀비집사가 태연히 말했다. [그거야 건드릴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죠.] 터업! 텁!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을 뚫고 온 두 밀대 걸레가 좀비집사를 붙잡아 바닥 밑으로 끌고 내려갔다. [!] 그리고 등 뒤에서는 마코가 양동이를 들고 히에로미르 후방에서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양동이에는 보라색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히에로미르가 코랄 광선을 쏠 때 받아내던 양동이 중 딱 하나,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에 대한 전투 데이터는 잘 뽑았습니다.] 바닥에 파묻혀 사라지며 좀비집사가 손을 흔들었다. [예를 들면 방출과 흡수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는 점 같은 것이죠. 제 주인께 잘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놈!] 히에로미르가 사라지는 좀비집사를 향해 팔을 뻗었으나, 그보다 빨리 마코가 양동이를 움직여 그 안에 담긴 코랄 광선을 히에로미르의 등에 쏟아냈다. 콰콰콰콰콰콰콰! 히에로미르 스스로 자신을 찢어발길 수 있다고 밝힌 코랄 광선. 그 공격을 제대로 가한 뒤, 마코가 양동이를 내팽개친 채 창가를 향해 몸을 날리며 외쳤다. [지금이에요!] “알고 있어!” 처음에 공격을 맞고 날아갔던 카미바레즈는 이미 전장에 복귀했다. 그녀가 두 손을 앞세우며 눈을 감았다. <콜 템페스트> 콰아아아아아아! 방대한 피의 회오리가 일어나 공장을 통째로 휩쓸어 버리며 내부의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좀비집사와 마코, 그리고 카미바레즈의 연계 협공. 저 멀리서 다비나를 부축하며 함께 도망치던 아렌디아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저, 저렇게까지 해요?” “저걸로도 아마 안 죽을걸. 상대는 히에로미르야.” 다비나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난 괜찮으니까 혁명군 대원들을 도와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켜 줘. 아렌디아.” “네?” “히에로미르를 화가 나게 만들었으니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아, 알겠어요.” 아렌디아가 몸을 날려 사라지고, 다비나는 주먹을 꾸욱 쥐며 카미바레즈의 혈류마법으로 공장이 박살 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혁명가.’ 히에로미르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잔인하게 죽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준 정보들은 나한테 있어. 네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을게. 무조건 이번 일을 성공시키겠어.’ 그녀가 결심을 마친 뒤 등을 돌려 걸어갔다. * * * 쿠구구구구구구구! 박살 난 공장. 등 뒤에 한껏 코랄 섬광을 맞은 채 카미바레즈의 혈류마법까지 직격했지만, 히에로미르는 멀쩡히 일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그가 불에 그을린 듯 피부가 벌겋게 벗겨진 등을 슬슬 긁다가 인상을 팍 썼다. [코랄은 나를 죽일 수 있는 힘이긴 하다.] 그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귀에 찬 통신 장치를 작동시켰다. [놈들이 도망친다. 반경 2천 미터 내부의 모든 생명체에게 무차별 포격을 가해라.] -히에로미르 님! 하, 하오나! 그러면 일반인들도……! [실시해라.] 쿠쿵. 쿵. 하늘에 뜬 함선들이 모든 주포를 열고 포격을 가했다. 사각형 범위 내의 더 시티 한 블록이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 * * 덜컹 덜컹! 한편 ‘전이 팀’인 시몬과 레테는 기차의 화물칸에 올라타 이동하고 있었다. 다비나가 전이기로 향하는 최단 루트를 만들어두었는데, 중간 정도까지는 기차에 몰래 올라타서 가면 유리했다. “하하하! 간지러워. 란!” 백룡 란은 룬 리그에서 시몬을 공격했던 게 못내 미안했던지 계속 시몬의 얼굴을 할짝대고 몸을 휘감으며 애교를 부려댔다. 시몬도 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란을 쓰다듬으며 예뻐해 주었다. “뭔가 질투 나네요.” 맞은편, 화물칸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레테가 턱을 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아이, 은근히 도도해서 저한테도 그렇게까진 안 하는데.” “날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나 봐.” “그보다.” 레테가 고개를 돌려 흐릿한 하늘 너머 더 시티 방향을 바라보았다. “혁명 팀은 괜찮겠죠?” “괜찮을 거야. 군단을 두고 갔으니까.” “얼마나요?” “전부.” 레테가 당황한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괘, 괜찮은 검까?” “전이기를 지키는 병력은 너랑 나면 충분하잖아. 혁명 팀은 히에로미르의 공격을 직접 받을 수 있으니 더 위험할 거야.” “뭐…… 그렇긴 한데.” 레테가 등을 쭉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전이기 작전, 정말 현실성은 있을까요?” 시몬이 빙긋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현실성 있게 만들어 보일게.” 이제 열차를 탄 두 사람의 시야에 전이기가 위치한 곳으로 알려진 설산이 보이고 있었다. 최강의 지원군을 부르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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