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14화 설원 위 아렌디아의 성. 부상당한 혁명군 대원들은 멀찌감치 물러난 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파아아앗! 하얀 머리카락의 여성이 별빛을 휘감은 채 날아다니고 있었다. 덤벼드는 히에로미르의 수색꾼 무리를 그야말로 압도했다. 쩌엉! 퍼억! 사뿐한 동작으로 수색꾼을 걷어차자 마치 현실성 없는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벽 끝까지 날아간 수색꾼들이 벽에 부딪혔고, ‘쿵!’ 하고 별 모양의 파인 자국이 생겼다. “쏴, 쏴라!” “하얀 머리 여자부터 잡아!” 수색꾼들이 일제히 보랏빛이 일렁이는 창을 던지고 포탄을 쏘아댔지만, 그들이 무기를 발사하는 시점에 레테는 이미 별빛을 휘감고 그들 뒤에 와 있었다. “이쪽이에요.” 뒷짐을 진 채 여유롭게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에 수색꾼들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어지는 주먹과 발차기에 다들 별 모양의 충격파를 일으키며 날아갔다. “위협적인 무기기는 한데.” 차악. 수색꾼이 놓친 창을 손에 쥔 그녀가 찬찬히 살폈다. 창끝에 보라색 기운이 웅웅거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슴다.” 촤르르르르르! 이번엔 레테의 좌우에서 사슬 달린 창들이 하나씩 날아왔다. 레테는 태연히 어깨를 일자로 세우는 것으로 좌우의 창끝을 피했다. 그러나 창대에 붙어 있는 사슬이 보랏빛으로 물들자, 창들이 스스로 방향을 꺾어 움직였다. “아?” 레테가 놀란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사슬이 단번에 그녀를 휘감아 묶어버렸다. 뒤에서 지켜보던 혁명군 대원들이 기겁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잡았다!” 터엉! 덩치 큰 수색꾼이 창끝을 세우며 사슬에 묶여 있는 레테를 향해 돌진했다. 레테는 뚱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신발로 바닥을 가볍게 톡 걷어찼다. 그녀의 몸이 공중에 떴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보내더니 다리 힘만으로 창대를 붙잡았다. “?!”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공격이 막힌 수색꾼이 움찔했고, 레테가 공중에서 몸을 비트는 동시에 두 다리를 펼쳐 그의 안면을 걷어찼다. 쩌어엉! 수색꾼이 괴상망측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레테는 사뿐히 지면에 안착한 뒤 떨어지는 창을 발등으로 툭 하고 걷어차서 공중에 띄웠다. “란.” 그녀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백룡 란이 창대를 입으로 물었다. 란이 창끝으로 그녀를 속박한 사슬을 가볍게 잘라냈다. 수색꾼들이 겁에 질리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이렇게 쉽게!” “미안하게 됐슴다.” 머리를 쓸어 넘긴 그녀가 반대쪽 손으로 별빛을 모아 손끝으로 튕기듯 달렸다. 그들의 몸이 모조리 펑펑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 바로 반대편. 퍼어어어억! 으저저적! 우아한 전투를 하는 레테와는 달리, 얼굴에 피 칠갑을 하고 주먹을 휘둘러 대는 여자가 있었다. 퍼억! 으적! 꽈드드드득! 작은 체구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파괴력. 주먹에 얻어맞은 수색꾼들은 하나같이 마스크가 박살 나고 코에서 피를 뿜거나, 이빨이 튀어 오르거나, 공중에서 수 바퀴를 회전한 채 날아갔다. “저자가 혁명군 대장이다!” “포획하라!” 카미바레즈가 뺨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쓱 닦으며 그들을 노려보자, 수색꾼들이 흠칫하며 동작이 얼어붙었다. 이내 카미바레즈가 혀를 살짝 내밀어 피를 맛보더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젖혔다. 잠시 몸을 수그린 채 ‘아우우!’ 하는 소리를 냈다. “맛없어! 내가 미쳤지!” 그녀의 안광이 번뜩였다. “다 죽인다.” “보, 본인이 맛봐놓고 우리한테 화를 내시오!” 수색꾼들이 보라색 창을 연달아 날리기 시작했다. 카미바레즈는 두 손을 포개어 모은 뒤 펼쳤다. <블러드 실크> 촤아아아아! 피로 이루어진 긴 붉은 목도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찰랑거렸다. 그것을 붙잡은 그녀가 가공할 만한 속도로 적진을 돌파했다. “떠헙!” “큭!” 그녀가 적진을 지났을 뿐인데, 수색꾼들의 몸이 섬유에 휘감겨 공중으로 강제로 떠올랐다. “어어?” “바, 발이!” 촤아! 촤아아아아! 붉은 휘장을 흩날리며 적진을 돌파하는 카미바레즈의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그들을 지나친 뒤 걸음을 멈추자 수십 명의 수색꾼들이 모조리 빨간 천에 휘감겨 떠오른 채 낑낑대고 있었다. “자, 자비를!” “더러운 피를 가진 주제에.” 카미바레즈가 손끝을 내렸다. “말이 많다.” 천장까지 떠오른 수색꾼들이 그대로 내려와 이마부터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꿍! 하는 소리와 함께 수색꾼들이 일제히 정신을 잃어 조용해졌다. “오오……!” “역시 강해!” 그녀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혁명군 대원들이 감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두 사람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 자체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긴 시간을 견뎠더니 이런 일도 생긴다. 지금이 가장 히에로미르 공략에 가까운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처리하셨슴까? 카미 씨.” 레테가 웃는 얼굴로 걸어오며 말했다. 카미바레즈가 근엄한 척 팔짱을 꼈다. “이름 줄여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구 내가 더 빨랐어!” “네, 뭐.” 큰 접점은 없지만, 분명히 레테가 지금까지 보아오거나 시몬에게 들은 카미바레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 사실 신성연방에서도 악명 높은 뱀파이어 로드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이니 저게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 아직!” “?” 레테와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돌렸다. 바들바들 떨며 자리에 일어나고 있는 수색꾼 한 명이 어깨에 박격포를 짊어진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끝난 게 아니다!” 보라색 포탄이 연기를 흩뿌리며 이쪽으로 날아온다. 레테가 팔을 들고 방어마법을 펼치려는 그때. <디바인 쉴드> 그보다 먼저 레테의 앞으로 방어마법이 펼쳐졌다. 꽈아아아앙! 방금의 포탄을 방어마법이 너무나 안전하게 막아냈다. 레테가 마구 휘날리는 머리를 붙잡아 넘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지나쳐 날아간 신성 미사일이 마지막 남은 수색꾼에 부딪혀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좋아요.” 절컹. 어느새 아렌디아가 가방 모양의 미사일 발사기를 내려놓으며 레테와 카미바레즈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을 따라가면 ‘시그문드 아한델’을 만날 수 있다는 거, 확실하죠?” 레테가 생긋 웃었다. “물론임다, 아렌디아 자매. 잘 부탁해요.” * * * 같은 시각. 아렌디아의 성 앞마당에는 거대한 공중 전함 한 척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출동한 무장한 수색꾼들이 아렌디아의 성으로 들어가는 족족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이,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임 수색꾼 한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걸었다 그의 앞에는 히에로미르의 인정을 받아 수색대장이 된 워턴이 허리에 손을 얹고 지켜보고 있었다. “약하네. 악명이 자자한 더 시티의 수색꾼이 고작 이 정도야?” 그녀가 한심하다는 투로 툭 내뱉었다. 선임 수색꾼은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하시다면 수색대장께서 저들에게 실력을 한번 보여주시는 게…….” “이미 늦었어.” 워턴이 등을 돌리자 펄럭하고 와인색 망토가 휘날렸다. “너희들이 어느 정도는 시간을 끌어주면서 전황이 비등해진 순간에 내 힘을 쓸 계획이었는데, 아예 전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예, 예?” “무엇보다 ‘발라 모르티페르’는 시몬 폴렌티아를 잡기 위한 것. 시몬 폴렌티아가 없으니 다음을 기약한다.”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당당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달랐다. ‘무섭다!’ 이건 미친 짓이다. 아렌디아 하나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저기 별의 성녀 레테와 카미바레즈까지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상대가 되겠는가. ‘특히 레테 성녀는 내가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레테가 화를 내는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재고해 주십시오!” 선임 수색꾼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는 물러나기엔 더 시티의 자존심이……!” “화이트 블록인 내 명령을 듣지 못하겠느냐!” 결국 워턴이 ‘권위’로 찍어 눌렀다. 여기 온 지 고작 몇 주 된 자가 저런 소리를 하고 있으려니 우습겠지만. “……후퇴하겠습니다.” 화이트 블록의 권위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결국 그녀가 공중 전함에 올라탔고, 전함은 하늘을 날아 더 시티로 향했다. 워턴은 저벅저벅 전함의 구석진 곳으로 물러나더니, 이내 벌렁벌렁 터질 것 같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절망에 빠졌다. ‘어쩌면 좋지? 대체 어떻게 행동하는 게 최선이야?’ 레테 일당과, 구원자 히에로미르. 둘 중 선을 잘 타다가 유리한 쪽에 붙는 게 어떨까 생각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니 시그문드 아한델을 전기 채찍으로 살벌하게 고문했던 게 떠올랐다. 적을 속이기 위한 자구책이었다고 밝혀도, 아마 아렌디아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워턴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 * * 한편 시몬과 쥴, 다비나는 함께 지하 세계를 빠져나와 더 시티의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혁명군의 본부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놀고 있던 건 아니었소.” 크흠!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른 쥴이 민망한 듯 먼저 운을 뗐다. 피어의 뼈로 만든 건틀릿에 맞아서 생긴 영광의 상처였다. “언젠가 시몬, 그대가 나타날 건 짐작하고 있었고 지하 결투장과 이쪽 인원들을 장악하면 더 시티를 뒤엎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알지 알지.”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다비나도 입을 가린 채 쿡쿡 웃으며 한마디 했다. “잘 부탁해, ‘마성’.” “……부디 밖에서는 그 호칭으로 부르지 말아주시오.” 시몬은 새로운 세계의 생활에 푹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쥴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쥴은 우연치 않게 마검에 선택받은 뒤로는 고향에서 떠나 정처 없이 대륙을 돌아다녔고, 그 뒤에는 키젠 생활이 이어져 왔다. 늘 쫓기거나, 규범이 확실한 곳에서 생활하던 그에게 힘이 모든 것인 지하 투기장의 생활은 대단히 매력적이었으리라. 시몬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같이 키젠으로 돌아갈 생각은 있는 거지?” “물론이오.” 쥴이 마검을 부여잡았다. “잠깐의 일탈이었을 뿐이오. 그쪽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본 이상, 계속 있을 이유는 없소.” 어쨌거나 쥴 빈체레까지 합류했다. 레테와 카미바레즈 쪽도 아렌디아를 무사히 데리고 와줄 터. 전력이 갖춰졌다. 시몬의 7군단과 레테의 신수 군단도 회복이 진행 중이다. 이제 대륙에서 지원군만 온다면 더 시티를 장악하고 있는 히에로미르와 한번 붙어볼 만하다. “거기 아가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골목길 돗자리에 잡동사니나 돌멩이 따위를 늘어놓고 있는 한 노인이 다비나를 향해 손짓했다. “물건 좀 보고 가지 않겠소? 아가씨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 그럴까?” 빨리 혁명군 본부로 복귀해야 했지만, 다비나는 기꺼이 노인의 돗자리에 가서 물건을 뒤적거리다 조잡한 머리핀 하나를 샀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그녀가 머리핀을 쓱 머리에 꽂아놓은 뒤, 신발을 고쳐 신는 척하다가 슬쩍 쪽지 하나를 꺼냈다. “정보꾼으로부터 새로운 정보가 왔어.” “아……!” 빠르게 쪽지를 읽어내리던 그녀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졌다. 시몬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히에로미르가 대륙에 전쟁을 일으켰다네.” 그녀가 굳은 얼굴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우리 계획을 조금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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