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13화 쿠쿠쿵! 시작의 동굴 곳곳이 식재료처럼 썰려 나가 있었다. 그리고 벽 뒤에 숨어 상처를 감싸고 있는 구원자 시엘은 죽상을 지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쫓고 있는 심판의 성녀, 다나 쪽을 응시했다. ‘도저히 틈이 없어.’ 모든 일이 꼬였다. 쌍둥이 동생에게 버림받고, 마지막으로는 본가에 뒤통수를 맞았다. 설마 포탈 허가를 내주지 않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의 동굴에 무리하게 잠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있는 어느 순간, 갑자기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든 그녀는 몸서리치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시작의 동굴 앞의 바다. 바로 그곳에. 쿠우우우우우우!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간 전이! 히에로미르구나!’ 늦었지만 드디어 그 빌어먹을 동생이 나섰다. 언제 나타나나 했다. 그녀가 재빨리 공간이 비틀리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보조한다!’ 까드드드드드드! 시엘의 능력이 발동되며, 허공의 하늘이 유리창 갈라지듯 쪼개지고 공간 전이가 더더욱 촉진된다. 근처 바다에 있던 3군단의 함선들도 해류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물러서고 있었다. “흠.” 까가가각. 바닥에 검을 질질 끌며 걷고 있던 다나가 검을 들어 어깨에 툭 올린 뒤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마침 그녀의 귀에 착용한 소형 통신 수정구에도 상황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공간 전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휘말리지 않도록 즉시 물러나 주십시오! 다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규모라면 포탈은 아니고, 배니쉬인가? 하지만 어째서 시작의 동굴이 아니라 바다 한복판에?’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대륙의 일부를 전이시키는 그 ‘배니쉬’가 아니었다. 그 반대의 현상이었다. 바다가 요동치며 좌우로 갈라지더니, 이내 순식간에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 삼각뿔 모양의 초대형 구조물이 바다 위에서 나타났다. “사, 산이다!” “뭐야? 저게!” 갑자기 나타난 구조물에 전투요원들의 눈이 터질 듯 커졌다. 그리고 이 거대 구조물이 등장한 여파로 바닷물이 밀려나고 해일이 형성되어 시작의 동굴을 덮쳐왔다. “해일이다! 쓸려 내려가지 않게 버텨라!” 시작의 동굴에 있는 모든 전투요원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갑작스러운 사태였지만 모두가 마법진을 펼치며 해일에 대비했다. 스릉! 다나도 가볍게 검을 휘둘러 몰려드는 해일을 무심히 베어 넘겼다. 대자연마저 우습게 베어낸 그녀가 저벅 저벅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하늘섬의 정보에 따르면 배니쉬는 특정 범위의 지역을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가는 현상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눈앞의 삼각형의 산을 응시했다. ‘다른 차원의 지역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도 가능한 거였나.’ 저 불가사의한 삼각 구조물은 바다에 가라앉지도 않은 채 우뚝 서서 지켜보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부상을 입은 시엘이 그 구조물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딜 가느냐, 구원자.” 다나가 검을 고쳐 쥐었다. 저 구원자는 포탈을 열도록 유도해야 하니 죽일 생각은 없다만, 자신이 떡하니 있는데 밖으로 나온 건 불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가볍게 다리 하나는 날려 버릴 생각으로 검 끝에 신성을 불어넣고 있는데. 쿠우우우우웅-! 진동을 느낀 다나의 시선이 돌아갔다. 거대한 삼각형의 구조물의 중간 부근, 모래가 터지는 듯한 폭발음이 들리더니. -케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 벌어진 틈으로 대륙의 사막에 사는 바실리스크와도 같은 긴 모래뱀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득실거리는 뱀들이 항아리를 깨고 나오는 것과도 같은 광경. 그것들이 구조물을 지나 바다를 건너 시작의 동굴의 지면을 향해 화살 같은 속도로 들이닥쳤다. 다나는 뒤로 가볍게 물러나는 것으로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쩡!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목이 말끔한 단면을 보인 채 쓰러진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캬아아아아악! -끄르르륵! 삼각 구조물의 벽면에 연달아 구멍이 퉁퉁 뚫리며 그 안에서 셀 수도 없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엘이 다루던 모래 개는 물론, 온갖 괴상망측한 개체들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저 구조물 전체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일종의 실체가 있는 던전 같았다. “진작에 이렇게 나와야지.” 결사가 마침내 제대로 된 전쟁을 걸어왔다. 조금 더 상황에 흥미를 느낀 다나가 통신 수정구를 붙잡고 지시했다. “전투를 준비하라.” 처억! 척! 팔라딘들이 일제히 검례를 올리며 진형을 정비했고. 그것을 신호로 수도 없이 많은 모래 괴물들이 구조물에서 빠져나와 시작의 동굴을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촤악! 다나와 팔라딘들이 선두에서 나서서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고, 네크로맨서들도 까마귀 요원을 중심으로 진형을 갖추고 모래 몬스터들을 격추하기 시작했다. 지켜야 할 일반인은 없으니 모두가 마음껏 전력을 발휘해 싸울 수 있었다. “시작의 동굴을 요새처럼 활용하여 몬스터를 끌어들이거라.” 다나가 한 손으로 검을 휙휙 휘두르며 지휘를 내렸다. 그때 새로운 통신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암흑연합 제3군단. 우리 함대도 포격으로 공격을 지원하겠소. “필요 없다, 네크로맨서.” 다나가 거절했다. “저 삼각 던전에 대한 포위를 유지하고 바다를 통해 구원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확실히 막거라. 전투는 지상군으로 충분하다.” 광오하고 오만한 발언일 수 있었지만, 다름 아닌 심판의 성녀의 말이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전진하라. 데바께서 우리의 승리를 약속하셨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검에서 신성이 십자가 모양으로 번쩍이더니, 그것이 놀라운 기세로 커지며 몰려드는 모래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신성연방의 팔라딘 프리스트들이 감탄성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뒤처지지 마라! 네크로맨서의 저력을 보여라!” 네크로맨서들도 이에 질세라 칠흑을 개방하며 화력을 올렸다. 무수한 칠흑원소계 마법과 저주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삼각 던전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분쇄하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가 격렬해지고 있는데. -스릉! 삼각 구조물의 중심부에 길쭉한 선이 그어졌다. 바로 그 선이 천천히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모래 몬스터가 아닌 한 인간이 뛰어내렸다. 다나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자를 향해 참격을 날리려 했지만. -공격 중지! 적이 아닙니다! 지휘부에서 즉각 공격을 막았다. 높은 상공에서 까마귀 깃털 망토를 펄럭이며 등장한 남자는 입에 나뭇가지를 문 채 가뿐히 시작의 동굴에 착지했다. 그가 누군지 알아본 네크로맨서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럴 수가!” “퀴, 퀸터 님이 돌아오셨다!” 그의 정체는 처음에 시엘을 찾아냈지만 유리 속 공간에 빠지고 말았던 까마귀 요원, 퀸터였다. 검을 휘둘러 모래 몬스터를 베어 넘기던 다나가 저벅 저벅 퀸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공간의 틈에 빠졌을 텐데 저기서 나오다니 수상하구나. 정말 본인이 맞느냐?” 수상하다는 말에 퀸터는 가볍게 입에 문 나뭇가지를 깨물었다. 스릉! 절삭의 저주가 발동되며, 뿌옇게 몰려드는 모래 몬스터들이 잘게 썰린 식재료처럼 뭉텅 뭉텅 갈라져 바닷물에 빠져 버렸다. “맞군.” 다나도 쿨하게 인정하고는 등을 돌렸다. 퀸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 후배 네크로맨서 요원에게 건네온 통신 수정구를 받아 들었다. 그 요원이 울먹이며 ‘어서 오십시오!’ 하고 한마디 하자, 냅다 정수리에 한 대 꿀밤을 먹이고 뒤돌아선 그가 입을 열었다. “여기는 퀸터. 다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여기는 지휘부 제2사령관. 무슨 일이 있었죠? 현장을 지휘하는 로레인의 물음에 퀸터가 귀를 후벼 모래 먼지를 빼내며 말했다. “간단히 말하면 구원자의 기술에 당해서 이상한 공간에 들어갔는데, 여기저기 억지로 뚫고 다니다 보니 웬 모래 던전이더군요. 그래서 벽을 박살 내고 탈출했습니다.” 퀸터는 자신의 모험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말한 뒤, 본인이 알아낸 바를 이야기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여자 구원자의 능력은 간단히 말해 ‘자기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을 다른 차원으로 내보내는 힘’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 외에 전해줄 정보는 없을까요? “재미있는 걸 봤었습니다.” 방금 자신이 빠져나온 거대한 삼각형의 산을 바라보는 퀀터의 눈매가 싸늘해졌다. “이런 던전이 16개 정도 더 있었습니다.” -! 이야기를 듣던 네크로맨서와 팔라딘들이 경악으로 입을 벌렸다. 그렇다면 이 쌍둥이 구원자는 언제든지 저런 거대한 던전 같은 구조물을 대륙 각지에 뿌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시작의 동굴이야 대륙의 전력들이 집결해 있었기에 잘 막고 있지만, 저런 게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면 대륙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결사는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까드득. 퀸터가 입에 문 나뭇가지를 강하게 깨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반드시 그 하계의 쌍둥이를 ‘모두’ 잡아야 합니다.” * * * “크훕! 헉!” 상처 입은 시엘이 모래 몬스터를 타고 무사히 자신의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쓰러지듯 벽에 등을 기댄 그녀가 이내 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이제 안전을 확보했다. 다나도 이곳까지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 당장 포탈의 허가를 요청하거라.”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여왕이시여. 수정구에서도 안도하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즉시 본가에 허가를 요청하겠습니다. * * * 시몬을 잡기 위해 룬 리그를 습격하며 벌어진 히에로미르로부터 촉발된 전투. 현재 대륙의 입장에서는 대륙에 있는 시엘과, 다른 차원에 있는 히에로미르 양측을 모두 잡아내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히에로미르는 황량한 사막에 와 있었다. 휘오오오오오! 히에로미르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앞을 보았다. 열일곱 개의 삼각형 구조물 중에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구조물이 있던 터와 보라색 모래뿐. 남은 열여섯 개의 구조물을 훑어본 히에로미르가 등을 돌려 걸어갔다. “저,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히에로미르의 참모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무리 시엘 님을 구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어르신께서 최후의 날에 사용하려 안배해 둔 것을 지금 사용하는 건 역시…….” “전부 카이가 자처한 일이다.” 히에로미르가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구원자 전력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나는 이미 카이와는 갈라섰고, 결국 어르신도 내 결단을 용납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나?” “그, 그렇습니다!” 저벅 저벅. 히에로미르가 망토를 휘날리며 걸어가 사막 한복판에 있는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참모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그러자 바로 경관이 바뀌며, 다시 눈이 펑펑 내리는 화이트랜드로 돌아왔다. “시엘은 돌아와 다시 옐로우랜드의 왕좌에 앉을 것이다. 우리는 화이트랜드의 일에 집중한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대륙에서 넘어온 자들을 추적하라고 보낸 워턴과 수색꾼들은 어떻게 됐지?” “그, 그게…….” 참모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가 이내 답했다. “아렌디아라는 자가 숨어 있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합니다.” “성과를 기대해 봐야겠군.” 히에로미르가 미소를 지으며 실내로 걸음을 옮겼다. 참모는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걸 사실대로 보고해야 하나?’ 아렌디아를 잡으러 간 그 워턴 일행이 신나게 깨지고 있다는 보고가 이제 막 들어온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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