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10화 쿠쿠쿵-! 강렬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전투의 풍압으로 바닥이 뒤흔들린다. 큰 충격을 받고 바닥에 기절해 있던 테네리페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순간 직전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았다가, 갑자기 바로 전의 광경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라우라!’ 그녀가 급히 고개를 들어 라우라 쪽을 바라보았다. 라우라는 자신의 몸을 에너지 덩어리 같은 것으로 바꾼 채 싸우고 있었다. ‘소울링 메타모포시스!’ 같은 사령술사로서 저것이 무슨 기술인지 알고 있었다. 생명과 목숨을 불태우는 대가로, 일정 시간 동안 초월적인 육체를 손에 넣는 금지된 흑마법. 그런데 이상했다. 라우라는 지금 왕녀의 권능을 받은 흔적이 없다. 왕녀의 권능을 받았다면 저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을 터. 뒤이어 그녀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큼지막한 백색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금붕어들을 썰어버리고 있는 시몬, 그리고 영혼이 깃든 인형과 장난감을 쏟아 보내는 메리다의 모습이 보인다. 이때 테네리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바로 그 메리다의 몸에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드레스가 입혀져 있고, 머리에는 왕녀를 상징하는 티아라, 삼뿔왕관이 씌어 있었다. ‘다행이다.’ 라우라가 아니라 메리다가 왕녀가 됐다. 정신적으로 안도하기 무섭게 그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뒤는 부탁할게. 폴렌티아 후배, 메리다 후배.’ * * * 라우라는 점점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시몬과 메리다의 합동 맹공. 자신의 몸은 현재 유령궁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망령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죽지 않는 초월적인 육체였지만, 두 사람은 끈질기게 공세를 퍼부어 육체를 깎아내리려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판단이지.’ 라우라의 눈빛이 번뜩였다. 묘사하자면 이 몸은 거대한 호수와도 같다. 아무리 많은 돌을 던져대도 수면이 출렁거릴 뿐, 호수는 변함없다. 지속 시간 내에 이 육체는 무한히 재생하니까. ‘버티자.’ 소울링 메타모포시스의 지속 시간은 두 시간. 저들이 아무리 군단장이라고 해도 체력과 칠흑에는 한계가 있다. 이 정도 수위의 공세를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리는 없다. 아까의 그 리퍼 같은 위협적인 기술도 몇 번 사용하다가 해제하기도 했고. ‘공격은 얼마든지 받아주마! 하지만 빈틈이 보이면……!’ 휘청! 마침 몽유도원도를 유지하느라 어지럼증을 느낀 메리다가 비틀거렸다. 빈틈을 포착한 라우라가 입을 벌리고 목구멍에서 금붕어 머리가 달린 길쭉한 바다뱀을 쏘아 보냈다. ‘시몬 폴렌티아는 멀다! 이건 먹혀!’ 터어어어어어엉! 그러나 누군가가 메리다의 앞으로 끼어들어 방금의 그 공격을 막아냈다. ‘청소 도구?’ 냅다 청소용 쓰레받기 하나만 들고 메리다의 앞으로 나온 건 제4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마코였다. “그 정도로 우리가 당하리라 생각했습니까?” 그리고 바로 전면, 기척을 남기지 않고 다가온 좀비집사가 하얀색 장갑 낀 손으로 라우라에게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얼굴이 일그러지며 라우라의 몸이 바닥을 대굴대굴 굴러갔다. ‘에이션트 언데드! 살아 있었나!’ 라우라가 다시 한번 허공에서 무수한 금붕어를 쏟아 보냈다. 그때 가볍게 장갑을 털어낸 좀비집사의 앞으로 마코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동시에 흑마법을 사용했다. <백귀 소환> 쿠구구구구구! 좀비집사의 기술, 바닥 한쪽이 하얗게 물들더니 그 안에서 거인 백귀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청소 시간> 이번엔 마코가 기술을 사용했다. 그 백귀의 손안으로 커다란 밀대 걸레가 쥐어졌다. 백귀는 정신없이 밀대를 휘둘러 주위의 금붕어들을 쓸어버렸다. “나이스 집사!” 시몬이 환하게 소리쳤다. “무사했던 거야?” [에이션트 언데드는 그 정도의 육체 훼손 정도로는 소멸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좀비집사가 마코의 손등을 잡고 들어 올리며 가볍게 키스했다. [새로운 경지에 오른 것 같습니다.] […….] 마코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었다. 지켜보던 시몬이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흘렸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쨌거나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시몬은 잠시 숨을 돌리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쿵! 쿵! 쿵! 쿵! 청소 도구를 든 백귀들이 달려 나가 라우라를 두들기고 있었고, 영혼 들린 인형과 장난감들은 총공세를 감행했으며, 하늘에서는 트럼프 카드와 소꿉놀이 소품들이 비처럼 내려온다. 가히 이상한 나라의 전쟁. 이번 유령궁 교전은 여러 의미에서 기억에 강하게 남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라우라의 재생이 점점 더뎌지는 게 눈에 확연히 보인다. “메리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이쯤이면 목표한 수치 달성은 충분히 해낸 것 같아.” 끄덕. 메리다가 작게 고개를 움직이며 눈을 감았다. “다음 단계로 진행할게.” [거기까지!] 콰콰콰콰쾅! 일순 사방으로 금붕어 얼굴의 뱀들을 동시에 쏟아내서 백귀들을 박살 낸 라우라가 입에서 액체를 줄줄 흘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나는-!] 철컹! 철컹!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라우라의 몸 곳곳에 철사가 올라와 휘감기 시작했다. “별로 안 궁금해.” 메리다가 주먹을 쥐었다. 라우라가 저항하려 했지만 모든 여력이 재생과 금붕어 소환에 집중되는 바람에 일순 힘이 빠진 상태. 순식간에 의자가 만들어지며 그녀가 강제로 자리에 앉혀졌다. 주위에 선로가 깔리고 장난감 열차가 만들어졌다. [이까짓것!] 꽈드드드득! 라우라가 몸을 부풀리며 강제로 장난감 열차를 파괴하며 빠져나왔다. 그러나 메리다는 예상했다는 듯 아까보다 더 커진 선로를 만들고 더 큰 차체와 의자를 구성하여 그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뿌우우우우! 연기를 뿜어내더니 장난감 기차가 그대로 선로를 따라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라우라가 분노의 함성을 내질렀지만 기차는 멈추지 않았다. 쌔애애애애애애앵! 장난감 열차가 측면의 오픈키를 통과해 5층에서 벗어났다. 이어서 계속 달린다. 얼마나 빠른지 방의 광경이 쌩쌩 바뀐다. 무도회장, 연무장, 와인 저장고, 주방, 욕조, 의상실을 지났다. 선로는 지상은 물론 하늘에도 깔려 있었다. 점점 더 열차의 속도가 빨라지며 오픈키를 통과하자마자 다음 오픈키를 통과했다. 4층. 3층. 2층. 그리고 마침내. 콰아아아아아아앙! 새 조각상의 오픈키를 박살 내며 튀어나온 기차가 유령궁의 메인홀에 나타났다. 열차가 힘껏 유령궁의 벽면을 들이박았고, 그 충격에 라우라의 육체가 일그러졌다. 박살 난 열차가 선로를 이탈해 불이 붙은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안에 있던 라우라 또한 헉헉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는……!’ 메인홀. 자신이 제일 처음 유령궁에 왔던 시작의 장소. 라우라는 몸에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초월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녀의 이능으로 유령궁에 나오는 망령이나 위습을 그림자로 끊임없이 흡수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유령궁 중에서도 유일한 안전지대이자 던전이 아닌 곳. 이제 육체는 무한이 아니다. 지속 시간과는 상관없이 재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시몬과 메리다는 이걸 노린 거였다. 자신을 1층으로 꽂아 넣을 때까지 힘을 빼는 게 목적이었다. “저기…….” 그때, 아무도 없던 메인홀에서 흰 소복을 입은 소녀 하나가 기둥 뒤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시죠? 괜찮으신가요?” […….] 왕녀 후보 중 한 사람인 ‘다비’였다. “잠깐 볼일 보러 다녀온 사이에 다들 사라져 버려서 당황했어요. 호, 혹시 궁 관계자 맞으시죠? 무슨 일 있어요?” [그래, 무슨 일이 있었지.] 라우라가 히죽 웃었다. 테네리페가 애지중지하면서 양성한 왕녀 후보. 왕성한 칠흑과 스피릿이 느껴진다. 저걸 집어삼켜 양분으로 삼는다면 곧 쫓아올 적을 상대하기 수월해진다. [빨간방에 들어갔다가 부상을 입었단다. 부축해 주겠니?] 그녀의 말에 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 조금만 더. 옳지.] 라우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내 다비가 가까워지고 라우라가 그녀를 붙잡으려 팔을 확 뻗는 순간. <혼령화> 다비가 급히 혼령화를 사용해서 라우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자신이 있던 자리에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폭탄을 생성했다. <스피릿 봄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라우라의 고개가 크게 젖혀지며 폭발에 휘감겼다. 뒤로 멀찍이 물러난 다비가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뭔가 수상하더니 역시! 당신이 유령궁의 침입자야. 그렇지?” [이 계집이!] 라우라가 격분하며 다비에게 달려들었다. 쩌어어어어엉! 바로 이때 메인홀 계단 위로 벼락처럼 나타난 시몬이 라우라의 안면을 걷어찼다. 라우라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시몬이 가볍게 바닥에 안착했다. “괜찮아?” 펄럭! 동시에 이불을 타고 메리다가 도착했다. “여기보단 차라리 1층 방이 더 안전해. 물러서.” “당신은……!” 다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리다의 머리에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새로운 유령왕녀가 탄생했다. “아, 알겠습니다!” 왕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다비가 후다닥 도망쳤고, 먼지 속에서 라우라가 몸을 일으켰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를 업신여기다니!] “이제 끝이야, 라우라.” 시몬이 여유 있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왕녀 후보의 폭발로 입은 타격도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 모양인데. 뭔가 더 할 수 있는 거 있어?” [당연히!] 그녀가 제 몸에 손을 올렸다. 아까 올렸던 지퍼가 몸에 툭 튀어나와 그녀의 손에 잡혔다. 현재 가슴까지 올라와 있던 바로 그 지퍼를 쭈우욱 끌어 올려 턱을 지나 뇌가 닿는 곳까지 올렸다. [나는 너희 인류와 차원이 다른 존재, 구원자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녀의 몸에서 다시 한번 칠흑과 스피릿이 터져 나왔다. 더더욱 강화된 그녀가 팔을 뻗었고, 그 즉시 시몬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금붕어가 떨어져 폭발했다. 시몬이 공격을 받고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본 그녀가 우악스럽게 웃었다. 틀림없이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촤아아아악! 통증은 시몬이 아닌 자신의 어깨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멀쩡한 모습의 시몬이 그녀의 어깨를 베고 지나가고 있었다. 방금 지퍼는 시몬이 날린 뼈에 걸려 버린 채 턱끝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꿈?’ 지퍼를 올리고 공격을 한 것까지 모두 꿈이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했을 뿐 육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몬이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오며 다시 한번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그녀도 다시 한번 금붕어를 쏘아 보냈고, 시몬이 그것을 막느라 밀려났지만. 쩌어어어엉! 이번에도 꿈이었다. 통증이 꿈을 깨웠고, 시몬이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긋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발사한 금붕어는 애꿎은 벽면에 부딪혀 폭발했다. [크윽!] “이제 판타서스류 슬립에 자유롭지 못한가 보네.” 시몬이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는 메리다가 눈을 감은 채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라우라는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꼈다. ‘저 여자가 꿈으로 내가 다음에 취할 동작을 보고 제7군단장에게 예견하는 건가!’ 이제는 꿈으로 인한 예지까지. 메리다의 포텐셜이 극한으로 높아지고 있었다. “이제 끝내자.” 시몬이 모아둔 두 손을 펼쳐 들었다. <시몬 오리지널 – 왜곡(歪曲), 소용돌이> 쿠구구구구구구구! 시몬의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라우라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비기. 저곳에 빠지면 끝장이다.’ 라우라가 극도로 경계하며 제자리에서 스피릿을 끌어올리고 있는 그때, 눈을 감고 중얼거리던 메리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우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내 싱긋 웃었다. 본능적으로 소름이 쫘아악 끼친 라우라가 다급히 정신을 차렸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미 왜곡은 시작되고 있었다. 뒤에서 들이닥친 시몬이 소용돌이를 이끌고 라우라에게 던진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라우라는 피할 틈도 없이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갔다. 그녀의 어지러운 비명소리가 왜곡되고, 뒤로 물러난 시몬이 양손에 혼돈의 창을 만들어냈다. “지금이야! 메리다!” <카오스 스피어> 콰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릉! 시몬이 혼돈의 창을 정신없이 만들어 왜곡 속으로 던져 넣고 있었다. “시몬.” “?” “비켜.” 메리다가 바닥을 짚고는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자, 지면에서 온갖 장난감 가게들이 와르르르르 쏟아져 나와 왜곡으로 모조리 빨려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한을 쏟아내듯 그녀가 무수한 장난감을 저 안으로 밀어넣고 있다. ‘하하……!’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왜곡이 가득 찬 채 스파크가 튀었다. 이제는 왜곡의 끝. “시몬!” “맡겨줘.” 스릉!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고쳐 잡고는 힘껏 왜곡을 그었다. 그러자 왜곡이 갈라지며 모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온갖 장난감의 잔해와 고장 난 인형들이 사방으로 쏟아지며 주위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 틈바구니 속에 있던 라우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이렇게 끝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자는 역시나 구원자. 사지가 온통 갈려 나간 채 덜렁거리게 된 라우라가 메리다를 향해 기다란 팔을 뻗었다. 그러나 동시에 시몬과 메리다가 움직였다. 시몬은 두 팔을 펼쳐 모았고, 메리다는 오른손을 튕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짜악! 딱! 손바닥을 치고,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라우라의 몸을 이루던 어둠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유령궁 전체를 뒤흔드는 대공세.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완전히 무력화된 라우라가 바닥에 떨어지고, 천장에서 뽑힌 샹들리에가 그 아래로 떨어졌다. 라우라는 눈에 흰자를 보인 채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강체화 상태도 완전히 풀려 피부가 벗겨진 시뻘건 혈인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시몬이 손바닥을 털었고, 메리다가 하품을 했다. “나이스, 메리다.” “수고했어.” 두 사람이 손바닥이 짝 소리가 나게 맞닿았다. 제7군단장과, 유령왕녀. 첫 합동 전선의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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