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87화 현대 네크로맨서의 아이콘이자, 정수로 손꼽히는 인물인 바힐 아마가르. 평소 특강을 연 적이 없는 그가 대뜸 하루짜리 특강을 개설했다. 이 사실은 빠르게 교내 전체로 퍼져 나갔고,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딜 가든 바힐의 특강 이야기뿐이었다. 기숙사에서 밥을 먹을 때도, 동아리 활동에서도 그쪽 화제가 튀어나왔고, 심지어 학생회실에서 시작된 학생회 회의 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옵, 여기서 다음 주 바힐 교수님 특강 듣는 사람!” 딕의 물음에 1학년인 치엘라와 2학년 아서를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어 올렸다.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역시 바힐 교수님 수업은 인기가 많네요!” “흥, 당연히 들어야지.” 메이린이 긴 하늘색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바힐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건 329기 최대의 수혜 중 하나니까.” “맞아요! 메이린!” 메이린이 싱긋 웃으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도 신청했지?” “응, 물론이야.” 그 대화를 들은 주위의 학생회 멤버들의 입가에 음흉하거나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메이린이 먼저 시몬에게 말을 걸다니, 임무에 다녀온 뒤로 가히 커다란 변화였다. “아, 드디어 둘 사이 어색한 분위기에 눈치 보는 것도 끝이구만! 힘들었다.” 맥락 없이 툭 던진 딕의 말에 메이린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 뭐래! 우리 원래 친했거든! 븅딱아!” 카미바레즈와 치엘라가 나란히 입을 가리며 웃었고, 메이린이 ‘야아!’ 하고 팔을 동동 흔들며 화를 냈다. 딕이 낄낄거리며 그녀의 앙증맞은 동작을 따라 했고, 결국 소파 베개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다들 맞아도 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특강 정원은 50명 내외일 텐데, 경쟁이 엄청나겠네.” 시몬이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가만히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치엘라가 물었다. “저도 바힐 아마가르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천재 중의 천재라고 들었는데, 그분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부럽습니다.” 딕이 시시덕거리며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 말 나온 김에 말이야 치엘라! 내가 1학년 때 바힐 교수님이 날 첫 번째 직속제자로 정하려고 했던 거 알아?” “……그 바힐 아마가르가 딕 선배님을 말입니까?” 치엘라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고, 메이린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믿지 마 치엘라. 시몬을 데리고 오려다가 착오가 있었을 뿐이니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2년 넘게 수업을 들었던 학생의 입장에서, 바힐 아마가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자 동시에 선배들이 앞다투어 대답했다. “천재!” “괴짜!” “변태!” 온갖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며 웃고 있는 가운데, 카미바레즈가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어떻게 생각해요? 우리 중에 바힐 교수님과 가장 가깝잖아요!” “나?”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교수가 늘 해답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자로서 학생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다고 말하기 어렵겠군요. 모두가 눈을 빛내고 있는 가운데, 시몬이 담백하게 답했다. “으으음, 훌륭한 교육자?” “에이.” “하하하! 재미없게 뭐야?”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평일. 바힐 아마가르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특강 : 저주받은 물건의 특별한 사용법> 모두가 예상한 대로 어마어마한 수강 경쟁률이 나오고 말았다. 소문으로 떠도는 말에 따르면 임무를 나가 있는 몇몇을 제외한 거의 3학년 전원이 특강을 수강신청했다고. 결국 특강 경쟁률이 폭발하자 바힐의 연구실 측에서는 새로운 조건을 달았다. -2학년 기간 동안 바힐 아마가르 교수의 저주학 수업을 수료했을 것. -자신만의 특별한 저주받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 것. 첫 번째 조건은 그렇다 쳐도, 갑자기 저주받은 물건을 보유해야 한다는 두 번째 조건은 충족하기 어려웠다. 이 조건이 걸리자 지원 가능한 인원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수강생은 40명 정도로 확정되었다. 물론 시몬은 바로 최근에 ‘그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특강 장소로 가기 위한 텔레포트 마법진 탑승 권리를 얻게 되었다. 시몬 외의 학생회 멤버들은 모두 수강에 실패했다. 그렇게 얼마 후, 텔레포트 마법진의 위치와 시간이 적힌 편지가 전해졌고 시몬은 오늘 모든 수업을 다 마친 뒤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남쪽 산언덕 위의 키젠 텔레포트 마법진. 그곳에는 40명의 학생들이 화기애애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준비물인 저주받은 물건, 제대로 가져온 거 맞지?” “아, 당연하지! 가문에 연락해서 진짜 힘들게 들고 왔다고.” 시몬도 여러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갔다. 다행히 아는 얼굴도 많았고, 피츠제럴드나 반장 제이미가 인사를 해오기도 했다. “바힐 교수님 특강에 참여하는 학생 여러분!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타 주시길 바랍니다.” 마침 체헤클 수석조교가 학생들을 인솔하러 나타났다. 학생들은 하나둘 특강을 위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걸어갔다. 이내 40명이 모두 올라왔고 텔레포트 마법진이 작동되었다. 이제는 익숙한 두 발이 붕 떠오르는 부유감이다. 시몬은 눈을 감았다가 발이 지면에 닿는 느낌을 받은 뒤에 천천히 눈을 떴다. “와……!” 시몬을 비롯한 학생들이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벌렸다. 이곳은 한창 어두운 밤이었고, 하늘에 별이 흐드러지게 많이 떠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 아주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보인다. 별이 뜬 밤하늘과, 덜렁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묘한 감성이 있었다. 현실에 온 게 아니라, 뭔가 던전 내부나 이상한 미지의 공간에 들어온 것만 같다. “환영합니다.”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말끔하고 트렌디한 백색 정장을 입은 바힐이 나무 뒤에서 손뼉을 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제 특강을 들으러 온 3학년 학생 여러분.” “교수님!” “안녕하세요!”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자를 벗고 우아하게 인사를 한 바힐의 동공이 한쪽으로 향했다. 바로 시몬이 있는 방향이었다. 바힐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지만, 금세 미소를 지운 뒤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준비물부터 다 같이 확인해 볼까요? 어떤 저주받은 물건을 가지고 왔는지 학우들 앞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특강인 만큼 격식 없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바힐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원을 그린 채 섰고, 하나둘 저주받은 물건을 꺼냈다. “랭거스틴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마의 단검인데요, 실제로 블리딩 저주가 걸려 있어서…….” “저주받은 컵이에요! 여기 물을 타면 독극물로 변해요!” 저주가 걸린 아티팩트부터 시작해서, 저주받은 책이나 토템, 꽤 희귀성이 있는 고대의 물건까지 나왔다. 그리고 이제 학생회장 시몬의 차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음. 뭔가 바힐 교수님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 같긴 하지만.’ 시몬이 아공간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놓았다. “그게 무엇이죠?” 바힐이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마검입니다.” 와! 학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즉각 마검으로부터 물러나는 학생들도 있었다. “마검까지 다루려고?” “쥴처럼 눈 잃는 거 아냐?” “그냥 보관만 하고 있는 거겠지.” 학생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 “저주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마검이군요. 이 분야의 최고봉이죠.” 바힐이 손뼉을 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지막 학생을 바라보았다. “물론 최고봉은 한 명 더 있는 것 같습니다만.”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여러 인파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쥴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깜짝 놀랐다. ‘쥴! 언제 온 거야?’ 쥴이 온 건 의외라고 생각했다. 마검사용자인 그가 왜 이런 수업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주받은 물건 소개는 끝났다. 커다란 바오밥나무 한 그루 앞,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공간에서 바힐은 특강을 시작했다. “강의를 시작하기 앞서 한 가지 묻겠습니다.” 바힐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저주받았습니까?” 학생들이 조금 당황한 눈으로 자기들끼리 바라보았다. 머리를 긁적이거나 어깨를 으쓱하는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저주를 받은 채로 살아가는 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요. 그렇다면 저주받지 않은 여러분이 어떻게 저주를 다룰 수 있는 거죠?” 파앗! 바힐이 손바닥을 펼치고 간단한 저주 마법인 ‘레그다운’을 만들어 보였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1학년용 추억의 저주 정도였기에 학생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칠흑, 마나, 그리고 마법의 글자인 룬어의 힘이지요. 우리는 저주받지 않았으면서, 저주를 다룰 수 있는 행운아들입니다. 얼마나 편하고 유용한지요. 선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가 가볍게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끊임없는 진화와 효율을 중시하는 골방의 술사들은 이렇게 느꼈습니다. 저주도 없는 인간이 저주를 쓰는 건-” 바힐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비효율적이라고.” 설마. 에, 에이.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 눈알을 굴렸지만, 바힐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더 강한 저주를 빠르게 사용하고 싶지만, 내가 저주받지 않는 건 원하지 않는다. 그 추잡한 욕망이야말로 진화의 계단입니다. 그래서 술사들은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게 된 것이죠.” 바힐이 두 팔을 펼쳐들었다. “느껴지십니까? ‘이곳’에 걸려 있는 저주가.” 학생들이 뒤늦게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몬도 마찬가지였지만, 느끼지 못했다. “우리 인간은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 당연합니다. 이곳에 걸려 있는 저주는 식물의 생식을 방해하는 저주니까요.” ‘아.’ 그 말을 들은 시몬은 뒤늦게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저 앞의 커다란 나무 외에는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 자라난 풀도 무척이나 짧았다. “우리들의 뇌는 이 저주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이를 감지하지 못하도록 필터링하는 거죠. 그렇다면.” 바힐이 직접 허공에 연달아 흑마법진을 펼쳤다. 그는 마법진을 펼치는 동작마저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이내 마법진의 룬어가 번뜩이더니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저주를 느껴볼 수 있도록 모아보죠.” 화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주위의 바람이 모여드는 것처럼 바힐의 손안으로 무형의 에너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바힐의 손안에 모인 칠흑은 다른 곳으로 빠지고 그 잔여물만이 바힐의 손안에서 휘몰아쳤다. 바힐은 둥근 구슬 형태의 도자기를 빚듯 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것의 크기를 점점 더 키웠다. 이내 바힐의 몸통 이상으로 비대해진 그것을 공중으로 던지자, 하늘에서 두 갈래로 뻗어져 나와 조금 떨어진 곳의 지면에 부딪혔다. “우왓!” “흡!” 쏟아지는 굉음과 바람에 의해 학생들이 뒷걸음치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시몬은 비로소 느꼈다. 이곳의 냄새나 기운 따위가 농축된 것이 흘러나오는 것을, 이게 이 지역에 걸린 저주였다. 다량으로 모이니 생물이라고 해도 위협을 감지하고 이것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룬어로 만들어낸 저주가 아닌, 어딘가에 부여된 것이나 지역 자체에 퍼져 있는 저주를 끌어와 활용하는 기술.”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이번 특강의 핵심인 녹시에타스(Noxietas)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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