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88화 “룬어로 만들어낸 저주가 아닌, 어딘가에 부여된 것이나 지역 자체에 퍼져 있는 저주를 끌어와 활용하는 기술.” 바힐이 손바닥을 펼치며 설명했다. “이번 특강의 핵심인 녹시에타스(Noxietas)라고 합니다.” 바힐의 흑마법 시현이 끝나고, 멍해 있던 학생들이 비로소 꿈결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바힐은 신사처럼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답했다. “그 밖에도 특정 계절에만 사용이 가능한 저주, 특정 별자리가 하늘에 보일 때 사용할 수 있는 저주 등이 있지요. 자연에 자신만의 저주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섬을 구매해서 마법진을 펼쳐놓고, 그것으로 자연현상을 조작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헛웃음을 쳤다. “와.” “역시 네크로맨서라는 족속들은 상상을 초월하네.” “우리가 그 네크로맨서야.” 흡족하게 웃고 있던 바힐이 손끝으로 앞의 한 학생을 가리켰다. “앞에 학생?” “네! 로자리아 리오델입니다!” “욕망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진화의 계단입니다!” 번쩍 손을 들며 외치는 모습이 거의 광신도와도 같은 반응이었다. 주위의 학생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좋습니다. 로자리아 학생. 우리 조금 더 욕망을 발휘해 볼까요? 순수하게요. 이 기술에 무엇을 더하고 싶습니까?” 그녀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음…… 장소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바로 그렇습니다.” 녹시에타스는 특정 환경과 장소에서만 쓸 수 있다. 하지만 저주받은 지역이라는 장소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곳에 어떤 저주가 걸려 있는지 미리 알고 분석까지 되어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네크로맨서들이 그렇게 중시하는 효율성과 실전성이 부족하다. “그 해결법은 여기 있습니다.” 바힐이 아공간을 열고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낡고 오래됐으며, 손잡이 부분이 썩은 삽 한 자루였다. 바힐이 그것을 바로 앞의 지면에 꽂아 넣자. 꾸드드드드득! 삽에 닿은 주변의 땅이 갑자기 가뭄이 일어난 것처럼 비쩍 마른 채 쩍쩍 갈라졌다. “반드시 해당 지역의 저주를 이용할 필요는 없죠. 우리가 소지하고 있는 저주받은 물건을 이용하는 겁니다.” 아! 하고 몇몇 학생들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바힐이 저주받은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지 모두가 깨달을 수 있는 시점이었다. “이건 가뭄의 삽이라고 하는 저주받은 아티팩트입니다. 삽이 박혀 있는 지면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죠. 바로 이것을-” 자신에게 흑마법을 건 바힐이 아티팩트를 손으로 꾸욱 쥐었다가 뗐다. 하지만 그뿐, 바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켜보던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 그때. “잘 보십시오.” 바힐히 천천히 옆으로 걸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걸음걸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가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은 탄성을 지르는 것도 잊은 채 이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바힐이 간단한 마법진을 펼치고 주위에 팔을 휘두르자, 전방에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가뭄이 퍼져 나가는 모습에는 참지 못하고 환호성을 토해냈다. 지켜보던 시몬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아티팩트에 깃들어 있던 저주의 힘을 자신에게 옮긴 거야?’ “로자리아 학생.” 바힐이 처음에 지목했던 여학생을 가리켰다. “가뭄의 삽을 들어서 다른 곳에 꽂아보세요.” “네! 교수님!” 로자리아가 후다닥 뛰어왔다. 삽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안전한지 확인하고는, 이내 두 손으로 손잡이를 붙잡아 땅에서 뽑아 들었다. 이제 그것을 지면에 콕콕 찍으며 걸었지만 가뭄 저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다들 짐작했을 겁니다. 아티팩트의 깃든 저주를 옮겨 제게 적용되도록 한 거죠.” 로자리아가 다시 삽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바힐이 다가와 삽을 붙잡았다. 로자리아가 삽을 들 때는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바힐이 삽을 바닥에 내리꽂자 삽 주위의 지면에 가뭄이 일어났다. 아티팩트의 저주가 바힐에게로 갔다가, 다시 본래대로 아티팩트에 돌아온 것이다. “나에게 저주가 걸려 있다면, 그 저주를 상대에게 뿌리거나 전염시키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겠죠. 물론 평시에 저주에 걸려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다들 몸이 근질거려서 못 참겠다는 눈치, 얼른 신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여러분이 가져온 저주받은 물건과, 녹시에타스의 훌륭한 시너지를 기대하죠. 혹시 질문 있는 학생 있나요?” 피츠제럴드가 손을 들었다. “피츠제럴드 잉겔스입니다. 설명만 들으면 너무 과하게 좋은 흑마법 같은데, 단점이나 주의 사항 같은 건 없습니까?” “매사에 의심하고 경계하는 건 네크로맨서로서 아주 좋은 태도입니다. 피츠제럴드 학생.” 툭. 바힐이 가뭄의 삽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녹시에타스의 원리를 설명하자면, 저주받은 물건에 깃든 저주의 적용 범위를 휘어잡아 조종하는 기술입니다. 저주가 ‘전파’라면 술사는 ‘안테나’로서 그것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인 뒤 상대에게 부여하는 게 핵심이겠죠.” 바힐이 손바닥을 펼쳤다. “즉, 녹시에타스의 특징은 술사 자신이 저주에 걸리는 게 전제라는 점입니다. 저주를 이겨내기 위한 강대한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하죠.” 웅성 웅성 웅성! 그제야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상대에게 저주를 걸기 위해 나부터 저주에 걸려야 한다니. 생각보다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또한 자신의 역량 이상의 저주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막 코어를 개방한 초심자가 위험한 아티팩트를 쥐었다고 죽음의 저주를 마구 뿌릴 수 없는 건 당연한 거겠죠? 자신보다 그 급이 낮은 저주에만 녹시에타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들고 내용을 필기했다. 바힐이 미소 지으며 저벅저벅 걸어왔다. “본래는 사물의 저주를 술사에게 완전히 옮겨 담은 뒤, 저주를 사용하고 다시 사물에 돌려보내는 기술이었으나 그 부작용이 심각하여 지금의 형태로 변모했습니다. 자.” 바힐이 손뼉을 쳤다. “자신이 가져온 저주받은 물건으로 실습을 시작해 볼까요.” 본격적인 특강 실습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은 저주의 룬어와 법진을 습득하는 데 집중했고, 이후에는 학생들 모두 저주받은 물건을 내려놓고 ‘녹시에타스’를 시도했다. “아악!” “크흡! 뭐야 이게!” 다들 난리도 아니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난 학생, 갑자기 안 보이던 유령이 보인다며 날뛰는 학생, 입에서 불을 토하는 학생까지. 저주받은 아티팩트가 강력한 것일수록 학생들은 고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일 났다.’ 시몬은 난감한 상황에 봉착해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저주받은 아티팩트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어려운 게 확실한 ‘마검’. 바로 이것에 깃든 저주를 자신의 몸으로 옮겨야 했다. ‘가능할까?’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기왕 손에 얻은 마검이니 어떻게든 활용법을 찾고 싶었다. 시몬은 바힐이 가르쳐 준 대로 마법진을 펼치고 수식을 정비한 뒤 주문을 외웠다. <녹시에타스> 마법진에서 흘러나온 칠흑이, 얇은 사슬과도 같은 형상으로 일어나 마검에 닿았다. 잠시 후, 마검의 끝부분에 바로 그 사슬이 관통한 것처럼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법진에서 막 나온 사슬이 평범한 검푸른색이라면, 지금 마검의 끝에 흘러나온 사슬은 너무나 불길한 흑갈색으로 번들번들거리고 있었다. ‘마검의 저주가 워낙 강해서 이렇게 된 것 같네.’ 침을 꿀꺽 삼킨 시몬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붙잡아 천천히 자신에게 닿게 하려는 순간. 파사삭! 저주가 깃든 사슬이 사탕처럼 박살 나며 흩어져 버렸다. 시몬이 ‘아!’ 하고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왜 실패했지?’ -자신의 역량 이상의 저주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자신보다 그 급이 낮은 저주에만 녹시에타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힐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시몬이 눈을 좁혔다. ‘혹시 내 역량이 마검을 다루기엔 부족한 건가?’ “단순히 ‘녹시에타스’ 마법의 숙련도 부족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시몬 폴렌티아 학생.” 저벅 저벅. 바힐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빙그레 웃어 보인 그가 손끝을 세웠다. “그렇다면 시몬 학생은 조금 더 다른 방법을 써도록 하죠. 마법진의 사슬로 자기자신을 먼저 연결한 뒤 마검에 부여해 보세요.” 시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힐이 수업 중에 잘못된 조언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집중해서 마법진을 완성하려는 그때. “이 특강을 들으러 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앞에서 울려 퍼졌다. 시몬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쥴!’ 쥴 빈체레가 수업을 거부했다. 수석조교 체헤클이 뭐라뭐라 말리고 있었지만 그의 태도는 완강했다.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바힐이 빙긋 웃으며 시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쥴에게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섭니까? 쥴 빈체레 학생.” 쥴 또한 고개를 돌려 바힐을 바라보았다. “저와 마검은 이미 한 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입니다. 마안도 개안했고, 마검의 힘을 100% 다룰 수 있습니다. 굳이 녹시에타스로 마검의 힘을 따로 분리해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호오.” “무엇보다 마검은 ‘저주의 왕’, 그런 격이 낮은 기술로는…….” 척. 그때 바힐이 팔을 펼치며 그의 말을 막았다. “지금 내게 말을 거는 건 그 마검입니까, 아니면 당신입니까.” “?” 주변의 학생들이 하나둘 하던 일을 멈추고 쥴과 바힐을 바라보았다. “쥴 빈체레, 당신은 마검을 휘두르는 사용자가 아닙니다. 휘둘리는 노예에 불과하지요.” 꽤 자존심을 긁는 듯한 이야기였다. 쥴의 목소리에도 노기가 실렸다. “외람되오나 교수님. 마검에 대해서는…….” “그 낮은 밑바닥을 한번 보도록 할까요.”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바힐이 갑자기 등 뒤에 거대한 초대형 마법진을 연달아 펼쳐냈다. 주위가 일순 환해질 만큼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당신!” 멈칫한 쥴이 격분하며 바힐에게 달려들려고 했으나, 바힐이 한발 더 빨랐다. 그가 마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고, 거칠게 달려든 쥴은 바힐의 어깨에 부딪혀 내동댕이쳐졌다.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모두가 웅성거리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 그때 쥴의 목소리가 당혹감에 휩싸였다. 방금 부딪힌 충격으로 눈가에 두른 붕대가 떨어지고, 마안이 아닌 과거의 푸른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눈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이 없다. 피로가 없다. 냄새가 맡아지고 입에 흙맛이 느껴진다. 마검사용자 쥴이. 보통의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고. 고고고고고고고고고! 그 앞에 바힐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한쪽 눈은 더 붉게 물든 채 시뻘건 안광을 뿌리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이 당신이 가는 길의 끝인 겁니까. 이런 게 저주의 왕이라니, 글쎄요.” 바힐이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쩌저저저저저저정! 허공에 시뻘건 마검의 검격이 그어졌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군요.” 단 한 번의 동작으로. 바힐 아마가르는 쥴이 가고자 하는 모든 것을 거머쥐었다. ‘바힐 교수님……?’ 시몬이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과연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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