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78화 키젠 Top10 멤버. 마검사용자 쥴이 이곳에 있었다. “……진짜 쥴이야?” 메이린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물끄러미 두 사람을 바라보던 쥴이 마침내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넘겨서 얼굴을 드러냈다. 앳되고 날렵한 인상, 그리고 무엇보다 붕대에 가려진 눈이 보인다. “두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시몬이 웃었다. “나도 그래, 쥴.” “노, 놀랐잖아! 바보야!” 메이린은 여전히 시몬의 등 뒤에 숨은 채 소리를 높였다. “왜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고 난리야!” “살짝 위협했을 뿐이오.” 쥴이 마검의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나보다 더 높은 순위에 있는 엘리멘탈 마스터가 엄살이 심하오.” “칼 휘두른 놈이 할 말 아니거든! 너 못 본 새 뻔뻔해졌다?” 시몬은 가만히 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쥴, 뭔가 바뀌었네.” “……그렇소. 역시 학생회장의 안목은 속일 수 없군.” 쓰윽. 쥴이 제 눈을 가린 붕대를 붙잡더니 천천히 위로 올려 눈을 드러냈다. 보통 사람의 눈과는 다른, 귀신에 홀린 듯한 시뻘건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으로 직접 보니 더더욱 그 두 사람이 맞구려.” “뭐, 뭐야? 눈?” 메이린이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쥴 빈체레는 마검 사용자다. 다른 학생들이 새로운 가르침이나 기술을 얻으며 성장하는 것과는 달리, 쥴은 마검에 무언가를 버릴 때마다 성장한다. 그는 주위를 볼 수 있는 시각이나, 맛을 느낄 수 있는 미각, 편안한 숙면이나 쾌적한 생활도 버렸다. 그런데 지금, 쥴은 한번 잃었던 눈을 되찾았다. “물론 내 눈은 아니오. 정확히 말하자면 ‘마안’이지. 지금은 마검의 눈이 그대들을 보고 있는 거요. 나는 마검을 통해 그대들을 인지할 뿐.” 이제는 버리는 것을 넘어서 몸의 일부를 마검에게 넘겨주어 대체한 모습. 그래도 쥴은 편안해 보였다. 예전처럼 마검에 의해 이성을 잃고 폭주하던 때와는 달랐다. 시몬이 빙긋 웃었다. “특이점이 왔네.” 마검과의 합일. 마검과 인간은 계약관계다. 마검과 엮이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게 보통이나, 쥴은 그것을 뛰어넘어 마검과 거의 하나가 됐다. 마검에 대한 육체의 거부반응을 이겨냈고, 마검과의 교류 상태도 좋아 보인다. 오로지 우직하게 마검만 보고 나아가던 그가 드디어 새로운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3학년이 되니 다들 하나같이 성장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축하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좋아 보이네.” 시몬이 말하는 사이 메이린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거렸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돼, 시몬.” “물론이야.” 메이린은 여전히 쥴이 칼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다는 걸 시몬에게 상기시켰다. 저게 전투 자세다. 마검 사용자는 저 상태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키젠 3학년은 임무를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면 완전한 남남이나 다름없다. 학생 간의 교전도 허용되어 있고, 서로의 목적이 부딪힐 시 3학년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숱하게 일어난다. “칭찬은 고맙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고 싶소만.” 쥴이 입을 열었다. “시몬 폴렌티아, 메이린 빌렌느. 그대들이 왜 여기 있는 것이오?” “그게 말이야.” 시몬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1군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이 근방을 순찰하던 군단의 언데드들을 다수 잃었다. 그래서 기자로 분장해 직접 이곳으로 와서 마을을 조사하고 있었다고. 설명을 들은 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오. 혹시나 임무가 어긋나서 부딪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소.” 그가 비로소 칼자루에서 손을 뗐다. “키젠의 회장과 부회장을 동시에 상대하는 일은 나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니.” “뭐래! 넌 시몬이랑 싸우기 전에 내 선에서 컷이거든!” 여전히 시몬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메이린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시몬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쥴, 너는 왜 마히할라에 왔어?” “새로운 마검을 찾고 있었소.” 그가 붉은 눈동자로 마을을 바라보았다. “마검은 이곳, 마히할라에 있소.” 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의뢰자의 요구에 따라 마검을 찾으러 왔다고 한다. 마검과 합일의 경지에 이른 네크로맨서는 마검의 기운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추적 끝에 이르게 된 곳이 이곳 마히할라. 그는 이 마을의 어딘가에서 찌를 듯한 마검의 기운을 감지했다. 몬스터들이 마을 가까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마검의 기운 때문이라고 쥴은 말했다. 그런데 정작 시몬과 메이린이 온 이유인 ‘1군단’에 대해서는 쥴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마검을 쫓아왔을 뿐이라고.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를 더하니 어떤 상황인지 알겠소.” 쥴이 턱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그대들이 말한 1군단의 목표는 이곳 마히할라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을 마검인 것 같소. 이 마을 어딘가에서 대규모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게 틀림없소.”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 첩보병으로 보낸 송장거미들이 당한 지 시간이 제법 지났어. 정말로 이 마을에 마검이 봉인되어 있다면, 1군단은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마검을 손에 넣었을 거야. 이 마을에는 1군단의 협력자들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럼 이런 추측은 어때?” 이번엔 메이린이 말을 받았다. “마검은 이 마을에 봉인된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 깨운 뒤인 거야! 쥴이 느꼈다는 그 마검은 사실 원래부터 1군단의 것이었고, 1군단이 마검을 이용해 뭔가를 벌이고 있는 거지!” “그 추측이 가장 타당하겠네. 그러니까 쥴.” 시몬이 손을 뻗었다. “동맹을 제안할게.” 쥴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동 임무를 하자는 거요?” “각자의 임무를 위해 협력하잔 거지. 우리는 임무가 아니라 엄연히 학생회의 일 때문에 온 거니까. 목적이 겹치지 않는다면 같이 싸우는 게 현명해.”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돌리지 않고 물을게. 네 목적은 마검이야?” “그건 아니오. 하나의 인간이 두 자루의 마검을 다루는 건 과욕이기 이전에 불가능한 일이오. 내게는 지금의 마검 한 자루도 벅차고, 이 녀석도 다른 마검이 오는 건 원하지 않을 거요.” 바로 그렇다는 듯, 쥴이 등 뒤에 메고 있던 마검이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떨렸다. “내가 원하는 건 정보요. 마검의 구체적인 위치와 행방, 그리고 그 마검 소유자의 정체까지. 마히할라에 마검이 있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머물고 있었소.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가 시몬을 바라보았다. “반암흑연합 세력의 손에 그 마검이 들어가 있다면 되도록 회수하라는 의뢰자의 당부가 있었소. 만약 연합 공식 세력인 7군단이 마검을 손에 넣는다면, 나는 임무를 완수한 셈이 되겠지.” “그거 좋네.” 다시 한번 시몬이 손을 내밀었고 쥴이 그 손을 맞잡았다. 임시 동맹이 체결된 순간이었다. 메이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몬 너…… 마검 사용자가 되려는 건 아니지?” “물론 아냐.”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시절이었으면 모를까, 정식 군단장으로서 성장한 지금의 시몬에게 마검은 리스크만 지나치게 큰 무기였다. 굳이 자신이 마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마검을 얻는다면 일단은 보관하면서 쓰임새를 생각해 볼…….” 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마을 쪽에서 울려 퍼졌다. 메이린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놀랐는지 ‘아 자꾸 뭐야!’ 하고 뭉개진 발음을 내뱉었다. 쥴이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마을 쪽이오!” “우리가 가볼게. 쥴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줘. 가자! 메이린!” 시몬과 메이린은 전속력으로 마을 회관에 돌아왔다. 비명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신혼부부의 아내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그 주위에 다른 일행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부장이 버럭 소리 질렀다. “에몬! 린! 이 난리 중에 어디 갔다 이제 와!” “기자님들!” 시몬과 메이린을 본 새신부가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그이는! 제 남편을 못 보셨나요?” “모, 못 봤는데요.” 아흐흑! 새신부가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기자 선배가 그 옆에 앉아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고, 용병은 석궁을 어깨에 툭 올린 채 말했다. “두 기자분은 밤중에 어디 갔다 온 겁니까.” “아, 그게…….” 시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부장이 ‘헹’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내내 심상치 않더라니.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발랑 까져서……!” “뭘 상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니거든요!” 귀까지 시뻘게진 메이린이 빼액 소리 지른 뒤 으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제가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밖이 무서워서 에몬에게 데려가 달려고 했을 뿐이에요!” “쯧! 다음엔 회관에 항아리라도 가져다 놓을 테니까 거기서 일 봐!” 시몬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인지 저희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주저앉아 있던 새신부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이번에는 그이가, 저의 그이가 사라졌어요! 왜? 왜!” “진정하고 설명해 주세요.” 흐읍. 그녀가 입을 틀어막은 채 코를 한번 먹은 뒤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가 잠에서 깬 건 이른 새벽이었다. 하필이면 어제 요리사가 사라졌을 때와 비슷한 시간대다. 추워서 눈을 뜨니 창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고. “누가 신혼 아니랄까 봐 유난은.” 주정뱅이가 먹다 남은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온 마을 사람들 다 깨겠다. 잠깐 일 보러 갔다가 자기가 싼 똥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늦을 수도 있지.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난리야.” “절대 제게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니에요!” 아내가 서슬 퍼런 눈으로 외쳤다. “제가 요리사님이 실종된 뒤로 겁에 질려 있으니까 남편이 말했어요! 나는 어떤 경우에도 너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떨어져야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네게 알리고 가겠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한마디도 없이 사라졌어!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 벌써 세 시간이 지났어요! 저한테 말없이 사라질 그이가 아니라구요!” “언니, 진정하세요. 남편분은 분명 무사하실 거예요.” 여기자 하나만으로는 역부족이니 메이린까지 투입되었다. 메이린이 새신부를 꼭 안아주며 진정시키는 사이, 인문학자가 창밖을 보며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옵니다.” 이내 새신부의 비명을 들은 촌장과 마을 주민들이 회관으로 몰려왔다. “내가 이야기하겠수다.” 용병이 앞으로 나와 그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고, 마을 주민들은 굳은 얼굴로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양초나 램프를 들고 나가서 찾아봅시다!” “새신랑을 찾아야 해요!” 이내 마을 주민 전체가 불을 들고 나가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새신부는 울먹거리며 그들에게 고마워하면서도 여전히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었다. 시몬은 메이린에게 일행들을 봐달라고 부탁한 다음 전등을 들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시몬 폴렌티아.” 스르륵. 전등을 든 로브 입은 남자가 걸어와 말을 걸었다. 쥴이 어둠을 틈타 다가온 것이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사라졌어. 그러니까…….” “에몬!” 부장이 손짓하며 시몬을 부르고 있었다. 시몬이 ‘윽’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한 건 조금 있다 이야기할게, 쥴.” “알겠소.” 쥴이 다시 어둠 속에 사라지고, 시몬은 태연히 부장 기자에게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선배님.” 부장은 어느새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며 주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온 사방이 불로 밝게 빛나고, 새신랑을 찾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뭔가 저것들, 가증스러운 느낌이 난다니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다 태운 시가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아까 뭐라 한 건 일행들 눈치 보여서 한마디 한 거다. 마음 쓰지 마라.” “아,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경솔했습니다.” “그보다 느껴지냐?” 킁킁. 부장이 코를 여러 번 씰룩거리며 말을 했다. “이건 무조건 특종이다. 보통 일이 아니야. 하루에 한 명씩 사라지는 일행들. 따분한 마을 축제가 암흑연합을 발칵 뒤집을 스토리로 바뀌었어.” 그가 클클 댔다. “뭐가 나올지 모르니 눈 똑바로 뜨고 있으라고. 곧 상황은 극단으로 치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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