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74화 우우웅-! 텔레포트 마법진의 작동이 끝나는 소리가 들린다. 허공에 붕 떠오른 두 발이 천천히 지면에 맞닿는 것을 느낀 시몬이 눈을 떴다. 바로 곁에는 메이린이 있었다. 두 손을 꼭 모은 채 살짝 긴장한 얼굴로 있던 그녀가 조심스레 실눈을 떴다. “!”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동시에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바람이 휘잉 하고 둘 사이로 불어왔다. 그나마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낸 건 시몬이었다. “몸은 괜찮아? 메이린.” “아, 응!” 그녀가 등을 바짝 세우며 말했다. 시몬이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따라오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 아냐!” 메이린이 도리도리 고갯짓했다. 하늘색 머리카락이 냇물처럼 찰랑이며 흔들린다. “아까 말했듯 나도 직접 가서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었어! 응! 키젠의 부회장으로서! 그 명물이라던 토마토 축제란 게 궁금하기도 했고.” 시몬은 마히할라의 토마토 축제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해, 메이린.” “잘 부탁해~”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휙 돌아갔다. ‘기회다!’ ‘어색함을 풀 기회야!’ 이번 여행으로 3학년 내내 유지되던 어색한 기류가 풀리면, 시몬은 메이린에게 정체를 숨긴 것에 대해 제대로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다시 1, 2학년 때의 그 즐겁고 활기 넘치던 사이가 그리웠다. 그리고 메이린 또한. ‘기왕 이렇게 된 거 해보자. 할 수 있어!’ 여러모로 각오를 다졌다. 주먹을 불끈 쥐고 콧바람을 내뿜기도 했다. “일단 사전 준비부터 하자.” “응!”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도착한 곳은 마히할라 마을이 아니라 그 인근의 중소 규모 도시였다. 여기서 축제에 방문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 함께 이동할 생각이었다. 물론 시몬은 암흑연합 화제의 인물인 만큼 눈에 띄었으니, 알라제가 만든 새로운 얼굴 분장을 뒤집어쓰기로 했다. 메이린은 아직 대륙에 얼굴이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시골 마을에 가는 정도야 걱정은 없었지만, 그녀 스스로 간소한 인식장애 마법을 걸고 약간의 눈 화장을 해서 얼굴을 숨기기로 했다. 또한 그녀는 키젠 교복 차림이었기에, 평범한 모험가 복장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로브로 덮어썼다. 치엘라가 준비한 가방에는 옷을 비롯한 각종 필수품들이 문제없이 배치되어 있었다. ‘내 기숙사에 있던 속옷까지. 준비가 지나치게 잘되어 있어. 처음부터 치엘라 짓이겠지.’ 메이린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뒤 살벌한 눈을 치켜떴다. ‘너무 기특한걸. 학교에 돌아가면 기념품 선물이라도…….’ “다 갈아입었어 메이린?” “아, 아아! 응!” 메이린이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얼른 주위를 정리한 다음 가방을 둘러매고 나왔다. 마찬가지로 로브를 겉에 두른 시몬이 방긋 웃었다. “눈 화장은 처음 봤지만 잘 어울려. 못 알아보겠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말에 메이린이 고장 난 듯 삐걱거렸다. ‘바보! 그렇게 막 칭찬하지 마!’ 그런 말을 해버리면 떨려서 용기를 못 내겠다. 정신이 조금 아득해졌다. “그럼 바로 출발하자.” 딕은 미처 못 왔지만, 그가 짠 계획은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기자 팀에 합류해서 마히할라의 토마토 축제를 취재해야 한다. 마을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토마토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마력촬영기로 담으면 된다. 물론 시몬과 메이린의 진짜 목적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1군단의 계획을 밝혀내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시몬은 전에 비명의 정글에서 1군단과의 교전이 일어난 일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잊겠어.’ -황제를 위하여. 기사처럼 갑옷으로 중무장한 1군단의 병사들. 정말 사람인 줄 알았는데, 투구를 벗기는 순간에 드러난 언데드의 얼굴을 봤을 때 경악하기도 했다. 1군단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걸까.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꽁꽁 숨어 있다. 모든 것을 폐쇄한 채 어떤 교류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1군단의 영역에서 모든 자원을 자립하기는 쉽지 않을 터, 틀림없이 1군단에 물자를 제공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군단의 영역 인근인 마히할라 마을. 여기가 가장 수상해.’ 어쨌거나 마히할라 마을은 마차로는 갈 수 없는 외딴 지역에 있었다. 관광객과 기자들 모두 인근 도시에 모여서 다 함께 출발해야 하는 게 그 이유였다. 우선은 ‘선배’들을 만나러 갔다. 시몬과 메이린은 딕이 말했던 약속 장소인 도시 내의 작은 주점으로 향했다. 흑맥주 향이 물씬 풍기는 이곳은 어두컴컴한 조명과 올드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술이 든 오크통들이 벽에 쭉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바 한쪽에 앉아 술을 퍼먹고 있는 중년 남자 한 명이 보인다. 다소 흐트러진 머리에, 구겨진 넥타이. 바지 벨트를 풀고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시몬과 메이린은 제발 저 사람이 그 선배가 아니길 바랐지만, 그의 옆에 놓여 있는 마력촬영구 기기나, 목에 걸고 있는 ‘플로일보 취재본부 부장’이라는 명찰을 보고는 체념하며 걸어갔다. 꺼어어억! 고래처럼 큰 소리로 트름을 한 부장 기자가 마력촬영구를 끄적거리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시몬과 메이린은 긴장한 얼굴로 그의 옆에 최대한 공손히 섰다. “알지?” 시몬이 그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메이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저들이 협조해 준 덕분에 기자 신분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거다. 잘못 보여서 마을 합류에 거절당하면 일의 초장부터 꼬이게 되는 셈이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엉? 안주를 질겅질겅 씹던 부장 기자가 고개를 돌려 시몬과 메이린을 돌아보았다. ‘누군데 방해야’ 하는 불만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이번 마히할라 취재에 합류하게 된 신인 기자, 에몬.” “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 다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흔한 이름으로 가명을 만들었다. 최대한 공손히 꾸벅 고개까지 숙여가며 인사했지만 기자는 인상을 팍 구겼다. “어, 니들이구나? 그래! 얼마나 잘난 낯짝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까지 어려?” 그가 몸을 돌려 삿대질을 했다. “니들 얼마 냈냐?” “네?” “대체 국장 그 썩을 놈한테 얼마를 갖다 바쳤길래 취재 일정 3일 남은 시점에 외부 신인 기자가 합류할 수 있냔 말이야! 덕분에 우리 애들은 들어오지도 못했어!” ‘……이런.’ 그 말을 들은 시몬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딕이 너무 쉽게 일을 처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돈을 주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설마 이런 문제가 있었을 줄이야. 부장 기자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일이란 건 말이야! 다 절차가 있어! 니들이 어디 신문사 나부랭이고, 무슨 이유로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세한 신문사라고 우릴 무시하고 이렇게 들어오는 건 법도가 아니란 말이야!” 위험했다. 이 정도야 시몬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문제는 메이린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바로 발끈해서 맞서 싸워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니들은 대체 생각이 있는……!” “저희.” 그때 메이린이 말을 끊고 앞으로 한 걸음 걸어왔다. “다른 신문사 출신 아니구요. 오로지 플로일보의 새로운 시리즈 성공을 위해 여기 왔습니다. 신인이지만 실력에도 자신 있어요.” 그녀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선배님들을 돕겠습니다.”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흑마법 실력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상당히 성장한 모습. 1학년 때 세르네에 대한 열등감에 갇혀 주변에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었다. “뭘 보고 믿고 맡기란 거야! 어!” 하지만 저쪽도 한 성질 했다. “그냥 우리 원래 애들 쓰면 되는 걸, 너희가 왜 와서 우읍! 읍……!” “그만, 그만. 너무 취하셨어요 선배.” 마찬가지로 플로일보라고 적힌 명찰을 목에 착용한 중년 여성이 남자 기자의 입을 틀어막은 채 온화하게 웃었다. 남자 쪽보다는 4~5살 정도 어려 보였고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신인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저분들도 위에서 시켜서 왔을 뿐일 텐데. 우리 일도 도와주겠다잖아요.” “우웁! 읍! 그러니까 왜 우리 신문사만 치여야 하는 웁!” 여기자는 접시에 담긴 안주 같은 것을 한 움큼 집어 선배의 입에 쑤셔박은 뒤, 시몬과 메이린의 어깨를 붙잡고 걸어갔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최근에 경쟁 언론사 때문에 기사가 뒤로 밀리는 일로 부쩍 예민해지셔서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저런 거지. 알고 보면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 그렇군요.” 그렇게 들으니 또 사정이 이해가 되긴 했다. 그녀가 웃었다. “저는 소네트라고 합니다. 어디서 왔는지는 물어보지 않을게요. 저희 신문사의 신인 기자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되는 거겠죠?” 이 사람. 유능하기도 하고 눈치가 상당히 빠르단 생각이 들었다. 키젠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 수는 없겠지만, 진짜 기자가 아니란 건 바로 들통났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줄게요.” 그녀는 친히 마력촬영구 작동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시몬은 마력촬영구의 대상이 된 적은 많았지만, 직접 누군가를 촬영한 적은 없었기에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래도 일단은 현역 키젠 학생인지라 배우는 거라면 뭐든지 자신 있었다. “앞에 서볼래요? 린.” “네!” “자, 그럼 이렇게 버튼을 누르는 거예요.” 기자 선배가 메이린의 모습을 마력촬영구에 담고는 말했다. “마력촬영구의 원리는 어렵지 않아요. 마력으로 촬영한 물체의 상을 기록해 보관하고, 그것을 나중에 마법진에 올려 종이로 옮기는 거예요.” 그녀가 마력촬영구를 시몬에게 보였다. “확인을 할 수 있는 건 첫 촬영 직후뿐이에요. 수정은 불가능하니 촬영 기회 한 번 한 번을 신중히…… 어머!” 그녀가 감탄한 얼굴로 마력촬영구를 들여다보더니 메이린을 홱 돌아보았다. “처음에도 감탄했지만 용모가 참 수려하시네요……! 혹시 기자 일에 겸해서 모델도 될 생각 있어요?” “네, 네에?” 메이린이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흠칫했다. 그러다 고개를 숙인 채 마력촬영구를 빤히 보고 있는 시몬을 보더니 이내 읏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게요.” “고마워요! 무리한 요구는 시키지 않을게요! 한두 장만 부탁해요!” 그렇게 저녁 내내 기자로서 교육을 받은 뒤, 선배 기자들이 미리 마련해 둔 숙소에서 숙면을 취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마히할라로 갑니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이어지는 다음 날 아침. 마을 외곽의 공터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몬과 메이린, 플로일보 기자 선배들 두 명, 그리고 여러 직종의 사람들 6명까지. 총 10명이었다. 마을이 작아서 대규모 관광객을 받는 건 힘드니 이 정도 소수 인원으로 구성했다고. 한 무리로 우르르 가는 건 아니었지만, 다들 들뜬 얼굴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태운 마차 3대가 움직였다. -부장 선배님 대면하긴 조금 불편하시죠? 굳이 같은 마차 탈 필요는 없어요. 여기자 선배의 도움으로 시몬과 메이린은 일반인과 함께 마차를 타고 마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기자분들이시구나.” “호호호!” 같이 탄 사람들은 젊은 신혼부부였다. 신혼인 만큼 상당히 애정 행각이 각별했는데, 벌써 시몬과 메이린이 보는 앞에서 껴안고 뽀뽀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시몬은 땀을 삐질 흘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냥 부장이랑 타는 게 더 나았을지도…….’ 다행히 두 사람은 조금 애정 행각이 과한 것만 빼면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메이린의 입이 벌어졌다. “신혼여행을 마히할라 마을로 간다구요?” “네!” 아내 쪽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부부는 남들과는 다른 이색 체험을 선호하거든요! 마히할라 마을 축제에 당첨됐을 때, 꼭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나도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야. 자기야.” “나두우.” 이마를 맞대고 부비적거리는 모습에 시몬과 메이린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뒤로 뺐다. 이런 어른들의 과감한 스킨쉽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아내 쪽에서 말했다. “혹시 두 기자분들도…….” “아니거든요!” 뭐라 말하기도 전에 메이린이 시뻘겋게 붉어진 얼굴로 빼액 외쳤다. 아내가 귀엽다는 듯 오호홋 웃었고,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안으며 미소 지었다. “아직 젊으신 분들이니 잘 생각해 봐요. 사랑하지 않고 살기에는 인간의 삶은 너무 짧으니까요.” “자기야! 너무 로맨틱하다!” 메이린이 얼른 고개를 돌린 채 손부채질로 파닥파닥 붉어진 얼굴을 식혔다. 그리고 시몬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 두두두두두두! 세 대의 마차가 지나가는 길. 언덕 위에 한 남자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절그럭! 절그럭! 등에 검집째로 꽂혀 있는 검의 손잡이가 덜컥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칼자루를 쥐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때가 아니오, 마검.” 그러자 천천히 검의 움직임이 멈췄다. 가만히 마차가 지나는 모습을 쭉 바라보던 남자는 천천히 등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스윽. 마차에서 손끝에 힘을 모으고 있던 시몬도 서서히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턱을 괴었다. “덤비지 않는 건 현명한데.” 메이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아냐.” 여행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며, 시몬은 밖에 소환해 둔 언데드들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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