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75화 마히할라로 향하는 마차 여행 도중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졌다. 중간중간 식사를 위해 마차에서 내렸고, 일행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시몬과 메이린을 포함한 기자들은 네 명, 그 외 다섯 명은 관광객. 나머지 한 명은 용병이었다. 관광객 중에 두 명은 신혼부부이고, 나머지 셋은 남자들이었는데 자기들끼리 벌써 친해진 모양이다. 시끌벅적 요란스러웠고 마차 여행 중에 가져온 술을 들이켰는지 취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인문학자요.” 남자 셋 중에 비쩍 마른 체구에 안경을 낀 남자 한 명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마히할라의 전통과 습성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펜타모니엄이나 상아탑에서 만들어지는 선진 문물이 오래된 문명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 같아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갑작스레 ‘상아탑’이란 말이 나오자 놀란 메이린이 수프 먹던 스푼을 던졌고, 그것은 정확히 부장 기자의 머리에 떨어졌다. 메이린은 ‘죄송해요’를 연발하며 손수건을 들고 뛰어갔다. 아무래도 메이린과 부장의 사이가 친해지는 건 요원할 듯했다. 소란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인문학자는 계속 말했다. “마을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토마토소스는 대륙의 이름 높은 귀족들이 소비하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토마토 재배에 더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전통을 지켜 나갈 수 있게 된 겁니다! 단언컨대, 가히 문명과 전통의 이상적인 균형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을 꺼내 취재하듯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인문학자는 기자가 집중해 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묻지도 않은 지식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여기자 선배는 시몬을 향해 슬쩍 엄지를 내밀었다. 시몬의 취재 태도에 흡족해하는 모습. “기본이 되어 있네요! 후배님!” “감사합니다.” 이 정도 눈치는 척하면 척이다. 기자 일에 시몬이 앞서 나가니, 메이린은 장난스럽게 입술을 삐쭉 내밀기도 했다. “마히할라의 토마토소스! 유명하지!” 머리가 발랑 까진 대머리 남자가 수프를 휘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지금까지 일행들의 모든 음식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척 봐도 요리 솜씨가 상당했는데, 요리사이거나 최소한 음식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시몬은 확신했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소스의 비법을 찾으러 온 거요! 반드시 알아낼 거요!” 그 말을 들은 시몬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을의 비법 염탐? 괜찮은 건가?’ “난 비법 아는데.” 그럴듯한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해진 코트를 입은 까만 수염의 남자가 실실대며 술병을 들어 올렸다. 입에서 술 냄새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거기 사람 피가 들어가서 맛있는 거야.” “!!” 메이린과 신혼부부가 화들짝 놀라며 토끼 눈을 떴고, 요리사는 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헛소리!” “믿기 싫음 말어.” 남자가 다시 술을 콸콸 입에 쏟으며 실실댔다. “자, 그만 정리하시오. 이제 다시 출발하겠소!”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석궁을 들고 나타났다. 눈썹이 굵고 선이 짙은 인상이었는데, 이 무리 중에 유일한 용병이었다. 티잉! 그가 방아쇠 같은 것을 당기자, 석궁에 장전된 볼트가 쏘아져 나가 멀리 떨어진 나무에 틀어박혔다. 메이린이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노, 놀랐잖아요! 그렇게 막 쏴도 돼요?” “몬스터를 쫓는 게요. 기자 양반.” 용병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예리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다가 석궁을 저 멀리 한 발 더 쐈다. “냄새를 맡은 놈들에게 다가오지 말란 경고를 한 거지. 나는 피비린내 가득한 전장 속에서 몬스터의 피로 샤워하며 인류를 지켜온 베테랑이오. 내 말만 들으면 다칠 일 없을 거요.” 키젠 3학년들 앞에서 당당히 충고하며 무게를 잡은 그가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일행들도 짐을 챙기고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한참을 더 달렸다. 쿠웅-! 살짝 졸고 있던 시몬이 눈을 떴다. 어느새 마차들이 모두 멈춰 섰다. “다들 일어나시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하오!” 용병의 말에 마차에 탄 일행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올망졸망 모여든 사람들 모두 잠에서 덜 깬 표정이 제법 개성 있었다. 다시 봐도 재미있는 조합이었다. 기자 넷, 신혼부부 둘, 인문학자 하나, 요리사 하나, 주정뱅이 하나, 용병 하나. 그때 신혼부부 중 남편이 앞을 가리켰다. “여기, 길이 사고로 막힌 게 아니라 일부러 막아놓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길목이 토사와 나무 등으로 꽉 막혀 있었다. 용병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마 그럴 거요. 소문의 토마토를 노리는 사람이 많을 테니.” 일행들이 모두 내리자, 마부들은 마차를 이끌고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5일 뒤 아침, 이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남겨진 일행들은 무너진 나무와 토사를 넘었다. 이제 숲길로 걸어서 이동할 차례였다. “조심해서 오시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용병은 석궁을 정신 사납게 움직였고, 가끔 허공에 볼트를 발사하기도 했다. “몬스터 10마리쯤은 마주칠 거요! 이 숲은 아주 위험하지!” 그러나 몬스터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의 석궁이 몬스터를 꿰뚫을 일도 없었다. 주위는 깨끗할 만큼 조용했다. 용병이 일행들에게 잔뜩 겁을 주고 경고하며 온갖 무게를 잡던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용병이 진땀을 흘렸다. 술병을 든 주정뱅이가 낄낄대며 말했다. “괜히 돈 냈군! 몬스터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 안 보이잖아!” “이, 이 근방의 숲은 악독하오! 내 피비린내를 맡은 놈들이 도망친 게 틀림없어!” 그때 메이린이 웃는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지?” 시몬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은 시몬의 언데드들이 멀찍이서 주위를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꼬박 반나절을 걸어서. ‘여기구나!’ 시몬이 눈을 크게 뜨고 도착한 마을을 바라보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마을 입구에서 마중 나와 있었는데 일행들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 “마히할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평범하고 순박한 마을 주민들이었다. 다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웰컴 드링크로 토마토 주스를 한 잔씩 주었는데, 목이 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마을을 떠난 뒤에도 계속 생각날 것 같은 맛이다. “오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어요.” “이쪽으로.” 선홍색 지붕이 인상적인 작고 따뜻한 마을이었다. 곳곳에서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미 몇몇 사람들은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 일행들은 눈을 반짝이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자기야, 너무 멋진 곳이야. 내가 자란 고향이 생각나!” “이리로 오길 잘했지?” 또 신혼부부가 서로 껴안고 애정 행각을 벌였지만, 시몬과 메이린은 이제는 익숙하게 넘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1군단의 흔적…… 같은 건.’ 시몬의 예리한 눈빛이 한번 쭉 마을을 훑었다가 돌아왔다. ‘당장은 안 보이네.’ ‘평범하지?’ 메이린도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며 말했다. 그냥 흔한 대륙의 산골 마을이었다. 특산물인 토마토를 많이 재배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여기서 1군단의 영역이 얼마나 가까우려나. 시간 되면 한번 훑어봐야겠네.’ 앞서 걸어간 부장 기자는 마력촬영구로 마을의 풍경을 담고 있었고, 여기자 선배는 자신들을 반겨준 마을 주민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도 벌써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인문학자는 마을 사람들의 악기를 보고 전통적이라며 흥분하고 있었고, 요리사는 몰래 근처에서 딴 토마토 하나를 쓰윽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주정뱅이는 새로운 술을 꺼냈고, 용병은 ‘몬스터가 오면 내가 처치해 주겠소!’ 하고 외치며 석궁을 바닥에 쏘는 등 마을 여자들 앞에서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여러분, 먼 길 힘드셨을 텐데 짐부터 푸실까요? 이리로.” 마을 주민의 안내에 따라 일행들은 꽤 큼직하게 지어진 건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의 지붕도 물론 다홍색이었다. “이 마을 회관을 쓰시면 됩니다.” “와아! 너무 좋아요!” 10명이 자기에도 문제가 없는 큰 마을 회관이었다. 중간에는 벽난로도 있었는데, 방금 막 때기 시작한 건지 장작 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시몬 일행은 이곳에 짐을 풀고 잘 곳을 정했다. “짐을 푸셨으면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바로 가시죠.”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기에 부장을 비롯한 일행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 회관에서 몇십 분 정도 걸어가니 널찍한 야외 공터가 나왔고, 온갖 성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맛있겠다!” 토마토가 명물인 마을답게, 음식의 절반 이상이 토마토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마토 조림, 토마토 수프, 토마토소스를 올린 고기까지. 약간의 술도 내어주었다. 이내 마을의 촌장이라고 자기 자신을 밝힌 노인이 걸어왔다. “먼 길 발걸음해 주셔서 감사하오! 마히할라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오!” “감사합니다!” 다들 시끌벅적하게 첫날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관광객들과 마을 주민들이 어우러져 시간을 보냈다. 시몬과 메이린은 나란히 앉아 취재내용을 공유하는 척하며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보니 수상한 점은 없었지?” “응, 아직까진.” 마침 마을 사람이 또 옆자리에 앉았기에, 시몬은 취재를 핑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마을의 문화, 환경, 그리고 토마토의 품질에 대해. 특히 토마토 이야기가 나오면 마을 주민들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시몬은 노트에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계속 질문했다. “마을 주위는 산과 숲인데 몬스터들이 와서 토마토 농사를 망치지는 않나요?” “허허! 가끔 내려오긴 하지만 큰 피해를 입는 경우는 적지요! 그리고 몬스터들이 굶주려서 내려왔다면, 뭔가를 먹어야 우리가 살지 않겠습니까!” “긍정적이시네요.”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몬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근방은 1군단의 영역과 맞닿아 있는데,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혹시 언데드들이 오지 않는지…….” 시몬은 일순 마을 사람의 표정이 살짝 흐려지는 것을 체크했다. “언데드요? 이 근방에는 거의 없습니다. 숲이라고 해도 울창하지 않고 낮이 길거든요.” “그렇군요.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 시몬은 슬쩍 화장실을 핑계로 홀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아공간을 열 준비를 했다. ‘송장거미를 몇 마리 꺼내서 계속 조사해 보자.’ 그렇게 아공간을 열어젖힌 순간. 끼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 갑자기 머릿속의 사념으로부터 끔찍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은 화들짝 놀라 언데드 하나 꺼내지 못하고 아공간을 닫았다. 그러자 머릿속에 울리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 뭔데?’ 시몬이 다시 아공간을 열자 다시 한번 그 괴성이 울려 퍼졌다. 사념으로 전해져 오는 음성에 심장이 철렁했다. 시몬은 어떤 언데드가 이 목소리를 내는지 비로소 알아차렸다. ‘마누스!’ 시몬이 가지고 있던 전(前) 에이션트 언데드이자, 전(前) 제국의 소드마스터 마누스. 현재는 자주 쓰지 않고 있었다. 전투 중에 카오스 듀라한이 망가져 버렸고, 마누스도 자주 폭주 증상이 일어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마누스가 아공간 내에서 시몬에게 사념으로 울부짖는 건 또 처음 겪는 일이었다. ‘폭주가 더 심해졌어. 여기서 꺼내기엔 많이 위험할 것 같은데.’ 시몬은 송장거미를 몇 마리 꺼낸 뒤 아공간을 닫았다. 목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마누스는 예전의 기억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하지만 반응하는 걸 보면…….’ 본능적인 뭔가가 발동한 모양. 그리고 다시 상기하지만 마누스는 전 제국의 소드마스터였다. ‘이곳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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