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69화 우우웅-! 펜타모니엄의 상공 결계 일부가 열린다. 결계 밖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다. 외부에 공간이 열린 걸 감지했는지, 좀비를 비롯한 온갖 언데드들이 흐느적거리며 결계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네크로맨서들의 비행형 언데드들도 결계의 열린 틈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00마리는 잡고 돌아와!” “다들 힘내요!” “개발 5팀! 해보자!” 관중들은 결계가 열린 근처에 모여들어 참여자들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있었다. 언데드 퍼레이드 이후, 마지막으로 심사 위원에게 언데드의 성능을 어필할 수 있는 ‘사냥 시간’. 물론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추가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언데드 퍼레이드 이후 간단한 기능 시험만으로 충분히 수상할 수 있었으니까. 참가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언데드 퍼레이드 두 시간 동안 모든 힘을 쏟아부은 비행형 언데드들은 내부의 칠흑이 다하여 밖의 언데드를 사냥하기 힘들기 때문. 따라서 결계 밖으로 나가는 비행형 언데드는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했다. -스어어어어어! 베히모스를 소유한 소환학과 학생들도 대부분 사냥 시간의 참여를 포기하고 자신의 베히모스를 불러들였다. “주, 죽을 것 같아.” “생각보다 컨트롤이 빡세네. 칠흑 소모도 심하고.” 제작 직후라 그런지 아직 베히모스 전함에 대한 숙련도가 부족했다. 칠흑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하우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30분 만에 베히모스를 불러들인 것이다. 실수로 결계 밖에서 격추되면 기껏 만든 베히모스 전함을 잃게 되니, 입상만 확실하다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선두에서 달리는 두 베히모스 전함이 있었다. “역시 시몬 회장!” “힘내! 총과대!” 바로 시몬과 헥토르의 베히모스 전함이었다. 이 두 베히모스 전함만은 특별했다. 아론의 신기술로 소환형 언데드에서 군단형 언데드로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 기존의 내부 칠흑이 부족해지면 군단형으로 돌려서 코어의 칠흑으로 버틸 수 있다. 사실상 일반 베히모스와는 그 비행 유지력이 차원이 달랐다. 학생들은 부러움에 입맛을 다셨지만,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이건 군단장과 일반 네크로맨서의 근본적인 차이였으니까.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 코어의 칠흑으로 버티자.’ 시몬은 태연히 전함 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끔 환호해 주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 지금 쌓아 올리는 인지도와 명성은 앞으로의 전투와 활동 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 리처드와 7군단이 짊어지고 있는 배신의 죄를 씻어내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저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 시몬이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그때. 샤아아아아- 시몬의 옆으로 검은 구름을 휘감고 있는 뱀 언데드, ‘어비셜 스네이크’가 나타났다.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건 정장 차림에 목이 긴 사내, 아직 남아 있는 3대 우승 후보중 하나인 유드레이였다. “기어코 ‘사냥 시간’까지 오다니! 진심으로 최고 수상을 노리는군요, 배신의 군단장.” 시몬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고, 유드레이는 계속 말했다. “퍼레이드로 만족하고 돌아갔다면 최소한의 명예는 챙겼을 것을. 실전에서는 우리 현역들의 언데드가 밀릴 이유가 없지요! 당신의 작품이 덩치만 큰 시체 덩어리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증명해 주겠습니다!” 촤아아아아! 어비셜 스네이크가 속도를 높여 시몬보다 앞으로 나아갔다. 상황을 중계하는 사회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으로 나가는 건 경계단 소속의 네크로맨서 유드레이! 유드레이가 어비셜 스네이크를 타고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캬아아아악! 결계 밖의 자연형 언데드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몰려들었다. 유드레이가 단번에 마법진을 연달아 펼쳐냈다. <장송계 – 나클의 초록문> 그가 마법진을 모조리 어비셜 스네이크에 부여했고, 어비셜 스네이크는 공중에서 구름을 휘감은 채 춤을 추듯 움직였다. 먹구름이 점점 넓게 부풀어 오르며 주위를 어둠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쏴아아아아아아! 산성비가 쏟아졌다. 넓은 반경에 쏟아지는 빗물에 언데드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유드레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사냥 시간은 단 30분! 베히모스가 오기도 전에 주변의 언데드를 남김없이 쓸어주…….” 화르르르르르륵!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는 바로 옆에서 시커먼 브레스가 쏟아졌다. 그것은 주위로 방사되어 인근의 언데드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있었다. 심지어 산성비에 녹아들고 있는 언데드들까지 휩쓸어 버렸다. 유드레이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설마!” 어느새 그의 속도를 따라잡은 또 하나의 베히모스 전함. 그것은 베히모스의 머리 대신 거대한 용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하늘에는 지느러미 대신 구멍이 숭숭 뚫린 용의 날개가 펼쳐졌다. “버러지가.” 헥토르가 불쾌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네놈의 선입견으로 베히모스 전함을 판단하지 마라.” “제6군단장 헥토르 무어!” 펄럭! 지느러미 대신 달린 용의 날개를 움직이며, 베히모스 전함이 고속으로 전진했다. 동시에 입에서 방사되는 브레스가 지나가는 언데드를 모조리 불태웠다. 주포형 베히모스의 최고봉. 군단장이 된 헥토르는 실습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소형 개체를 이용한 ‘군집화’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소형 개체는 그저 데스 와이번들을 싣고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그의 관심사는 베히모스라는 초대형 언데드가 운용할 수 있는 방대한 칠흑량뿐. 역대 네크로맨서 최초로 베히모스에 용의 인자를 박아 넣는 데 성공한 헥토르는, 그 방대한 칠흑을 브레스에 집중했다. 용의 날개를 이용해 고속으로 이동한 후 지근거리에서 브레스를 쏟아내 언데드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있었다. 베히모스의 내구력이 워낙 튼튼했기에 쏟아지는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선택과 집중,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올인한 형태였다. ‘위험해!’ 유드레이가 진땀을 흘렸다. 그의 소환수가 산성비를 쏟아내기 위해 먹구름을 퍼뜨리는 시간보다 저 용머리 베히모스가 나아가 화염을 쏟아내는 게 훨씬 빨랐다. 주위가 온통 불바다가 되고 있었다. -세상에! 제6군단장입니다! 올해 새로이 군단의 좌에 오른 젊은 군단장! 그 또한 이번 언데드 퍼레이드에 참여했습니다! 전체 상황을 이야기하던 축제 사회자도 즉각 헥토르에 주목했다. -가지고 온 언데드의 외형은 다소 괴이하지만 성능은 확실하군요! 대단한 범위 공격입니다! 외형 어쩌고 하는 소릴 들었는지 헥토르의 안면 근육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늘에 떠 있는 옵저버 아티팩트에 뭐라 욕지거리를 내뱉는 모습이 보였으나 사회자는 ‘여기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하고 얼른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사냥 시간을 포기한 채 마나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있던 피에르 버클러와 그의 파벌 학생들은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다. “헥토르.” “우리가 차마 말은 못 했는데.” 피에르가 눈을 감았다. “……디자인 구린 거 맞아.” 참여자들의 언데드들이 모두 결계 밖으로 나오며, ‘사냥 시간’의 경쟁은 치열해졌다. 온갖 비행형 언데드들이 공중을 선회하며 결계 밖 언데드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가끔 언데드가 추락하고 그곳에 타고 있던 네크로맨서가 결계 밖에 방치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주최 측에 의해 바로바로 구출되었다. 이 경우는 출전 언데드를 잃었으므로 심사 탈락이었다. 그렇게 여러 비행 언데드의 향연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있었다. -놀랍습니다! 그 유명한 세르네 아인다르크가 선보이는 상아탑의 새로운 비행 전함! 이제는 베히모스 전함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외견이었다. 베히모스의 코어를 중심으로 뼈를 깎아서 각진 건물처럼 만든 다음 온갖 마법 장치들을 연결했는데, 삐쭉 삐쭉한 다리 같은 것들이 뻗어져 있었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성게와도 같은 외형. 그것이 사방으로 원소 계열 흑마법을 쏴대며 언데드들을 불태우고 얼리고 감전시켰다. “흥미로워. 상아탑의 언데드란 걸 한눈에 알 수 있는걸.” “저기도 봐! 저 하얀 전함도 재미있어!” 그 뒤로는 언데드들의 원거리 공격을 덤덤히 받아내는 한 베히모스 전함이 있었다. 이내 그 힘을 모아서 상대에게 방출하여 돌려주고 있었다. 바로 화이트의 전함이었다. 평시에는 일반적인 수송형 전함이지만, 화이트를 태우면 그의 이능을 방대한 칠흑량으로 재현하여 강력한 흡수 및 방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방어력만으로는 최강이었다. 헥토르, 세르네, 화이트, 그리고 유드레이를 위시하며 가히 범위 기술의 각축장. 주변의 야생 언데드들이 빠르게 몰살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15분!” “딱 봐도 헥토르가 1위네!” 헥토르 파벌 학생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언데드 퍼레이드에서는 시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든 관중들의 인기를 싹쓸이했지만, 심사 위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사냥 시간에서는 속도가 빠른 헥토르의 베히모스 전함이 더 크게 활약하는 것으로 보였다. “최고상이 목적이라면 심사 위원들에게 잘 보이는 게 더 중요하지!” “그럼 그럼.” “시몬 폴렌티아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겠지?” “저기 중간 집계 떴다!”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마나 스크린 끝에 사냥한 언데드의 수에 따라 점수가 집계되고 있었다. [4위, 세르네 아인다르크 – 5,405,200P] [3위, 아보라 리니인티 – 5,780,300P] [2위, 헥토르 무어 – 6,260,200P] “응?” 여기서 학생들은 의문을 느꼈다. 그렇다면 1위는 설마. [1위, 시몬 폴렌티아 – 8,850,150P] “아니, 왜!” 파벌 학생들이 홱 고개를 돌렸다. 시몬의 전함은 그저 높은 상공에 둥둥 떠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1위라니! -놀랍습니다! 중간 집계 결과! 제7군단장, 시몬 폴렌티아의 언데드 함선이 1위입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된 건지 옵저버 아티팩트가 가져온 영상을 보시죠! 모두의 시선이 마나 스크린으로 향했다. 마침 시몬의 베히모스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후우.” 전함 내부에 들어와 있는 시몬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든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전함이 반응하고, 출전을 앞둔 스컬윙들이 반응한다. 마음이 고요하다. 세상이 내 발아래에 있다는 감각을 되새긴다. 스으. 마음이 최적하되고 천천히 눈을 뜬다. 피어의 투구 너머로 보이는 광경으로 무수한 언데드들 중에 특정 언데드들이 눈에 띈다. 이번 사냥 시간은 단순히 많은 언데드를 잡는 게 핵심이 아니다. 강력하고 점수 배점이 높은 언데드를 얼마나 정확하게 골라 잡느냐가 핵심. 헥토르 전함의 브레스나 세르네 전함의 마법 난사에도 살아남아 떡하니 걸어다니는 언데드들이 보인다. 결계 밖 가장 위협적인 언데드 중 하나인 ‘바이터(Biter)’. 이족 보행에 키가 3미터가 넘는, 좀비의 특수한 변형계열 언데드다. 여러 약한 언데드들이 뒤엉킨 전장에서, 포인트로 따지면 영양가가 만점인 바이터를 정확히 골라 잡아야 한다. 시몬의 눈에 수십 기의 타깃이 동시에 설정된다. “출격.” 시몬의 명령에 전함 내부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스컬윙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쏘아져 나간다. 전함 내부 출구에 미리 펼쳐져 있는 대형 마법진을 연달아 통과하는 순간, 그들의 형태가 날렵하게 변화하더니 한 줄기 에메랄드빛 섬광이 되어 지상으로 내리꽂힌다. <시몬 오리지널 – 강습대(強襲隊)> 촤아아아아!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언데드 전함에서 미사일이 사출되는 것처럼, 30기의 스컬윙이 일제히 날개를 펼치고 쏘아져 나간다. 순간적인 강하 속도는 가히 음속. 공중에서 가속한 채 친위대의 힘을 폭발시키며 쏘아져 나간 스컬윙들이 각기 다른 30기의 타깃을 향해 내려오고. 명중한다. 속도와 힘으로 통째로 상위 언데드 바이터를 찢어발긴 스컬윙들이 일제히 방향을 돌려 전함으로 돌아온다. “!” “바. 방금 뭐야?” 자신의 비행형 언데드로 바이터 사냥을 시도하던 네크로맨서들이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청록색 섬광이 지나가는 듯하더니 바이터의 머리통이나 가슴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들이 고개를 돌리자 방금 내려온 청록색 섬광이 전함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 시몬의 신기술, 강습대는 지속 시간이 짧은 대신 폭발적인 속도를 일으킨다. 금방 친위대 상태가 풀리기에 다시 전함에서 보충해야 한다. 문제는 없다. 베히모스의 칠흑은 방대하고 소형 개체는 많으니까. 시몬이 새로운 타깃을 지정하고, 강습대들이 돌아오는 순간 다음 30기의 강습대가 준비하고 있다. “사출!” 투콰아악! 투콰아아아아! 밤하늘, 전함 아래의 출격구에서 30기의 에메랄드빛 섬광이 쏘아져 나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빛의 비가 순식간에 지상으로 쏟아졌고. 여러 언데드들 사이에서 바이터를 비롯한 핵심 고점의 언데드들을 정확히 노려서 파괴한 뒤, 주위를 한 차례 크게 비행하며 헤집는다. 언데드의 머리가 날아가고, 팔 다리가 찢겨져 박살 난다. 주위를 활보한 에메랄드빛 섬광이 동시에 머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전함으로 복귀한다. [1위, 시몬 폴렌티아 – 10,264,150P]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단숨에 천만 점 돌파.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방금 뭐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저렇게 고공에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칠흑 투사체라니!” 당연히 마법은 아니었다. 소환수였다. 돌아오는 에메랄드빛 섬광에서 뼈의 모습을 확인한 유드레이가 다급히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걸렸다! 무슨 수작을 쓰나 했더니, 이런 반칙을!” 통신 수정구가 연결되자마자 그가 다급히 말했다. “여기는 참가자 유드레이! 시몬 폴렌티아는 다수의 소환수를 이용해 싸우고 있습니다! 한 번에 최대 3기의 언데드까지만 사용해야 하는 룰, 그리고 하나의 언데드에 대한 점수만 적용되는 룰을 어겼죠!” -네, 그렇지 않아도 여러 문의가 들어왔는데, 문제없다는 주최 측 설명입니다. “뭐요?” -저 언데드. 다음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유드레이가 얼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전부 ‘하나’의 언데드로 취급됩니다. 그제야 유드레이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이론이 떠올랐다. 군집화. 거대한 덩치에 정신이 빼앗겨 있었지만, 사실 저 베히모스 전함의 핵심은 저 군집체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나. 누가 제작의 배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드레이가 고개를 떨구며 눈을 감았다. ‘내 완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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