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70화 언데드 퍼레이드에 이은 사냥 시간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4년에 한 번 열리는 펜타모니엄 축제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많은 관중들 앞에서 화려한 수상식이 이어졌다. 3위에 해당하는 상을 받아 표정 관리가 안 되는 헥토르, 그리고 네크로맨서 학자들의 자존심이자 기능적인 부분에서 높은 공로를 인정받아 2위를 달성한 펜타모니엄의 쇼이큰. 그리고 대망의 1위. “마지막으로 최고상입니다!” 둥둥둥-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타악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관중석에 앉은 에슈와 토토가 ‘제발’, ‘제발’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로레인은 정갈하게 앉아 있었지만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는 사냥 시간의 중간 집계만 공개했을 뿐, 마지막 결과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는데 사실 1위가 누군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 시간의 점수와, 퍼레이드의 표, 심사위원의 점수가 합쳐지는 것으로 나온 최종 결과. “수상자는 제7군단의 수장이자 키젠의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군단장입니다!”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환호성과 함께, 시몬이 어깨에 두른 무형의 망토를 흩날리며 걸어왔다. 보여지는 7군단의 이미지를 위해 일단은 피어의 본 아머를 착용하고 나왔다. 뒤쪽의 메모리얼 수정구가 출력하는 화면에는 시몬의 베히모스 전함이 강습대를 쏟아보내 수많은 언데드 중에 고위 언데드만을 정확히 사살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출력되고 있었다. 시몬은 펜타모니엄의 관계자로부터 최고상과 꽃다발을 받고, 둘이서 함께 마력 촬영구로 기념 촬영을 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간 뒤, 사회자가 앞으로 나와 확성 수정구를 시몬에게 건넸다. “최전선에서 결사와 싸우는 화제의 제7군단장이 참여한 것도 놀랍지만, 당당하게 프로와 학자들을 따돌리고 최고상 수상까지! 정말 놀랍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몬은 살짝 피어의 투구를 밀어 올려 입만 드러낸 뒤, 확성 수정구를 붙잡고 말했다. “이번 공로는 저 혼자만의 성과가 아닙니다. 길을 알려주시고 고문을 맡아주신 소환학과의 아론 교수님과, 제작 전반을 맡은 벤야 바닐라 대표님께도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군아아! 수상식 보러 온 건지, 벤야의 삑 소리 나는 외침이 들렸다. 시몬은 그쪽을 보며 가볍게 웃어 보인 뒤 다시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특히 이 시간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오! 누굽니까?” “키젠 혈류학과의 프레스턴 패튼 교수님이십니다.” 시몬이 조금 등을 돌려, 자신의 뒤에 있는 마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언데드 전함에서 강습대가 에메랄드빛 꼬리를 그리며 쏘아지고 있었다. “이분이 없었다면 제 베히모스 전함은 공격당하기 쉬운 커다란 과녁에 불과했겠죠. 전함에서 발사되는 ‘강습대’의 핵심 열쇠를 찾아주시고 관련 이론을 정립해 주셨습니다.” 팟! 파밧! 기자들이 든 마력 촬영구의 작동음이 정신없이 울려 퍼졌다. “최근에는 혈청과 빛에 대한 학문을 연구하고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시몬은 속으로 나지막하게 웃었다. ‘약속은 지켰습니다, 프레스턴 교수님.’ 시몬은 프레스턴의 조력을 얻는 대신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기로 했다. 그 부탁의 내용은 시몬이 펜타모니엄 언데드 퍼레이드에서 1위를 하면, 프레스턴의 이름과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언급해 주는 것. 명예는 물론, 프레스턴이 진행하는 연구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방법이었다. 아마 한 시간 뒤에는 혈류학과 연구실의 통신 수정구에 불이 나고 있을 것이다. 이 부탁을 처음 받았을 때 시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퍼레이드에서 1위를 하지 못하면요? -그에 준하는 권위 있는 행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을 언급해야 하겠지. 자네는 군단장이 아닌가. 여기서 끊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까탈스러운 프레스턴에게 거래 문제로 계속 시달리는 건 여러모로 피곤했을 테니까. “네! 군단장님! 수상의 영광을 다른 분들께 돌리셨군요! 세간에 비치는 이미지와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요!” 시몬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사회자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상대는 프로, 간단히 놔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번 펜타모니엄은 수많은 관광객과 학자들을 동반한 대형행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사가 등장하지 않았던 건, 결사킬러로 악명 높은 제7군단장님이 와서 그런 걸까요?” 그럼 맞춰줘야지 뭐. 시몬이 피어의 투구를 눌러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당연한 소리.]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휘이익! 기다렸다는 듯 관중들의 폭발적인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런 걸 원했다는 반응이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결사. 꽁지 빠지게 퇴각하는 네놈들의 모습에 이번에는 작게나마 유흥을 즐겼다만, 잊지 마라.] 피어 특유의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군단은 언제나 너희를 주시하고 있다.] “군단은 언제나 너희를 주시하고 있다.” 교과서로 얼굴을 가린 채 그렇게 중얼거린 딕이, 이내 교과서를 치우며 씩 웃어 보였다. “이런 느낌이지?” “……그만해.” 언데드 퍼레이드 이후 시몬은 학교로 돌아왔다. 이곳은 칠흑역학관, 막 임무에서 복귀한 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신문은 전부 네 기사로 도배되어 있어! 이거 봐봐!” 딕이 신문을 펼쳐 들며 말했다. <결사를 막으려다가 내친김에 퍼레이드 우승! 7군단장의 자신감.> <군단은 언제나 너희를 주시하고 있다. 배신의 군단장의 경고.> “그, 그만…….” 자리에 앉은 시몬은 깍지를 낀 채 얼굴을 묻었다.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딕이 소리 내어 웃으며 시몬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니, 네가 직접 한 말인데 왜 본인이 쪽팔려 하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까 민망하네.” 그땐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여론의 힘이야 네프티스가 꾸준히 강조했기에 시몬도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역시 체질에 맞지 않았다. 딕이 히죽거리며 턱을 쓸었다. “너희를 주시하고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시몬과, 다음 날 학교에 와서 부끄러워하는 시몬! 어느 쪽이 진짜 시몬인가?” “……두 쪽 다 나야.” “음흐흐, 알지. 가끔 보면 다른 사람 같아서.” 딕이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녀석도 철석같이 다른 사람이라고 믿은 거겠지?”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딕이 그렇게 답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딕을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 거기서 비키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어떤 여학생은 손끝으로 가볍게 목을 긋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딕은 어깨를 한번 으쓱인 뒤, 시몬에게 말했다. “더 이상 끌었다간 살해당할 것 같아서 이만.” “딕?” 딕이 손을 흔들며 떠나기 무섭게,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시몬을 향해 몰려들었다. “회장! 나 신문 봤어! 대단해!” “베히모스 전함 그거 어떻게 만든 거야?” 쏟아지는 질문과 환호에 에워싸인 시몬을 보며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키득거렸다. 키젠의 2학년들은 평화로운 한때를 누리고 있었다. 수업량이 다소 많기는 했지만, 까딱하면 짐 싸서 떠나야 하던 살벌한 1학년 시절에 비해서는 심적으로 편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이번에 들어온 1학년 후배들 이야기를 했다. 학생보호기간이 끝나고 지금쯤 죽을 맛일 거라느니, 이번 섬 생존평가에서는 200명은 떨어질 거라느니 하면서 낄낄거리는 게 2학년들의 삶의 낙이었다. 그런데. -키젠 2학년 학과대표 전원, 학생회로 집합해 주시길 바랍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방송음이 울려 퍼진 즉시 기숙사 전역에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내 학과 완장을 찬 학생들이 머리가 휘날리도록 달려서 학생회실 앞으로 집합했다. 다들 헉헉거리며 숨을 헐떡이거나 무릎을 짚고 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야, 나 넥타이 제대로 됐냐?” “살짝 삐뚤어졌어. 아니, 오른쪽 말고 왼쪽으로.” “……이번엔 무슨 일이냐 진짜. 일주일 만에 또 집합이라니.” 그때 2학년 사령학과 대표, 현재 교내 유일한 왕족인 몰리 드레스덴 공주가 손뼉을 치며 앞으로 나왔다. “과대들 다 주목해 줘. 저칠소 사혈맹투 다 모였니?” 몰리 또한 교복이 흐트러지고 스타킹은 짝짝이에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공주인 그녀였지만, 이곳 키젠에서는 그저 3학년의 명령에 부리나케 뛰어오는 2학년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학과대표 학생들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소환학과 없네.” “거기 과대 걔잖아. 수석의 사샤 앤드라실.” “펜타모니엄에서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드르륵! 그때 건물의 고층 창문이 열리더니. “늦어서 죄송합니드악!” 화르르륵! 두 발에 칠흑화염계를 부스터처럼 쏘아내며 등장한 한 남학생이 감속에 실패한 채 복도를 대굴대굴 구르다 벽에 부딪혔다. 우당탕탕! 지켜보던 학생들이 입을 가리거나 눈을 감았다. 머리에 커다랗게 혹이 난 남학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억! 사, 사샤가 보충수업 중이라…… 허억! 저 버나 펠턴이 대신……! 흐어억!” “숨 쉬어, 숨.” 버나 펠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학생이 숨을 몰아쉬었다. 이들을 이끄는 몰리 공주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들며 까치집이 된 머리를 정리하라는 신호를 보낸 뒤 시계를 보았다. 척! 척! 시곗바늘이 서서히 움직이다가. 처억! 바늘 끝이 정확히 정시를 가리켰다. 긴장한 얼굴의 몰리가 후으읍 숨을 들이마시고는 학생회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2학년 몰리 드레스덴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녀가 학생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학과대표들은 모두 뻣뻣한 부동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문으로 가려져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진 보이지 않았다. ‘네, 네.’ 하고 몰리의 음성이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이내 그녀가 다시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왜 그래 몰리?” “먼저 온 애들이 있었어.” 몰리가 안도하는 얼굴로 말했다. “동아리 부장들인가 봐. 회의가 늦어져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네.” “다행이다.” 그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퍼질러 앉았다.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하거나 물을 마시러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버나 펠턴도 주저앉아 한숨 돌리고 있는데. “요옵.” 뒤로 머리를 묶은 실눈의 남학생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반가워, 버나. 루어스만이라고 해. 우린 구면이지?” “그랬던가?” “1학년 1학기 초 결평에서 붙었는데. 기억 안 나?” “아, 맞아. 이제 알겠네!” 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실눈의 남학생과 악수하며 말했다. “신기하네. 너 그때 중위 스쿼드도 간당간당했는데, 어떻게 Top10에 과대까지 먹었냐?” “숨겨진 재능에 눈을 뜬 거지.” 두 남학생은 낄낄거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유가 생긴 버나 펠턴이 허리를 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있잖아, 난 학생회 소집은 처음 와보거든. 근데 자기 학과에서 어깨 좀 편다는 과대들이 군기 바짝 들린 모습이 낯선데. 시몬 학생회장 선배님이 그렇게 무섭냐?” “노옵.” 실눈의 남학생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시몬 학생회장 선배님은 만나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진짜 좋으셔. 평화롭고 회의 분위기도 즐거워. 애초에 그분은 외부 임무로 바빠서 2학년 집합도 잘 안 거시지.” “그럼 지금 우릴 부른 건 누군데?” 실눈 남학생이 으스스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뜨며 말했다. “얼음여왕.” 그 한마디에 주위에 있던 학과대표들이 제 어깨를 붙잡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버나 펠턴은 푸핫 웃었다. “우리가 애도 아니고. 별명을 지어도 그게 뭐냐 유치하게.” “아직 웃음이 나오지?” 실눈 학생이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 겪어봐서 그래.” “……?” 덜컹!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회실의 문이 좌우로 크게 열렸다. 방 안에서 싸늘한 한기가 후욱 하고 몰려들었다. 주위의 온도가 훅 내려가며 버나 펠턴은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터벅 터벅. 먼저 회의했던 동아리 부장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좀비처럼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거의 10년은 더 노화한 듯한 얼굴이었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당황한 버나가 눈을 굴리고 있는 그때. “다들 왔지?” 어느새 화장까지 고치고 문 앞에 복귀한 몰리 드레스덴이 결연한 눈으로 말했다. “우리 차례야. 들어가자. 버나는 처음이니 실수하지 말고.” “어? 어어.” 몰리를 선두를 2학년 학과대표들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버나는 가장 뒤에서 따라갔다. 학과과표들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실례합니다’ 하고 자그맣게 중얼거리길래, 버나도 눈치껏 따라 말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눈을 굴려 처음 방문하는 학생회실의 경관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에 소파와 큼지막한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학생회 완장을 찬 1학년 소녀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왼쪽에는 용병왕이자 학생회 소속인 아서 블레만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그들을 거느리며 극의 최종보스처럼 자리에 앉아 있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3학년이 있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두 손을 깍지 낀 그녀는 싱긋 웃고 있었다. 같은 학생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사실 저 여자가 학생회장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당했다. 저절로 어깨에 힘이 빠지며 고개가 숙여진다. 이내 웃고 있는 3학년이 서서히 호수 같은 푸른색 눈동자를 드러내며 드디어 첫마디를 꺼냈다. “앉아.” 아무래도 오늘,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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