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65화 드디어 시몬의 베히모스 함선이 완성됐다. 다른 소환학과 학생들도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자신만의 베히모스를 완성했다고 한다. 아론 앞에서 여러 시범 테스트를 거쳤고, 이제는 첫 실전이라고 할 수 있는 펜타모니엄의 언데드 퍼레이드에 참여할 일만 남았다. 언데드 퍼레이드는 6일간 진행되는 펜타모니엄 설립 기념일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참가하는 네크로맨서만 1,000명이 넘고, 한 명당 최대 세 개의 언데드를 꺼낼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언데드 퍼레이드의 컨셉은 ‘하늘’. 즉 비행형 언데드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실력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다수 참가할 테고, 특히 연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비행 언데드들도 대거 출전할 것이다. 이런 큰 무대에 참가하는 것도 긴장되는 일이지만, 3학년 소환학과 학생들은 한 가지 더 부담을 짊어진다. 여기서 아론이 말하는 최소 조건이 ‘입상’. 몇몇 학생들이 합격 조건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고 넌지시 말했지만 아론에게 꾸중만 들었다. -언데드 베히모스 전함을 들고 퍼레이드에서 입상조차 하지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렇게 오늘 정오에 펜타모니엄에 넘어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관광을 즐기고, 그다음 날에 언데드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일정이었다. 오늘 아침, 소환학과 기숙사의 식당은 전율이 감돌았다. “어윽, 손 떨려.” “수프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다들 긴장한 얼굴로 아침식사를 먹는 가운데, 로레인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시몬도 최종 점검 하러 나갈 거니?” “아, 나는 괜찮아. 이대로 나가려고.” 옆자리의 여학생과 수다를 떨던 에슈가 그 말을 듣고는 ‘오올-’ 하고 과장된 감탄성을 흘렸다. “너무 완벽하니 점검 같은 건 할 필요 없다! 평소 실력대로 치르겠다 이거지? 역시 조장!” “하하, 그 정도는 아냐.” 사실 그 정도였다. 어제 벤야와 함께 몇 번이고 전함 운용을 연습했으니 자신감은 붙어 있었다. 시몬이 부드러운 크림수프에 빵을 찍어 한입 깨물어 먹으며 옆자리를 보았다. “퍼레이드에서 그 폭주엔진은 안 쓸 거지? 토토.” 언데드 퍼레이드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표정의 토토가 ‘히끅’ 소리를 냈다. 그러다 벌게진 귀를 숨기듯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 그래야지.” “부탁해.” 펜타모니엄은 유리탑 같은 고층 건물들이 많다. 축제 기간이라 인파도 무척 많을 터, 언데드 전함이 추락하거나 건물에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시몬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 가자! 해보자! 로비 쪽이 유난히 소란스럽길래 뭔가 했더니, 헥토르와 그의 파벌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던 헥토르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식사 중인 시몬 쪽을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 헥토르.” 눈이 마주치자 시몬이 먼저 인사했다. 평소라면 시몬과 눈이 마주친 정도로 헥토르는 발끈한 반응을 보였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번엔 이긴다.” 그렇게 선언하며 밖으로 나가는 헥토르. 피에르를 비롯한 파벌 학생들이 손뼉을 치거나 휘파람을 불며 뒤따랐다. 시몬은 속으로 놀랐다. ‘확실히 여유가 있어! 진짜 잘 만들었나 본데?’ 이렇게 되니 다른 학생들의 결과물도 무척 궁금해졌다. 사실 직접 본 전함은 토토의 것뿐이었다. 지금부터는 엄연히 경쟁이었으니 다들 비장의 무기를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내일이면 다 보게 되겠지? 기대된다.’ 시몬이 턱을 괴며 수프를 한 입 더 떠먹고 있는데.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님.” 뒤에서 다가온 조교 한 명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바로 용건부터 말했다. “제인 교수님께서 부르십니다.” 오랜만에, 갑작스러운 제인의 호출이었다. * * * “제인 교수님, 부르셨습니까.” 시몬은 식사를 마친 뒤 제인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사각사각 깃펜으로 문서에 서명을 마친 그녀가 서류 작업용 안경을 벗어서 책상에 내려놓은 뒤, 두 손을 깍지 꼈다. 은은한 카리스마가 흐르는 눈동자가 시몬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럽게 미안합니다, 학생회장.” 학생회장이라고 불렀다. 칠흑역학 수업이나 성적 문제로 부른 건 아닌 모양.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오늘 오후에 펜타모니엄으로 넘어간다고요?” “네, 교수님! 언데드 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잘됐네요.”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학생회장은 다른 학과생들보다 조금 더 일찍 펜타모니엄으로 넘어가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일찍 넘어가서 무엇을 하면 될까요?” “우리 학교의 2학년 중에서 전체 1위.”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사샤 앤드라실의 몸 상태를 확인해 주었으면 합니다.”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사샤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이 있다기보다는 건강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결사의 약물 해독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건강이 나빠졌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사샤는 2학년 개학식이나 학과 선정식에도 온 적이 없었다. “그녀는 중간에 중요한 수행평가가 있어서 잠시 로크섬에 들어왔지만, 일주일 만에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펜타모니엄에 돌아가 요양하는 중입니다.” “……아.” “듣자 하니 사샤 학생은 시몬 학생회장을 무척 잘 따른다고 하던데, 직접 가서 이야길 나눠봤으면 하는군요. 그녀는 우리 키젠에서도 중요한 학생입니다.” 시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인이 건네주는 서류를 받았다. 사샤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그것을 빠르게 눈으로 읽은 시몬이 진중한 얼굴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바로 출발할게요.” “네.” 제인이 특유의 시니컬한 턱짓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그러고는 책상에 올려둔 깃펜을 붙잡은 채 잉크통에 첨벙첨벙 담갔다. “그리고 이건 사견입니다만.” “?” “학생회장이 참여한다는 그 대회에 관심이 가는군요.” 시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아!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 그 말을 들은 제인의 눈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1위 외에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네?’ 시몬이 진땀을 흘렸다. “교수님, 그 행사는 학자들이나 고위계 네크로맨서들도 오는…….” “1위입니다. 학생회장.” “아, 알겠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제인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승전보를 기대하죠.” 실패하면 뒷감당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더더욱 전의를 다지는 시몬이었다. * * * 펜타모니엄. 중앙 건물 특수 병동. “…….” 하얀 환자복 차림의 사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 밖은 시끌시끌했다. 펜타모니엄의 설립을 기념하는 6일간의 긴 축제일. 대륙 각지에서 온 수많은 관중들과 학자들, 연구자들이 뒤섞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사샤는 보안 문제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사샤, 너는 우리 펜타모니엄의 보물이란다. -우선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렴. 작년에 사샤를 이용해 사적인 연구를 진행하던 연구원이 체포된 뒤, 펜타모니엄의 사샤에 대한 보호는 강박적으로 변했다. 몸이 조금 아픈 건 사실이었지만 이 정도는 견디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아.”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있네.” 창밖에 보이는 검은 기둥. 아니, 저게 기둥인지 탑인지도 알 수 없다. 너무나 흐릿하고, 희미하다. 눈을 깜빡이고 뜨면 다시 사라지는 환상. 직접 가까이 가본 적도 있었지만 거짓말처럼 형체가 사라졌다. 만져지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고, 관측 불가능하다.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하면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환각을 볼 정도의 증상이면 몸 상태가 심각하다’느니, ‘결사의 약물의 원료를 만들어낸 뒤 그 약물의 증세가 남아 있다’느니 말했다. 이곳의 어른들은 학자라 그런지 자신들이 모르는 ‘미지’를 지나치게 경계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샤의 입장에서는 무척 피곤했고, 두 번 다시 환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똑똑똑. 그때 병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하얀 수염이 거품처럼 풍성하게 난 연구원이 홀홀 웃으며 걸어왔다. “몸은 좀 괜찮니? 사샤.” “네,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요.” “매스꺼움은? 두통은? 혹시 환각은 아직도 보이니?” “안 보인다고요!” 사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연구원이 흠칫하더니 이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계속 여기 있게 해서 미안하구나. 우리도 너를 위해 이러는 거란다.” ‘맨날 저 소리.’ 사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뀐 채 고개를 돌렸다. 이내 늘 하던 일이 이어졌다. 사샤의 피를 뽑고 검진기로 몸을 체크한 뒤 서류에 몸 상태를 빠르게 적었다. 나는 정상인데, 자신을 환자처럼 다루는 어른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단다.” “오늘 저녁 메뉴에 당근이 빠지는 것보다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네요.” 툴툴거리는 사샤를 보며 연구원이 홀홀 웃었다. “키젠의 학생회장님께서 오늘 네 병문안을 오신다고 하는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샤의 몸이 자신의 키만큼 번쩍 튀어 올랐다가 침대에 떨어졌다. “진짜진짜진짜진짜진짜요?” “홀홀홀! 그렇게 좋으냐?” “정말이죠? 거짓말 아니죠? 아! 이럴 때가 아니야!” 그녀가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계속 침대에 누워 있어서 그런지 머리가 온통 눌려 있었다. 특히 이 센스라곤 없는 환자복. 이런 차림으로 시몬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교복! 제 키젠 교복 어디 있어요?” “네 수납장에 있지 않겠니?” 우당탕탕! 사샤가 달려가 수납장에 있는 검은색 키젠 교복을 꺼내 병실 침대에 던져놓았다. 그녀가 다시 아악! 하고 소리 질렀다. “넥타이! 넥타이가 없어요!” “아래 칸도 찾아봤니?” “아!” 그녀가 다시 캐비닛으로 달려들어 아래 칸을 뒤적거리며 양말이고 속옷이고 마구 던져대다가 ‘찾았다!’ 하고 넥타이를 들어 올렸다. 당황한 연구원이 얼른 뒤돌아서 말했다. “진정하렴, 진정해.” “바로 갈아입을 거니까 나가요! 이런 차림으로 시몬 오빠를 볼 수 있을 리가 없-” “안녕, 사샤.” 갑자기 들리는 전류가 찌릿할 정도로 맑고 다정한 목소리. 사샤의 동공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꿈에 그리고 동경하던 바로 그 사람. 시몬 폴렌티아가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올까?” “시몬 오빠아아아아!” 사샤가 힘차게 달려들어 시몬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 즉시 그녀의 기분에 반응하듯, 실내에 비치된 화분에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사샤!” 화분에서 올라온 식물들이 주위를 휘감고 뒤덮으며 병실 내부가 온통 정글처럼 변했다. 시몬은 난감한 듯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여전하네.” * * *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바로 밖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환자실은 싫다는 사샤의 고집 때문이었다. 사샤는 교복으로 갈아입었고, 두 사람은 함께 키젠 학생으로서 축제의 거리를 나섰다. “오.” “꽃들이……!”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갑자기 가로수에서 나뭇잎이 솜사탕처럼 풍성해지고 꽃까지 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펜타모니엄의 새로운 흑마법인가?” “대단한데. 어떤 룬어를 쓴 거지?” 학자들은 현상을 분석했고. “가까이 다가가니 꽃이 폈어!” “나무들도 우리 사랑을 축복하나 봐.” 젊은 커플들은 평소라면 입에 담지도 못할 느끼한 멘트를 날리며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부풀어 오르는 나무 아래에는 사실 시몬과 나란히 걷고 있는 사샤가 있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온통 주위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눈에 띄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것 봐! 시몬 오빠!” 그녀가 두 팔을 세운 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가, 착 하고 멈춰 섰다. 이를 축복하듯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며 꽃잎이 떨어졌다. “나 키 많이 컸지?” “그러네.” “이제 카미 언니보다 내가 더 클걸?”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카미가 들으면 서운해할지도…….’ 처음 만났을 때 사샤는 분명 카미바레즈보다 작았지만, 지금은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해서 신장으로는 벌써 카미바레즈를 능가했다. 물론 이건 뱀파이어의 종족적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참! 시몬 오빠 너무해! 나 대신 바보왕 아서를 학생회에 들였다며!” 시몬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때는 네가 자리에 없었잖아. 어쩔 수 없었어.” “흥. 그래도 학생회는 그 바보왕에게 양보하겠지만.” 그녀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년에 시몬 오빠의 학생회장 자리만큼은 나한테 물려줘야 해! 알았지?” 그 말에 시몬도 소리 내어 웃었다. “너 하는 거 봐서 제인 교수님께 추천해 볼게.” “열심히 할게!” 좋아서 방방 뛰는 사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시몬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축제의 거리의 담벼락에는 여러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포스터가 있었다. 시몬이 손끝으로 가리켰다. “나 저기 나가.” “진짜? 언데드 퍼레이드?” 그녀가 폴짝 뛰었다. “나 그럼 오빠한테 투표할래! 어떤 언데드를 내보낼 건데?” “그건 비밀이야. 왠지 표를 요구하는 것 같잖아.” “그럼 힌트만 줘!” 그녀의 말에 시몬이 씩 웃었다. “이 퍼레이드에서 가장 화려하고 멋진 언데드. 그게 내 작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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