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61화 [군단. 생존이 최선. 내부의 기능을 위해 외부의 견고함을 희생하는 건 생물학적으로 비효율적.] 알라제가 말했다. “아니지, 알라제. 속도나 출력 같은 부가 기능을 집중 정복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핵심이야. 내구력을 다소 줄이더라도 빠르고 화력이 강한 전함을 제작해야 해!” 벤야가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본은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언데드다. 덩치나 장비만 비대해지는 건, 이를 다루는 술사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실수한 디자인일 뿐이다.” 아론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벽에 기대어 있는 시몬은 퀭한 얼굴로 세 사람의 토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섯 시간째 이러고 있어.’ 서로 다른 성향과 지식을 가진 자들끼리 토론시키면 그 끝에는 최고의 결과물이 도출될 줄 알았는데, 정작 토론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이고, 언데드의 특성과 아이덴티티에 주목하는 알라제. 소환형 언데드 제작의 최고봉인 엔지니어 벤야. 네크로맨서를 위한 언데드를 철칙으로 삼고 있는 교수 아론.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그럼 제가 세 분의 의견을 종합해서…….” [군단장의 발언 정지 요청. 이건 언데드의 프라이드 문제.]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 제군아. 그러니까 내 생각은……!” 다들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토론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모습. 이러나저러나 내가 주인이고 내 언데드 만들어주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서슬 퍼런 분위기라 일단 차분히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어느 정도 합의점이 도출되었다. 시몬은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이 기술이에요.” 이번 베히모스 전함의 설계는 지금까지 시몬이 배운 모든 지식과 기술의 결정체였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군단형 스컬윙을 한 마리 꺼내고, 명령을 부여하는 마법진을 연달아 통과하게 하여 각기 다른 명령을 수행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진 아르스칼트의 ‘군단학’ 시간에 배워서 비명의 정글 개척에 적용한 바로 그 기술이었다. “멋지네, 이거라면 납득했어.” 벤야가 손가락을 튕겼다. “전함 내부에 이런 명령형 마법진들을 설치하고, 군단형 언데드들을 출전시키는 동시에 마법진을 통과하게 하는 거구나.” “네! 일종의 날아다니는 비명의 정글이 되는 거죠.” 전함 내에서 간단한 저주를 사용하거나, 혹은 전함의 코어에 칠흑이 부족할 때 소환수들이 급속으로 칠흑을 보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게 시몬이 손대지 않고 자체적인 운용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 이번엔 아론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평시에는 하늘에서 정찰 활동을 하다가, 전시에는 베히모스 전함을 군단형에서 소환형으로 바꾸고 네 오리지널 흑마법인 친위대를 입힌 소형 개체들을 출전시킬 수 있게 한다는 거군.” “네, 맞습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거대한 베히모스 전함을 운용하는 거니, 제대로 설비를 갖추고 싶어요.” 벤야가 열의 넘치는 얼굴로 두 손을 맞부딪혔다. “맡겨줘, 제군아! 최고의 칠흑 엔진을 장착해서 언데드 다수 사출 및 친위대 적용을 목표로 개발해 볼게.” “네, 하지만 뭔가…….” 시몬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살짝 부족한 느낌이네요.” 벤야가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직 부족해? 지금 설계도 엄청 대단한 건데.”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스컬윙을 꺼내서 친위대를 입히는 건 시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베히모스에 복잡한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언데드에 친위대를 입히는 메리트가 뭐가 있을까? 그냥 베히모스에서 스컬윙들을 내려보내고, 수고스럽지만 시몬 본인이 일일이 친위대를 입힐 수도 있다. 친위대 기술을 내장하지 않으면 ‘주포’나 ‘가속 장치’ 등을 장착할 수 있는데, 효용 면에서 보면 그쪽이 더 낫지 않을까. 베히모스 전함이 운용할 수 있는 방대한 칠흑, 그리고 초대형 언데드의 설비로만 가능한 신기술이 분명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핵심은 하나.] 이번엔 알라제가 말했다. [친위대 마법의 변형.] “그렇겠네.” 시몬의 오리지널, ‘친위대(親衛隊)’. 이 기술은 1학년 때 처음 개발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처음에는 그 과정이 상당히 복잡했다. 친위대의 근간이 되는 블러드골렘을 먼저 소환한 뒤, 블러드 골렘으로 정제한 클라우드를 스켈레톤에 입히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으니까. 시간이 지나 반드시 블러드골렘을 사용하지 않고, 그 핵을 장비한 뒤 마법진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친위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이 모든 과정을 캔슬한 채, 즉시 마법진을 펼치고 하늘에서 바로바로 클라우드를 떨어뜨려 친위대를 하나씩 빠르게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친위대는 시전 속도와 효율성 위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친위대의 성능 자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 시몬이 쓰게 웃었다. ‘내 혈류학 능력이 1학년 시절에서 그리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겠네.’ 애초에 친위대는 소환학과 혈류학이라는 두 과목의 융합 학문이었다. 칠흑에 시몬의 피를 섞은 뒤 정제하여 뽑아내는 ‘클라우드’가 친위대의 근본. 하지만 그 이상으로 클라우드를 개선하거나 더 상위의 기술을 연구하진 않았다. “문제를 알아낸 모양이군.” 아론이 시몬의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하지만 펜타모니엄의 언데드 퍼레이드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하니 서둘러야 한다. 친위대 설비는 가장 마지막에 장비하도록 하고 내일부터 바로 선체 구축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 “내일부터라뇨 교수님.” 머리를 질끈 묶은 벤야 바닐라가 말을 이었다. “피가 뜨거워져서 안 되겠어요. 오늘 밤부터 철야 시작하겠습니다!” ‘……하하.’ 시몬은 초대형 아공간을 열고 다른 언데드들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베히모스의 시체를 꺼냈다. 필요한 부분만 말끔하게 발골된 거대한 가슴뼈 사이로 오염된 마나의 뭉치, 칠흑 코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그 거대한 칠흑의 흐름에 벤야는 섬찟함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입가에 흐르는 침을 얼른 소매로 닦고는 말했다. “너무 근사한 소재야! 이 작업을 우리에게 맡겨줘서 너무 고마워 제군아! 당장에라도 작업하고 싶어!”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통신 수정구로 몇 마디 하자, 이내 곳곳에서 이번 작업을 함께할 바닐라 직계 언데드 장인들이 투입되었다. 그들도 재료를 보고는 탄성을 터뜨리며 한마디씩 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알라제도 당분간 여기서 남아서 작업을 함께해 줘. 에이션트 언데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당연한 지시. 인간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음.] 통! 통! 사념으로부터 알라제의 기쁨이 느껴졌다. 그가 몸을 부풀리더니 분신체를 비롯한 각종 언데드들을 쏟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작업용 앞치마를 걸친 벤야가 도구를 어깨에 짊어지며 말했다. “제군이는 하루빨리 전함에 적용될 새로운 ‘친위대’ 기술 개발 쪽을 부탁해!” “네! 맡겨주세요.” 그렇게 대답한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기술을 위해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까.’ * * * 다음 날 아침. 시몬은 오랜만에 학교 수업에 복귀했다. 키젠 3학년 수업은 이전 학년의 다른 수업들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시간표가 자유롭고, 자신의 일정에 맞춰 수업을 정해 들을 수 있다. 다른 학년 때처럼 하루하루 빡빡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전교생의 절반이 임무에 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1~2회 정도로 널널한 편이다. 임무에 가 있는 동안 해당 수업을 듣지 못해도 문제없다. 교수들은 같은 진도의 수업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 2~3회 반복하며, 수업이 조금 느려도 늦은 진도의 수업을 들으면 금방 본래의 진도로 따라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장기 임무 등으로 오랫동안 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들은, 그런 학생들끼리 모여 교내에서 그룹을 형성하도록 한다. 그룹이 크면 교수가 직접 보충수업을 맡아주고, 2~3명의 작은 그룹이라도 연구직 교수나 수석조교가 보충수업을 진행해서 본래 진도로 돌아오도록 도와준다. 사실상 로크섬에만 있으면 상당히 캠퍼스 생활이 널널한 수준. 그래서 더더욱 임무를 찾아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얼핏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임무와 캠퍼스 생활을 병행하면 바로 ‘벅차다’는 말이 나온다고. 어쨌건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었다. “다음 임무 어디 갈지 정했어?” “몰라, 일단 정규 진도 따라잡고 생각해야지.” “대도시 근처로 가자!”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몬은 고민이 있었기에 턱을 괴고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같은 칠흑역학 보충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주위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소녀. 누군가 그녀에게 장난을 쳤는지, ‘너무해요!’ 하고 말하니 사방이 웃음바다가 된다.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친절하고 착해서 모든 학생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아낀다. 쫑긋. 그때 카미바레즈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귀가 쫑긋하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다른 학생들에게 뭐라고 작게 양해를 구하더니 이쪽으로 쪼르르 뛰어왔다. “시몬~ 안녕하세요!” “안녕 카미.” 시몬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카미바레즈가 등 뒤의 앙증맞은 박쥐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며 말했다. “단체 임무 고생하셨어요! 언제 복귀하신 거예요?” “바로 어제 돌아왔어. 오늘부터 수업 진도 따라잡으려고.” “저도 5박짜리 임무를 다녀왔어요! 칠흑역학 보충수업은 계속 같이 듣겠네요? 기뻐요!” 카미바레즈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시몬이 힐긋 시선을 돌렸다. 아까 그녀와 이야기하던 학생들의 찌릿한 시선이 느껴진다. 시몬이 웃으며 그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들이 흠칫하더니 얼굴을 붉히거나 눈을 내리깔며 흩어진다. 학생회장이라 그럴까, 아니면 배신의 군단장이라 그런 걸까. 지금까지 아예 만난 적 없거나 접점이 없던 동기들과는 살짝 거리감이 생긴 기분이다. 그래도 명색이 모든 학생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으니, 시몬은 기꺼이 자신이 먼저 이들에게 다가갈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만. “참, 카미.” “네?”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혹시 수업 끝나고 잠깐 시간 괜찮아?” “!!”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퐁 하고 붉어졌다. “아, 아앗! 시간 괜찮아요! 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녜요!” 파닥 파닥 파닥 파닥! 등 뒤의 날개가 정신없이 흔들리는 걸 애써 팔꿈치로 가린 그녀가 ‘아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럼 수업 끝나고 봐요!” 그녀가 왔던 방향 그대로 복도 쪽으로 달려갔다. 이내 복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혈류학과 친구들이 ‘꺄악!’ 하며 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지?’ 그리고 시몬은. 오늘이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 * * 남들이 우러러보는 키젠 최고 학년이 됐지만 그럼에도 학교는 학교. 기념일은 한창대인 10대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행사인 모양이었다. 여러 부르는 이름이 많지만, 통칭 푸딩 데이. 남자가 여자에게 푸딩류 디저트를 선물하는 날이었다. 왜 카미바레즈가 얼굴을 붉혔고, 왜 남학생들이 그녀의 주위에 있었는지 이유가 밝혀졌다. 다들 선물을 준비한 채 카미바레즈에게 줄 기회를 엿보다가 그녀가 시몬에게 가는 바람에 상황이 꼬인 것 같았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다른 동기에게 오늘이 기념일이라는 언질을 들은 시몬도 식겁하며 로체스트로 달려갔고, 약속 시간 전에 선물 세트를 구매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시몬!” 품에 푸딩 세트를 껴안은 카미바레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시몬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참, 이렇게 만난 김에 상담을 받고 싶은 게 있는데.” “네?” 원래는 이쪽이 본론이었지만, 시몬도 그걸 숨길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혈류마법에 대해서야.” 시몬은 지금 만들고 있는 베히모스 전함과, 친위대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위대의 신기술 개발을 위한 피의 강화. 라는 거네요?” “맞아, 카미.” 카미바레즈가 푸딩 세트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손끝을 세워 들었다. 그녀의 손끝 위로 마법진이 펼쳐지고 핏방울이 몽실몽실 일어났다. “사실 ‘피’라는 건 네크로맨서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요소예요. 혈류마법에 적합한 ‘강한 피’와 ‘약한 피’는 태어날 때부터 갈린다고 해요.”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혈류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게 혈통이라는 점은 워낙 유명해서 시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피 자체를 강화한다는 개념은 혈류학에 없어요.” 카미바레즈가 손끝으로 핏방울을 건들자 빠르게 주위로 슝슝 뻗어나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만 이 피의 효율성을 연구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게 혈류마법이죠!” “그렇구나.” “혹은 내가 가진 피에 새로운 피를 더해 특수한 효과를 내는 방법도 있어요! 분명 새로운 친위대의 힌트도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작은 두 주먹을 꼭 쥐고 가슴 앞에 올린 채 날개를 파닥거렸다. “같이 가보지 않으실래요? 저희 담당교수, 프레스턴 패튼 교수님께.” ‘프레스턴 교수님이라.’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별로 접점이 없던 인물이었다. “그 교수님은 어떤 분이야?” “아!” 카미바레즈가 방싯 웃었다. “무척 네크로맨서다운 분이세요!” 아무래도. 칭찬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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