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38화 시몬은 초승섬 탐사를 시작했다. 여러 임무나 수업을 통해 대륙을 떠돌아다닌 경험이 풍부해진 시몬이었지만, 확실히 초승섬은 여타 지역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렇게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몬스터가 나올 거란 긴장감을 푼 지가 얼마나 됐더라.’ 몬스터의 비율이 전체 생물의 1% 미만인 곳. 이 평화로운 공간을 인간을 비롯한 특정 생물이 독차지하지 않는다. 사슴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새끼 여우들이 뒤엉켜 장난을 치고 있다.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부자들이 수천, 수만 금을 내면서 이곳에 오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보기 싫어도 보이는 파괴의 흔적들. 계곡길은 엉망진창 일그러져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보인다. 한때 이 근방은 호수가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수차례나 베히모스의 몸부림을 겪은 뒤 산의 토사가 뒤섞여 이렇게 변했으리라. 발을 잘못 디디면 푹 꺼지는 곳도 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파헤쳐진 바닥, 혹은 불룩 솟구치거나 아래로 꺼진 지형도 보인다. 편안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 지금까지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상반된 분위기가 공존하는 장소는 본 적이 없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돌아다닐 곳은 많다고 생각하며 시몬은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언덕을 오르고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던 시몬의 앞에 탁 트인 평지와 호수가 보인다. ‘동물들이 오는 수원지구나.’ 나무와 언덕으로 둘러싸인 이 그림 같은 호수에는 온갖 물새나 말 등의 동물들이 머리를 드리운 채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확실히 원주민이 나타날 만한 곳이라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몬은 풀밭에 몸을 숨기고 엎드려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왔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10대 초반 정도에 성별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옷차림은 동물 가죽 같은 것으로 몸을 가린 전형적인 원시 복장, 뻣뻣한 머리카락은 볏짚 묶듯 대충 묶어놓았다. 몸놀림이 무척 가벼워 보인다. 조용히 걸어와 주위를 한차례 경계하던 원주민이 마침내 호수 앞에 꿇어앉아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가볍게 얼굴 주위를 씻기도 했다. 시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홍펭이 가르쳐 준 보법으로 몸의 기척을 없앤 채 원주민에게 다가갔다. 목이 말랐는지 물을 급하게 마시느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이내 시몬이 소리내어 말했다. “안녕.” “!!!” 반응이 격렬하다. 한 차례 폴짝 뛰어오른 원주민이 이내 두 발과 두 팔을 바닥에 부딪히고 허리를 세운 채 으르렁거렸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같네.’ 시몬이 웃는 얼굴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 놀라게 했다면 미안해. 내 이름은 시몬이야. 혹시…….” 타닷! 시몬이 말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 원주민은 즉각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타닷! 탓! 파악! 마치 네발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바위나 언덕을 거침없이 넘어갔다. 순식간에 호수를 지나 숲의 길목으로 들어왔다. 시몬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한 원주민이 비로소 속도를 조금 낮추고 두 발로 걸었다. 원주민의 눈에 안도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너, 이 섬에 살지?” “!” 어느새 시몬이 따라잡아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마치 산책 구보를 하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몇 가지 궁금한 게 있는…….” 원주민이 힘껏 제자리에서 점프했다. 단숨에 높이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은 채 몸을 빙글빙글 돌리고는 그 탄력으로 뛰어올라 더 높은 나무줄기에 찰싹 달라붙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나무를 오르고 나뭇가지를 타며 나아갔는데, 가히 원숭이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얼마나 빠른지 방금 물을 마셨던 호수는 잠깐 사이에 까마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터억. 그렇게 한참을 높은 나무 위까지 올라온 원주민이 비로소 동작을 멈추고는 휴우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햇빛과 가까운 곳까지 왔다.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본 원주민이 나무에 맺혀 있는 탐스러운 열매를 발견했다. 꼴깍. 한눈에 봐도 무척 잘 익었다. 침을 삼킨 원주민이 열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지만, 살짝 거리가 부족한 건지 손이 닿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고 팔을 최대한 쭉 뻗어보는데. 뚝.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열매가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가 열매를 대신 따준 것이다. 어느새 자기 집 안방처럼 태연히 나뭇가지에 누워 있는 소년이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다른 한 손으로 방금 딴 열매를 내밀었다. “이거 따려고 했던 거지?” “!!” 타악! 시몬의 손길을 뿌리친 원주민이 기겁하며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파박! 팍! 진땀을 줄줄 흘리며 원주민이 나무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썹은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무를 정신없이 타고 나아가던 원주민의 눈에 깊은 강이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강으로 다이빙했다. 첨벙! 꾸르르르륵! 물방울을 튀기며 강으로 잠수한 원주민이 두 다리를 붙인 채 물고기 같은 헤엄 실력을 뽐냈다. 한참을 물속에서 헤엄치던 원주민이 비로소 수면 위를 보며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으나. 스윽. 바로 옆에서 커다란 고래 뼈에 타고 있는 그 소년이 등장했다. 물속에서 소년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원주민은 너무 놀라 꼬르륵! 소리를 내며 거품을 일으켰다. 이내 눈에 힘을 주며 더더욱 속도를 높여 도망쳤다. 첨벙 첨벙 첨벙! 정신없이 헤엄쳐서 강을 거슬러 좁은 개울로 빠져나갔다. 그 커다란 고래 뼈는 길목이 좁아서인지 더 쫓아오지 못했다. 비로소 시몬이 따라오지 않는 모습을 확인한 원주민이 안도하고는 물속에서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 원주민이 잔뜩 젖은 옷을 말리려고 했지만. 철썩! 바로 앞에 탈의한 상의를 털고 있던 시몬이 빙긋 웃고 있었다. “고생했어. 여기서 옷 말릴 거야?” “…….” 원주민이 시몬을 한 차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내. “@$^*!!!” 시뻘게진 얼굴로 알 수 없는 언어를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몬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윽, 화 많이 났나 보네.’ 캬아아아아아아!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마구 내뱉은 원주민이 이내 시뻘게진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인 채 씩씩거리다가 등을 돌려 숲속으로 걸어갔다. 다시 가서 따라잡을까 했던 시몬은 결국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 이쪽도 정보가 절실하게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접근으로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크흐흐! 붙잡아서 정보를 실토하게 만드는 게 빠르지 않겠나? 소년!] 지켜보고 있었는지 피어의 분신이 말을 걸어왔다. 시몬은 고개를 내저었다. ‘억지로 그러는 건 결사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무엇보다 저 한 사람을 어떻게 할 게 아니라 주민들이 사는 곳을 알아내 협력을 구해야 해요. 그중에는 대륙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겠죠.’ 시몬이 손끝을 세웠다. 칠흑이 일렁이고 있었다. ‘일단 추적을 위한 저주는 걸어뒀으니까, 만나려고 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설득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네요.’ * * * 그날 오후, 시몬은 별장으로 돌아왔다. 다른 팀들이 밖에 임무를 하러 나가서 그런지 첫날보다는 텅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진짜?” “원주민을 만났다고?” 다른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과가 있는 건 시몬뿐이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자 에슈가 흥분한 얼굴로 일어나 콧김을 뿜었다. “당장 만나러 가자 조장! 내일 아침에 다 같이……!” “아니.” 가만히 듣고 있던 로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계심이 클 텐데, 시몬이 다른 외부인까지 동반하면 더더욱 경계하지 않을까?” “그, 그러네요. 로레인 님.” 바로 납득한 에슈가 쭈글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로레인이 시몬을 보았다. “이건 시몬의 미션이야. 잘 부탁해.” “응, 나한테 맡겨.” 그렇게 답한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위치는 파악했지만 경계심을 푸는 게 어렵네. 원주민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에슈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문제라면 쉽지!” “쉽다고?” “역사 좋아하지? 조장?” “좋아하긴 하는데…….” 에슈가 잘난 척 콧대를 세우며 검지를 휙휙 흔들었다. “역사에 등장하는 내륙의 문명인들이 숲의 비문명인들을 어떻게 포섭했을까! 뻔하지 않겠어? 역사가 증명하는 방법이 있다구!” 토토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문명의 이기를 보여주는 것?” “맞아!” 에슈가 자신이 먹던 푸딩을 손끝으로 가리킨 뒤, 스푼으로 한 점 떠서 ‘냠’ 하고 입에 넣었다. “중립지대랑 암흑연합만 비교해 봐도 문명의 발전도가 엄청 차이나잖아! 섬에서 열매 따 먹고 물고기 잡던 사람들에게, 문명의 맛을 보여주면 난리나지 않을까? 응?” 시몬이 처음엔 뭔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가, 이내 가만히 턱을 짚고 생각에 잠겼다. “섬에 온 관광객들도 숲 깊은 곳까지 접근하지는 않았을 테고……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네.” “그치 그치?” 마침내 마음을 정한 시몬이 모두를 보며 물었다. “그럼 뭘 가져가는 게 좋을까?” * * *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시몬은 일찍 그 호수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원주민에게 걸었던 추적 저주는 대상에게 가장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골랐다. 마법진을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대상이 거리 안으로 들어올 때 마법진이 반응하는 식이다. 그렇게 가만히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웅! 우웅! 마법진이 떨리며 반응했다. 이내 멀리서 어제 봤던 그 원주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전보다 더 경계하고 있네.’ 시몬도 계속 몸을 숨긴 채 기다렸다. 이내 주위에 시몬이 없는 걸 인지한 원주민이 목을 축이려 호수 가까이 다가오는데. “!” 호수 앞에 각종 달콤한 먹을 것들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이미 새들이나 다른 동물들이 먹어치웠는지 포장이 뜯어진 건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고, 뚜껑이 닫혀 있는 것들만 남았다. “…….” 원주민은 수상쩍은 표정으로 주위를 계속 훑어보았다. 뚜껑 닫힌 과자 앞에 다가와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가 뒤로 휙 멀어지고, 다시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가 멀어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한 끝에 다가온 원주민이 과자 뚜껑을 열고는, 그 안에 있는 쿠키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어보았다. “!!!” 먹을 만했던 걸까. 그대로 남아 있는 쿠키를 모조리 입안으로 퍼붓는 원주민이었다. 순식간에 으적거리며 쿠키를 다 먹어 치우고,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남김없이 주워 먹었다. 새들이 가루라도 쪼아 먹으러 다가왔지만 원주민들이 팔을 휙휙 휘둘러 쫓아내기도 했다. 으적! 으적! 이내 다른 과자도 뚜껑을 열어서 계속 먹었다. 커다란 숫사슴이 바닥을 혓바닥으로 훑다가 자기도 달라는 듯 머리를 쿡쿡 들이댔지만, 원주민은 외면하듯 등을 돌린 채 먹어대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여기 더 많으니까.” “!” 콜록! 콜록! 너무 놀란 원주민이 사레가 들린 듯 컥컥대며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옆에 떡하니 서 있는 시몬의 모습이 보였다. 각종 과자나 빵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2학년들이 준비해 둔 간식을 이렇게 요긴하게 쓸 줄 몰랐네.’ 다시 한번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되새긴 시몬이 한쪽 팔을 뻗었다. “착하지.” 가볍게 사슴의 머리를 쓸어내리던 시몬이 곡식으로 만든 통밀쿠키를 발로 밟아서 가루로 만들었다. 사슴이 그것을 기쁘게 먹었다. “…….” 원주민은 조금 물러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놀랐지? 조금 더 먹을래? 마을에 가져가서 사람들이랑 다 같이 먹어도 좋아.” 시몬이 상냥하게 웃으며 가져온 것들을 내밀었다. 원주민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였지만, 입가를 쓱 닦은 그가 정신 차리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닷! 미련을 뿌리치듯 급히 숲속으로 달아나는 모습. 그때 시몬이 외쳤다. “조심해!” 크르르르릉! 수풀에서 웅크리고 있던 뭔가가 번쩍이며 튀어나왔다. 커다란 재규어 형상을 한 몬스터. 이 섬에도 적긴 하지만 몬스터가 있기는 했다. 물을 마시던 짐승을 노리고 있던 모양. 도망치던 원주민은 그대로 굳어졌고, 재규어 몬스터가 벌어진 입으로 원주민의 머리를 집어삼키려는 그때. 스윽. 시몬이 옆으로 스치듯 지나갔다. <홍펭 오리지널 – 착검> 이내 몬스터를 지나친 시몬이 가볍게 손을 허공에 털자. 쩌어어어어엉! 재규어 몬스터의 벌어진 입으로부터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몸뚱이 그대로 원주민을 지나친 늑대의 시체가 바닥을 굴러다녔고, 원주민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채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주변의 동물들이 놀라서 도망쳤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시몬이 다가와 원주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원주민이 이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이 씨, 망했네.” “?!”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방금 대륙어……!” “그래! 할 줄 안다! 됐어?” 원주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특이한 동작으로 자세를 굽혔다. “포용의 맹약. 네가 날 구한 순간부터 우리는 맹약으로 이어진다. 우리 일족은 은혜를 잊지 않아.” 원주민이 고개를 들어 시몬과 눈을 마주했다. “내 이름은 알리타, 외부인이 우리 일족을 찾아온 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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