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37화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다. 총과대 헥토르, 전술전략에 능한 피츠제럴드, 그리고 성적이 뛰어나 소환학과에서 조장을 도맡던 모범생인 기네비어와 첸드라까지. 여기에 시몬이 합류하러 걸어가고 있었다. “남쪽도 조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직 계획의 가닥도 못 잡았잖아. 조사 범위를 무리하게 넓힐 필요는 없어.” 그러는 와중에 헥토르를 제외한 전원이 수영복 차림으로 지도를 펼쳐놓고 진지하게 담론을 나누는 모습이 조금 재미있었다. “왔군, 시몬. 기다렸어.”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아는 척을 했다. 기네비어도 반갑게 맞아주었고, 첸드라는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부분을 신경 쓰는지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만 까닥했다. “늦다.” 헥토르는 시선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툭 내뱉고는, 시몬이 오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다. 내일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려면 미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키젠 본부의 정보에 따르면 조사가 필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초승섬. 5일 뒤, 베히모스가 산란을 위해 몰려드는 핵심 구역이다. 결사가 뭔가 일을 꾸밀 거라면 이곳 초승섬이 가장 유력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초승섬에서 가장 가까운 근교 도시 ‘오르자바(Orzava)’. 이 도시는 초승섬과 가까운 해안도시라는 거리적 요소 외에도, 아무것도 없는 초승섬보다 물자가 풍부하고 장비나 무기 등을 운송하기도 편리하며,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정체를 숨기기에도 좋다. 결사가 일을 꾸미고 있다면 이곳에서부터 계획을 준비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세 번째는 초승섬 인근의 작은 섬들 16개. 초승섬에 비해 그리 규모가 크지 않지만, 베히모스들은 이 작은 섬들을 지나 초승섬에 들어오게 된다. 결사가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 미리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팀을 나누어 세 지역을 동시에 수색한다.” 헥토르가 손가락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본부에서는 ‘조사 임무’라고 말했지만, 이건 키젠 3학년 40명이 동원된 대규모 임무다. 다른 놈들에게 넘길 필요 없이 우리가 해결까지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당연하지.” “동의해.” 피츠제럴드와 첸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헥토르는 살벌하게 안면 근육을 구기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누구든 결사를 발견하면 보고해라. 장소가 어디든 10분 안에 날아가서 놈들을 벌레처럼 짓밟아 버리겠다.” “무어 가문이 같은 편이라 든든하네.” 기네비어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때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하지만 내일부터 아론 교수님의 베히모스 수업도 진행돼. 근교 도시에 나가는 애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중요한 수업을 못 듣게 된다면 불만이 많을 거다.” “그건 방법이 있어.” 시몬이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아론 교수님은 임무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수업은 언제든 시간대를 맞춰줄 수 있다고 하셨잖아? 3일 차부터 초승섬 팀과 도시 팀의 임무를 맞바꾸는 건 어때? 조사 내용만 확실히 공유하면 돼.” 이번에도 모두가 동의했다. 본래는 공을 세우기 위해 개인 경쟁이 더 심해야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본부에서 3학년 소환학과에 맡긴 ‘단체 임무’다. 개인의 성과가 곧 모두의 성과이기도 하니, 정보를 공유해서 진행한다면 문제는 없었다. 헥토르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4인 1조로 총 10개 팀을 구성하겠다. 조사 장소의 범위를 고려하여 초승섬 조사팀 넷, 도시 조사팀 넷, 근해 섬 조사팀 둘로 나눈다.” “팀은 평소 자주 붙어 다니던 2학년 때 조 그대로 진행하는 건 어때?” 이번엔 첸드라가 손바닥을 펼치며 제안했다. “호흡 맞춰보고 흑마법 정보 공유하고 포지션 짜고, 언제 다 해보겠어? 학기 초니까 이번만큼은 기존 팀 위주로 하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그 외에도 구체적인 지침, 임무 체계, 암호어 등이 막힘없이 갖춰졌다. 역시 저학년 때와는 달리 키젠 3학년 정도 되면 베테랑이니 모든 게 수월했다. 많은 말이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야기를 하나 꺼내면 척척 새로운 의견이 들러붙어서 큰 틀이 완성되고, 오류를 지적하는 것도 빨랐다. 순식간에 대형 플랜이 완성됐다. “전원 집합해라!” 모든 구상이 끝나자 헥토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놀이를 하던 모두를 불러들였다. 학생들도 놀 때는 신나게 놀다가도, 일할 때는 해야 하는 걸 아는지 군말 없이 모여들었다. 이내 회의에서 정한 내용을 말해주고, 초승섬 조사팀과 도시 조사팀, 근해 섬 조사팀을 무작위로 선정했다. 로레인, 토토, 에슈가 소속된 시몬의 10조는 초승섬 조사팀에 선정되었다. 기네비어가 입맛을 다시며 팔짱을 꼈다. “소환학과 최고 전력을 초승섬에 남겨두는 게 살짝 아깝긴 하네.” 옆의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뭐 어때? 초승섬 조사가 가장 중요한 것도 맞고, 이틀 뒤에 초승섬 조사팀과 도시 조사팀이 맞바뀌니까 난 괜찮다고 봐.” 현재 소환학과에서 조 멤버가 바뀌지 않은 건 시몬의 조가 유일했다. 학생회장이자 7군단장 시몬, 미래의 키젠 총장 로레인, 저주인형을 다루는 희귀한 소환술사인 에슈와 버서커 데스나이트를 보유한 토토까지. 사실상 소환학과의 메인 전력 중 하나였다. “참, 그리고 나를 포함한 초승섬 조사팀은 한 가지 중요한 미션이 있어.” 학생회장인 시몬이 앞으로 나와 발언하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시몬은 예의상 슬쩍 헥토르를 보았고, 헥토르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시몬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 섬의 원주민들에게 접근해야 해.” “!” 시몬은 베히모스와 초승섬에 대한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이곳 초승섬에 원주민이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몬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원주민?” “이런 섬에 사람이 산다고? 아니, 베히모스가 오는데 사람이 살 수는 있나?” 에슈가 제 팔뚝을 스르륵 쓸어내렸다. “나 소름 돋았어. 어쩐지 수영하는 데 자꾸 뒤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그건 그냥 남자애들 시선 아냐?” “아냐! 막 엄청 으슥한 시선이었어!” 학생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마침 조교가 별장에 대기하고 있던 관리원을 데리고 왔다. “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네, 부탁드려요. 관리원님.” 관리원이 조금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 중립지대에서도 미지의 전설 취급 받고 있는 초승섬의 원주민들,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초승섬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문명과 단절되고 폐쇄된 삶을 살고 있으며, 외부인이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극도로 경계한다고 한다. 관리원은 특히 초승섬의 숲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원주민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도 그럴 게 매해 베히모스 산란기에 많은 수가 죽는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베히모스 산란기에만 다른 섬이나 내륙에 피신해 있다가 베히모스가 물러간 뒤에 돌아오면 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섬 생활을 고집했다. “저도 여기 일하면서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건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관리원이 주춤주춤 말했다. “현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상당히 왜곡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베히모스가 벌린 입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자들도 있다고…….” “!” 놀란 학생들이 눈썹을 들썩였다. “한때는 그 미스테리한 원주민들을 만나려 했다가 실종된 사람이 많았지요. 그중에는 당대 손꼽히는 실력자 네크로맨서도 있었습니다만.”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전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원주민들은 아직 문명화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을 보호하는 정체불명의 뭔가가 있다는 것 같았다. 그것이 병기이든, 마법이든, 사람이든, 그 정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도 키젠 졸업생급으로 평가받는 공인 4위계 네크로맨서가 섬에 들어갔다가 나무기둥에 묶인 시체로 발견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시체의 손상 상태는 상당히 심각했다고. “여러분이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 저는 모르지만, 절대 그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설명 잘 들었다.” 헥토르가 차갑게 말을 끊으며 손짓했다. 조교가 관리원을 데리고 갔다. 이번엔 헥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이다. 저딴 이야기로 겁먹을 놈은 이 자리에 없을 거라 생각한다만,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사 놈들이 무슨 계략을 꾸미는지 알아내야 한다.” 뒤를 이어 시몬이 말했다. “그들이 이곳에 쭉 살고 있다면 결사의 행방을 알거나 봤을지도 몰라. 굳이 교전할 필요는 없어. 우리의 목적은 그들이 알고 있을 결사에 대한 정보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이 정보 제공에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한 학생의 물음에 헥토르와 시몬이 동시에 답했다. “강제로라도 협조하게 만들어라!” “다양한 회유책을 동원해 봐야겠지.” 이번엔 의견이 갈린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헥토르는 즉시 으르렁거렸고, 시몬은 빙글빙글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동기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들의 말이 다르니 눈치껏 하는 걸로.” 기네비어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야! 시몬 폴렌티아! 학과에서 총과대 말 존중 안 하냐?” 헥토르 파벌 학생이 한마디 했고. “이러나 저러나 학생회장이 더 위지.” 그 옆에 시몬을 좋아하는 학생도 한마디 했다. 물론 진지하게 싸우는 건 아니었고, 다들 말에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베히모스 제작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앞두고 협력하는 시점. 소환학과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오전에는 모두 공통으로 아론의 수업을 들었다. 학교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베히모스 제작에 대한 이론, 거기에 더해 베히모스 사냥 전문가로부터 기본적인 사냥법과 약점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저 또한 베히모스 사냥꾼이라지만 은퇴한 지는 오래됐죠. 사실 베히모스 전문이라고 할 만한 사냥 집단은 이 대륙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한 학생의 물음에 늙은 사냥꾼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부 잡아먹혀 죽었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베히모스 사냥이라는 전문 지식 자체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을 정도로 베히모스는 위험하고 포악한 몬스터였다. 출몰 장소와 이동 루트가 정해진 몬스터 중에서 이렇게까지 인간이 사냥하기 힘든 몬스터는 드물었다. 물론 아론은 덤덤했다. “시작부터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노려야 하는 건 완전한 성체 베히모스가 아닌, 준성장기에 가까운 베히모스다.” 아론이 베히모스의 그림을 펼쳐두고 말했다. “소환 마법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다. 너무 거대한 베히모스는 잡아봐야 효율이 떨어질뿐더러 그 무거운 몸뚱이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성체를 노릴 필요는 없다.” “네!”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학생들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초승섬에서의 첫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도시 수색팀은 배에 올라타! -바로 출발! 섬 밖으로 나가야 하는 팀들은 은폐마법이 걸린 배를 타고 도시나 작은 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초승섬 수색을 맡은 팀은 바로 짐을 꾸리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저녁까지는 돌아오는 걸로 하자.” “응!” 결사가 이 섬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수색 범위가 가장 중요하니, 개인 수색을 펼치기로 했다. 모든 학생들이 흩어져 섬 전체를 뒤지기로 했다. ‘이쪽인가.’ 그리고 시몬은 초승섬에서도 가장 깊은 숲 내부로 걸어가고 있었다. 곳곳에 섬에 남아 있는 거대한 이빨 자국과 흉터가 눈에 띈다. 지금 이곳이 베히모스가 섬에 머무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으스스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이곳에 사는 원주민이야. 4위계 네크로맨서를 잡은 게 우연은 아니었을 거고, 틀림없이 문명의 이기를 넘어선 뭔가가 있다는 건데.’ -키리릭! 그때 송장거미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시몬에게 다가왔다. 원주민을 발견한 모양,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그리로 갈게.” * * * 저벅. 저벅. 사방에 해골이 널려 있는 장소. 타악. 발에 채인 해골이 대구루루 굴러가서 반대편 해골에 부딪힌다. 무수한 시체의 바다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그 위에 걸터앉는다. 죽음의 공간. 주위는 마치 어떤 괴물의 배 속처럼 시뻘겠다. 꿀렁꿀렁 흔들리지만, 남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치직! 그때 통신 수정구가 진동했다. 남자가 천천히 그것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지?” 이내 흐릿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젠이 냄새를 맡았다. 그 섬으로 가고 있다. 킥. 입꼬리를 올린 남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굉음과 함께 시뻘건 주위가 온통 터져 나가며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드디어 오는가, 시몬 폴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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