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30화 베히모스(Behemoth). 세계를 삼킨다는 의미를 지닌 초대형 몬스터. 모험가들이 발견하여 등급을 매긴 몬스터들 중에서는, 단일 크기에서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늘을 떠다니는 이 괴생명체는 투박한 피부에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직경 수십 미터의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집어삼킨다. 일단 내부에 들어가면 어떤 생물도 즉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무리 지어 활동하며 주로 드넓은 해양의 하늘을 돌아다니지만, 가끔 대륙의 육지로 진입할 때가 있다. 이때 인간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창출한다. 특히 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중립지대의 한 도시에는 베히모스에게 뜯어먹힌 이빨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이런 악몽 때문에 근방 지역 사람들은 고층 집을 짓지 않는 문화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고대 기록에는 영지 전체의 사람들이 이 베히모스에게 먹혔던 역사도 있다고. 한때는 ‘신’이 보낸 천벌, 혹은 신 그 자체로 여겨졌던 이 몬스터를 수많은 시대의 모험가들이 사냥하려고 했으나 성공한 자들은 극도로 드물다.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그런 베히모스를. “우리가 붙잡아 언데드로 만들 생각이다.” 아론은 담백하게 언데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강의실은 단번에 정적으로 휩싸였다. 공포에 질린 반응 반, 기대감 가득한 반응 반이었다. “에슈 아르젤입니다!” 그녀가 번쩍 손을 들었다. “잘 상상이 안 됩니다! 베히모스로 어떤 언데드를 만들 수 있나요?” 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팔을 들어 창가를 가리킬 뿐이다. 그 반응을 본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창 가까이 다가갔다. “와아아아아!” 하늘에 거대한 언데드 전함들이 둥둥 떠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비행형 스켈레톤들이 호위하듯 날아다녔다. 전함 안에서 언데드들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할 때마다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하수인들도 저게 뭔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쪽은 베히모스가 아닌, ‘프라이드 아틀라’라는 베히모스 아류종으로 만든 개체다. 진짜 베히모스로 만든 전함은 저것보다 더 거대하지.” 아론이 턱 끝을 긁었다. “당연히 실을 수 있는 언데드들도 더 많을 거다.” 공포에 질린 학생들의 비율 중에서, 다시 과반수가 기대하는 쪽으로 넘어왔다. “대박이다! 아론 교수님의 언데드 전함을 우리도 가지는 거야?” “……스케일 커서 현기증 와.” 아론이 손짓했다. “자리에 앉도록, 지금부터 베히모스 전함의 원리에 대해 알려주겠다.” 창가로 몰려갔던 학생들이 자리에 앉았지만, 몇몇은 여전히 창밖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론이 분필을 집고 칠판에 다가가 글자를 썼다. <군집체> 따악. 아론이 손에 쥔 분필을 칠판에서 떨어뜨리고 입을 열었다. “가끔 경지에 이른 네크로맨서들이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을 이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그가 손에 쥔 분필을 리드미컬하게 손안에서 굴렸다. “세상은 넓으니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순수하게 사념만으로 대대 규모 언데드를 통제하는 자들은 적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 ‘군집체’를 사용한다.” “그 군집체란 게 뭔가요?” “간단히 말해.” 차락.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교가 칠판에 미리 고정해 둔 커다란 사진 뭉치를 넘겼다. “하나의 언데드가 다수의 언데드를 휘하에 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무리아귀처럼.” 무리아귀. 사진에 나온 것은 바다에 출몰하는 종류로, 넓적한 몸체의 심해어류가 베이스인 몬스터였다. “몬스터 무리아귀는 입안에 다수의 작은 개체들을 보유하고 있다. 무리아귀는 배가 고파져서 입을 벌리면 바로 이 작은 개체들이 뛰어나가, 둔하고 느린 본체를 위해 사냥감을 잡아 온다.” 학생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고개를 쭉 빼며 이야기를 들었다. “네크로맨서들은 간혹 바다에서 건져 올려지는 이 무리아귀를 언데드화하고, 작은 개체들까지 모두 언데드화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나.” “설마…….” “그래.” 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아귀 본체 하나에 사념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소형 언데드 개체 여러 마리를 동시에 움직이는 효과를 보였다. 이게 바로 ‘군집체’의 시작이다.” 학생들이 노트를 펼치고 손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필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눈과 귀는 여전히 아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네크로맨서들은 이 무리아귀의 군집체 특성을 극한으로 연구하여 룬어화하고, 어느 정도 흑마법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 기술의 결정체가 저 함선이다.” 드르륵! 조교들이 창문 한쪽을 크게 열었다. 아론은 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혼령마법을 걸더니, 창밖으로 던졌다. 혼령마법에 걸린 사과가 유령처럼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녔다. 스스- 그리고 여전히 하늘에서 퍼레이드 중이던 언데드 전함 하나가 뱃머리를 돌려 사과를 응시하더니. 쐐액! 쐑! 그 안에서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붉은 스켈레톤이 메뚜기 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마치 붉은 궤적처럼 보였지만 틀림없는 스켈레톤들이었다. 이내. 촤촤촤촤촥! 수많은 붉은 스켈레톤들이 검을 휘두르며 지나갔고, 공중에 떠가던 사과는 수십 갈래로 쪼개져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크기로 흩어졌다. 학생들이 흥분한 얼굴로 탄성을 터뜨렸다. 사과를 자른 스켈레톤들이 다시 전함 안으로 들어갔다. “보다시피 형태가 상이한 대형 언데드와 소형 언데드 간의 군집체 결합을 이뤄냈다.” “기네비어 벤너스입니다! 그, 그렇다면!” 기네비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한 언데드에 군집체 효과를 넣어서 다른 언데드를 지배하게 하고, 그 언데드들에게 군집체 효과를 다시 넣어서 더 아래의 언데드를 지배하게 한다면…….”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떨어진 곳에 있는 시몬과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일반 네크로맨서들도 ‘군대’를 가질 수 있는 건가요?” 아론이 조용히 웃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하다.” “……아.” “군집체를 운용할 수 있는 언데드의 종류 자체가 한정적이다. 무엇보다 군집체의 지배를 받는 휘하 언데드에게 다시 군집체를 넣어 조종하게 하는 건 기술의 발전 문제를 논하기 전에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이 고개를 세웠다. “그나마 군단장이 아닌 일반 네크로맨서가 대대 수준의 병력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위에 긴장감 가득한 정적이 흘렀다. “물론, 군단장이라면 이 군집체 전함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군집체 전함을 만들어도, 결국은 군집체 자체는 사념으로 조종해야 하기에 일반 네크로맨서의 활동 범위에 영향을 받는다.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전함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군단장은 다르다. 군단화하면 군함 자체가 군단장의 명령을 받아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도 움직일 수 있다. 에이션트 언데드와 함께 운용하면 대규모 병력을 실어 날라 동시에 여러 전선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 학과의 두 군단장들은 ‘군단화’를 전제로 한, 군단에 특화된 언데드 전함을 만들 예정이다.” “네!” “예.” 시몬과 헥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과생들이 부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꼬와서 다음 생엔 군단장으로 태어나든가 해야지.” “헛소리 그만하고 필기나 해. 저 언데드 전함마저 없으면 현역 군단장인 저 둘에 영원히 비비지도 못한다는 거 아냐.”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아론은 칠판에 새로운 내용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우선 칠판 중앙에 커다랗게 ‘베히모스’라고 작성했다. “이번 3학년 과정 하반기의 목적인 베히모스 제작을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그가 베히모스라고 쓴 글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그 아래에 다섯 가지 선을 아래로 그었다. 듀라한을 설명할 때도 보여주었던 ‘언데드 로드맵’이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군집체 마법의 이론적 완성이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공식이 있는데.” 아론이 다섯 가지의 선 중 하나를 끌고 와 그 밑에 ‘DMAT’라고 썼다. “너희들의 졸업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최고위 네크로맨서 시험 ‘DMAT’의 과정에 바로 이 공식이 들어가 있다. 물론, DMAT인 만큼 공부량은 각오하도록.” 학생들의 새로운 목표가 된 베히모스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네크로맨서 이론의 최고봉인 ‘DMAT’도 익혀야 한다는 뜻. 이렇게 이론과 실무를 잇는 아론의 능숙함에 시몬은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기본 조건이다만.” 아론이 DMAT 아래에 ‘브린어’라고 썼다. “브린어는 마법의 언어인 룬어를 최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설계된 언어다. 대륙어는 인간의 발음과 문화에 맞춰지고, 오로지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이기 때문에 룬어에 대입하기에는 혼동되는 부분이 많다. 브린어는 DMAT뿐만 아니라 고위 네크로맨서에게 필수적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은 대부분 브린어로 되어 있다.” 아론이 분필을 치켜세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너희들이 명색이 키젠이라면 어학 정도는 2주 정도 안에 숙달해 오도록.” 학생들의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제인 교수님은 ‘행정’쯤은 일주일 만에 끝내라더니 아론 교수님마저…….” “보통 습득하는 데 몇 년은 걸리지 않냐.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사실 키젠이라란 건 그냥 초인을 뜻하는 대명사가 아닐까?” 학생들이 힘들어하건 말건 아론은 칠판 위의 단어를 이어나갔다. 그 외에도 베히모스를 사냥하기 위한 폭발 능력을 가진 비행 언데드 ‘봄버’의 완성, 베히모스 전 단계인 군집체를 다루기 위한 ‘무리아귀’ 마스터, 베히모스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특급 위험물 취급이 필수적인데 특급 위험물 자격증 취득까지. 할 일이 수없이 많았다. “이 모든 걸 남은 ‘적응기간’ 전까지는 완수해야 한다.” 아론이 마침내 분필을 내리며 말했다. “적응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인 임무시즌이 열리는 때, 해당 준비 단계를 완수한 소환학과 학생들은 베히모스 사냥과 더불어 단체 임무에 돌입한다.” “단체 임무요?” “베히모스 획득이 끝이 아니었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벅 저벅.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소환학과 강의실에 한 장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까마귀!’ 여러 까마귀 요원 중에서도 고참 격의 인물인 ‘알레이스터’였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창문에 커튼이 쳐지고 주위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만나게 되어 반갑군, 소환학과 3학년. 지금부터 베히모스 임무에 대해 설명하겠네.” 그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빨간색 서류 가방들이 허공을 날아가 자리에 앉은 학생들 앞에 착착 놓였다. “빨간색 가방……!” “나 이거 알아! 1급 기밀이야!” 시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베히모스 수집에, 3학년 네크로맨서 요원으로 키젠 측의 임무까지. ‘하긴, 적응기간이 지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을 텐데, 통합 임무가 껴 있으면 학과생 전원이 움직이는 게 가능하겠구나.’ 시몬이 속으로 감탄하며 무표정한 얼굴의 아론을 바라보았다. 아론이야말로 진정한 전략가란 생각이 들었다. 후배인 바힐과 비교하자면 네크로맨서로서 대단한 업적을 세우진 못했지만, 아론이야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더 우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방을 열면 비밀 엄수 지침에 동의하게 되네. 빠질 기회는.” 알레이스터가 말했다. “지금뿐일세.” 키젠 3학년, 이제는 살아남을 이유가 있는 자들만 살아남았다. 망설임은 없었다. 모두가 서류 가방을 열고 그 안의 임무서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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