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29화 시몬의 7군단과 헥토르의 6군단은 반격에 들어갔다. 특히 시몬은 통신 장애를 수복하고, 알라제와 키젠 본부의 지원을 받아 텔레포트 마법진을 연결한 뒤 로크섬에서 가용한 전력들과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불러 모았다. 7군단에 붙여진 새로운 이명에 걸맞은 ‘악의 무리’의 대진군. 레큘라는 본체가 직접 나타났고, 그런 그녀가 지휘하는 1군단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지만, 전체 전력과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기어코 시몬은 1군단의 군세를 돌파하여 비명의 정글에 마련된 레큘라의 임시 본진까지 들이닥쳤다. 쿠르르르릉! 1군단이 건설한 바리케이드가 쏟아지는 좀비들에 의해 무너졌다. 그리고 시몬과 헥토르는 얼굴에 잔뜩 검댕을 묻힌 채 헉헉거리며 눈앞의 적을 응시하고 있다. 1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레큘라. 가슴에 붙어 있는 가면의 눈에서 검은빛이 일렁였다. [이쯤이면 되겠지요. 소득이 있는 전투였습니다.] 헥토르가 이를 빠득 갈아붙였고, 시몬도 살벌한 안광을 번뜩였다. 레큘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배신의 7군단은 우리의 예상을 웃돌았습니다. 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전력은 아닙니다.] 레큘라가 이번엔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반면 새로운 6군단은 예상을 밑도는 수준이었습니다.] 화륵! 시뻘게진 헥토르의 이빨 사이에서 입김이 흘러나왔다. 불을 뿜으려 하는 것 같았지만, 힘이 다했는지 석탄 냄새가 흐르며 검은 연기만 피어올랐다. “네게 평가받을 이유는 없어.” 척.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명심해, 먼저 공격한 건 1군단이야. 너희들이 영토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지 점점 궁금해지는데.” 레큘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여러 개 달린 손 중 하나로 망토의 품을 뒤졌다. 그러다 뭔가를 꺼내 팅! 소리가 나게 튕겼다. 투둑. 툭. 그것들은 시몬과 헥토르의 발밑에 떨어졌다.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동전이었다. [결착을 내겠다면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위대한 정점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스륵. 레큘라가 뒤로 물러나듯 뛰어오르며 서서히 사라졌다. [새 영광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뵐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것으로 레큘라의 칠흑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몬과 헥토르는 동시에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지친 몸을 굽혔다. [꼬맹아!] 이목구비가 달린 지팡이. 헤르세바가 부지런히 날아오고 있었다. [1군단 선발대는 완전히 전멸시켰어! 괜찮아?] “수고했어, 헤르세바.”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1군단의 언데드에 대해 알고 싶어. 몇몇은 생포해서 알라제에게 가져다줄 수 있을까?” [알았어! 안 그래도 그 녀석, 샘플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구.] “응. 나머지는 화재를 진압하는 데 주력해 줘. 라미아도 부탁해.” -삐융! 시몬이 대장들에게 지시해 둔 뒤 고개를 돌렸다. “참, 헥토…….” 헥토르에게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원래부터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 * * 치열한 전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비명의 정글에서 가장 많은 ‘둥지’를 보유하고 있던 본진 구역은 무사했다. 이곳까지 1군단이 들이닥치기 전에 시몬이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역으로 그들의 베이스캠프를 치고 올라와 파괴한 것이다. 강 근처였기에 화재 자체는 금방 진압되었고, 시몬은 다시 비명의 정글 재건에 착수했다. 불길 때문에 몬스터가 접근하지는 않았으니 영역을 복구하는 건 처음처럼 오래 걸리진 않았다. 둥지를 올리고 언데드 필드를 퍼뜨리며 다시 한번 이곳이 7군단의 영역임을 확고히 했다. 한편 1군단의 침공 소식은 키젠 본부에도 알려졌다. 군단장끼리 직접 맞붙는 게 아니라면 군단 간의 영역전은 허가가 필요하지 않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민감한 문제였다. 1군단의 침공은 네프티스가 정상회담 등에서 공표한 여러 지침들을 어기는 행동이었다. 암흑연합에서는 즉각 항의의 서신을 보내어 1군단에 해명을 요구했지만, 1군단 측에서는 언제나처럼 묵살했다. 그 소식을 들은 북부대공 진은 불같이 화를 내며 북부군을 이끌고 1군단을 치겠다고 천명했지만, 키젠 본부가 직접 나서서 만류했다. 1군단에 대해서는 암흑연합 차원에서 여러 제재가 준비 중이었다. 그렇게 시몬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전투를 벌이느라 대뜸 학교를 하루 빠지는 바람에 보강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그 정도뿐, 크게 바뀐 건 없었다. 하지만. -황제를 위하여. 시몬의 머릿속에 이번 전투는 강한 인상으로 박혀 있었다. “1군단과 황제의 상관관계?” 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학생회실에서 업무를 하던 중 시몬이 문득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 “그 둘이 뭔 상관이야? 그보다 황제라는 말도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 “……황제.” 예산안 분류를 마친 메이린이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알아. 보통 오래된 군단장들은 예명으로 불리잖아? 대공이라든가, 섭정이라든가.” “네 맞아요! ‘왕녀’나 ‘제독’도 있어요!” 카미바레즈도 눈을 반짝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메이린이 턱에 손가락을 얹으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1군단장은 그냥 1군단장이야. 시몬이나 헥토르처럼 최근에 공식 군단장이 된 것도 아닌데 예명이 없어. 다들 이상하단 생각 안 해봤어?” 딕이 손을 들었다. “그거 그냥 군단장의 대명사 같은 존재니까 ‘1군단장’이라고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요즘은 그렇게 잘 안 불러서 그렇지 1군단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1군단장을 불렀던 예명이 있어.” 메이린이 손끝을 세우며 말을 이었다. “황제.” “…….”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몬이 손에 깍지를 꼈다. “암흑연합에서 황제는 종교와 동급으로 금기시되는 말 아니야?” “맞아, 시몬.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 거고, 그냥 1군단장으로 불리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 “그렇구나. 그런데 메이린.” 시몬이 무안한 웃음을 흘렸다. “내 얼굴을 보고 말해주면 안 될까?” 메이린은 고개를 옆으로 부자연스럽게 꺾은 채 시몬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삐걱거리며 힘겹게 시몬의 얼굴을 힐긋 보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보!” ‘아니, 왜?’ 시몬이 허망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운데, 딕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갑자기 황제는 무슨 뜬금없는 화제야? 무슨 일 있었어?” “아, 무슨 일이 있었냐면…….” 딱히 본부에서 기밀 유지 지침이 내려온 것도 아니기에, 시몬은 멤버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정체를 숨기지 않아도 되니 모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그렇게 비명의 정글과 1군단에 얽힌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 병사인 줄 알았는데 투구를 부숴보니 언데드였고.” “그 언데드가 말을 했다고? 황제를 위하여. 라고.” “무, 무서워요!” 카미바레즈가 눈을 질끈 감으며 날개를 늘어뜨렸다. 딕이 허허 웃었다. “뭔 질 나쁜 공포 이야기 도입부냐? 이게 소문이면 기분 나쁜 농담으로 알아듣겠는데, 시몬이 직접 겪은 일이라니까 웃음이 안 나오네.” “나도 너무 찜찜해서 알아볼 생각이야.” 그렇게 말한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3학년 과정 적응기간이 끝나면 1군단의 영역을 조사해 볼거야. 바로 1군단의 본진에 가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혹시 모르니까 말해두는데.” 메이린이 눈에 불을 켰다. “너 또 1군단이랑 싸울 생각은 하지도 마! 우리가 키젠 학생이니까 1군단도 그런 식으로 부하를 보내서 훼방 놓는 게 다잖아! 그 녀석은 널 유인하고 있어. 절대 넘어가면 안 돼!” “당연하지. 정보 조사만 할 거야, 메이린.” 물론 이 불길한 예감이 사실이 된다면, 7군단은 움직일 것이다. 그 말은 하지 않고 목 안으로 삼킨 시몬이 메이린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내 눈을 보고 말해줄래?” “바보!” 메이린이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빽 소리 질렀다. 모두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같은 시각. 진 아르스칼트의 교수 연구실. “그래, 알겠다. 내가 북부에 자리를 비운 동안 철저히 대비하고 있도록.” 착. 북부대공 진이 통신 수정구를 내려놓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북신만 처치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딸칵. 그녀가 찻잔을 들어 올리고는 기품있는 동작으로 한 모금 마셨다. “내 오산이었나.” 요나의 아들을 가르치고, 키젠의 교육법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지만 결과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급변하고 있다. 모든 대륙의 정보가 모여드는 이곳 로크섬에 있으니 확신할 수 있다. 북부에만 있었다면 평화에 찌들어 이 급변하는 시대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으리라. 쿵쿵쿵. 그때 문밖에서 다소 투박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진이 입을 열었다. “들어오거라.” 달칵. 이내 문이 열리며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그녀의 눈이 놀라움으로 반짝였다. 6군단장 헥토르 무어. 그가 직접 진의 연구실에 찾아온 것이다. “1군단의 습격 이야기는 들었다. 몸은 괜찮느냐.” “몸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벅 저벅 걸어온 헥토르가 진을 바라보았다. “이번 전투로 많은 걸 절감했습니다. 6군단이 가진 에이션트 언데드의 힘을 쓰고 싶습니다.” “…….” 진이 조용히 턱을 괴었다. “6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는 예의 그 펌킨 사태의 던전에서 전멸했다고 들었다만.”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가 손끝을 세워 천천히 제 몸을 가리켰다. “제가 집어삼켰고, 아직 그 잔해가 이 몸뚱이에 남아 있습니다. 관리자 젤러시의 지시였습니다.” 헥토르의 안광이 살벌하게 빛났다. “이 힘을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헥토르 무어.” 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뭔가 더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구나. 그렇지 않나?” * * * 시간이 흘렀다. 이제 3학년 커리큘럼에 대한 적응기간이 절반 가까이 지났을 무렵, 통합 전교생 수업과 야간 훈련의 빈도수가 줄어들고 드디어 기다렸던 전공 수업이 오픈했다. 늘 키젠 전체의 화제의 중심이었던 아론의 수업. 무려 2학년 1학기에 듀라한, 2학기에 데스나이트를 완성시키도록 하면서 소환학과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특히 데스나이트의 제작 과정은 대단히 특별했다. 2학년 담당교수인 외디프도 아론의 수업 과정을 똑같이 따라가기로 했으니, 앞으로는 소환학과 전체의 기준이 아론의 커리큘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3학년 고급 소환학 과정의 첫 수업. 하나둘 강의실에 들어온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와!” “이, 이게 다 뭐야?” 칠판 전체를 가득 채운 거대한 몬스터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 구름 위에 떠서 하늘을 날고 있는 그것은 몬스터 중에서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는 개체였다. 거대한 섬과 고래와 거북을 절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외형의 몬스터. 머리에는 황소 같은 뿔이 달려 있고, 열린 입에는 삐쭉삐쭉한 이빨이 나 있다. 최악의 천재지변이라고도 불리는 ‘위험도 9급’의 몬스터. 현존하는 몬스터 중 가장 큰 몬스터라고도 알려져 있다. “그래.” 타악. 탁.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아론이 조교들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내 긴가민가한 학생들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3학년 첫 제작 수업의 언데드는 바로 이것.” 그가 칠판에 붙은 사진을 내려치며 말했다. “베히모스(Behemot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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