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26화 시몬은 3학년 들어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통합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군단학 수업을 들었다. 물론 군단학 수업과는 관계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비명의 정글로 넘어갔다. 목표는 비명의 정글의 ‘완전 정복’. 7군단에 얼마 없는 공중 병력인 스컬윙 부대의 부활과 재건을 위해 이곳은 확실히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때 핵심은 시몬이나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가 상주하지 않아도 스스로 끊임없이 기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이를 위해 시몬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당연히 진 아르스칼트였다. -직접 절대명령을 내리지 않고도 스컬윙에 명령을 부여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네! -아주 날로 먹으려 드는구나, 건방진 것. 시몬은 2학년 때 방문했던 칼로스 북부, ‘빌케노스’에서 진이 어떻게 군단의 영역을 운용했는지 지켜봤다. 가장 이상적인 청사진을 엿본 셈이었다. 다른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척척 북신의 병력을 막으러 움직이던 2군단. 북부군의 인간 병사들이 깃발을 꽂으면, 그곳으로 화살을 날리던 진의 모습까지. 모든 대비가 잘되어 있었다. 비명의 정글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시몬의 요청을 들은 진은 칠판으로 다가가 긴 수식을 분필로 적어 내려갔다. -군단 전용 마법진을 펼치고, 명령을 룬어화해서 유지해라. 마법진을 통과하면 언데드가 명령을 부여받도록 하는 거다. 진이 가르쳐 준 건 군단형 언데드가 마법진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명령이 적용되는 신기술이었다. 절대명령만큼의 효력은 없지만, 마법진에 닿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시몬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컬윙들에게 순차적으로 마법진을 통과하도록 했다. 시작은 아주 간단하게 했다. <임무 지역을 다섯 바퀴 순찰 후, 휴식 마법진을 통과할 것. → 휴식 마법진에서 칠흑이 모두 차오르면, 순찰 마법진을 통과할 것.> 언데드에게 내리는 명령의 마지막을 ‘다음 마법진으로 이동할 것’으로 입력한다면 일종의 로테이션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간단하게 시작했지만 중간에 다른 명령도 점점 더 끼워 넣었다. 그렇게 스컬윙의 활동 반경이 커지고 7군단의 영역이 점점 넓어졌으나, 그만큼 토착 몬스터들의 저항도 자연히 더 거세졌다. 애초에 스컬윙 자체가 비행 언데드이기 때문에, 시몬이 직접 지휘하지 않는 이상 대규모 군집을 이룬 지상 몬스터와의 경합에서 밀렸다. 병력의 손실도 커졌다. ‘……마음 같아선 군단을 보내 싹 쓸어버리고 싶지만.’ 그건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진의 군단학 수업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그래서 여러모로 고민하던 끝에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맞아! 바힐 교수님의 군단용 저주!’ 바힐이 방학 동안 창시한 학문. 일명 ‘군단 저주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체계의 특징은, 군단형 언데드의 칠흑을 이용해서 저주 효과를 발휘하는 게 핵심이었다. 도면을 펼쳐두고 조금 살펴봤을 뿐인데 마법진의 설계가 눈이 번쩍 뜨일 수준이었다. 바힐은 천재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물론 여기는 바힐의 성향이 살짝 들어갔는데 군단형 언데드를 저주를 이용하기 위한 ‘탄환’ 정도로 취급하는 게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사용할 가치는 있었다. 어쨌거나 밑져야 본전, 바로 실전에 사용해 보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비명의 정글로 넘어간 시몬은 연습한 대로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나갔다. -끄륵? -기기기! 주위의 스컬윙들이 호기심에 기웃거리며 구경하러 왔다. 기본적으로 군단형 소환수는 군단장의 칠흑이 느껴지는 마법에 친밀감을 느끼는 성향이 있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려서 마법진을 완성한 시몬은, 그 마법진의 귀퉁이에 각각 여섯 개의 원을 그려놓았다. “얘들아, 여기 서볼래?” -키이이! 구경하고 있던 스컬윙 하나가 날아와 귀퉁이의 원 안에 앉았다. 우우웅! 그러자 스컬윙과 마법진이 공명하기 시작하며, 스컬윙의 칠흑이 흘러들어가 마법진을 작동시키고 저주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스컬윙은 본인의 칠흑이 빨려 들어가도 얌전히 자리에 있었다. “성공이다! 나머지 너희들도 전부 들어와!” 다른 다섯 마리의 스컬윙이 모두 다가와 자리를 꽉 채웠다. 군단형 언데드인 스컬윙이 가서 앉기만 하면, 그 언데드의 코어로부터 칠흑이 흘러나가 마법진의 전원이 켜지고 저주 효과가 일어나는 식이다. 스컬윙은 기본적으로 ‘저주 깃털’이라는 기술을 이용하는 언데드인 만큼 저주와 궁합이 좋았다. ‘좋아! 이것도 여섯 시간씩 로테이션을 돌리면 되겠네.’ 사용 가능한 여러 저주 중에서도, 몬스터에게 생물학적 공포와 거리낌을 심어주는 저주, ‘메투스(Metus)’를 영역 주위에 전개하니, 공격해 오던 몬스터들의 공세가 크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이거야! 이 기술이라면 둥지를 확실히 지킬 수 있을 거야!’ 진이 가르쳐 준 명령을 부여하는 마법진을 이용해 스컬윙에게 정찰, 휴식, 저주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도록 했다. 효과는 확실했고, 군단의 영역은 순식간에 넓어져 갔다. 시몬 자신이 없어도 스컬윙들 스스로 착실히 영역을 유지하고 개체수를 늘려 나가고 있었다. 지켜보던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이런 체계를 구축하길 원했어!’ * *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시몬이 완벽하다고 자부한 로테이션 시스템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약간의 균열이 발생했다. 스컬윙이 명령을 거부하거나, 영역에서 이탈하거나, 혹은 임무를 수행한 뒤 의도적으로 마법진을 통과하지 않아 체계가 꼬이는 경우도 있었다. 시몬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교수들에게 상담했지만, 시원한 해답을 듣지 못했다. 아무리 키젠의 교수들이라고 해도 군단장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 시몬이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크하하하! 훌륭하군!] 이번엔 피어를 직접 데리고 왔다. 그는 여전히 5군단의 합류 문제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기에, 분신으로 현 상황을 제대로 지켜보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몬의 요청으로 비명의 정글에 넘어온 피어는 확 바뀐 비명의 정글을 훑어보더니 만족스럽게 웃었다. 무수한 둥지들, 바쁘게 움직이는 스컬윙들, 저주를 발현하는 마법진, 알아서 모든 게 착실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군단장이 시몬이 사념으로 명령하지 않아도 군단형 언데드들이 만들어낸 진풍경이었다. [잠깐 못 본 사이 이렇게 발전한 건가!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군! 소년!] “아하하…….” 시몬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피어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더니 예리하게 안광을 빛냈다. [다만 개선해야 할 점도 확실히 보인다!] 명령을 거부하거나, 반발 반응을 일으키는 언데드들. 혹은 고장 난 것처럼 체계에서 벗어나 버리는 언데드들. 피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이나 흑마법이 다가 아니며, 언데드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대기 장소의 문제다만!] 피어가 바닥에 앉아 있는 스컬윙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컬윙들은 ‘하피’라는 몬스터가 기반이다. 하피는 높은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개체들이라 지상에 내려오면 불안해하지. 언데드화된 스컬윙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 “언데드라고 해도 생물의 습성과 버릇은 남아 있으니까요?” [바로 그렇다! 언데드화되지 않고 둥지에서 바로 생성된 양산형 군단 언데드들도, 다른 스컬윙의 유전자가 깃들어져 있다! 언데드의 습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지!] “그런 거였군요!” 피어의 말에 따르면, 지상에 있을 경우 스컬윙들은 맹수나 천적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본능적으로 경계하기 때문에 칠흑을 계속해서 사용해서 경계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제대로 코어와 칠흑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휴식의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기초라면 기초적인 부분인데, 너무 군단의 체계 구축에만 집중하느라 이걸 놓치고 있었다. “스컬윙들이 높은 곳에서 칠흑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할게요!” 스컬윙을 위해 나무를 심거나, 앉을 만한 장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범위 저주도 마찬가지다.] 피어가 다가와 저주를 발동하고 있는 스컬윙을 보더니 픽 웃었다. [가장 높은 저주의 효율을 올리기 위한 사양으로 제작됐을 뿐, 사용자인 스컬윙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걸 만든 인간에게 스컬윙에 잘 맞는 사양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해라!] “물론이죠! 오늘 저녁에 바힐 교수님 연구실에 다녀올게요!” 그렇게 시몬은 피어의 조언을 더하여 더더욱 스컬윙 영역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특히 아케뮤스가 살아 있던 때에 함께 활동하던 오래된 스컬윙 중 몇몇 개체를 ‘리더 개체’로 삼아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게 주요했다. 하피들은 무리 활동을 하는 개체로, 지정된 무리의 활동 시에 더더욱 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물론 오래된 스컬윙 개체라도 해도 에이션트 언데드처럼 지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구심점을 세웠을 뿐인데 조직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갔다. 그 밖에도. -오, 그래! 오우거의 살갗을 뚫을 만한 독이 필요하다 이거지? 별야의 도움을 받아서 스컬윙들에게 독을 이용하게 하거나. -알라제. 약간의 골격 개선으로 스컬윙의 비행 유지력 강화 가능. 지금부터 시작. 스컬윙에 대한 데이터가 방대하게 모이자 알라제가 직접 스컬윙을 개량했다. 이제 7군단의 스컬윙 군락은 비명의 정글 전체 생태계에서 명실상부 최강의 세력으로 기틀을 잡게 됐다. * * * ‘이제 더 손 쓸 부분이 없을 만큼 완벽해.’ 오늘도 통합수업에서 행정 이론을 듣고 있었지만, 시몬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학교에 있지만 수업에 집중이 안 된다. 온 정신을 비명의 정글에 놓고 온 것 같다. 오늘은 스컬윙들이 얼마나 영역을 확장했을까, 뭔가 문제는 없을까. 나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데, 군단은 알아서 강해지고 있다. 그런 시스템을 내 힘으로 만들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몬은 슬쩍 시선을 돌려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그 또한 인상을 잔뜩 굳힌 채 노트를 펼치고 깃펜으로 언데드 군락의 설계도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헥토르도 군단학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초기에 시몬과 국경을 맞댔다가 결국 시몬의 스컬윙 세력에 밀려 한발 물러났지만, 군단학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다른 곳에 새롭게 판을 깔았다. 애초에 지상은 그의 주력인 데스 와이번들이 활약하기 좋지 않은 지역이었다. 아예 비명의 정글 끝부분에 있던 더 큰 협곡에 자리를 잡고, 그의 영역인 ‘벨른’과 같은 환경을 조성하며 와이번의 수를 늘리고 있었다. 협곡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좋고, 동굴 끝에 와이번의 둥지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공격받을 염려도 없다. 시몬이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려서 평지에 자신의 군락을 만들었다면, 헥토르는 지형지물과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헥토르는 본인의 영토인 벨른에서도 이번에 배운 군단의 시스템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비명의 정글보다는 본진의 영역 구축에 더 신경을 썼다. 물론 두 사람 다 직접 환경에 관여하진 않았다. 이건 영역 확장이기 전에 군단학 수업이기도 했으니까.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더더욱 몰입이 더 잘되는 것 같기도 했다. “헤이, 요즘 뭔가 기분 좋아 보인다?” 그렇게 쉬는 시간, 딕이 시시덕거리며 팔꿈치로 시몬의 팔을 툭 때렸다. 시몬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단학 수업에서 재미있는 실험들을 하고 있거든.” “오, 뭔데 뭔데? 나한테도 알려줘!” 시몬은 딕에게 비명의 정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야! 잠깐, 이건 돈이 되겠는데?” 같은 언데드 이야기를 해도 돈부터 떠올리는 딕이었다. “비명의 정글이 얼마나 많은 모험가들이 개척하려고 애썼던 곳인지 알아? 이건 대박이지!” 그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대륙의 지도를 꺼내서 펼쳤다. 그중에는 비명의 정글도 있었다. “네가 차지한 영역이 어디야?” “이쯤.” 몬스터들의 전 방향 공세를 견뎌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을 등지고 영역을 펼쳐 나가는 그림이 되었다. 딕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손가락을 튕기더니 지도를 가리켰다. “그럼 군단의 영역을 앞으로도 강을 따라 확장시켜 봐. 언젠가 비명의 정글 전체를 7군단의 영역으로 넓힐 거니까 상관없잖아? 일단 이렇게 길게 쭈욱.” 시몬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관없는데, 그렇게 강을 따라 영역을 넓히면 뭐가 좋아?” 딕이 씩 웃으며 손끝을 세웠다. “돈이 되지! 7군단의 이름으로 이곳의 안전을 확보한 뒤 통행료 징수하자. 정글 항로를 개척하는 거야!” “으, 응?” “이제 공식 군단장이니까 왕국법적으로도 문제없을 거야. 내일 바로 브리핑 가능하지?” 돈 냄새를 맡은 딕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딕은 바로 다음 날, 로체스트에 자신이 알고 있는 거물급 상인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 어느새 시몬은 눈을 빛내고 있는 대륙의 상단주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