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11화 늘 그랬듯 평소의 제인답게, 간단한 안부 인사도 없이 바로 개학식을 시작했다. 하수인들이 연단으로 뛰어나와 이동형 칠판을 착착 제인의 뒤에 배치했다. 제인은 입고 있는 정장의 주름을 가볍게 펴고는 앞으로 나왔다. “키젠 최고학년 과정은, 여러분이 겪었던 2년간의 생활과는 다른 차원의 영역일 겁니다.” 그녀의 똑 부러진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많은 부분이 바뀌겠죠. 우선 이 자리까지 온 여러분은 키젠의 즉시 전력입니다. 학생 이전에, 한 사람의 지휘관이자 엘리트 네크로맨서로서 취급받게 되는 거죠. 여러분도 교내에서 여러분을 보는 시선과, 교외에서 여러분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점은 많이 느꼈을 겁니다.” 학생들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내에서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는 학생 입장이었다면, 밖으로 나가면 주민들의 시선부터가 달랐다. 키젠 마크를 우러러보고, 경탄하고, 기대한다. 힘든 현장에서는 드디어 키젠이 와줬다며 주민들이 환호하는 경험도 많이 했다. 제인은 그 눈높이에 맞는 행실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이 암흑연합에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강화될 겁니다. 전시 명령권, 행정 명령권, 기밀 수사권, 지원 요청권, 폭격 지시 같은 최중요 전시 군사권까지.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키젠’을 대리합니다. 물론 권한을 가진 만큼 의무도 커지겠죠.” 또각 또각. 제인이 뒷짐을 지고 걸어갈 때마다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정합니다. 키젠 최고학년인 여러분은 네크로맨서로서 어느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젠 졸업생으로서 시대를 이끌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현재 3학년 정원은 280명. 그리고.” 그녀가 칠판 앞에 걸어가 분필을 쥐고 ‘100’이라는 숫자를 그렸다. “키젠 졸업생의 숫자는 100명 미만입니다.” 대강당이 지독한 정적으로 휩싸였다. 신입생 1,000명에서 시작해서, 기어코 100이라는 숫자까지 왔다. Top100 밖에 있는 학생들은 목 앞에 칼이 들어온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졸업생이 100명이라. 이것도 낙관적으로 가정한 숫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키젠 최고학년 과정은 다른 차원이고, 문무와 실전까지 모든 분야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부터는 2학년 과정에서 바뀐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죠.” 제인이 손짓하자 조교 한 명이 잽싸게 뛰어와 서류들을 내밀었다. 제인이 서류를 손에 들며 말했다. “먼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폐지됩니다.” 시작부터 빅이슈다. 학생들이 즉각 반응하며 웅성거렸다. “필기시험은 ‘DMAT’로 대체하겠습니다. 현존하는 네크로맨서를 평가하는 시험 중에서 가장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고, 최정상 단계에 있는 시험입니다.” 쿨럭! 쿨럭! 그 말에 놀란 메이린이 옆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미바레즈가 그녀를 보았다. “왜 그래요 메이린?” “DMAT라고?” 메이린이 쓱 입가를 닦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거 상아탑 전체에서도 합격자가 백 명이 채 안 될 텐데?” 평생을 연구에 몰두하는 상아탑에서도 합격자가 드문 시험. 심지어 공통적인 대륙어가 아닌 ‘브린’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극단적인 난이도의 시험이다. 그런 걸 학생들에게 치르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DMAT는 1학기에 한 번, 2학기에 한 번 치러집니다. 기준은 당연히 합격입니다. 불합격한 학생은 제적 절차를 밟게 될 겁니다.” 그때 학생들 무리에서 손이 척 올라갔다. “스, 스콧 스나이더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하세요, 스콧.” “DMAT는 실전성과는 거리가 있는, 흑마법의 연구나 개발과 관련된 시험이지 않습니까! 이건 키젠의 정신과는 위배되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누가-” 제인이 미소 지었다. “실전성이 키젠의 정신이라고 가르쳤나요?”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몰아쳤다. 스콧은 어깨를 떨며 입을 다물었다. 3학년이 되어 머리가 커졌고, 지난 2년간 봐왔던 제인이라도 여전히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괜히 사회에 나간 졸업생들도 제인만 보면 허리부터 굽히는 게 아니었다. “키젠 2학년 과정이 머릿속에 뿌리박혔군요. 키젠은 가르침을 받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인재를 배출하길 원합니다. 또한 DMAT가 연구 개발의 시험이라는 이야기는, 수준이 높기 때문에 생긴 잘못된 인식에 불과합니다.” 그녀가 스콧 외의 다른 학생들도 둘러보았다. “배우기 쉬운 게 따라 하기 쉽다. 그러니 쉬운 기술이야말로 실전성이 있다. 가히 얄팍한 생각입니다, 스콧.”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괜히 나섰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나가떨어진 스콧이었다. 저 옆에 신디 비바체가 쯧쯧 혀를 차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으로 졸업논문.” 드디어 선배들로부터 들은 악명 높은 졸업눈문 이야기다. 바로 긴장감이 몰아쳤고, 제인은 태연히 말했다. “이쪽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1학기 안에 마무리 지어주시길 바랍니다. 졸업논문에 시간을 더 할애할 만큼, 3학년 과정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곳곳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 모두가 최종보스라고 생각했던 키젠의 졸업논문이, 그냥 1학기에 끝내 버리고 넘겨야 할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조금은 환영할 만한 부분도 있었는데, 학년의 전체 정원이 줄어든 만큼 드디어 3학년들은 수강신청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어졌다. 원하는 수업과 원하는 교수를 선택해서 시간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전공과목은 하나의 수업으로 통합된다. 소환 재료학이나 장송학 같은 과목들 모두 ‘전공 수업’이라는 이름하에 통합되는 것이다. 메인 시험인 DMAT의 경우, 전공과목에 더해 일반과목 두 과목에서 합격해야 키젠을 졸업할 수 있다. 시몬이 동기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전공에 더해, 칠흑역학과 저주학을 선택하려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일반과목의 커트라인은 전공과목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교양과목도 사라진다는 점. 대신 일반과목을 교양처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수업 자체는 2학년 과정에 비해서는 널널해졌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다른 부분에서 더욱 힘들어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여러분이 최고학년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일 겁니다.” 그녀가 칠판을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최고학년의 ‘임무’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 * * 3학년에 과정에 대해, 시몬이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내용은 역시 ‘임무’ 쪽이었다. -잠잘 틈이 없지. 야영은 일상. -학교에만 붙어 있었던 때가 차라리 편했어. -2년 내내 단짝처럼 붙어 다녔는데, 마지막 1년간은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본 애들도 많아. 지금까지 1학년 2학년 과정에서 경험했던 외부 활동은, 특정 기간 동안 교내 수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학생들은 임무를 수행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3학년 과정은 다르다. 수업과 임무가 함께 진행되며, 수업보다 임무의 중요도가 더 높다. 그리고 더 이상 학교 수업으로서의 ‘평가’가 아니기에, 임무평가처럼 뒤에 ‘평가’라는 항목은 제거된다. 임무. 파견. 참전. 추적. 암살. 밤낮이 없다. 식사나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도 많다.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야 하고, 로체스트에 내려가 한숨 돌리는 중이거나, 수업 도중에도 일어나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야말로 군사 활동. 군사 활동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는 점에서 많은 학생들이 3학년 커리큘럼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임무의 종류는 무수히 많으며, 대륙의 영토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에 직접 관여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개인 임무에서부터, 외부 현역 네크로맨서들과 함께하는 단체 임무, 해당 구역의 ‘담당’이 되어 그 담당 구역의 모든 일들을 해결하는 주둔 임무, 던전에 참여하는 던전 임무, 학과나 팀 간의 경쟁이 중점이 되는 경쟁 임무, 타겟을 살해하거나 타겟을 보호하는 암살 및 경호임무. 다른 집단의 임무 자체를 방해하러 움직이는 방해 임무까지.” 그녀가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여러분은 학교를 넘어 대륙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겁니다. 학교에서는 직접적인 군사권과 행정권으로 여러분을 지원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분 스스로 1년 동안 성과와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하죠.” 곳곳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물론 여러분들끼리 임무 지역이 겹치거나, 임무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동기겠지만, 학교 밖에서는 경쟁자일 수 있죠. 대화로 해결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투’도 허용합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순간, 가히 말도 안 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들은 대로 장난 아니네.” 딕이 시시덕거리더니 시몬을 향해 목소리를 낮췄다. “이거 하나만 보고 키젠 3학년까지 이 악물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어. 지독한 원한을 가진 애들 말야.” “원한?” “그래. 이제 3학년이 되고, 1년 동안 키젠의 권력을 등에 업어서 가문의 주적을 제거하거나, ‘명분’을 세워서 다른 영지에 영지전을 거는 사람도 있대.” 시몬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것도 가능해?” “비일비재하지.” 딕이 눈을 감았다. “서로 가문의 사업체를 무너뜨리고,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서 막 멱살잡이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 물론 그런 걸 조율하고 말리는 게 우리 학생회의 일이기도 하고. 앞으론 진짜 바쁠 거야.” 키젠 3학년의 권한은 대륙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것에 있지만, 휘두르는 것에 따라서 흉악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딕의 이야기에 따르면 몇 년 전에는 더 심한 일도 많았다고 한다. 키젠 학생은 같은 키젠 학생으로 막을 수 있다. 키젠 3학년들을 돈으로 고용한 한 길드의 공세를 막기 위해, 다른 경쟁 길드에서 키젠 3학년 3명을 고용해서 맞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전 3학년들이 학생회장 자리에 집착했는지 알 것 같네.’ 교내의 권력이 아니라, 암흑연합에 행사하는 권력이 핵심이었다. 결사 사태에 직면한 현재는 그런 이권 싸움이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학생회로서 알아둬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음으로.” 제인이 새로운 서류를 받아냈다. “기존 정원 280명에 이어, 새로운 학생이 3학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 이래도 돼? 외부인이 들어오는 거야?” “키젠 3학년은 편입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된 거지?” 제인이 옆으로 물러나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 덜덜 떨리는 손끝. 하지만 말끔하게 생긴 동안의 얼굴과, 자신감이라곤 없어 보이는 풍모와는 달리 대기에서 흘러나오는 칠흑과 위압감. 놀란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328기 입학생, 에이젤 브링어 학생이 키젠에 복귀했습니다.” 제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에이젤이 무안한 듯 어깨를 움츠린 채 웃으며 후배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다가, 시몬을 보고는 눈을 빛내며 ‘안녕’ 하고 인사했다. 시몬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작년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로 휴학 절차를 밟았지만, 다행히 올해부터 다시 키젠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에이젤은 3학년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게 될 겁니다.” 제인이 그렇게 말하며 확성 수정구를 건넸다. 그것을 소심하게 두 손으로 받아 든 에이젤이 앞으로 나왔다. “……어, 음. 그렇게 됐어. 너희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지만, 열심히 할게. 잘 부탁해.” 그 말에 열렬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에이젤이야 발락과는 달리 329기의 인식이 좋았고, 무엇보다 이제는 모두가 에이젤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프티스 님이 따라다니면서 엄청 설득하셨나 보네.’ 아마도 에이젤은 키젠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겠지만, 네프티스와 키젠 측의 끈질긴 설득으로 복귀한 모양이었다. 그의 역할은 결사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3학년 전체의 전력 강화. 그리고 같은 3학년의 통제로 보인다. 3학년들은 키젠의 핵심 전력으로써 결사와의 전쟁에 주로 투입될 예정이다. 에이젤이 있다면 329기를 그가 보호할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권을 휘두를 3학년들을, 유급생이지만 선배인 에이젤이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앞으로 키젠 내부에서 여러모로 히든카드 같은 역할을 할 것 같았다. 학생회의 입장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컸다. “에이젤 학생, 자리로 돌아가세요.” “네, 넵!” 에이젤이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는 뒤로 빙 둘러와,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같은 유급생인 카쟌의 옆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가볍게 주먹을 부딪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제인이 새로운 서류를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바로 가라앉았다. 제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 학년의 군단장에 대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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