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99화 돌파가 시작된다. 다섯 명의 아락무라드가 손을 펼치자, 시몬을 향해 무수한 녹색 물체들이 쏟아진다. 벽돌, 톱니바퀴, 의자, 철판, 그릇까지. 멋대로 쏟아지는 녹색의 물체 속으로 시몬은 과감히 제 몸을 던져 넣었다. 쿠우웅! 터어어엉!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비대해진 물건들은 크기도 형태도 운동 방향도 제각각이다. 물건들끼리 서로 부딪히거나 뒤엉키기 일쑤다. “다들 뭐 하는 거야?” “방해하지 말…… 우욱! 속 안 좋아.” “이 아저씨가 발사한 뒤에 하라고.” 자기들끼리 분란이 일어난 모습. 시몬은 이를 악물고 달리며 자신의 앞으로 오는 물체만 대검을 휘둘러 베어냈다. ‘역시!’ 워낙 쏟아지는 양이 많긴 했지만 피할 수 있다. 전에 좀비집사가 구사했던 움직임이 힌트가 되었다. 물건들 사이로 쏙쏙 빠져나가던 시몬의 전면에 어느새 건물 입구가 보인다. 즉각 문으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이쪽으로 오리라 예상했지.” “잘 가, 군단장.” 두 아락무라드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오른팔을 들었다. 시몬은 물러나지 않았다. 여기서는 속도 승부. 지면을 짓밟고 몸을 가속한 채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두 아락무라드도 손안에서 녹색 물체를 만들어냈으나. “음?” 처음의 그 거대한 대형 물체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크기의 톱니바퀴와 벽돌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들이 당황한 듯 동공을 흔드는 사이, 시몬은 그들을 통과해 지나쳤다. 서걱! 두 아락무라드의 머리가 동시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완전히 예상대로.’ 저 기술의 근본은 이 도시에 떠도는 녹색 에너지다. 그렇지 않아도 군단이 움직여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나무를 불태우고 있는 상황. 다섯 명의 아락무라드가 마구 에너지를 남발해 대니 주위의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크기가 작아진 물건이 튀어나온 것이다. 시몬은 이 혼란을 틈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인가!’ 결사의 것으로 보이는 각종 설비들이 보인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곳곳에 좀비들을 풀어놓아 기둥에 붙이거나 캐비넷 등에 집어넣었다. ‘피어! 생명 반응은요?’ “옆의 방이다!” 쾅! 시몬이 철문을 부수고 들이닥치니 무수한 시체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아락무라드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은 자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시체 옆에는 늙은 노인과 어린이가 한 명씩 있다. [빠져나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시몬은 바로 그들을 한 명씩 허리에 끼고 마지막까지 꼼꼼히 좀비들을 컨트롤한 다음 건물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아락무라드 하나가 뒤쫓아 왔지만 이미 늦었다. ‘시체-’ 시몬이 주먹을 꾸욱 쥐었다. ‘폭발!’ 귀가 먹먹한 폭음과 함께 건물이 내부에서부터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르르르르-! 사방이 연기로 가득하다. 시몬은 두 생존자를 데리고 도망쳤고, 다른 한 아락무라드가 말했다. “제대로 당했네. 저 녀석은 아저씨가 쫓을게.” 타다닷! 아락무라드 하나가 시몬을 뒤쫓으러 사라졌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을 허무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남은 두 아락무라드가 머리를 벅벅 긁거나, 쪼그려 앉아 입에서 오물을 게워냈다. “아, 망했네. 이제 더 ‘나 자신’이 나오진 않을 거야.” “우리가 방심한 것도 있어. 큼, 우욱! 너무 설렁설렁했다고. 이제는 진짜 7군단이 우리 숨통을 조여오는 게 느껴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두 아락무라드의 뒤로, 또 다른 아락무라드가 착 하고 내려왔다. “어쩌긴.” “?” 댕강! 댕강! 기지를 지키지 못한 두 아락무라드의 머리가 날카로운 칼날에 절단되어 날아갔다. 머리만 남은 두 몸통이 툭 쓰러지고, 허공에 사슬을 매단 외팔 아락무라드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다들 듣고 있지? 대기 중의 힘의 농도가 너무 떨어졌어.” 그가 눈가를 슥슥 비비며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부터는 소수 정예로 싸운다. 본인이 약하다고 판단되면 알아서 죽자고.” *** 시몬은 구조한 노인과 아이를 다른 생존자 무리에 무사히 인계했다. 재회한 생존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기뻐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힘내시오, 군단! 샤헤드 사람들의 외침에 시몬은 손을 흔들며 화답한 뒤, 등을 돌려 걸었다. 처음에 7군단을 외면하던 사람들도 사뭇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도시의 모두가 적극적으로 7군단을 돕고 있다. 그들에게도 저 ‘흑색 나무’가 아락무라드의 근본이자, 본체에 가깝다는 정보가 공유된 상황. 주민들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알라제가 배합한 기름을 나무 꼭대기까지 나르기도 했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불을 붙이고 있었다. 시몬도 다시금 힘을 내서 거리를 걸었다. ‘일단 에르제베트와 연락해야 해.’ 그녀와 연락하려면 그녀의 거미줄을 찾아야 한다. 시몬이 빠른 걸음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둘러보고 있는데. 쿵! 쿵! 거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시몬은 얼른 기척을 없앤 뒤, 소리가 난 방향으로 이동했다. ‘아락무라드!’ 거리 한복판에, 아락무라드 하나가 바닥에 엎드린 채 힘껏 제 머리를 바위에 찧고 있었다. 쿵! 이마를 바위에 찧을 때마다 피투성이가 되고. 쿵! 급기야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뭐야. 왜 저러는 거지?’ 너무나 기괴한 광경에 시몬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때 바위에 머리를 찧던 아락무라드가 삐걱거리며 시몬 쪽을 바라보았다. “음, 여기 배신의 군단장 발견했어.” ‘들켰다! 싸울 생각인가?’ 시몬이 얼른 파멸의 대검을 앞세우고 전투 자세를 취했으나. 퍼어어억! 아락무라드는 마지막 동작을 실행했다. 그의 머리가 바위의 뾰족한 곳에 부딪혔고, 몸이 축 늘어졌다. 정보를 다른 아락무라드에게 알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시몬은 으스스한 느낌에 진저리 치며 자리를 벗어났다. ‘소름 끼치네. 결사의 구원자들은 다 이딴 식인가?’ 발각된 위치에서 빠르게 멀어지던 시몬은 얼마 걷지 않아 또 하나의 아락무라드를 목격했다. 이번에는 높은 건물 옥상 위에 올라간 그가 스스로 뛰어내렸고. 퍼억! 잠시 후, 살점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빨리 에르제베트와 만나서…… 아, 찾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찾고 있던 목표물을 발견했다. 에르제베트의 거미줄. 일반 송장거미의 거미줄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군단장인 시몬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거미줄 쪽으로 다가간 시몬이 거미줄에 칠흑을 입힌 채 팅팅팅팅-하고 네 번 손끝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어머, 군단장님! 계속 찾았사와요! 거미줄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피어의 투구를 위로 밀어 올린 시몬이 최대한 거미줄에 입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상황을 보고할게, 에르제. 이쪽은 아락무라드가 생성되던 지점을 파괴하고 오는 길이야.” -우후훗, 역시 군단장님과 피어네요! “그런데 방금 몇몇 아락무라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 목격했어. 심상치가 않아. 에르제는 뭔가 얻은 정보들 없어?” 또각 또각. 에르제베트는 거미줄로 시몬과 대화하며 미소 지었다. 그녀의 옆에는 결사의 연구원이 거미줄에 휘감긴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제일 처음에 벨하이츠에 들어왔을 때 ‘거래’를 요구하던 바로 그 연구원이었다. [물론 소녀도 알아낸 게 있사와요.] 그녀가 연구원의 몸을 툭 밀어내자 좌우로 빙빙 흔들렸다. 에르제베트의 협박이 두려워 정보를 뱉어냈다가, 결사에서 건 저주가 발동해 백치가 된 건지 말을 더 하지는 못했다. [우선 아락무라드의 ‘본체’에 대해서예요.] -정말이야? 본체가 누군지 알아낸 거야? 거미줄 너머로 들리는 시몬의 목소리에서 격한 기쁨의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에르제베트는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락무라드에게 본체라는 개념은 ‘없다’. 가 되겠네요.] 아락무라드는 마치 번식하는 식물의 씨앗이나 포자처럼 자신을 흩뿌린다. 여러 명의 나 자신이 탄생하고, 본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다만 본체가 정해지는 경우는 한 가지. [모든 아락무라드가 사라지고, 최후의 아락무라드 하나가 본체로 정해진다는 것 같사와요.] -결국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는 거네. [맞아요.] 에르제베트와의 통신을 듣던 시몬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악명 높은 결사의 구원자답게 쓰러뜨릴 수 있는 조건이 극악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시몬이 다시 거미줄에 대고 말을 했다. “그럼 왜 지금 몇몇 아락무라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걸까?” -나무가 줄어든 만큼, 어중간하게 힘을 펑펑 써대는 아락무라드를 줄여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그걸 순순히 따른다고?” -결국 그들 모두가 ‘아락무라드’니까요. 그 말을 들으니 시몬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명이 있었다. ‘……화이트.’ 화이트는 ‘왕자 후보’라고도 불릴 정도로 결사에서 핵심 중의 핵심으로 생각하던 실험체였다. 첫 구원자인 킬로바니안을 상대할 때, 시몬은 ‘완성형 화이트’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의 능력은 공격 반사지만, 반사의 선결은 ‘흡수’다. 화이트는 반사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상대의 흑마법이나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화이트는 다수의 화이트가 존재했다. 그들은 겉모습이 완전히 동일했으며, 그들끼리 ‘정서적 유대감’이 존재했다. 한 화이트가 결사를 배신하기로 결정하고 목소리를 녹음해서 다른 화이트에게 들려주자, 다른 화이트들도 두말할 것도 없이 동의했다. 성향과 성격이 완전히 일치하는 셈. 화이트가 정체를 숨기고 키젠 2학년 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이트끼리 여러 번 바뀌었지만,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는 아락무라드의 능력을 짐작케 한다. ‘아무래도 화이트를 제조할 때, 여러 구원자들이 관여해서 자신의 힘을 조금씩 부여한 것 같네.’ 만약 화이트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든다면, 다른 구원자들이 가진 힘도 미리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지금 아락무라드를 이겼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 당장은 아락무라드와의 전투에 집중해야 했다.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와서, 아무리 대기 중의 에너지가 많이 떨어졌다지만 스스로 죽을 이유가 뭘까?’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고민에 빠져 있던 시몬이 불안정한 흐름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벨하이츠 상공. 가장 높은 하늘에 외팔의 아락무라드가 둥둥 떠 있었다. 그가 하나만 남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르르르르륵! 그의 몸이 불룩하게 튀어나오더니 이내 그의 피부를 뚫고 사슬들이 튀어나왔다. 이내 그 사슬들이 하늘에 하나둘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몬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전의 저 아락무라드는 허공에서 직접 사슬을 만들고, 그 사슬 끝에 무기를 매달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잠시 후. 꾸르르르륵! 꾸르르르르르륵! 대기 중에 모인 녹색 힘들이 사슬 끝에 뭔가를 만들었다. 그것은 작은 행성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다양한 기체와 가스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원형체 수십 개가 사슬에 붙들려 흘러나왔다. 이내 외팔 아락무라드가 손짓하는 순간. 쿠우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생지옥이 벌어졌다. 20개의 사슬이 서로 다른 행성들을 휘두르며 무차별로 벨하이츠 전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생존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7군단의 언데드 부대가 초 단위 만에 잔해가 되어 나뒹굴고 건물이 무너지고 지하까지 파고들었다. 쿠우웅! 콰아아아아아앙! ‘저 자식……!’ 시몬이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아락무라드는 이 도시 전체를 파괴할 속셈이다. “…….” 그리고 행성을 휘두르는 외팔의 아락무라드는 한참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한 신호. 시몬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좋아. 끝까지 한번 해보자 이거지?’ 아락무라드도 웃음기 쏙 빼고 진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결전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쪽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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