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98화 카아아아아앙! 대검과 사슬낫이 부딪힌다. 쩌어어어어어엉! 대검이 낫을 짓이겨 버리고, 그 틈으로 시몬이 돌파한다. 하늘의 사슬에 연결된 무수한 철퇴들이 시몬에게 다가오지만, 닥치는 대로 박살 내며 돌파한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쏟아내는 함성. 두개골 너머로 흘러나오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검푸른 안광. 벽 밖의 사람들은 옵저버 아티팩트로 보는 광경에 전율했다. 카타르시스가 넘쳐흘렀다. 저 싸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곳곳에서 침 삼키는 소리, 주먹 쥔 손에 고인 땀을 바지에 문질러 닦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내 시몬이 사슬을 움직이는 아락무라드의 코앞까지 도달했고. 촤아아아아악! 시몬의 대검이 아락무라드의 목에 살짝 생채기를 남긴 채 뒤로 밀려났다. 측면에서 다가온 사슬낫에 부딪힌 것이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 사방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슬낫에 부딪혀 밀려나던 시몬은 순간적으로 검의 방향을 틀어 목 대신 왼팔 한쪽을 베어냈다. 이후 그는 한참을 떠밀려 날아가 저 멀리 지상에 부딪혔다. 그가 부딪힌 지면에서 뿌연 흙먼지가 솟아올랐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살아 있는 거야?” “빨리! 빨리 화면을 돌리시오!” 왕국 기자 엔비스토가 다급히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옵저버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를 바라보았다. 그가 옵저버의 방향을 틀려는 순간. 훅! 화면 앞으로 칼날이 다가오더니 지지직!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 하고 아쉬운 탄성을 토해냈다. “망할! 여기서 끊길 수는 없어!” 극도로 흥분한 왕국 기자 엔비스토는 목 끝까지 시뻘게져 있었다. 그가 손에 든 메모리얼 수정구를 내팽개치고는 로레인에게 다가갔다. “로레인 님! 지금 바로 다음 옵저버를 보내야 합니다!” “…….” 로레인은 별다른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고, 펜타모니엄 학자가 말했다. “회색벽에 열어둔 작은 통로는 이미 닫혔습니다. 다시 약품을 제조하고 특수한 흑마법을 사용해서 벽을 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럼 지금 당장 해야지! 뭘 하고 있소!” “이봐.” 척. 지켜보던 키젠 본부 직원이 손끝을 세워 제지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기자 엔비스토가 크흠!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아무리 유명한 기자라고 해도 일반인인 그가, 감히 키젠이 지휘하는 현장에 지시를 내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로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존자들이 있고, 제7군단장이 무사하다는 걸 알았으니 옵저버는 이제 됐어요. 이번에는 사람이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죠.” 그녀가 겉옷을 벗어서 바닥에 내려두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그그그극! 허공이 일그러지며 시뻘건 공간의 틈이 벌어졌다. 그 안에서 근육질의 팔이 튀어나와 바닥을 짚더니, 이내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려 있는 붉은 눈의 정체불명 괴물이 기어 나왔다. 사람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박사님, 강력한 출력으로 물질의 흐름을 한곳으로 집중시켜야 더 큰 구멍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죠?” “예? 아, 예.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하겠어요.” “사령관께서 직접이요? 감당하시기엔 괴로울 만큼 고될 겁니다. 기기를 사용하는 게…….” “제가 하겠습니다.” 머리끈으로 머리까지 질끈 묶은 그녀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만 더 버텨줘, 시몬.’ *** 시몬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쿠구구구구구구— 충돌에 의해 일어난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잠깐 정신을 잃었던 시몬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부딪힌 바닥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상당한 충격을 동반한 낙하로 보였으나, 다행히 피어의 본 아머가 피해를 흡수해 준 것 같았다. [크흐흐! 괜찮나? 소년!] “미안해요, 피어. 덕분에 무사해요.” 언제 다시 아락무라드가 올지 모른다. 시몬은 손바닥으로 지면을 짚은 채 일어나려 했지만, 이내 다리가 삐끗하며 다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무리하지 마라! 잠깐 쉬어야겠군.] “……네.” 뒤로 벌러덩 누운 시몬이 고개를 쭉 젖혀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노랬다. 이 정도로 대책 없이 강한 적수를 상대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공략 자체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어.’ 곳곳에 불타는 나무들이 보인다. 좀비집사가 아락무라드의 정체를 간파해 내고, 알라제가 저 나무에 불이 붙게 한 덕분이다. 제아무리 구원자라고 해도, 저 힘을 처음부터 끝까지 펑펑 쓰는 건 말이 안 된다. 슬슬 빈틈을 보여줄 때가 됐고, 그걸 악착같이 파고들면 된다. ‘물론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어야겠지만.’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시몬은 천천히 몸에 힘을 뺐다. ‘피어를 믿고 딱 10분, 10분 동안 눈만 감고 있자.’ 그렇게 시몬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려는 순간. -우아아아아아아악! 멀리서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으려던 시몬의 눈이 일순 번쩍 뜨였다. ‘이 목소리는!’ 시몬이 벨하이츠에 처음 와서 발견한 생존자. 톨의 목소리였다. ‘맞아, 퍼질러져 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 의욕이 꺾이면 나중에 싸울 동력을 잃게 돼!’ 다시 머릿속에 냉정함이 돌아왔다. 시몬이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톨의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렸다. “허윽! 커흐읍!” 저 멀리서 톨이 감염체 두 마리에 쫓기고 있었다. 처음에 시몬이 입혀줬던 본 아머는 대부분 박살이 난 뒤였고 이마에 피도 줄줄 흐르고 있었다. 시몬이 앞으로 돌진하며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촤악! 감염체의 머리통 두 개가 공중으로 높게 날아올랐다. 바닥에 철푸덕 엎어져 덜덜 떨고 있던 톨이 뒤늦게 대검을 휘두른 시몬을 발견하고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희망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터엉!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바닥에 꽂은 뒤, 지팡이처럼 몸을 지탱하며 숨을 헐떡였다. 톨이 허둥지둥 말했다. “괘, 괜찮으십니까?” [톨, 너는?] “저야 괜찮습니다! 아니, 그런 것보다!” 그가 침을 튀기며 말했다. “찾아냈습니다! 그, 그! 까만 코트 입은 결사의 괴한! 그자가 만들어지는 장소 말입니다!” 까만 코트를 입은 괴한이라면 아락무라드가 틀림없었다. 시몬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위치를 말……!] 터어어어엉! 거기까지 말한 시몬이 다급히 파멸의 대검을 옆으로 세웠다. 측면에서 쇄도한 거대한 칼날이 시몬의 몸을 튕겨내 반대편 건물에 부딪히게 했다. “희, 희망님!” “찾았다.” 터벅 터벅. 손을 셔츠 밑에 넣어 배를 벅벅 긁으며 아락무라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 너, 그 건물에서 도망쳤던 생쥐 맞지? 이 아저씨가 애타게 찾았어.” 톨이 겁을 집어먹은 듯 파들파들 떨었다. 벽에 부딪힌 시몬이 몸을 일으키고는 외쳤다. [피해! 톨!] “늦었어.” 절그렁! 절그렁! 아락무라드가 한 짝뿐인 손을 들어 올렸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듯, 녹색의 사슬이 서서히 내려오더니 그 사슬 끝으로 커다란 낫이나 톱, 철퇴 등이 생겨났다. 쐐애애애애액! 이내 톨이 있는 모든 방향에서 칼날들이 쇄도했다. 시몬의 방향으로도 철퇴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시몬이 피하라고 외쳤지만, 톨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야기는 전해야 한다는 듯이 떨리는 입술을 짓씹곤, 시몬 쪽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장소는 다마린의 골동품 상점입니……!” 그 순간. 그의 몸뚱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사방에서 다가오는 칼날들을 마치 통과한 것처럼 톨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이내 고개를 돌려보니 시몬이 팔로 그의 허리를 붙든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군단기 – 비월(飛越)> [말할 필요 없다. 허억! 네가…… 살아서 안내하면 된다.] 톨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희, 희망님!” 시몬이 톨을 데리고 빠르게 후퇴했다. “이렇게 자꾸 도망치기야? 거참.” 아락무라드가 무릎을 굽혔다.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목으로부터 가슴, 다리까지 녹색의 혈관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두 다리가 번쩍였다. “안 놓친다고.” 후우우우우웅! 발을 딛고 있던 지면이 박살 나고, 그의 몸이 시몬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도망치고 있는 시몬과의 거리를 좁혔으나. “!” 아락무라드가 흠칫하더니 갑자기 몸을 비틀고 공중제비를 돌아서 멈춘 뒤, 허공에 사슬을 만들어 붙잡았다. 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이 기술, 너무 거슬린다니까.” 어느새 건물과 건물 사이에 에르제베트의 투명한 거미줄이 펼쳐져 있었다. 아락무라드는 강하다. 그러나 방어력과 위험 감지력이 떨어지는 걸 알고, 에르제베트가 도시 곳곳에 거미줄을 펼쳐놓은 것이다. “우욱, 속도 매스껍고. 하는 수 없지.” 그가 한쪽 팔을 세우자, 사슬낫 하나가 크게 앞으로 나아갔다. 거미줄이 칼날에 잘려 끊어지고, 비로소 안전이 확보된 뒤에 아락무라드가 걸어갔다. 그사이 시몬과 톨은 빠르게 전장에서 이탈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깝다. 집사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락무라드는 한 명 한 명이 강자다. 대규모 물리력을 동반한 마법을 펑펑 써대는 건 물론, 위력도 속도도 정상급이다. 육탄전도 안 밀린다. 도저히 약점이라고 할 게 없기는 하지만, 그나마 꼽자면 육체의 내구력이 약하다는 점. 거기에, 저런 분신 능력을 가진 자들의 고질적인 약점. 생물로서 응당 가져야 할 방어 본능과 반사신경, 즉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생물의 목숨은 하나뿐, 따라서 온갖 방식으로 위험 감지 능력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아락무라드는 그런 순발력만큼은 떨어졌다. 힘 대 힘으로 잡기는 어렵지만, 의외로 빙빙 돌아가는 수단을 쓰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없앨 수 있기는 하다. 물론 아락무라드 본인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변수를 통제하고 단순 화력 싸움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바로 저기! 저 건물입니다!” 한참을 달린 끝에 톨이 앞을 가리켰다. 시몬은 톨이 가리킨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착지했다. [저기가 확실해?] “예! 무조건! 확실합니다! 제가 저기서 몇 번을 죽을 뻔했는지.” 시몬이 톨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톨이 후다닥 멀어져서 멀리 떨어진 건물 뒤로 숨었다. 시몬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확실한 것 같네.’ “오, 배신의 군단장. 여길 노릴 줄 알았어. 우욱!” 건물의 문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는 아락무라드가 보인다. 그가 한 차례 구토를 했다. “이런 전쟁을 벌여서 좋을 게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지붕 위에 태연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한 명. “이 세상과 기득권층에 세뇌당한 거지.” 창가에 앉아 있는 한 명. “싹 다 뒤집어엎어야 해. 우욱.” 바닥에 누워 있는 한 명, 그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한 명까지. 이내 다섯 명의 아락무라드가 합창하듯 말했다. “이 세상이 문제야.” 시몬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진짜 갈수록 태산이네. 중요 장소니까 다섯 명이나 지키고 있다 이거지?’ 하나 쓰러뜨리기도 버거운 적이다. 그나마 이쪽이 이길 방법은 아락무라드의 ‘위험 감지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용해 빈틈을 노리는 거지만, 다섯이나 있다면 그 빈틈을 노릴 수도 없다. ‘포기하고 일단 돌아갈까? 병력을 데리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여러 고민이 드는 시몬의 눈빛이 일순 가라앉았다. ‘아니. 지금 이게 기회일지도 몰라.’ 진중하게 생각해 본다면, 애초에 아락무라드가 처음부터 저렇게 다섯 명씩 뭉친 채 돌아다녔다면 7군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두셋씩 조를 만들어서 싸운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을 터. 하지만 초반부의 교전 이후로는, 아락무라드는 줄곧 개별 활동을 해왔다. 시몬을 쫓아온 아락무라드도 하나를 잡으니, 그다음 하나가 찾아와서 싸우고, 그 하나가 죽어야 다른 하나가 찾아오는 식이다. 전술적으로 그렇게 싸워서 좋을 이유가 없다. 즉. 후웅-후웅— 시몬의 파멸의 대검을 붕붕 돌리다가 강하게 맞잡았다. ‘아락무라드끼리 뭉쳐 다니면 뭔가 문제가 생긴단 거지. 지금 다섯 명이 함께 있는 건 허세나 위협에 가까울지도 몰라.’ “이 아저씨가 충고 하나 할게. 여긴 포기해.” “그럼 그럼. 어른 말을 들어서 나쁠 게 없다니까.” 시몬이 무릎을 굽히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 전쟁의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르는 목표가 눈앞에 있다. 포기 따위는 없다. [끝까지 간다.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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