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93화 시몬은 시녀가 알려준 국왕 부부의 별장으로 가고 있었다. 꽤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홍색 지붕의 건축물은 잘 보였다. 규모도 크고 구조도 정교하니 결사의 일원들이 임시 본거지로 삼을 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살아 있길 바라야 겠네.’ 국왕 부부가 죽었다면 바깥의 상황은 복잡해진다. 시몬은 그들의 생존을 바라며 조용히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캬아아악! -끼이이이이이이! 현재 도심지 전역에서 군단의 언데드들이 시선을 끌어주고 있다. 결사의 병력과 감염체들이 언데드 쪽에 집중되어 있을 때, 시몬은 속전속결로 잠입하여 국왕 부부를 구해낼 계획이었다. ‘……그보다 으스스하네.’ 햇빛을 받지 못해 어둡고 습한 밤거리. 건물의 지붕에 자라나 있는 나무들은 태양빛이 아닌 어둠을 양식으로 삼는 것처럼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시몬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즈음. 우욱. 욱! 누군가의 헛구역질 소리가 들린다. 청각이 예민해져 있던 시몬의 고개가 즉시 돌아갔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한 손으로 불 꺼진 가로등을 붙잡은 채 허리를 꺾고 입안의 내용물을 게워내는 사람이 보인다. 나이는 40대 중후반 정도. 중년 남성이었다. 푸석한 피부와 늘어진 옷, 내려간 눈꼬리와 퀭한 눈, 이마에는 주름살이 자글자글했으며 입술은 뭔가를 잘못 먹은 것처럼 파랗다. 흑색 코트를 입고, 안에는 평범한 조끼 차림. 그나마 잘 닦인 구두와 특색 없는 바지. 어딘가로 출근하는 직장인 같은 모습이다. “으으, 쓰읍. 속이 안 좋아.” 그는 벽에 몸을 기댄 채 한 차례 헛구역질을 하며 비틀댔다. “괜히 무리해 가지고. 어우, 다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언젠간 때려치운다.” 시몬은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랭거스틴 같은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왕국 공무원의 일상 같은 느낌. 길가 어디든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벨하이츠에 일상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서 보는 일상이, 오히려 위화감으로 다가와 시몬의 몸을 옥죄고 긴장감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음?” 고개를 든 남자가 시몬을 발견했다. “뭐야, 젊은 친구. 구경 났어? 그래, 좋은 구경거리겠지. 내가 몸만 멀쩡했음…… 우웨에엑!” 말하다 말고 또 한 차례 입에서 토사물을 게워냈다. 그렇게 길바닥에 한바탕 일 처리를 한 뒤, 비틀거리며 입가를 쓱 닦았다. “아, 진짜 이놈의 몸뚱이가 예전 같지 않다. 아, 아.” 남자는 비틀거리다가 근처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장한 시몬의 차림새를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딱 안 보여? 토하고 있잖아 토.” 남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뭐라 그러지 마. 아저씨들은 원래 다 그래. 툭하면 토하고, 말도 좀 헛 나오고, 밥 먹다가 질질 흘리기도 하고. 이제 어딜 가면 아기들은 나보고 할아부지라 그런다. 나 참. 몸이고 일이고 뭐 하나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없어. 더러운 세상. 세상이 잘못됐어, 세상이.”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 중얼거린 그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싹 다 뒤집어엎든가 해야지. 안 그래? 배신의 군단장.” ‘!!’ 일순 등줄기가 싸늘해진 시몬이 즉각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정체를 밝혀라.] “젊은 친구가 아저씨한테 관심을 가져주니 좋네.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는 기분이라 아주우 좋아.” 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 이름은 아락무라드. 나 같은 놈한테 세상을 구원하란다. 웃기지?”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구원자!’ 저런 세상에 찌든 것 같은 아저씨가 결사의 구원자라니. 전에 만났던 구원자 ‘킬로바니안’은 딱 봐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위험한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남자였다. 예리하고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였으며, 완성형 화이트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아니었다. 온몸이 무방비하다. 전투에 능해 보이는 타입도 아니다. 물론 겉보기는 다가 아니라지만, 적을 앞에 두고 저 정도로 무방비한 건 이상하다. “그렇게 각 잡고 서 있지 말고.” 툭툭. 그가 손바닥으로 벤치의 옆자리를 두들겼다. “일단 여기 앉아서 이 사회에 대해 아저씨랑 이야기를 좀-”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락무라드가 왼손을 벤치의 윗부분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벤치 바닥에 닿으며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는 순간. 시몬의 몸이 일순 본능에 가까운 영역에서 치달았다. 하얀 섬광이 번뜩이고, 벤치를 두들기던 아락무라드의 머리가 ‘서걱!’ 소리와 함께 드높이 날아올랐다. 투둑. 툭. 아락무라드의 머리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머리 잃은 몸뚱이는 그대로 기울어지더니 바닥에 엎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안…… 막았어?’ 자세를 풀고 몸을 일으킨 시몬이 아락무라드의 머리를 돌아보았다. 아락무라드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벌컥! 그때 머리가 굴러떨어진 마당의 옆집 문이 열리고. “너무하네 참.” 삐걱 삐걱. 나무 바닥을 밟으며, 그곳에서 멀쩡한 모습의 아락무라드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아아아암-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저씨에 대한 공경심이 없어. 우리가 뭐 대단히 대접받는 걸 요구하는 건 아니잖아.” 그가 피로에 찌든 표정으로 눈을 비볐다. “아, 하품했더니 속이 또 울렁거리네.” 진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대체 무슨 이능인 거지?’ 시몬은 앞서 경험한 구원자, 킬로바니안에 대한 제인의 설명을 떠올렸다. 그의 능력은 여러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핵심은 ‘반사’. 어느 순간, 어떤 조건을 갖추면, 자신이 원래 받아야 할 상처를 상대에게 배 이상으로 되돌려 주는 기술이다. 제인은 전투 초에 킬로바니안의 빈틈을 만들고 결정타를 쑤셔 넣었지만, 그 공격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바람에 힘든 전투를 치러야 했다고 했다. ‘정보를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힘이었어. 이 사람도 마찬가지인가.’ 1초라도 빨리 찾아내야 했다. 능력의 원리든, 발동 조건이든, 레퍼토리든. 일단 겉으로만 보면 일종의 분신 같은 능력으로 보인다. 그 정도라면 흑마법 중에서도 얼마든지 그 예시를 찾을 수 있다. 키젠에도 도플갱어라는 흑마법을 사용하는 말콤이 있다. “오. 신기해.” 아락무라드가 목이 절단된 자신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저 검에 베이면 복구가 안 되나 보네. 이건 참고해야겠어.” 물론 상대도 이쪽의 기술과 가지고 있는 패에 대해 분석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구원자 아락무라드가 천천히 허리를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가 손을 들더니 세 손가락을 펼쳤다. “이 아저씨도 화답해야겠지?” 시몬은 아락무라드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마나가 흐르는 위치, 칠흑이 요동치는 방향, 펼쳐지는 마법진. 이 세상의 모든 게 정보다. ‘어떤 공격이 와도 대처해 주겠어.’ 하지만 아락무라드는 손가락을 펼친 채 가만히 있었다. 그 어떤 기술의 발동 전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소년! 피해라!] 갑자기 피어가 시몬의 몸을 강제로 움직였다. 터엉! 터어어엉! 시몬이 발을 딛고 있는 바닥에서 대뜸 녹색 가로등 다섯 개가 솟구쳐 올랐다. “!!” 고개를 젖히고, 팔다리를 꺾어서 간신히 피했다. 난데없이 발밑에서 솟구쳐 오른 가로등을 본 시몬은 식은땀을 흘렸다. 녹색 계통의 단색으로 이루어진 이 가로등 표면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마법진도 펼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우와, 반응속도 좋네. 역시 젊음이 좋아.” 아락무라드가 손가락을 바꾸자, 이번에는 뒤쪽의 주거지 벽면에서 온갖 표지판들이 창격처럼 튀어나왔다. ‘큭!’ 바닥이든 벽이든 상관치 않고 무기를 뽑아낼 수 있는 모양. 시몬은 즉시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퍼억! 퍽! 퍽! 퍼억! 퍽! 이번에는 시몬이 달리는 방향으로, 건축에 쓰이는 금속 철근이 지면에서 불쑥 불쑥 솟아올랐다. 거기에 바닥에서 커다란 분수대가 솟구치거나, 풍차 같은 것들이 엉망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무슨 기술인진 모르겠지만 빠르고 강해! 피하기만 해서는 못 이겨!’ 정신없이 피하던 시몬이 순간 대검을 휘둘러 참격을 날려 보냈다. 쩌어어어어어엉! 검격이 그어지며, 아락무라드가 제자리에서 점프해서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지면에 발을 대기 전에 시몬이 칠흑을 밟으며 돌진했다. ‘잡았다!’ 시몬이 아락무라드를 따라잡아 목을 날리려는 순간. 콰콰콰콰콰콰콰! 이번에는 전면에 거대한 담벼락이 튀어나왔다. 시몬이 다급히 제자리에서 멈췄고, 앞뿐만 아니라 뒤쪽과 좌우에도 녹색의 담벼락이 솟구쳐 시몬을 가두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좀 하자니까. 아저씨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어요.” 아락무라드가 손짓하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커다란 다리, ‘교량’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시몬의 동공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대체……!’ 저렇게 거대한 물체를 대뜸 공중에서 꺼내다니. 도무지 원리를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교량은 시몬이 갇힌 벽을 부수고 내려앉으며 자욱한 흙먼지를 피워올렸다. 아락무라드가 팔을 내리며 매스꺼운 얼굴로 쿨럭거렸다. “어우, 속 안 좋아. 아무튼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칼 오리지널 – 맹독야차> 퍼어어어어어어엉! 대형 교량이 통째로 녹아내리며, 그 안에서 시몬이 주저앉은 채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락무라드가 손뼉을 쳤다. “그걸 또 살아 있네. 아저씨 젊었을 때 생각나는걸.” ‘……공격력이 상당해, 거기에 어떤 원리로 마법을 쓰는지 모르겠어.’ 시몬의 눈이 방금 떨어진 교량을 바라보았다. 금속같이 생겼지만 금속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대보니 에너지 덩어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리력을 가지도록 변화됐을 뿐이다. ‘칠흑도 신성도 아니야. 추정하자면 마나? 오염된 마나에 가깝네.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시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녹아내린 건축물에서 빠져나왔다. ‘완전히 미지의 적. 대네크로맨서나 대프리스트의 일반적인 공략법으로 싸우려고 하면 안 돼. 시야를 넓게 보자.’ 아락무라드는 여전히 여유 있게 실실대며 뭔가를 계속 꺼내고 있었다. 녹색으로 이루어진 가로등, 벤치, 철문, 파이프, 펜스 등등. 대부분 도시를 이루는 시설물이나 토목 구조물 등이지만, 하나같이 무겁고 날카롭다. “계속해 볼까, 배신의 군단장!” 그가 팔을 휘두르자, 수백의 물체들이 시간차로 쏟아졌다.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세우고 돌격하는 자세를 취했다. ‘피어! 부탁해요!’ [크하하하하! 알겠다!] 터어어엉! 시몬의 몸이 둘로 분해되었다 피어가 홀로 떨어져 나와 대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투사체들을 베어내는 사이, 맨몸이 된 시몬은 뒤에서 준비한 흑마법을 펼쳤다. ‘내 예상이 맞다면!’ 빠르게 마법진을 완성한 시몬이 그 안에서 저주를 끄집어내 손을 쥐고 공을 굴리듯 바닥을 향해 굴렸다. <바힐 리메이크 – 라쿠나(Lacuna)> 촤아아아아아아! 시몬이 만든 저주가 오색 빛깔의 물웅덩이로 변해 번져 나갔다. 자신의 발밑으로 오는 물웅덩이를 본 아락무라드가 ‘어이쿠’ 소리를 내리며 옆으로 슬쩍 피해갔다. ‘걸렸어!’ 시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웅덩이에 손을 올렸다. ‘역시 저주에 대한 지식 자체가 적은 편이야!’ 라쿠나는 네크로맨서들이라면 아는 꽤 유명한 저주로, 물웅덩이에 닿는 게 저주에 걸리는 조건이 아니라, 물웅덩에 자기 모습이 비치는 게 작동 조건이다. 물러나는 정도로는 못 피한다. 이미 그는 저주에 걸렸다. 이내 물웅덩이에 선명한 아락무라드의 모습이 똑같이 비친다. “와요! 피어!” 시몬이 팔을 쭉 뻗자, 앞서 있던 피어가 즉각 돌아와 시몬의 몸에 본 아머 상태로 연결되었다. 이어서 즉각 파멸의 대검을 고쳐 쥐고. 푸우우욱! 칼날을 내리찍어 물웅덩이를 베었다. “뭐야, 방금 뭘 한 거야?” 여전히 상황을 모르는 아락무라드가 자신의 목을 바라보았다. 촤아아아악! 목 밑에 핏줄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가 눈을 끔뻑이며 출혈이 난 목을 붙잡았고, 집중력이 떨어진 건지 주위의 녹색 물체들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졌다. ‘저런 분신계 능력의 약점은 하나!’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시몬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저주저항이 취약하다는 점!’ 쩌엉! 시몬이 직접 그의 가슴을 베며 지나가는 것으로 아락무라드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내 소환된 모든 물체들이 흐물거리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후욱! 후우우! 시몬이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그러다 얼른 파멸의 대검을 치켜들고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자 다음! 다음 녀석도 있겠지?’ 그러나 주위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통한 모양. 사실 이 모든 게 단순한 ‘분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구원자가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어. 녀석이 다시 오기 전에-’ 터엉! 아락무라드를 쓰러뜨린 시몬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별장에 진입했다. 그리고 곧, 주변의 흑색 나무에 녹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 샤헤드의 국왕 부부가 머물렀다는 별장 내부. 이미 한바탕 큰 격전이 치러졌는지 핏자국과 살점이 낭자했다. 감염체와 병사들이 싸운 흔적이다. 그나마 더러운 시체들을 옆으로 치워둔 걸 보니, 최근까지 사람이 이 시설을 쓰고 있던 것 같았다. 타다닷! 다시 구원자 아락무라드가 오기 전에, 시몬은 빠른 걸음으로 별장의 꼭대기로 향했다. [크흐흐! 소년! 저 앞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네.’ 아까부터 열심히 흔들리고 있는 왕가의 문장이, 국왕 부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몬은 왕가의 문장을 따라 복잡한 구조의 별장을 헤쳐 나갔다. 중간에 나오는 감염체들도 가볍게 제거했다. 이내 이 건물에서 유독 크고 호화로운 방이 보인다. 시몬이 방문을 쾅 소리가 나게 걷어찬 뒤 안으로 진입했다. ‘!’ 적나라한 광경이 보였다. 방에 있는 사람은 총 7명. 결사의 일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한 남자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배가 불룩 튀어나오고 수염이 자유분방하게 난 사내, 시몬은 그가 프로필에서 본 샤헤드의 국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에는 시몬이 갖고 있는 것과 똑같은 왕가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멈춰라, 군단장!” 뒤에서 국왕을 붙잡은 채, 단검을 겨눈 결사의 일원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까이 오면 왕을 죽이겠다!” 시몬의 눈이 천천히 움직이며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이 방에 있는 결사의 인원은 다섯 명. 숨어 있는 인원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여성은 왕비. 그쪽도 물론 결사의 일원이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눈 돌리지 마!” 발악 같은 외침을 내지른 결사의 일원이 칼끝을 국왕의 목 끝에 댔다. 왕의 목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나왔다. “네 임무의 목적이 왕족의 구출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일을 망치긴 싫겠지?” […….] “무기를 내려놔!” 시몬은 시큰둥한 눈으로 결사의 일원을 노려보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하찮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방금 아락무라드라는 강적을 목숨 걸고 상대하고 온 뒤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무기 내려놔!” 그래도 인질의 목숨은 중요하니까. 시몬은 옜다 하는 심정으로 파멸의 대검을 절그럭 소리가 나게 떨어뜨렸다. “!” 막상 해주니, 지시한 본인들이 더 놀라는 표정이다. “오! 그, 그래! 그대로 두 손을 들어서 머리에 붙이고 뒤로 물러나!” 시몬이 슬쩍 미소 짓더니 천천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결사의 일원들의 동공에 일말의 희망이 깃드는 순간. 째카아아아앙! 날카로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순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흐르고, 사고는 가속한다. 유리 조각이 비산하며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광경이 선명히 보인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이 눈에 정확하게 들어왔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한 명, 바닥에 구멍이 뚫리면서 두 명, 창가와 벽면에서도 한 명씩 들어온다. 거미줄이 그어지고, 주먹이 날아가고, 모래가 휘감기고, 물벼락이 쏘아지며, 촉수가 내려온다. 난입한 다섯이 각자의 방식으로 결사를 한 명씩 박살 내고. 비산한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내려올 즈음. 처억. 척. 결사들은 모두 쓰러지고, 군단의 대장급 언데드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군단장니임! 대장들 모두 늦지 않게 최종 목적지에 합류했사와요!] 에르제베트가 대표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시몬도 빙긋 웃으며 다시 두 팔을 내렸다. [다들 수고했어.] 제1 보호 대상이자 핵심 목표. 샤헤드의 국왕 부부, 안전하게 확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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