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87화 공중에 덩그러니 떠 있는 육지 위에 떡하니 솟아 있는 목각성.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붉은 달까지. 아직도 매그너스와 치열하게 싸우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했다. 이곳은 다름 아닌 ‘그늘성’이었다. 알라제도 밖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익숙한 곳. 5군단의 은신처. 그늘성 도착.] “이건 조금 이해가 안 되는데.” 시몬이 살짝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쪼그려 앉았다. “뮤르의 함선에 왜 그늘성이 저장되어 있는 거지?” 시몬의 입장에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뮤르가 결사와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라면 이해가 편할 텐데, 떡하니 매그너스의 본거지가 나와 버렸다.매그너스와 뮤르가 협력 관계였나? 그럴 리가 없다는 강한 부정의 감정부터 불쑥 들었다. 매그너스는 에이션트 언데드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탐욕의 화신이다. 뮤르가 5군단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두 사람이 그런 관계를 갖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아니, 꼭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생각해 보면 뮤르가 날 제거하려고 매그너스와 손을 잡고 정보를 제공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매그너스는 프린스의 시체폭발이나, 파멸의 대검이 가진 흡수 능력 등 다양한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예 가능성이 없는 추측은 아니다. 시몬이 휙 고개를 돌렸다. “알라제, 혹시 여기서 뮤르를 본 적 있어?” [기록 확인.] 알라제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기억 전무. 매그너스가 뮤르의 이름을 꺼낸 적도 전무.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에이션트 언데드.] ‘음.’ 의문이 들긴 했지만 이미 다 끝난 일. 매그너스는 죽었고 5군단은 해체되었다. 지금 이런 의문을 생각하기엔, 시몬은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 여기 온 김에 챙길 것부터 챙기자.”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때는 너무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뭔가를 할 틈이 없었거든.” 시몬은 매그너스를 쓰러뜨린 뒤, 그늘성에 봉인되어 있던 던전주를 파멸의 대검으로 흡수하는 것으로 이 그늘성이 주인이 되었다. 시몬은 매그너스가 그늘성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었고, 알라제는 상세하게 답변했다. 핵심을 말하자면 그늘성은 ‘던전’. 던전은 대륙에 연결되어 있고, 이 그늘성 또한 대륙과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 수 있었다. [이상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면 통로 형성 가능. 그늘성 내부에서는 불가. 그늘성 밖에서 던전주의 힘을 가진 자라면 가능.] “그래?” 약간 조건이 까다로웠다. 물이 있는 장소여야 했고, 이름처럼 그늘이 진 장소여야 했다. 특정 온도에, 대기 중의 마나가 극도로 요동쳐야 했다. 해당 조건을 만든 뒤 던전주의 힘을 사용하면 통로를 열 수 있다고 했다. 매그너스 본인은 던전주의 팔을 잘라서 들고 다녔다고. “지금은 파멸의 대검이 없으니까, 나중에 시험해 봐야겠네.” 이 던전도 전리품이다. 그렇지 않아도 네프티스가 준 초대형 아공간이 7군단 전원을 담기에는 비좁았는데, 이건 꽤 커다란 부동산인 셈. 시몬은 주위를 둘러보며 던전의 작동 원리를 익혔고, 던전주의 다른 잔해까지 챙겼다. 이곳이 확실히 안전하다고 느껴지면 본거지로 써먹을 생각도 들었다. “그럼 다음 네 번째 장소로 가볼까?” 시몬이 다시 뮤르의 전함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알라제도 뒤따르며 함선을 조작하다가 말했다. [문제 확인.] “?” [이 전함에는 고유한 생체연료 존재. 호수와 초원으로 이동 시 생체연료 적게 소모. 5번 이동 충분히 가능했던 전망. 그러나 그늘성으로 넘어온 순간. 대량의 연료 소모.] 알라제가 꿈틀거리며 설명했다. [그늘성에서 4번째 장소로 이동 가능. 하지만 복귀 실패 우려.] “그렇네, 돌아가는 연료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원래 출발 장소였던 프로스트 필드로 돌아가자. 그 연료는 또 만들 수 있는 거지?” [알라제의 분신. 연료 성분 분석 중. 양산 전망 밝음.] “좋아.” 당장 너무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시몬은 자리에 앉아 촉수를 몸에 꽂았다. “돌아가자.” *** 시몬은 무사히 프로스트 필드로 돌아왔다. 뮤르의 전함이 공간을 넘어갈 수 있다면 이번 샤헤드 일에 써먹으려 했는데, 아쉽게도 이 전함은 기록된 장소만 이동하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그렇게 시몬은 다시금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로크섬으로 복귀했다. 지금쯤 피어가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소집해 두었으리라. 그렇게 시몬이 금지된 숲을 지나 막 피어의 유적에 도착할 즈음. “?” 유적 입구에 떡하니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시몬은 일단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뒤, 고개만 내밀어 상대를 확인했다. 키젠 교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지? 아직 방학일 텐데.’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에, 잿빛 머리카락과 특유의 늑대처럼 걸터앉아 달을 바라보는 자세가 눈에 띄었다. 비로소 누군지 알고 안심한 시몬이 살짝 웃은 뒤,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카쟌!” 도둑길드 소속이자, 네프티스와 시몬의 조력자. 카쟌 에드발트였다.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습관처럼 눈 밑에 난 상처를 슥슥 긁었다. “왔나, 시몬.” “오랜만이에요! 네프티스 님이 보내신 거 맞죠?” 카쟌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렵한 동작으로 내려왔다. “샤헤드 사건을 브리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같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다른 언데드들도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시몬의 제안에 카쟌도 동의했다. 두 사람은 함께 유적 깊은 곳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들었다.” 카쟌이 넌지시 말했다. “샤헤드 건이 잘 풀리면, 네가 7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할 생각이라고 네프티스 님이 말씀하시더군.” “네.” “가혹한 시련일 수도 있다.” 그가 눈썹 사이를 어루만졌다. “키젠에서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게 흔들릴지도 모르지.” “…….” 각오한 바였다. 시몬은 이제 정식 학생회장이다. 3학년 2학년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학생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일련의 사태들을 겪은 뒤 제멋대로였던 Top10들도 이제는 시몬을 따른다. 교수들도, 조교들도, 동기들도, 후배들도. 많은 사람들이 시몬을 좋아한다. 하지만 7군단장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앞으로의 생활이 어딘가 필연적으로 비틀리게 된다. 배신의 군단 사태로 가까운 사람이 희생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좋았던 사이가 갑자기 서먹서먹하게 될 수도 있다.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게 편하긴 할 거예요.” 그냥 편하게 학생회장으로서 쌓아둔 기반과 인맥을 누리면서 졸업할 수 있다. 시몬도 사람인 이상, 누군가의 증오와 분노를 사지 않고 아무런 갈등 없이 마지막 1년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밝혀야 했을 일이에요. 7군단은 제 뿌리고, 부정할 수 없어요.” 시몬의 눈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처음에 누군가는 실망할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남은 시간 안에 반드시 제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카쟌이 묵묵히 걷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1학년 초부터 네가 7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었지.” “아, 그랬죠. 카쟌은 엄청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나라고 선입견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네 활약을 지켜보며 배신의 군단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간의 문제일 뿐. 네가 말했던 대로 결국 다른 이들도 너를 인정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겠다.” “네! 고마워요, 카쟌!” 카쟌 같은 든든한 조력자가 옆에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급생인 만큼 그의 원래 동기들은 모두 졸업했지만, 시몬은 그가 키젠에 남아서 자신 곁에 함께해 준다는 사실이 무척 든든했다. 이제 피어의 유적의 깊은 곳까지 도착했다. 시몬의 지시대로, 관리자 피어가 군단의 대장급들을 모두 불러놓은 뒤였다. 거미 부대의 대장 에르제베트. 좀비 부대의 대장 프린스. 미라 부대의 대장 헤르세바. 아직 공식 ‘대장’은 아니지만, 데드나가를 이끄는 어린 라미아. 그리고 프로스트 필드 밖으로 쉽게 나가지 못하기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설명을 듣기 위해 온 북신 자이로스의 까마귀까지. 최강의 방구석 본 드래곤, 미르미즈도 이번 일에 참여했으면 좋았겠지만, ‘계약 위반’이라며 여전히 아공간 방구석에 틀어박혀 버렸다. 시몬은 매그너스와의 결전 때 그녀의 힘을 빌리는 대가로 ‘방학 동안 휴가’에 동의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시몬은 다시 만난 에이션트 언데드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안녕, 에르제베트.” [군단장님! 보고 싶었사와요!] 시몬이 자리를 잡으니 다른 대장들도 다가왔다. 에르제베트가 자연스럽게 시몬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고 프린스는 반대편으로 와 시몬과 가볍게 핸드 셰이크를 했다. 어린 라미아는 ‘삐융!’ 소리를 내며 시몬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프린스, 저쪽에 갔었을 때 재밌어 보여서 사 왔어.” 시몬이 신성연방에 갔을 때 사 온 스프링 장난감을 던졌다. 프린스가 그것을 붙잡고 펄쩍 뛰며 좋아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시몬이 물었다. “피어, 브루트는요?” [크흐흐!] 브루트는 스워머형 언데드로, 무한히 분리되는 특성이 있었다. 본인의 진정한 모습을 정하기 위해 분리된 스워머들끼리 끝없이 싸운다. 처음엔 그냥 유적에 싸우는 걸 방치했지만, 전투가 점점 격렬해져서 피어의 유적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어가 직접 나서서 모조리 방에 가둬 버렸다고. 지금 좁은 방에 거의 봉인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시몬이 손뼉을 쳤다. “마침 제가 그늘성에 다녀오는 길이거든요? 당분간 거기 브루트들을 풀어놓고 싸우게 하죠.” [크흐흐! 아주 좋군!] 졸지에 군단끼리의 단합회 분위기가 났다. 그리고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한 명. [……저는 왜 데려온 겁니까.] 바로 봉인 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 좀비집사였다. 프린스에게 공을 던져준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별거 아냐. 다들 모였는데 괜히 홀로 지하에 박아두면 따돌리는 것 같잖아.” [괜한 짓입니다. 이런다고 제가 7군단에 합류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팡! 프린스가 찬 공이 동굴 벽면에 한번 튕기고는 타이밍 나쁘게 좀비집사의 얼굴에 부딪혔다. 에르제베트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 그리고 앞에 서서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기행을 지켜보고 있는 한 명. 바로 카쟌이었다. 시몬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미안해요 카쟌. 이런 게 일상이라.” “군단장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제 정리가 끝나고,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7군단의 지침을 설명했다. 7군단은 샤헤드 왕국으로 가서 이번 사태를 담당할 것이며, 이후 네프티스의 인가를 받아 정식 군단으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의외로 피어를 제외한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다. 시몬의 입장에선 대격변인 사항이었지만, 언데드인 그들은 다른 인간이 자신들을 어떻게 대하든 별 관심이 없었다. [소녀는 군단장님만 있다면 뭐든 좋사와요.] 에르제베트가 시몬의 옆에 더더욱 철썩 들러붙으며 말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됐고, 드디어 카쟌의 설명이 시작됐다. “당연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카쟌이 영지의 현재 커다란 사진을 벽면에 붙였다. “일국의 왕과 왕비가 결사에 사로잡힌 사태다. 지금까지 대륙의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지.” 사진을 손등으로 두들긴 카쟌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만약 7군단이 이 일을 해결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커다란 파란일 거다.” 시몬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건 확실히 기회다. “당연히 저희가 해결해야죠.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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