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86화 네프티스로부터 무제한 텔레포트 마법진 사용 허가를 받은 시몬은 거칠 게 없었다. 바로 7군단의 핵심 영지 중 하나이자, 북신 자이로스가 지키고 있는 ‘프로스트 필드’로 이동했다. 그곳에 뮤르의 함선이 있었다. 뮤르가 호시탐탐 함선을 노리고 있었기에, 북신 자이로스의 병력들이 지키는 본진에서도 지하 가장 깊은 곳에 함선을 보관하고 있었다. [알라제. 7군단 합류 이후 가장 인상적인 물건. 이것만으로도 합류한 보람 있음.] 로브를 뒤집어쓴 살덩이,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가 꾸물거리며 시몬을 안내하고 있었다. [본체는 군단장과 함께 신성연방행. 하지만 분신은 이곳에서 함선 개발 지속. 성과 도출.]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천천히 가.” 알라제의 걸음에서 기대감이 묻어 나왔다. 이내 깊은 굴을 몇 개쯤 통과하고, 질척질척한 동굴 끝에 커다란 원형의 함선이 놓여 있는 광경을 목도했다. 정말로 알라제의 분신들이 팔을 늘렸다 줄였다 하며 함선을 조정하고 있었다. 시몬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이게 작동한다는 거지?” 뮤르로부터 빼앗아 온 정체불명의 함선. 강탈하긴 했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서 그냥 이곳에 방치해 두고 있었다. 뮤르를 끌어낼 미끼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결사 사태 때, 시몬이 타고 있던 비공정을 습격한 비행 해적선에서 ‘플레이그’라는 통제형 언데드를 손에 넣었고. 그다음으로 5군단으로부터 언데드 엔지니어 알라제가 합류했다. 알라제가 플레이그를 재조립해서 뮤르의 함선에 연결한 것이다. 그동안의 대륙을 돌아다니며 하나하나 착실히 재료를 모아왔던 성과가 지금 여기서 드러나게 됐다. [뮤르의 함선은 겉보기와는 달리 생체 함선. 언데드가 제어.] 알라제는 기다렸다는 듯 시몬의 옆에서 뽈뽈 걸으며 본인이 아는 설명을 쏟아냈다. [통제형 언데드 뮤르 대신, 통제형 언데드 플레이그 부착. 연결. 접촉. 임시 전원 부여. 오로지 알라제만 가능한 일. 알라제 쓸모 입증.] “그, 그래.”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는 자신에 대한 쓸모를 늘 시몬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경향이 있었다. 언젠가 게하임과 연결될 부분일지도 모르니 머릿속에 넣어놨다. 혹시 칭찬이나 인정이 고픈 타입인가? 생각난 김에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와아! 멋진데 알라제! 다시 봤어!” 시몬이 과장되게 소리치며 알라제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그러다 알라제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알라제는 알라제. 군단장 특이 취향.] 시몬은 ‘윽’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렸다. ‘……으음, 새로 들어온 5군단 애들이랑은 뭔가 친해지기 어렵네.’ 시몬이 가장 탐을 내는 ‘좀비집사’는 여전히 죽은 매그너스에게 충성을 바치느라 7군단에 들어오지 않으려 하고. ‘브루트’는 본체 쟁탈전이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여러 명으로 분열돼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중이다. 알라제야 가만히 내버려 둬도 열심히 일하는 타입이라지만, 군단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고 시몬과의 접점이 없었다. 조금 더 긴밀한 관계 형성이 필요했다. ‘으음, 쉽지 않아.’ 시몬이 그동안의 군단장 생활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에이션트 언데드는 언데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조금 특이한 성격을 가진 변덕 심한 사람으로 대하는 게 현명했다. [뮤르의 전함. 작동 개시.] 우우우우웅!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뮤르의 전함이 작동하며 기체 곳곳에 검푸른 빛이 일렁였다. 시몬의 칠흑과 같은 색이었다. 덜컹! 덜컹! 기체 곳곳에서 촉수가 흘러나와 여러 곳과 연결되었다. 순식간에 작동 준비가 끝났다. “멋지다.” 살짝 소년의 로망을 자극하는 어떤 무언가가 있었다. 동기인 딕이 봤다면 좋아 죽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들어가 봐도 돼?” [함선의 주인은 군단장. 입장 가능.] 시몬이 전함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윽’ 하는 소리를 낸 그가 살짝 코를 막았다. 뭔가 거대한 괴물의 입안으로 들어온 느낌. 고약한 입냄새 같은 게 풍겼다. 곳곳이 살점으로 뒤덮여 있었고, 무척이나 복잡한 혈관 같은 것들이 엉켜 있었다. [저쪽. 군단장의 자리.] “그래, 고마워.” 조금 있으니 알아서 코가 악취에 적응했다. 시몬은 살점이 바위처럼 솟아 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내 여러 혈관 같은 촉수가 휘리릭 다가오더니 시몬의 몸에 바늘처럼 콕콕 박히며 연결되었다. 의외로 불쾌감이나 거부감은 없었다. 이 전함 전체가 시몬 자신의 칠흑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한 몸처럼 편안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현재 밝혀진 함선의 기능.] 알라제가 설명했다. [장소의 위치 저장. 저장된 장소로 워프 가능. 현재 등록된 장소 5곳.] 시몬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래서 뮤르가 어떻게든 함선을 돌려받으려고 난리를 친 거구나!’ 뮤르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장소가 이 함선에 기록된 게 틀림없었다. 아마 뮤르 본인도 이 함선이 아니라면 들어가지 못할 장소일 것이다. 그리고 당장 전함의 이동 능력도 확인해 봐야 한다. 샤헤드의 벨하이츠는 회색벽으로 막혀 있다고 하니까, 이 전함으로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시몬이 외쳤다. “이동 후 바로 다시 돌아오는 건 가능해?” [가능.] “좋아. 그러면 5곳 중에 한 곳, 지금 바로 가보자!” [명령 확인.] 우우웅. 함선이 한층 높은 곳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매스꺼워!’ 시몬은 이 기분을 어딘가에서 느꼈다. 결사의 포탈을 탔을 때의 그 기분. ‘역시 차원 계통의 이동인가!’ 시몬이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이내 몸이 뒤로 화아아아악 밀리는 이질감에 몸서리치다가 정신을 잃으려고 할 즈음.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진동이 멈췄다. [뮤르가 기록한 첫 번째 장소로 이동 완료.] “……왔, 다고?” 시몬은 몸에 꽂힌 관을 툭툭 뽑아내고는 비틀대며 걸음을 옮겼다. 이내 명령했다. “입구를 열어줘.” [입구 개방.] 스스스스스— 닫혀 있던 생체 함선의 입구가 마치 입처럼 벌어지며, 바깥의 풍경의 드러났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드넓은 푸른 하늘과 조각배처럼 떠 있는 구름. 그런데 하늘이 아래에 깔려 있었다. 잠시 멍해 있던 시몬이 정신을 차리고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하늘이 아래에 있는 게 아니었다. ‘호수?’ 유리처럼 투명한 호수에 하늘이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주위에는 육지든 뭐든 아무것도 없다. 드넓은 호수 중앙 한복판이다. “알라제, 여기가 어디야?” [주변 경관을 고려하여 대륙 내의 위치 검색 완료.] 알라제가 말했다. [암흑연합 서남부 크리텔로 호수.] “여기도 대륙이라 이거지?” 시몬이 한쪽 무릎을 꿇고 호수를 살폈다. 그러자 투명한 호수의 너머로 뭔가가 보였다. ‘……!’ 얼굴. 호수 밑바닥에 무수한 얼굴들이 보였다. ‘까, 깜짝이야.’ 시몬은 너무 놀라 숨을 몇 차례 몰아쉰 뒤, 제대로 살폈다. 자세히 보니 ‘알’이었다. 사람처럼 이목구비가 달려 있어서 징그러웠다. [이 물체에 뮤르의 칠흑 감지.] 알라제가 말했다. [뮤르. 이곳에서 언데드 대량 양성 중인 것으로 파악.] 설명을 들은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박인데.” 이건 상당히 운이 좋았다. 뮤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키고 싶지 않았을 장소. 그의 전력이 만들어지는 핵심이자 가장 취약한 장소를 알게 되었다. 역시 뮤르는 시몬이 이곳에 올 것을 대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만이 그 전함을 움직일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테니까. “이 장소 기억해 둬, 알라제. 샤헤드 왕국 건이 끝나면 바로 피어랑 같이 와서 불태워 버릴 거야.” [좌표 위치 저장 완료.] 한 번의 비행으로 무척이나 큰 발견을 했다. 하지만 뮤르가 어떻게든 함선을 탈취해서 가려고 하는 곳은 고작 이런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아!” 쿵! 잘칵 칼칵 잘칵! 선체 밑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방금 알에서 막 태어난 어류형 언데드가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채 함선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침입자를 감지한 건지, 투명했던 호수가 피바다가 된 것처럼 뿌옇고 붉게 변했다. 이내 막 알에서 태어난 수백 마리의 언데드가 이쪽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당황한 시몬이 외쳤다. “알라제! 입구를 닫고 함선을 더 위로 올려!” [입구 봉쇄.] 쿵! 입구가 닫히고 함선이 위로 발진했으나 물고기 떼는 비행하듯 고공으로 치솟으며 계속 따라오려 하고 있었다. ‘뮤르,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다 이거지?’ 만약 대륙의 바다나 호수에 저런 게 풀린다고 생각하면 끔찍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에이션트 언데드가 이렇게 골치를 썩일 줄은 몰랐다.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고 뮤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은 시몬이 알아서 촉수를 몸에 꽂았다. “바로 다음 장소로 가자!” [기록된 두 번째 장소. 워프 개시.] 뮤르의 함선이 빠르게 떨리더니, 이내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호수에서 기둥처럼 솟아오른 어류형 언데드들이 빈 허공을 깨물며 다시 호수로 돌아갔다. *** 우우우웅-! 다음 장소에 도착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머리가 덜 아픈걸 보니 비교적 가까운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라제, 입구 열어줘.” 함선의 입구가 열리며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식생이 보인다. 주위가 온통 초록색, 또 초록색이다. 그리고 수풀과 나무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유적들까지. 시몬이 살짝 아쉬운 미소를 지었다. “나 여기 어딘지 알아.” 홍펭과 별야의 고향인 메크리아 초원이다. 이곳에서 뮤르는 죽지 않는 언데드, ‘에일다르 히드라’를 부활시키려다가 시몬 일행에게 덜미를 붙잡혀 실패했다. 여기는 한때 뮤르의 본거지였고, 이 전함도 이곳의 지하에서 발견해 냈다. ‘뭐, 뮤르에게는 중요한 장소일 테니까 위치를 저장해 둘 만하지.’ 그러나 당장은 볼일이 없다. 뮤르의 계획을 이미 막아낸 뒤였으니까. 그 일 이후로 홍펭이 직접 꼼꼼하게 초원을 순찰하고 있으니 뮤르가 다시 이곳에 세력을 뿌리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알라제.” 시몬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바로 세 번째 기록된 장소로 가자.” [확인. 다섯 개의 장소 중 세 번째 장소로 이동.] 입구가 닫히고 다시 한번 워프가 준비되었다. *** 세 번째 장소에 도착했다. [군단장, 군단장, 도착 완료. 도착 완료.] 알라제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멍해 있던 시몬이 뒤늦게 눈을 치켜떴다. ‘내, 내가 정신을 잃었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이동에 감히 비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시몬이 이마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철렁한 기분이었다. ‘이번엔 대체 얼마나 멀리 날아온 거야?’ [차원을 뛰어넘은 워프 확인. 이 장소는 대륙이 아님.] 알라제의 말에 시몬이 꿀꺽 침을 삼켰다. “밖에 적의 반응은?” [전함 주위 기척 없음. 소리 반응 없음. 칠흑, 마나, 신성. 느껴지지 않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시몬이 자세를 가다듬고,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칠흑을 일으킨 뒤 말했다. “입구 열어줘.” 천천히 전함의 입구가 열리고. 밖의 풍경이 드러났다. ‘여기는……!’ 이번에도 시몬에게는 이미 한번 왔던 장소였다. 하지만 너무 의외였다. 그가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왜 뮤르의 전함에 이 장소가 저장되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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