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72화 하늘섬의 시가지는 난리가 났다. 붉은 피가 넘쳐흐르고, 사람들은 대피하고, 비명과 괴성이 교차한다. 그리고 이런 소리들을 음악 삼아 감상하며, 고층의 탑 위에서 홍차를 즐기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유클리드 사태의 총책임자인 신성연방의 총무주교였다. “레테와 그녀의 수사관이 드디어 새로운 성녀를 찾아냈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고 바깥의 비극을 바라보았다. 찰랑 찰랑— 그녀의 바로 옆에는 벽에 걸린 장식들이 흔들렸다. 모두 피가 담겨 있는 10개의 장식들. 그중에서 아홉 번째 장식이 가장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이제야 권능이 감지됐군. 성녀의 정체는 9번 리사라.” 총무주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아홉 번째 장식을 손 위에 얹어보았다. “리사라는 연방의 극북부 지역, 프리즈펠의 소수민족 출신이었지. ‘우리’는 그동안 프리즈펠을 탄압하고 억압했어. 그녀가 성녀가 된다면 우리 쪽에 붙을 가능성은 거의 없겠구나.” 그녀가 장식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경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석상처럼 서 있던 중무장한 팔라딘 지휘관이 묵묵히 대답했다. “정치에 관해서는 모릅니다.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자네의 그런 우직한 점을 나는 높이 평가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진중한 음성으로 선언했다. “지금부터 ‘악마 토벌전’을 선언하겠다.” 그녀의 말에 지휘관의 동공이 흔들렸다. “리사라…… 아니. 리사라 님은 성녀시지 않습니까. 성녀는 여신의 선택을 받은…….” “경도 나이를 먹어 눈이 침침해졌군. 보게나.” 그녀가 지휘관을 데리고 와 창가 앞에 세운 뒤, 손끝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저게 악마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지휘관의 시선도 창밖으로 향했다. 노화된 등가죽이 말라붙어 뼈가 다 드러나고, 팔다리는 길어서 휘청휘청거리며, 살갗은 근육처럼 벌겋게 불든 나체의 거인. 그것이 건물을 박살 내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새하얀 하늘섬의 도심과 시뻘건 리사라의 모습은 더더욱 강하게 대비되었다. “저것은 악마다.” 너무나도 태연히 거짓을 내뱉는 총무주교의 모습에, 지휘관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끔찍하고 혐오감이 절로 솟는구나. 한시라도 빨리 토벌하여 하늘섬의 주민들에게 평화와 안락을 가져다주어야 할 것이다.” “……하오나.” “내가 매번 강조하던 말, 기억하나?”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다.” “그래, 그거야.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아. 믿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지.” 뒷짐을 쥐고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총무주교의 권한으로 명한다. 이것은 성전이다. 악마를 토벌하기 위해 하늘섬의 병력을 집결시키도록.” 팔라딘 지휘관이 고개를 숙였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리사라가 폭주했다. 성녀를 정수의 받아들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그녀는 성녀의 힘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사방으로 신성을 마구 흩뿌리며 달리고 있었다. “리사라! 정신 차려!” 시몬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덩어리처럼 굳어진 신성의 파편이 도망치는 주민에게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시몬이 펄쩍 뛰어올라 두 팔을 세웠다. <홀리 쉴드> 터어어어엉! 안전하게 신성의 방패로 잔해물을 막아낸 시몬이 바닥에 내려오며 소리쳤다. “어서 대피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하양아! 까망아! 사람들을 실어 날라!” -냥! 냥! 사물화된 엉성한 마차가 굴러가며 다친 사람들을 안에 태워서 옮기고 있었다. 시몬은 계속 리사라를 쫓았다. “이쪽은 다 피난시켰슴다!” 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레테가 시몬의 옆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그녀가 시몬의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왜 그러심까?” “……이건 내 실수야.” 시몬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범인이 도망치기 전에 붙잡아서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설마 리사라가 성녀였고, 저런 모습으로 폭주할 줄은…….” “누구도 예상 못 했겠죠.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리사라의 폭주는 필연적이었슴다. 시간문제였죠.” “시간문제였다니?” “저기 불안정한 신성, 보이죠?”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괴물이 된 리사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성이 마치 노이즈처럼 치지직거리며 일렁이고 있다. “본인의 믿음이 흔들려서 권능이 폭주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리사라가 저지른 모든 일들이 저 폭주하는 권능의 영향을 받았겠죠.” 권능이 통제가 안 되고, 감정에 지배당해 휘둘리는 게 리사라의 현 실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감정은 점점 더 뒤틀렸을 테고, 그녀가 숨으면 숨을수록 차후에 일어날 폭주는 더 끔찍한 형태로 발현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연. 시몬이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를 돌아보았다. “좋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레테.” “리사라를 진정시켜야죠.” 그녀가 단호히 말했다. “외견이 어찌 됐건 리사라는 성녀고, 제가 책임져야 할 선발생임다. 유클리드 살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나중의 일이에요.” “동의해.” 시몬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문제의 발단이 된 건 리사라가 아니라 유클리드일 가능성이 커.” “네?” 그녀를 추궁했을 때, 그녀는 이상할 만큼 떨었다. 아마도 불안함이나 위협 등을 느꼈을 때,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성녀의 권능이 발현되며 저런 모습으로 변하는 모양. 그리고 보다시피 저 모습이 되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유클리드가 리사라에게 접근해서 뭔가 또 이상한 짓을 했겠지.” “마리첼로에게 한 짓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뻔하긴 함다.” 터엉! 두 사람이 동시에 지면을 밟고 몸을 날렸다. “아무튼 다시 한번 내가 리사라와 대면하게 해줘! 설득해 볼게!” “알겠슴다. 그럼 일단은!” 높디높은 고공으로 치솟은 레테가 오른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정신부터 차리게 해야겠죠!” <슈팅스타> 허공이 번쩍이더니 눈부신 백색의 별똥별들이 리사라에게 연달아 떨어졌다. 주거지와 저택을 마구 부수며 달려가던 리사라가 그 모습을 보고는 두 팔을 앞세웠다. 콰콰콰콰콰쾅! 별똥별들이 연달아 거구가 된 리사라의 몸을 두들겼다. 그녀가 고통스러운 듯 ‘아아아!’ 하는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파. 아파. 아파!] 성대가 마구 긁히는 듯한 끔찍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근방 건물들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 나갔고, 겁먹은 주민들이 머리를 감싸고 도망쳤다. [싫어! 이런 모습은 이제 싫어!] 그녀가 몸부림치듯 팔을 휘두르자 벽돌 건물이 종잇조각처럼 바스러졌다. [나라고 좋아서 이런 모습이 된 게 아니야!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데? 왜!] “사정은 알겠으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똥별 중 하나에 숨어 있던 레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자, 그녀의 주먹으로 별 모양의 신성이 응집되듯 모여들었다. “일단 정신부터 차리게 해주겠슴다!” 별의 힘을 움켜쥔 그녀가 리사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그 순간. 터어어어엉! 반대편 리사라의 주먹이 쇄도하여 레테의 주먹에 부딪혔다. 레테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콰아아아아아아앙! 역으로 힘으로 밀린 레테가 저 멀리 날아가 반대편 저택에 부딪혔다. 그녀의 등 뒤로 신성이 펼쳐지며 저택에 커다란 별 모양의 구멍이 생겼다. 쿠구구구구구! “크윽!” 레테가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힘에서 밀렸어! 성녀의 권능이 형태변화와 물리력에 몰빵된 건가?’ 역시 성녀는 성녀. 겉모습은 저래 보여도 상당히 강했다. 레테가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상황을 살폈다. ‘이런 시가지에서는 큰 별을 떨어뜨릴 수도 없어.’ 레테는 화력이 주특기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인 하늘섬에서 그녀의 힘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아아아!” 그때 시몬이 리사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붕을 밟고 뛰어오른 그가 공중에서 두 손을 내려치는 자세를 취했다. <엑소시즘>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르르릉! 연달아 엑소시즘을 먹이자 리사라가 미역 같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고갯짓했다. 그러다 비명을 내지르며 신성의 파편을 쏟아냈다. “하양아! 까망아!” 시몬이 두 팔을 벌리자, 두 신수가 차크람의 형태로 시몬의 손안에 들어왔다. 그대로 쏟아지는 신성 속으로 돌진하며 시몬이 두 팔을 휘둘러댔다.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신성의 파편을 가르며 지상에 내려온 시몬이 한 바퀴 구르며 낙법을 펼친 뒤 다시 도약했다. 동시에 두 차크람을 앞으로 세웠다. “지금이야! 날아!” 그러자 차크람의 형상이 비대해지더니 전차의 형태로 변했다. 그대로 섬광처럼 돌진하여 리사라의 복부를 강타했다. 끄르르르르르륵! 효과가 있었다. 충격을 받은 리사라가 비틀거리며 지면에 엎어졌다. 이내 거대한 고개가 홱 돌아갔다. “리사라, 할 말이 있어.” 마차에서 내린 시몬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사라가 괴성을 질러댔다. [유클리드! 유클리드다! 이번에도 나를 죽이려고! 아아아아아아!] “이제 알잖아. 난 유클리드가 아냐.” 시몬이 직접 제 얼굴을 붙잡더니 얼굴 가죽을 벗겨냈다. 폭주한 리사라가 멈칫했다. “겉모습은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의 너도 마찬가지.” 툭. 시몬이 얼굴 가죽을 떨어뜨린 뒤 두 팔을 세운 채 다가왔다. “대화하자, 리사라. 유클리드를 죽인 이유가 있지?” [!!] “아직 늦지 않았어. 자포자기하지 마. 분노에 몸을 맡기지도 마. 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시몬이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말해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자.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리사라의 몸이 선선히 돌아갔다. 이내 그녀의 눈에서 피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나-는-!] 퍼어어어어어어억!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입을 내뱉으려는 그녀의 목덜미에 거대한 화살이 날아와 틀어박힌 것이다. 구멍 뚫린 목에서 피가 줄줄줄 쏟아진다. 그녀의 입에서 ‘컥-컥-’ 하는 바람 빠진 소리가 들린다. ‘누가 이런 짓을!’ 시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 멀리 저택의 지붕 위로, 거대한 공성용 크로스보우를 설치한 로브 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지금부터 현장을 통제하겠소.” 처적. 척. 척. 척. 척. 척. 어느새 주위로 중무장한 팔라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르— 촤르르르륵! 신성으로 강화된 쇠사슬이 날아와 그녀의 두 팔을 휘감았다. 이내 하늘에서 섬광처럼 한 팔라딘이 내려와 그녀의 뒤통수를 내리밟았다. 콰아아아앙! 리사라가 지면에 꽂힌 채 괴로움에 울부짖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시몬이 외쳤다. “저자는 성녀 리사……!” “악마일세.” 투구를 쓴 팔라딘이 단호하게 내뱉으며 팔을 세웠다. 그는 지휘관임을 상징하는 파란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나.”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겁에 질린 주민들이 서로 껴안은 채 덜덜 떨며 쓰러진 리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악마 토벌을 시작한다.” 팔라딘이 시몬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 나오며 소리쳤다. “여신의 군대가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다. 이는 성전이며, 여신의 뜻을 받드는 모든 병사들이 하늘섬에 숨어든 악마를 멸할 것이다.” ‘…….’ 시몬이 굳은 얼굴로 팔라딘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 리사라가 성녀인 걸 알고도…….’ [아아아아아아아악!] 목에 구멍이 난 채 몸 곳곳이 사슬로 휘감긴 리사라가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다가가던 팔라딘들이 움찔했다. [속였다, 유클리드! 속였다!]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 위에서 개입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 성녀라면 죽여 버리고, 또다시 다음 성녀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만족하는 성녀가 나올 때까지 반복할 것이다. 그 꼴을 눈 뜨고 가만히 볼 수 없었다. ‘남의 동네고 뭐고.’ 시몬이 손에 주먹을 쥐었다. ‘이제는 상관없…….’ 파앗! 그 순간. 시몬의 옆으로 하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시몬의 시선이 돌아갔다. 짜아아아아아악! 레테가 바람처럼 날아와 지휘관 팔라딘의 뺨을 후려갈겼다. 쓰고 있던 투구가 일그러지며 그의 몸이 날아가 근처의 폐허가 된 집을 부수고 들어갔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레테가 눈을 시퍼렇게 뜨며 분노를 표출했다. 팔라딘들이 흠칫했다. “무슨 개짓거리야.” “서, 성녀님!” 그녀가 ‘개등’을 시작했다. 찬란한 신성이 별의 형태로 뿜어져 나오며 주위를 뒤덮었다. [나, 별의 성녀 레테 샤르데나의 이름으로 명한다.] 그녀의 신성이 찬란하게 뿌려지며 주위로 펼쳐졌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물러나라.] “…….” 그러나. 성녀의 지시에도 팔라딘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부스스스스— 그리고 무너진 잔해를 들추고 지휘관 팔라딘이 멀쩡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얼굴 한쪽이 시뻘겋게 변해 있었지만 표정은 무뚝뚝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더 위의 지시입니다.” “뭐?” “교황청의 인가를 받은 악마 토벌전은, 설령 성녀님의 지시라고 해도 중단할 수 없습니다.” 팔라딘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악마 토벌전에 도움을 주신 별의 성녀님께, 교황 성하께서도 큰 은혜를 내리실 것이옵니다.” 빠직! 이마에 혈관이 뭉친 레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 멀리 시계탑에 태연히 차를 마시고 있는 총무주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녀가 빠드득 이를 갈며 주먹에 힘을 모으는 그때. 끼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리사라가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건물에 고정해 둔 사슬이 통째로 박살 나고, 버티던 팔라딘들이 딸려 왔다. “악마를 처단하라!” 팔라딘들이 뛰어들어 검으로 그녀를 베고 신성마법을 발사하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리사라가 몸부림치는 것으로 순식간에 주위가 황폐화되고 있었다. ‘레테의 주먹을 맞고도 멀쩡하던 게 리사라야. 간단히 당할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레테 쪽을 바라보았다. 레테도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끄덕. 끄덕. 많은 대화도 필요 없었다. 눈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갔다. “악마 토벌전이라면 어쩔 수 없죠! 저도 거들겠습니다!” 큰 소리로 외친 시몬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평범한 팔라딘의 장비로는 리사라를 못 잡아. 이 중에서 그나마 리사라를 죽일 수 있는 강자는-’ 끼릭! 저 멀리 저택 지붕에서 설치된 초대형 공성용 크로스보우가 이번엔 리사라의 뒤통수를 노리고 겨누어졌다. 이내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화살이 쏘아졌고. “하아아아아압!” 시몬이 대뜸 공중으로 치솟아 허공에 차크람을 힘차게 휘둘렀다. 시몬의 공격에 부딪힌 화살의 방향이 살짝 틀어지며 반대편 벽에 꽂혔다. “아! 잘못 보고 휘둘렀네! 죄송합니다!” 시몬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 멀리 크로스보우를 날린 남자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악마가 일어난다!” 쿠구구구구구구! 그사이 리사라가 완전히 몸을 일으켜 사슬을 벗겨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팔라딘들이 식겁하며 뒤쫓았다. [아-] 그때. 팔라딘들의 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악마 토벌전이라면 저도 끼지 않을 수 없겠슴다.] 하늘에서. 셀 수도 없이 무수한 별똥별들이 팔라딘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즉각 걸음을 멈춘 팔라딘들이 입을 쩍 벌렸다. [도와드릴게요?] 레테가 눈을 찡긋하며 손을 내리그었다. 별똥별이 도시를 대폭격하며 팔라딘들의 몸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어마어마한 대공세였지만 민간인들이나 리사라에게는 맞지 않았다. 이미 주위 사람들의 피난이 끝난 뒤기도 했다. “흐흠~ 타깃이 잘 피하네.” 그렇게 중얼거린 레테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시계탑에 차를 마시고 있던 총무주교가 찻잔까지 내팽개친 채 벌떡 일어나 있었다. 레테는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검지를 휙 일자로 그었고. 쿠콰콰콰콰쾅! 별똥별 하나가 시계탑에 날아와 틀어박혔다. 탑에 뿌연 먼지가 일어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차, 한 발 잘못 떨어뜨렸다.” 쿵! 쿵! 쿵! 쿵! 쿵! [캬아아아아아악!] 소란을 틈타 리사라가 피를 줄줄 흘리며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레테가 주위를 초토화한 가운데, 전면의 바닥이 무너지며 하수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사라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길게 바꾸더니 좁은 하수도 틈으로 도망쳐 버렸다. “악마가 도망쳤다!” “쫓아라!” 팔라딘들이 헐레벌떡 하수도를 부수고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시몬과 레테가 짝! 하고 하이파이브 했다. “나이스 레테.” “깽판에는 깽판으로 되갚아줘야죠.”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럼 이제 어쩌지?” “당신이 리사라에게 말을 걸었을 때, 약간 이성이 돌아온 걸로 보였슴다.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죠.”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만 리사라가 잘 도망 다니길 바라야겠네요.” “리사라가 도망친 뒤에는?” “제 능력 잊었어요?” 레테가 허리에 손을 얹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밤이 되면 별자리로 리사라의 위치를 알 수 있슴다. 우리가 이 섬에서 가장 먼저 리사라를 찾아낼 수 있는 거예요.” “아!” 다시 이쪽이 주도권을 가져왔다. 레테가 진중한 얼굴로 눈을 빛냈다. “지들 좋을 때만 믿음을 갖다 붙이는 쓰레기들. 절대 저들의 뜻대로 놀아나진 않을 검다.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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