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71화 “네가 유클리드를 죽였지?” 저벅저벅. 시몬이 리사라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무, 무무무, 무슨 말쓰믈 하시는 지 저어는 잘 모르게써요! 유클리드 사제님은 거기 계신덱! 왜 죽었다는……!” “연기는 이제 그만해. 내가 유클리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잖아?” 시몬이 냉랭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방금 3번 마리첼로와 8번 에이툴라의 증언을 받아내고 오는 길이야.” “네?” “핵심은 마리첼로였지.” 시몬이 두 손가락을 세워 들었다. “모항제에 있었던 신수 습격 사태. 그 사태를 저지른 용의자는 누가 뭐래도 마리첼로였어. 하지만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마리첼로를 본 목격자가 두 명 있었지.” 손가락을 접은 시몬이 고개를 기울였다. “마리첼로가 둘이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럼 그 한 명은 누굴까?” “…….” “간단해. 마리첼로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본인은 수사망에서 피해 가려는 사람, 즉.” 시몬이 눈에 이채가 서렸다. “유클리드를 죽인 범인이지.” 애초에 마리첼로는 신수의 숲에 제대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신수들의 위협을 받아 범행을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정작 이 사건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실현되었다. “그럼 모든 상황이 그려지지. 마리첼로가 내게 원한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마리첼로가 모항제에 범행을 저지를 거라는 사실까지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 시몬의 손끝이 리사라에게로 향했다. “바로 너야, 리사라.” “……!” 얼굴이 완연한 흙빛으로 변한 그녀가 고개를 붕붕붕붕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절대……!” “마리첼로가 범행 계획을 네게는 이야기해 줬지?” 그 말에 그녀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그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유클리드 님을 내 앞에서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거리 탐방 시간에 리사라가 내지른 외침. 그 한마디에 마리첼로는 정신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바로 리사라에게 ‘우수성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늦은 새벽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은 소녀들. 마리첼로는 그때 모든 것을 고백했다. -유클리드는 내 약점을 잡고 끊임없이 협박하고 있어! 그 자식이 나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마리첼로는 밤새 유클리드의 험담을 쏟아냈고, 이내 말했다. -유클리드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 나 하나의 목숨으로 끝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그 자식은 내 소중한 사람까지 엮어서 함께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고 해. 그저 유희거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겐 선택지가 없어! 그 녀석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야. 그러니까……! 마리첼로가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나는 모항제 때 유클리드를 죽일 거야. “이게 웬 떡이야, 싶었겠지.” 시몬이 리사라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노리고 있던 가짜 유클리드를 죽이려 3번 마리첼로가 알아서 움직여 주겠다는 거니까. 너는 마리첼로의 범행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 방에 몰래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녀가 살해 계획을 휘갈겨 쓴 노트를 발견했어. 착. 시몬이 품속에서 노트를 꺼냈다. 리사라의 동공이 어쩔 도리 없이 흔들렸다. “레테 성녀님 휘하 팔라딘들이 네 동선을 파악하느라 엄청 고생하셨어. 네가 자주 가던 성당 수납장에 이게 숨겨져 있더라. 아,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시몬이 노트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경과는 다음과 같아.” 마리첼로의 범행을 알게 된 리사라는, 계획한 범행이 빈틈투성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마리첼로가 우수한 학생이라지만 아직 16살이고 평생을 신앙 교육만 받고 자란 소녀다. 충동적인 살해를 계획했으나 그 계획은 아마추어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건 신수의 숲에서 신수의 새끼를 유괴하고, 분노한 신수의 어미를 유인해 유클리드를 덮치려는 계획. 각 번호의 선발생이 어떤 마을에 갈지 정해져 있었으니 변수도 없다. 하지만 리사라는 마리첼로가 신수의 숲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할 거란 게 뻔히 보였다. 그래서 모항제에 직접 행동했다. 예상했던 대로, 마리첼로는 신수의 숲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그녀보다 신수 감응력이 뛰어났던 리사라는 당당히 새끼를 손에 넣고 그녀가 실패한 범행 계획을 마저 실행했다. 그 결과로 유클리드가 다치든 살아 있든 사건만 발생하면, 해당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일어날 테고. 리사라는 익명으로 해당 범행이 휘갈겨진 노트를 수사관에게 가져다 바치면 모든 게 끝나게 된다. 마리첼로의 필체라는 건 바로 드러날 테니까. 그러나 세상일이 늘 그렇듯, 변수가 있었다. 첫째는 시몬의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서 상처 하나 없이 해당 사태를 잠재우고, 레테에게 사건을 넘겨서 모든 정보를 발 빠르게 은폐했다는 점. 둘째는 8번 에이툴라의 존재다. 에이툴라는 본인의 가족이 하늘섬에서 근무하는 팔라딘이어서 이번 신수 사태를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의 동기인 유클리드가 공격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본 것을 말하려 했다. -나, 유클리드 사제님을 해치려 한 사람이 누군지 봤어. 유클리드 사제님께 내가 본 것들을 말하려고 해. 에이툴라가 그런 다짐을 말했을 때, 그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던 두 사람. 1번 메릴과, 9번 리사라. 메릴은 알리바이로 보나 동기로 보나 이번 사태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인물이었고, 문제는 리사라였다. 사실 이때 에이툴라가 목격한 건 ‘금지된 숲에서 나온 3번 마리첼로’였지만, 그 말을 들은 리사라는 지레 겁에 질렸고 불안에 빠졌다. 정체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까운 극심한 불안에 결국 에이툴라를 습격하기까지 했지만, 끝내 죽이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단서는 한두 가지가 아니야. 축제 당일 일찍부터 나간 사람은 너와 마리첼로, 에이툴라뿐이지. 팔라딘들이 거리를 돌면서 최근에 가발과 녹색 염료를 구매한 선발생의 정보를 알게 됐어. 모든 단서들이 당신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지.” 시몬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녀가 뒷걸음질 쳤지만 시몬이 조금 더 빨랐다. “가, 가까이 오지 말아요!” “말해, 왜 유클리드를 죽인 거지?” 시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누군가의 지시로 성녀를 죽이려다가 유클리드에게 들켜서 약점이 잡힌 건가?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 유클리드와는 무슨 관계지?” “아니, 그건!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눈이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공격하거나 도망치려는 의도가 없는 것 같았지만 상태가 뭔가 이상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그녀의 신성에 반응한 대기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주위의 창문에 쩌적 쩍 금이 가고, 장식물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말해! 리사라!”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다급히 뒷걸음질 치는 리사라의 손목을 붙잡은 시몬이 외쳤다. “왜 그를 죽였지? 이유가 뭐야?”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그녀가 불안 장애처럼 덜덜덜 떨었다. 몸이 떨리는 게 손을 타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 시몬의 시야가 순간 하얗게 변했다. 마치 다른 공간으로 넘어온 것처럼. ‘뭔데 이거?’ 주위는 온통 하얗다. 시몬은 이 장소를 본 적이 있었다. ‘설마.’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 개의 하얀 왕좌가 떡하니 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얀 불꽃이 조형된 왕좌는 정화의 정수. 밀과 곡식이 조형된 왕좌는 수확의 정수. 그리고 장미꽃으로 뒤덮인 왕좌까지. ‘이건 성녀의 정수와 접촉했을 때 보는 광경!’ 시몬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네 번째 왕좌. 그것이 흐릿하게나마 형성되려 하고 있었다. ‘리사라가…….’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성녀였다고? 그럼 살인자가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닐 텐데. 그러니까……!’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끔찍한 비명이 들리는 동시에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성당 전체에 거대한 울림이 울려 퍼지더니 바로 위 천장에 연결되어 있던 거대한 샹들리에 촛불 장식이 떨어지고 있었다. “크윽!” 시몬이 즉시 두 손을 들어 수호마법을 위로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앙! 대형 샹들리에가 떨어지며 온갖 흙먼지와 나무 잔해가 주위를 뿌옇게 만들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수호마법을 펼친 시몬이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사라! 리사라?”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로 간…… 아!’ 쿠우우우우웅! 시몬의 고개가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율하며 경악했다. 벽에 부딪혀 휘청거리는 뭔가의 모습이 보인다. -악마를 봤어요. 에이툴라의 이야기가 맞았다. 악마라고 하지만 시몬이 보기에는 미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온통 벌겋고,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채 비쩍 말라 있는 벌거벗은 여성. 몸집이 무척 컸고, 팔다리가 길고, 노화된 피부는 가죽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악스러운 건. [아윽. 아아아아아!] 시몬이 감지했던 리사라의 성녀로서의 권능이 저 헐벗은 끔찍한 악마에게서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저게 리사라라고?’ 그녀가 입을 쩍 벌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이 귀를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강렬한 외침에 유리로 된 모든 것이 깨져 나가고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피눈물을 줄줄 쏟아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것이 몸부림쳤다. [유클리드가 먼저 잘못한 거야……! 유클리드만 아니었어도!]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성당에 붙어 있던 동상이 시몬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큭!” 시몬이 전면에 홀리 쉴드를 다중첩으로 펼쳐냈다. 쉴드에 부딪힌 동상이 반으로 갈라져 바닥을 굴러다녔다. ‘미치겠네, 진짜!’ 혼란과 혼돈의 연속. 폭주한 그것이 몸부림치자 성당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시몬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그때. “시몬! 무슨 일임까!” 대기하고 있던 레테가 소란을 듣고 문을 박차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즉각 달리며 말했다. “레테! 뛰어!” “네?” 시몬은 설명할 틈도 없이 그녀를 껴안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기둥에 금이 가며 성당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구구구! 흙먼지가 하늘에 닿을 듯 폭발할 기세로 피어오른다. 간신히 천장이 떨어지기 전에 밖으로 탈출한 두 사람은 멍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체 무슨……!” 시몬이 입술을 파르르 떨고 있는 그때, 팔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무슨 짓임까.” “아, 미안.” 시몬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얀 머리카락이 흙먼지로 뿌옇게 물든 레테가 툴툴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 정도로 내가 당하겠슴까? 하여간 엄살은.” “몸은 괜찮아?” “괜찮슴다. 당신도 괜찮아 보이네요. 상황은요?” “리사라가…….” 거기까지 말한 시몬이 흠칫하며 팔을 뗐다. 어느새 주위가 뻘건 액체로 가득했다. 갑자기 성당에서부터 붉은 핏물이 물컹거리며 쏟아져 주위를 붉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이건…….” 레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퍼억! 그때 무너진 상당의 잔해 속에서 커다란 괴물의 팔이 튀어나왔다. 이내 잔해를 딛고 거대한 몸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내 온몸이 말라붙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가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주변 도시의 건축물의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 나간다. 시몬과 레테가 동시에 귀를 틀어막으며 인상을 썼다. “저게 리사라 자매님이란…… 검까?” “믿기지 않지만 그래.” “더 놀라운 건.” 레테가 말했다. “저게 성녀의 정체라는 거네요.” “맞아.” 시몬은 자신의 착각을 바로잡았다. 왜 성녀와 살인자가 별개의 존재라고만 생각했을까. 지나치게 성녀를 찾아내고, 살인자로부터 성녀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했다. “……아직 심증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상부의 지시를 받아 성녀를 죽이려던 암살자는 나, 유클리드였던 것 같아. 그리고 성녀와 살인자 그 정체는 모두-” 시몬이 굳은 얼굴로 침을 삼키며 말을 내뱉었다. “리사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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