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67화 시몬과 레테가 이번 사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저벅 저벅. 멀리서부터 발소리가 들린다. 집주인이 돌아온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왔지?” 끓어오르는 울림과도 같은 독특한 목소리였다. 이내 내리쬐는 햇빛을 등지고, 어깨에 커다란 들짐승을 짊어진 남자가 몸을 낮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쿵! 들짐승을 바닥에 내팽개친 그가 ‘후우’ 하고 숨을 내뱉더니, 시가를 입에 물고 시몬과 레테를 응시했다. “응? 애들이잖아?” “빛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라우스.” 시몬이 두 손을 모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형제님. 허락 없이 집에 들어온 건 용서하십시오. 긴히 물어볼 사항이 있어서…….” “아저씨.” 그때 뒤에 있던 레테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평범한 사냥꾼이 아니죠? 왜 집에 사람 뼈가 굴러다니는 검까?” ‘레테!’ 중요한 질문에 앞서, 굳이 상대에 대한 사적인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실제로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매가 가늘어지며 생기는 주름들이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가 대답해야 할 이유가 있나?” 처억. 레테가 품에서 에프넬의 문양이 새겨진 증서를 꺼내 들었다. “네, 네. 여기 있어요. 에프넬에서 왔슴다.” 남자의 표정에 재차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다 한 차례 헛웃음을 흘리더니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 마룻바닥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레테가 자세를 낮추었다. “도망칠 생각이라면……!” “내가 왜 내 집에서 도망치겠나.” 알고 보니 벽에 걸린 겉옷을 향해 가는 거였다. 그가 낡아서 다 갈라진 가죽 로브를 뒤적거리다가 이내 레테와 비슷한 문양이 새겨진 징표를 꺼내 들었다. 레테의 눈이 커졌다. “그건……!” “댁들이 의뢰한 일을, 댁들이 심각하게 보는 것도 우습군.” 에프넬의 증표다. 즉, 이건 에프넬 측에서 이 사냥꾼에게 사람을 죽이거나 시체를 처리하라고 의뢰했다는 뜻이었다. 스윽. 사냥꾼이 징표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야기가 끝났으면 나가줬으면 하네만.” “아직 안 끝났습니다.” 시몬이 팔을 뻗었다. “모항제 당일 내내, 이 집에 계셨죠?” “그랬지. 그날은 의뢰도 없었으니까.” “혹시 이곳 주민이 아닌, 낯선 사람이 마을에 돌아다니는 걸 본 적 있으십니까?” 남자는 턱을 쥐고 생각에 잠긴 채 있었다. “그 괴짜 할멈의 일인가, 신수가 바구니에 든 채 할멈 집에 놓여 있던 사건을 조사하러 왔군.” 시몬은 마른침을 삼켰다. 바로 의도를 알아차리다니, 만만치 않았다. “물론 봤다. 내 직업상,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는 확실히 기억하지.” “그럼……!” “내가 대답해야 할 이유가 있나?” 처음에 던졌던 그 물음을 다시 던진 남자가, 자리에 털썩 걸터앉아 허리춤에 매고 있던 수통을 꺼냈다. 수통 뚜껑을 열자마자 오래된 술 냄새 같은 게 확 피어올랐다. 바로 그것을 꿀꺽꿀꺽 들이켠 그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수통을 내려놓았다. “대답하면, 너희들은 내게 뭘 해줄 수 있지?” “그, 그게…….”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되는대로 답했다. “장작…… 패기요?” “그대로 집에 쪼르르 달려가서 엄마에게 물어봐라.” 티잉-! 그때 청명한 소리와 함께 뭔가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남자는 익숙한 듯 팔을 뻗어 그것을 낚아챘고, 손바닥을 펼쳐 확인했다. 동전이었다. “말이 통하는 친구도 있군.” 남자가 레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런 푼돈으로는-” 그의 말이 멈췄다. 테이블에 올려진 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돈주머니였다. 바로 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 거였다. “됐죠?” 그녀가 주머니 끈을 쓱 잡아당기고는 옆 테이블에 툭 던져놓았다. 남자가 으흐흐 음침한 웃음소리를 냈다. “자, 잠깐만.” 시몬은 레테 곁으로 다가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스트가 이래도 돼? 게다가 너 에프넬 신분이란 것도 공개했잖아.” “어쩌겠슴까. 방법이 없는데.” 소리 내어 대답한 레테가 경멸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난 돈만 있으면 뭐든 하는 당신 같은 족속이 제일 싫슴다.” 남자가 삐딱하게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곱게 자란 공주님이 궁핍한 부랑자의 생존 방식을 경멸하는 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지.” “그만 나불대고. 값은 치렀으니 정보나 내놔요.” 남자는 눈을 감고 그때의 일을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정오를 알리는 대성당 종이 치고 한 시간 뒤쯤이었던가. 모항제 준비로 마을 주민들이 자리를 비운 때에, 짙은 밤색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수상한 바구니를 들고 달리고 있었지.” 시간대는 정오. 밤색 로브. 단서들을 머릿속에 입력한 시몬이 재차 물었다. “어떻게 생겼죠?” “로브를 입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후드로 머리를 가렸지. 내가 본 건 그게 다다.” 빠드득! 레테가 이를 갈더니 성큼성큼 걸어왔다. “로브? 지금 나랑 장난하냐 이 새꺄!” 쾅! 그녀가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단숨에 벽으로 밀어붙였다. 그녀의 완력을 생각해 보면 꽤 큰 충격이었을 테지만 남자는 조용히 웃었다. “머리카락.” “?” 남자가 오른손을 자신의 턱에 댔다. “후드 밖으로 이 정도 길이의 녹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가 멱살을 놓았고, 남자가 스르륵 바닥에 내려와 주저앉았다. “가죠.” 레테가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갔고, 시몬도 그녀의 눈치를 보며 얼른 뒤따랐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레테의 등에 대고 말했다. “성녀 나리의 고결함과 타협의 대가인 이 돈, 노름값으로 잘 쓰도록 하지.” 역시 레테가 성녀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는 낄낄대며 걸어가 반대쪽 테이블에 든 돈주머니를 붙잡고 끈을 풀었다. “……!”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동전이 아니라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고결함, 판 적 없슴다. 원래 내가 가진 것도 아님다.” 팅— 티잉- 문밖에 있던 레테가 팔을 뻗어 동전 몇 개를 대충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건 정보값이 아니라, 돈 밝히는 거지에게 주는 적선.” “…….” “가죠.” 레테는 그대로 시몬을 데리고 떠났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보고 있던 남자가 이내 한 방 먹었다는 듯 큭큭 웃으며 허리를 굽혀 동전을 주웠다. “성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 *** 그렇게 사냥꾼의 오두막을 빠져나와 8번 에이툴라가 있는 병실로 가는 길. “어떻슴까?” 레테는 대뜸 양손에 푼 머리카락을 붙잡아 제 뺨에 붙이고는 시몬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시몬이 답했다. “귀엽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빠악! 그녀가 즉시 주먹으로 시몬의 명치를 가격했다. 시몬이 컥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레테는 발칵 화를 내며 소리쳤다. “지금 나만 진지하냐고! 머리 길이를 재본 거잖아!” “그, 그거구나. 다시 해줘.” 시몬이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서 레테에게 입혀주었다. 레테는 군말 없이 팔을 넣어서 시몬이 입혀주는 대로 로브를 입은 뒤, 이번엔 제대로 로브에 달린 후드까지 눌러쓰고 머리카락을 끌어모아 뺨에 갖다 댔다. “어떻슴까?” “…….” 남자용이라 품이 큰 옷을 입은 채 눈을 깜빡거리며 기다리는 레테의 모습. 진짜 귀여운 척하는 거 아니겠지? 시몬은 머리를 휘휘 가로저은 뒤 말했다. “분명 그 사냥꾼이 말하길, 머리카락이 이 정도로 내려왔다고 했으니까.” “네.” 레테는 계속해서 후드를 눌러쓴 채 머리카락을 붙였다 뗐다 붙였다 뗐다 반복하며 머리 길이를 체크한 뒤, 결론을 내렸다. “단발이네요.” “그리고 녹색 머리.” 시몬과 레테가 동시에 외쳤다. “마리첼로!” “마리첼로!” 선발생 중에 단발에 녹색 머리는 3번 마리첼로밖에 없었다. 애초에 마리첼로만 녹색 머리이기도 하고. “그리고 모항제 당일에 내 배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던 것도 마리첼로였어.” “상황이 딱딱 맞아떨어지긴 함다.” 레테가 싸늘해진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수상할 만큼.” “맞아. 수상하긴 한데……. 아, 저기 도착했다.” 시몬이 앞의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가 에이툴라가 있는 병실이지?” “네.” 에프넬의 의무 시설을 쓰고 있는 만큼, 경비는 상당히 삼엄했다. 레테는 머리를 다시금 원래의 흰색으로 되돌리고, 성녀를 증명하는 성의를 몸에 걸친 뒤 경비들의 검문을 통과했다. 그렇게 에이툴라가 있는 병실 앞에 섰다. 그녀를 담당하는 프리스트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성녀님, 정말로 지금 만나보셔야겠어요? 환자의 정신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해서 위험합니다. 며칠 뒤에 환자가 진정하면 다시 오시는 게…….” “시간이 없슴다.” 레테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에이툴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지 몰라요. 제게 맡겨주십쇼.” “……예.” 담당 프리스트가 물러난 뒤, 레테가 시몬을 보며 조그맣게 말했다. “에이툴라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니까 당신은 일단 뒤에서 기다려요. 나만 들어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 똑똑똑. 레테가 문을 노크했지만. 쥐 죽은 듯한 정적이 치밀었다. “들어가겠슴다.” 레테는 태연히 통보하고는 문을 열어젖혔다. 시몬도 조심스럽게 슬쩍 문 너머를 엿보았다. “……!” 끔찍한 광경이 보인다. 침대 구석에 벌벌 떨고 있는 에이툴라의 모습. 주위는 온통 머리카락으로 어지럽다. 심지어 병실 침대 위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뜯겨 있었고, 머리 한쪽이 휑했다. 어깨에는 정체불명의 손자국이 커다랗게 나 있었다. 몸부림치느라 몸에 힘이 없어 보였고, 잠도 자지 못한 듯 눈 밑에 그늘이 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녀 레테임다. 신수학 수업 때 봤으니 구면이죠?” 레테가 살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움찔하며 반응하더니 더더욱 벽 끝으로 몸을 붙였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제발 저리 가주세요.” 완전히 패닉에 빠진 모습. 하지만 레테는 꿋꿋이 그녀에게 걸어갔다. “선발생 동기들이 모두 걱정하고 있어요. 무슨 일을 겪은 거죠?” “제발, 오지 말아주세요. 제발, 그만! 살려주세요……!” 시몬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테를 바라보았지만, 레테는 계속 걸어갔다. “도와줄게요.” “필요 없어요! 나가주세요! 제발!” 레테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손을 올렸다. <레테 오리지널 – 라 피에타>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위가 경건한 신성으로 가득 차올랐다. 차갑고 냉랭하던 병실이 갑자기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했다. 쏴아아-시원한 바람이 불고, 허공에서 신성으로 이루어진 꽃잎들이 내려온다. “두려운가요?” 레테가 미소 지었다. “여신께서 지켜보고 계세요. 어떤 일이든, 어떤 공포나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어요. 제가 도와줄게요.” 에이툴라가 멍하니 있는 사이 레테가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천천히 호흡하세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세요.” 후읍. 하아. 후읍. 하아. 레테의 말대로 숨을 쉬고 내뱉고를 반복하던 에이툴라의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이내 레테를 힘껏 끌어안은 채 그녀의 품속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꽤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 끌어안은 채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세요. 위대한 어머니께서 자매님을 지켜주실 거예요.” 레테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올게요.” 그녀가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 “성녀님!” 에이툴라가 말했다. 레테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일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레테가 몸을 되돌렸다.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말해야겠어요!” 그녀가 덜덜 떨며 레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결심이 선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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