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66화 “누가 누굴 만난다구요?” 레테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시몬과 브로데릭은 걸어 다니는 폭탄을 목격한 것처럼 움찔했다. 이내 먼저 정신을 차린 브로데릭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예를 취했다. “여신과 가장 가까운 딸을 뵙……!” “브로데릭 교수님?” 레테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은 예배회 커리큘럼에 참여 일정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거기에 선발생들에게 전공 강요를 하셨다고요?” “아니! 그건 강요가 아니라 성스러운 복음을 전파할…….” “무엇보다.” 레테가 생긋 미소 짓더니 대뜸 옆에서 눈치를 보던 시몬의 귀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아앗-!” 귀를 붙잡힌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흘렸다. “보호 기간 중의 선발생을 꼬드겨 이성 교제를 주선하다니.” 화르르륵! 그녀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선발생의 이성 교제는 엄중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브로데릭은 거구에 걸맞지 않게 바로 쪼그라들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귀를 붙잡힌 시몬이 다급히 말했다. “그게 아니라! 가휀! 가휀 교수님을 만나 뵈려고……!” “?” 레테가 시몬을 바라보았고, 시몬이 입 모양으로 ‘작전! 작전!’ 하고 계속 말했다. 그제야 그녀가 시몬의 귀를 놓아주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브로데릭 교수님이시니 넘어가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 두 번 다시 없도록 하세요.” “서, 성녀님의 하해와 같은 자비에 망극할 따름입니다!” 브로데릭이 허둥지둥 답했다. 레테가 등을 돌려 걸어갔고, 시몬은 브로데릭에게 인사한 뒤 얼른 그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다짜고짜 이게 무슨 짓이야?” 아직도 귀 한쪽이 얼얼했다. 시몬이 항의하자 뒷짐을 쥔 레테가 하얀 머리카락을 파도처럼 휘날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 말임까?” 웃는 건 아까와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아까보다는 화난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진 느낌이다. “아까 왜 그렇게 화를 낸 건데.” “당연히 내야죠.” 그녀가 검지를 휘휘 흔들었다. “교수님도 보고 계신데, 명색이 예배회 책임자가 선발생의 이성 교제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되잖슴까?” “……그렇긴 해.” “그보다, 가휀을 만나보려는 건 그쪽 학교의 ‘세르네’ 때문이겠죠?”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네.” “로크섬에서 인상적인 만남이었으니까요.” 레테가 미치광이 광신도 ‘에버 키레’를 잡기 위해 로크섬으로 넘어왔을 때, 레테는 세르네와도 만났었다. -뿌리를 찾고 싶다면, 신성연방의 ‘가휀’이라는 사람을 찾아라. 미래의 시몬이 남긴 말. 세르네의 뿌리. 하지만 그녀는 하늘섬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키젠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해 두고 싶었다. “으음, 브로데릭 교수님이 가휀 교수님을 데려오는 게 가능할까요?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믿어봐야지.” 사실 처음에 시몬은 레테에게도 부탁해 보았지만, 레테가 따로 가휀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방학을 맞아 하늘섬에서 내려간 그는 모든 연락을 끊고 여행을 떠난 뒤였다. 하지만 브로데릭은 그를 찾아낼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제는 이제 됐슴다. 그보다 당신, 나 몰래 에프넬의 도서관에도 가고 있죠?” 시몬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레테가 훗 하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여기서 또 무슨 짓을 꾸미든 상관 안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게 뭔지는 기억해 주세요.” 시몬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야. 성녀와 살인자를 찾아내야지.” “…….” 레테가 가만히 시몬을 바라보았다. 혹시 원하는 답이 아니었나?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레테가 휙 먼저 앞서 나갔다. “내일 주말인데, 시간 있으심까?” “물론이지.” 그녀가 악동처럼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입술에 검지를 올렸다. “같이 조사하러 가요.” *** 그렇게 다음 날 아침. 하늘섬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이 시간만큼은 선발생들에게도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 물론 외박은 절대 엄금이고 잠은 숙소에 와서 자야 한다는 제약은 있다. 그리고 오늘은 레테와 합동 조사를 하기로 한 날. 시몬은 오랜만에 에프넬 교복을 벗고, 사복 차림으로 상업지구 앞에 나와 있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가로등에 몸을 기대어 멍하니 있는데. “시. 몬.”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시몬이 ‘왔어?’ 하고 답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헉 하고 헛숨 빠지는 소리를 냈다. 하늘색 블라우스와 무릎 위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스커트. 머리끝에 단 리본과 어깨에 가볍게 멘 가방. 무엇보다 머리색이 눈처럼 흰색이 아닌 살짝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양 갈래로 묶은 트윈테일을 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임다.” 그녀가 손을 흔들며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몬이 손끝을 파르르 떨며 그녀를 가리켰다. “무, 무슨……?” “저도 나름 성녀 신분인지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보거든요.” 그녀가 피곤한 듯 제 어깨를 두 차례 콩콩 두들겼다. “어디만 가면 거리가 봉쇄되고, 사람들이 몰리고, 기도해 달라 부탁받고, 피곤해서 가끔 이렇게 분장해서 홀로 밖에 나오기도 함다.” “…….” 흐음-하고 콧소리를 낸 그녀가 눈을 맹랑하게 반짝이며 시몬의 앞으로 쓱 한 걸음 다가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아니, 그…….” 평소의 단아한 백합향과는 조금 다른, 상큼한 레몬향이 느껴진다. 뺨이 붉게 물든 시몬이 딴청을 피우며 제 뺨을 긁적였다. “낯설어서.” 푸훗. 소리 내어 웃은 그녀가 몸을 홱 돌리며 앞서 걸었다. “출발하죠.” “어, 어디로?” “조사 장소로요.” *** 레테와 함께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신수의 숲. 신수의 수명은 인간보다 길다. 백 년에서 삼백 년까지 사는 개체들도 종종 존재한다. 하지만 신수는 일생에 단 한 명의 주인만을 선택하기 때문에 주인이 죽은 뒤의 신수들을 관리할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에프넬의 하늘섬에서는 주인이 죽고 남은 신수들을 관리하는 숲이 있는데, 이곳을 ‘신수의 숲’이라고 부른다. 시몬과 레테는 신수의 숲 관리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침입자가 있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관리원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 숲에는 예민하고 사나운 신수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영역을 강박적으로 지키죠. 외부 침입자가 있었다면 냄새를 맡고 달려든 신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겼을 겁니다.” “그렇군요.” 시몬이 그 말에 긍정하며 옆을 바라보았다. “갈기갈기…….” 그 옆에는 레테가 풀밭에 앉아서 신수들과 노는 모습이 보였다. 사슴을 비롯한 포유류 신수들이 할짝할짝 레테의 뺨을 핥거나 손가락을 깨물며 놀았고,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는 온갖 새와 다람쥐들이 올라타 있었다. 관리원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별의 성녀님의 신수 친화력은 에프넬 최고 수준이니까요. 이런 일은 드물…….” -크릉! 어느새 시몬의 냄새를 맡고 마중 나온 어미 세라피온이 시몬에게 애교를 부려댔다. 시몬이 자리에 엎어졌고 세라피온의 새끼가 다가와 시몬의 뺨을 핥았다. 신수 새들이 날아와 시몬의 몸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관리원의 얼굴이 벌게졌다. “드, 드뭅니다! 제 경비 경력 15년 동안 처음 보는 일입니다! 정말 드문 일이라고요!” 시몬이 자세를 고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정리하자면-” 시몬이 새끼 세라피온을 ‘웃차’ 소리를 내며 끌어안았다. -왜애옹! 아직 새끼라 그런지 사자보다는 고양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수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세라피온의 새끼를 무사히 데려갈 수 있었을 거다.” “이,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세라피온의 새끼는 경계심이 많아서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힘들 겁니다!” 시몬과 레테와 동시에 시선을 마주했다. 이내 레테가 다가와 관리원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귓속말했다. “시몬, 신수학 시간에 신수를 보유하고 있던 학생들, 다 기억나심까?” “물론이야.” 선발생 10명 중에 6명이 신수를 보유했다. 1번 메릴, 2번 스웨이, 3번 마리첼로, 8번 에이툴라, 9번 리사라, 10번 시몬까지. “아직 범위가 넓긴 하지만, 용의자가 10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긴 했네.” “네.” 그렇게 정보를 얻을 만큼 얻은 뒤 신수의 숲에서 빠져나왔다. 다음으로 갈 곳은 마을이었다. 바로 새끼 세라피온이 발견된 마을이다. ‘아, 여기 익숙하다.’ 신수의 숲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 마을. 모항제 행사를 할 때 시몬이 신수의 습격을 받았던 성지의 근처이자, 밤에는 사람들이 이상한 탈을 쓰고 춤을 추던 그 마을이었다. 2번 스웨이를 만난 곳이기도 했다. 레테는 펼쳐둔 약도를 보며 빠르게 안내했고, 이내 세라피온 새끼가 발견된 한 시골 가정집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노파 한 명이 홀로 살고 있었다. “모항제 보다가 허리가 꽉 찌르게 아파서 돌아오는디, 글쎄 막 애꿎은 울음소리가 들렸단 말여! 가보니까 우리 집 개가 깽깽거리며 울어댔고, 그 옆의 바구니에 신수가 들어 있었어. 놀라서 바로 신고했지.” “바로 돌아가서 신고하신 거예요? 할머니 힘드셨겠어요!” “우후후, 할미 건강도 신경 써주고 고맙네. 아이구 고와라. 우리 손녀가 딱 아가씨뻘 되는디.” 노파가 레테의 머리를 쓰담쓰담했고 레테도 헤헤 웃었다. 그렇게 그녀가 노파에게 예쁨받고 있는 사이, 시몬은 팔소매 힘껏 걷어붙이고 도끼를 든 채 장작 패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물론 허리가 아픈 노파의 점수를 따기 위한 행동이었다. 노파에게 생글생글 웃어 보인 레테가 시몬을 보며 지시했다. “손 보인다 보여! 더 팍팍 못 하심까!” “…….”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저희가 이번 겨울치 장작까지 전부 해드리고 갈게요!” “어이구 고마우이!” ‘왜 재주는 내가 넘고 생색은…….’ 시몬이 속으로 투덜거렸고, 레테는 눈을 예리하게 뜨고 질문했다. “그럼 신수가 든 바구니를 놓고 간 사람은 정말 티끌만큼도 못 보신 건가요? 대강의 인상착의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인상착의가 머여.” “옷 입은 차림이나 머리 모양. 머리색 같은 거요!” “내는 못 봤지.” 노파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게야. 다들 모항제 준비하러 마을을 비웠을 테니.” “아쉽네요.” “으으음.” 노파가 한쪽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말했다. “참, 참, 그 양반이라면 봤을지도 모르겠어.” “네?” “모항제든 뭐든 관심이 없는 양반이 있어. 괴짜 중에 괴짜인디, 그 시간에 집에 있었을 거여.” 시몬과 레테의 시선이 재빨리 교차했다. *** 시몬과 레테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로 노파가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낡고 텅 빈 초가집.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냥꾼의 집인 걸까, 안에는 온갖 사냥감들의 부산물이 가득했다. 옆에는 거꾸로 뒤집힌 채 매달린 죽은 사슴이 흘리는 피가 바구니에 담기고 있었다. “윽.” 레테는 비위가 좋지 않은 듯 코를 막으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반면 네크로맨서인 시몬은 제집인 것처럼 태연하게 들어왔다. 그러다 직업병이 발동하여 테이블에 놓인 뼈들부터 살폈다. “왜 그러심까?” “음.” 시몬의 표정이 살짝 얼어붙었다. “아무래도 이 사냥꾼,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네.” “왜요?” “동물 뼈 사이에 사람 뼈도 섞여 있어.” 레테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다른 의미에서 살인자잖슴까! 바로 체포해야 함다!”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지. 앉아서 기다려 보자.”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사냥꾼의 복귀가 언제가 될지 몰랐지만, 무작정 찾아온 건 이쪽이니 기다려 봐야 했다. “여기까지만 조사해 보고, 8번 에이툴라가 있는 병실에 가보겠슴다.” 레테의 말에 시몬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돼? 사람의 접근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며.”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만나야죠. 싫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레테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에이툴라. 뭔가 이상한 걸 본 게 틀림없슴다.” *** 같은 시각. 에프넬 의무실. “에이툴라 학생! 에이툴라 학생! 진정하세요!” 덜덜. 덜덜덜덜덜. 환자복 차림의 8번 에이툴라가 쪼그려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말 안 할게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결국 대화에 실패한 의무실의 프리스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떠났다. 그리고 혼자 남겨져 떨고 있는 에이툴라의 몸에는,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손바닥 자국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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