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16화 시몬은 지체 없이 세르네가 보내온 깃털을 머리에 꽂았다. 그러자 시야가 일순 어두워지고, 그녀가 남긴 기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여기는…… 왕도잖아?’ 세르네의 기억 속에서는 천년향 왕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시점은 그녀의 ‘깃털’이었다. 깃털 하나가 궁궐의 성벽을 따라 날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지점에 멈춰서 벽면 안으로 쑥 스며들었다. 그렇게 깃털은 궁궐로 진입했고, 빠르게 내부를 헤집고 다녔다.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하고, 정원을 지나,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깃털은 어느 순간 계단을 발견하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둥글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간 끝에는 썩어 문드러진 우물이 보였다. 깃털은 곧장 그 우물로 파고들었고, 우물 바닥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곳은. “!” 두근 두근 두근-!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심장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 깃털이 찢어지며 기억이 끝났다. 세르네의 기억을 읽은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괜찮나? 뭘 본 거지?” 옆에서 지켜보던 카쟌이 물었다. “……세르네가 천년향 왕실 측에서 보관하고 있는 중요한 뭔가를 찾아냈어요.” 시몬이 잠시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커다란 심장이요. 그게 정체 모를 장소에 놓여 있었어요.” “……심장이라.” 카쟌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시몬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나, 시몬.” “그 심장을 제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만약 다음에 임페라투스 콤펠로를 쓸 거라면, 몬스터가 아니라 그 심장을 봐야 해.’ 그래야 죽음의 실마리를 풀 가장 큰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시몬은 확신했다. * * * 모두가 죽음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요소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심장을 임페라투스 콤펠로로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한 시몬은 조교들에게 물어물어 제인의 간이 연구실로 향했다. ‘와……!’ 과연 키젠 교수. 학생들은 자그마한 간이 건물 하나면 공방을 꾸리기 충분했지만 제인은 차원이 달랐다. 예전에 봤던 사령학 교수 스테이시 세잔처럼 성이라도 가지고 다니는 걸까. 그녀는 20개의 연구실을 총동원해 작업하고 있었다. 공간은 빽빽하게 연구 재료로 가득했고, 그 중앙에는 큼지막한 마법진이 번쩍이고 있었다. 바로 이 중앙에서 제인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셔.’ 죽음을 만들기 위한 노력. 일곱 과목의 키젠 교수들이 전부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거였다. 자신이 심장을 콤펠로로 보러 가기 전에 해결해 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슨 일입니까, 학생회장.” 잠시 작업을 멈춘 제인이 시몬을 향해 돌아섰다. 정장을 쫙 차려입은 평소의 빈틈없는 모습과는 달리, 흐트러진 머리에 짙은 도수의 안경, 작업복을 걸친 모습이었다. “왕도에 잠입해 있는 세르네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받았습니다.” 시몬은 세르네의 깃털을 통해 본 것들을 제인에게 설명했고, 그 과정에서 임페라투스 콤펠로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제인은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바힐 교수님이 학생회장에게 콤펠로를 쓰게 한 겁니까.” “제 선택이었습니다.” 시몬이 얼른 말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학생회장이 만들어낸 ‘각인의 룬’을 연구에 활용하고 있는 입장이니 뭐라 할 말은 없죠.” 그러고 보니 이 거대 마법진의 중앙에 박힌 게 바로 각인의 룬이었다. 제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한 가지 학생회장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 그녀가 진지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콤펠로 상태에 계속 들어가고 싶나요? 진리를 탐구하고 싶다거나, 진정한 세상은 그쪽이라고 생각하나요?” 제인이 염려하는 건 당연했다. 시몬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이 세상에서 모두와 함께 지내는 거고, 콤펠로 상태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오로지 이번 천년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제인은 비로소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을 허가하겠습니다. 하지만 콤펠로의 사용은 이번 작전 이후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세요. 더는 학생회장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학과의 에이젤 학생을 데리고 가세요.” 그녀가 손바닥을 펼쳤다. “왕도에 도착하는 시간을 줄여줄 겁니다.” * * * 제인의 허가를 받아낸 시몬은 바로 에이젤을 찾아나섰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200명의 키젠 학생들이 각자 저만치 흩어져서 죽음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딱 에이젤 한 사람을 골라서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혹시 에이젤 선배님 본 사람 있어?” 시몬이 주변 동기들에게 그렇게 묻고 다녔지만, 대부분 두 팔로 X자를 그리거나,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마 이쯤에 계실 것 같은데.’ 그나마 추측을 해보자면, 에이젤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부담스러워하니 학생들이 바글거리는 중심 지역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구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천년향 곳곳을 돌아다니는 중,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메이린!”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커다란 얼음을 만들고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한차례 흑마법을 구사한 그녀가 시몬을 발견하곤 밝게 웃으며 돌아보았다. “아, 시몬! 무슨 일이야?” 시몬은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천년향의 왕도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메이린은 자신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시몬은 메이린마저 연구에 빠지면 엘리멘탈 마스터의 대리연산을 써줄 사람이 없다며 만류했다.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혹시 에이젤 선배님이 어딨는지 알아?” “응.”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를 가리켰다. 시몬의 고개도 위로 향했다. ‘이런.’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쩐지. 천년향의 구름은 보통 띠 모양처럼 넓게 퍼져 있는데, 저 구름만 유독 뭉게구름처럼 단단히 뭉쳐 있었다. “저긴 칠흑 바람계를 써야 올라갈 수 있어. 올려보내 줄까?” “부탁해.” 메이린은 쓱쓱 지면에 마법진을 그렸고, 시몬이 그 위에 올라섰다. 이내 그녀가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맹렬한 바람이 몰아치며 시몬을 하늘로 쭉 밀어 올렸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 위에 도착했다. ‘웃차.’ 시몬은 구름 위에 발을 내려놓았다. 역시나 보통의 구름은 아닌 듯, 발이 푹 빠져서 꺼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으으음-” 구름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에이젤의 모습이 보였다. 주위에는 과자 봉투가 아무렇지 않게 굴러다니고, 책들이 흩어져 있었다. 세상 태연한 그의 모습에 시몬이 한숨을 푹 쉬고는 다가와 에이젤의 어깨를 흔들었다. “에이젤 선배님.” “우아앗! 저 안 쳐다봤어요!” 잠꼬대 같은 말을 내뱉으며 화들짝 놀라 일어난 에이젤이 머리를 감쌌다. 그러다 뒤늦게 시몬을 바라보곤 의아한 표정으로 팔을 내렸다. “시, 시몬? 어떻게 여기까지…….” “메이린이 도와줬어요. 그보다-”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시몬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눈길로 에이젤을 바라보았다. “다들 죽음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선배님은 홀로 이런 곳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계셨네요.” “오해야.” 에이젤이 휙휙 고개를 저어 보인 뒤, 손가락으로 한 바퀴 원을 그렸다. 뭔가 기압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든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가, 얼른 뒤로 물러났다. 쿠웅! 쿵! 하늘에서 수납장들이 연달아 떨어졌다. 그 안에서 온갖 연구자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단순히 보관된 문서가 아니라 에이젤이 막 작성한 자료인 듯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고-” 에이젤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천년향에서 죽음을 만든다는 게 불가능하단 결론을 도출했으니 더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역시 유약한 최강, 바로 결론을 내리신 건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할 뿐, 흑마법 능력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대단한 인력이 연구를 포기해 버린 게 아쉽다고 생각한 시몬이 도발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포기하시는 건가요?” “안 하는 것뿐이야.” 에이젤이 다시 푹신한 구름 위에 누웠다. “다시 말하지만 천년향에서 죽음을 만들어낼 순 없어.” “포기하시는 것 맞네요.” “불가능한 걸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태연한 척하지만 말투에 살짝 가시가 돋아 있었다. 에이젤도 이 상황이 분한 건 맞는 듯했다. 시몬은 에이젤이 노트에 적은 ‘각인의 룬’ 분석 내용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그럼 천년향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나, 각인의 룬 같은 단서가 또 하나 밝혀진다면요?” “……그렇다면 가능성이 생기지.” “좋아요. 그럼 같이 가시죠.” 시몬은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천년향 왕실 측이 보관하고 있는 그 거대한 심장을 임페라투스 콤펠로로 보면 다른 원리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에이젤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의미하게 누워 있는 것보단 낫겠네. 그런데 거기까지 내 바람을 타고 가면…… 칠흑을 다 소모할 테니 전투엔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러니 내가 가겠다.” 휘오오오! 또 한 차례의 바람이 불더니, 이번엔 카쟌이 가방을 어깨에 짊어진 채 나타났다. 에이젤이 흠칫하며 다리를 끌어모았다. “내, 내 사적인 장소에 두 명이나…….” “카쟌!” 카쟌이 팔을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같이 가서 싸우는 쪽이 더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잘 부탁드립니다!” 시몬이 에이젤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셋이면 괜찮겠죠?” 에이젤은 머리를 잠시 머리를 헝클며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이 멤버면 좋네. 그럼 언제 출발해?” 시몬이 씩 웃었다. “지금 당장, 부탁드립니다. 방향은 제가 알고 있어요.” * * * 같은 시각. 숙소 대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까마득한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산. “아, 알겠소!” “그만한다니까.” 그곳에 지어진 건물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손을 들고 무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그들을 포위한 채 으르렁거리는 건 데스 와이번들이었다. 이 건물 전체가 6군단의 비행형 언데드들에게 장악당해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 저벅 저벅. 용의 날개를 접은 한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번거롭게 하는군.” 다름 아닌 헥토르 무어였다. 그는 죽음 연구를 진행하는 게 아닌, 본인이 계속하던 개별 조사를 강행하고 있었다. 이내 헥토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는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키젠을 불러들인 장본인가?” 그렇게 말한 헥토르가 무겁게 덧붙였다. “취월봉의 태수.” “…….” 천년향의 왕에게 밉보여 천도제에도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태수. 그리고 키젠의 합숙을 초대하고, 허가한 인물. 그가 바로 취월봉의 태수였다. 헥토르의 물음에, 태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나는 남에게 이용당하는 건 질색이다.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지.” 헥토르가 팔짱을 꼈다. “남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그쪽도 카드를 전부 까는 게 공평하지 않겠나.” “…….” 마침내 취월봉의 태수가 고개를 돌려 헥토르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알고 싶나?” “네놈들의 왕이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했다.” 헥토르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천년향의 왕과 불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라.”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