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61화 모항제는 계속되었다. 시몬은 알록달록한 꽃잎이 떠 있는 수로 위에서 노를 저었다. 헤엄치는 잉어들과 함께 나아가다 보면 중간중간마다 작은 선착장이 보인다. 그곳에 선발생들이 한 명씩 내려서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 노선이 꼬이거나 중복되면 큰일이니, 선발생의 번호마다 내려야 할 지점은 정해져 있었다. “유클리드 님! 수고하세요!” “응. 리사라.” 리사라와 작별 인사를 한 시몬은 첫 번째 선착장에 홀로 내렸다. 처음엔 임무라기에 긴장했다. 키젠에서 임무란 건, 목숨을 걸고 적을 없애거나 상대와의 경쟁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저기 어린 선교사가 왔소!” “기다렸어요!” 에프넬에 그런 무지막지한 경쟁 체계는 없다. 모항제는 경전에 나오는 일화를 재현하는 데 충실할 뿐이다. 시몬은 주위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걸었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좋아해 주시는 거지?’ 시몬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의아했다. 어쨌거나 길의 끝에는 목에 하얀 양털을 두른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주위엔 축제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라우스! 어린 선교사여.” “라우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노인은 자신이 목에 두르고 있던 두툼한 양털 목도리를 시몬의 목에 둘러준 뒤, 경전에 수록된 내용을 줄줄 외웠다. “위대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어린 선교사가 마을의 우환을 씻으러 지금 성지로 출발하겠소!” 이렇게 첫 번째 임무가 시작된다. 시몬은 양털을 목에 두른 채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달렸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부지런히 달리니 마을 끝에 위치한 ‘성지’에 도착했다. 종교적 이유로 성지에는 누구도 발을 디딜 수 없다. 오로지 모항제 기간의 선발생들만 접근이 허용된다. ‘저거구나.’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과거에는 신전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집터 정도만 남아 있는 유적. 이 유적의 낡은 기둥에 작년 모항제에 참가한 선발생 선배가 걸어둔 양털이 보인다. 때가 묻어서 더럽고 새까맣다. 시몬은 오염된 양털을 회수한 뒤, 아까 받았던 희고 깨끗한 양털을 기둥에 걸어두었다. 뒤로 물러난 그가 당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 이게 끝이라고?’ 키젠이었으면 이 즈음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지거나, 몬스터가 튀어나오거나, 갑자기 시험관이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며 덤벼드는 등등 뭐라도 나왔을 것이다. 방심시키고 뒤통수를 치려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2년간의 키젠 생활로 불신만 가득해진 시몬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우리 마을의 영웅이 돌아왔소! 그냥 양털을 성지에 걸어놓고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진짜 마을을 구한 영웅이 내려온 것처럼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시몬이 가져온 오래된 양털을 화로에 태우는 의식을 치를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리거나 감격에 차서 기도하기도 했다. ‘얼떨떨하네.’ 무한경쟁주의인 키젠에서 살아남으며 학생회장까지 된 시몬은 이런 에프넬의 관습이 다소 어색했다. 그래도. -이걸로 올해도 여신께서 우리 마을을 보살펴 주실게요. -학생! 사람들의 앞길을 비출 훌륭한 등대 같은 프리스트가 되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이었으니 됐다. 믿는 것. 믿음이 신성의 근간이자, 신성연방의 원동력이다. 연방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정체된 사회를 유지하지만, 끊임없이 발전과 경쟁을 추구하는 키젠과 여전히 대등한 전력을 이루고 있다. ‘신기한 동네.’ 시몬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아무나 못 하는 경험이야. 하늘섬에 오길 잘했어.’ 시몬은 다시 배에 올라타 노를 저으며 다음 임무를 위해 나아갔다. 사람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배웅했다. ‘뭐.’ 가끔 이렇게 머리 텅 비우는 느낌으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발생들이 수로를 따라 나아가며, 새 양털을 걸어두어야 할 성지는 한 명당 세 곳이다. 즉 10명의 선발생이 총 30곳의 성지를 방문해야 한다. 선발생들이 모든 성지를 방문한 뒤, 마지막에는 모든 학생이 모여 합동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모항제’가 끝나게 된다. 이후 에프넬의 전 지역에서 성대한 잔치가 열린다. 시몬은 두 곳의 성지를 방문했고, 이제 자신의 할당량인 마지막 성지만 남겨두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교사님!” “조금만 더 힘내세요!” 마지막 마을 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며, 시몬은 새 양털을 목에 두른 채 성지를 향해 뛰었다. ‘다들 이 축제에 진심이라서 대충 할 수가 없네.’ 세 번째 성지는 꽤 먼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시몬은 부지런히 달려야 했다. 이제는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고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성지라 인적이 끊겨서 그런지 살짝 으스스한 분위기가 났다. 꼬박 30분을 달린 끝에, 시몬은 성지 내부 폐허가 된 신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윽.’ 이 성지 기둥에 걸려 있는 작년 양털은 냄새가 지독했다. 벌레도 웽웽 꼬여 있었다. 시몬은 손을 휘둘러 벌레들을 쫓아낸 뒤 더러워진 양털을 바닥에 내려놓고, 방금 가져온 깨끗한 새 양털을 걸어놓았다. ‘이걸로 마지막 임무도 종료.’ 시몬이 더러워진 양털을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그럼 가볼…….’ 순간 뒷목이 뻣뻣하게 당기며 오감이 보내는 적신호를 느꼈다. 어깨를 한 차례 부르르 떤 시몬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측면을 바라보았다. 성지 바로 옆에 위치한 어두운 숲. 빼곡한 나무 사이로 세 쌍의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쿵! 쿵! 이내 숲에서 머리 세 개 달린 거대한 백색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시몬이 이내 손목을 털며 미소 지었다. “역시,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아무리 에프넬이라고 해도 뭔가 하나 정도는 시련을 준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르르르르! 머리 세 개 달린 사자가 시몬 쪽으로 돌진해 왔다. 시몬도 전의를 끌어올리며 옷 안에 넣어둔 목걸이를 붙잡았다. “나와! 하양아! 까망아!” -야오옹! -냥! 냥! 하얗고 까만 두 마리 신수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이내 시몬도 신성의 구체를 만들어 하늘로 던졌다. “사물화야!” 두 신수가 냠! 하고 신성을 물어뜯더니 빙글빙글 회전하며 바퀴 형태의 차크람으로 변했다. 무기를 붙잡은 시몬은 우선 탐색전을 벌이려 했지만. ‘빠, 빨라!’ 거대한 사자 신수가 가속하며 돌진하고 있었다. 뒤는 바로 유적이다. 이거 고고학 가치가 엄청난 유물 아닌가? 손상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크읍!” 유적을 지키기 위해 시몬은 도망치지 않고 완성된 신수 차크람을 방패처럼 교차해 들었다. 곧장 달려온 신수가 돌진하는 힘 그대로 시몬에게 부딪혀 왔다. 꾸우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시몬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고양이 신수들이 충격을 받아 아파하는 게 시몬에게도 느껴졌다. ‘뭐야, 이거.’ 간신히 버텼지만 무릎이 꺾였다. 시몬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이번엔 신수가 발톱을 세우고 앞발을 휘둘렀지만, 잽싸게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해낸 시몬이 슬라이딩하듯 사자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왔다. ‘장난이 아니잖아!’ -크르륵! 신수 사자가 눈이 벌게진 채 시몬을 공격했다. 신수는 분노로 눈이 돌아가 폭주했고, 방금의 공격도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경험 많은 키젠 3학년 시몬이 아니라, 보통의 선발생이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인 거지? 계획된 축제 절차가 아니라 돌발 사고인가?’ 시몬의 눈이 잽싸게 돌아갔다. 사자가 차고 있는 목걸이가 보인다. 신성연방의 인장. 이건 연방에서 직접 관리하는 신수였다. 저 목걸이를 찬 신수는 잡아선 안 된다고 신인 예배회 첫 시간에 리리넷이나 레테가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연방에서 관리하는 신수가 폭주해서 사람을 공격하고 있어. 이유는?’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었지만, 지금은 저 신수가 분노로 눈이 돌아간 상태. 당장은 저 분노를 한풀 꺾어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가자, 얘들아.” -야옹! 시몬과 고양이 신수들이 신성을 폭발시키며 전투에 돌입했다. *** “무슨 일인가!” 통신 수정구의 보고를 들은 중년의 팔라딘이 부하들을 이끌고 성지 앞에 도착했다. 차마 성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팔라딘들이 즉각 경례하며 보고했다. “보, 보고드립니다! 성지에 신수 세라피온이 폭주한 채 나타났습니다! 모항제 의식을 진행하던 학생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중년의 팔라딘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 사실을 알면서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멀리서 금속이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성지를 지키던 팔라딘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시지 않습니까! 성지 안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갔다가 여신의 노여움을 사기라도 하면……!”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학생이 공격받고 있단 말이다!” “하오나……!” 듣다 못한 중년 팔라딘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검을 확 뽑아냈다. “위대한 어머니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바닥에 대더니 다른 한 손에 쥔 검으로 손등을 내리찍었다. 푸욱! 피가 터져 나오며 부하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린 학생을 구하기 위해 성지에 들어간 것으로 여신께서 죄를 물으실 경우, 나 캄브린이 모든 죄를 받고 대신 죽겠다! 이 붉은 피가 그것을 증명한다!” 퍽! 그가 손등에 박힌 검을 빼내며 성지에 발을 디뎠다. “학생을 구해라!” 그제야 팔라딘들이 검을 뽑아 들고 성지로 달려갔다. 카아앙! 챙! 굉음과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 부디 숨만 붙어 있기를!’ 중년 팔라딘이 피가 철철 흐르는 손등에 대충 붕대만 두른 뒤 검을 붙잡았다. 저 멀리서 머리 세 개 달린 신수, 세라피온이 보인다. 그런데. “하아아아압!” 도망치거나 숨어 있을 줄 알았던 선발생이, 대놓고 몸을 드러낸 채 세라피온과 싸우고 있었다. 카아아아앙! 차크람을 휘둘러 앞발을 교묘하게 튕겨낸 시몬이 반대쪽 손으로 차크람을 날려 세라피온의 몸을 낮추게 했다. 이내 오른팔의 차크람도 던진 그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텅 빈 두 손을 맞잡고 아래로 내려치는 시늉을 했다. <엑소시즘> 쿠르르르르릉! 눈부신 하얀 번개가 세라피온의 안면을 강타했다. 바닥에 멋들어지게 미끄러지듯 착지한 시몬이 두 팔을 들어서, 되돌아오는 차크람을 가뿐히 손안에 회수했다. 세라피온이 정신 차리듯 세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더니 다시 돌진했고, 시몬도 물러서지 않고 맞상대했다. 우월한 성투 능력. 차크람을 자유자재로 던져서 방향과 움직임을 차단하고, 빈 손이 되었을 때는 백마법을 발현해서 원거리 공격으로 견제한다. 특히 자신보다 덩치가 큰 신수를 상대하며 거리를 유지하는 솜씨. 어지간한 베테랑의 노련함마저 엿보였다. ‘선발생이 세라피온과 대등하게 싸우다니. 믿기 힘들군!’ 달려가던 중년 팔라딘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외쳤다. “학생! 우리가 왔으니 물러나게!” 시몬도 팔라딘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투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면 좀 정신 차렸겠지?’ 저 신수는 머리에 엑소시즘 한 방을 정통으로 맞은 직후 고개를 계속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 신수가 함성을 내질렀다. 저건 분노가 아니라, ‘절규’다. 뭔가 사정이 있어 보인다. ‘소통의 여지는 있어. 그럼, 레테에게 배운 대로.’ 후우읍. 시몬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손에 든 양 차크람을 풀밭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똑바로 서서 오른팔을 뻗었다. “무, 무슨……!” “도망치십시오! 학생!” 신수와 눈을 마주치고. 개등(開燈) 의식에 따라 신성을 흩뿌리며. 말한다. “멈춰.” 처억! 신수의 벌어진 아가리가 시몬의 손 앞에서 거짓말처럼 멈췄다. “진정해.” 시몬이 계속해서 신성을 뿜어내며 한 걸음 다가갔다. 세라피온이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지만 시몬은 두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서 그의 콧잔등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난 네 적이 아니야.” 그제야. 으르렁거리던 세라피온의 입이 완전히 다물어졌다. “……말이 안 나오는군.” 이제 막 하늘섬에 올라온 선발생이 손을 들어 대형 신수를 멈추게 했다. 봉쇄구와 사슬 같은 장비를 들고 한바탕 싸울 각오를 한 팔라딘들은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신수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시몬이 팔라딘을 보며 그렇게 경고한 뒤, 다시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유적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화가 난 이유가 있을 텐데.’ -야옹! 그때 차크람에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까망이가 울음소리를 내며 발끝으로 슉슉 앞을 가리켰다. 바구니가 보였다. 시몬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건…….” 바구니에 든 건 털이 잔뜩 묻어 있는 작은 방석이었다. 어딘가 짐승 고린내 같은 게 났다. -크릉! 동시에 밖에서 세라피온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얼른 뛰어가서 그 방석을 신수에게 보였다. “네 새끼를 찾고 있는 거지? 여긴 없어. 그냥 여기 네 새끼의 냄새가 묻어 있었을 뿐이야.” 시몬이 방석을 내려놓자, 세라피온이 안타까운 소리를 내며 머리로 방석을 비볐다. 시몬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새끼는 반드시 우리가 찾아낼게.” 그 말을 알아들은 걸까. 방석에 얼굴을 비비던 세라피온이 혓바닥으로 시몬의 뺨을 할짝댔다. 시몬이 아하하 웃었다. “이게 무슨…….” “들으셨죠?” 세라피온의 턱을 마구 쓰다듬던 시몬이 팔라딘들을 보며 말했다. “책임자인 레테 성녀님이 곧 오실 겁니다.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지금 바로 이 아이의 새끼를 찾아주세요.” 새끼를 빼돌리고, 그 새끼의 냄새가 묻은 방석을 이 성지에 두었다. 이건 틀림없이. ‘살인자가 날 죽이려 한 거야.’ 시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행이다. 날 확실히 신경 쓰고 있구나.’ 드디어 살인자가 움직였고. 실마리가 잡혔다. ‘이번 일은 놈의 실수야.’ 어떤 방식으로든 단서가 남아 있으리라. 이제야 이쪽에서 제대로 치고 나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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