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5화 “귀여워어!” 선발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시몬의 신수 고양이 두 마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신수들은 간만의 사람의 손길이 기분 좋은지 발라당 드러누웠고, 학생들의 자지러질 듯한 비명이 뒤따랐다. “……저런 게 신수라고?” 메릴은 본인의 커다란 수사슴 신수에 쏠렸던 관심이 저쪽으로 넘어가 버리자, 바로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없네. 쟤들로 어떻게 싸울 건데? 애교 공격이라도 할 건가?”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메릴의 가시 돋친 말은 무시한 채, 선발생들은 그저 고양이 신수를 쓰다듬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 “유클리드 사제님!” 쪼그려 앉아서 고양이를 간지럽히던 한 여학생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저번에 같이 밥을 먹었던 9번 리사라였다. “이 아이들 이름이 뭐예요?” ‘아, 오늘은 떨지도 않고 말도 안 더듬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답했다. “하얀 애는 하양이, 까만 애는 까망이.” “귀엽다-!” 리사라를 시작으로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그동안 없던 관심이 한 번에 쏟아지자 시몬은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쉽게 친해질 줄 알았으면 진작에 신수를 꺼낼걸!’ 시몬이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 사이 또 다른 질문이 쏟아졌다. “이 아이들! 태어난 곳은 어디예요?” “아, 그게…….” 시몬이 미리 생각해 둔 변명거리를 떠올리며 답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아이들이야. 어미한테 버려진 새끼인 줄 알고 키웠는데, 알고 보니 신수였어.” “어머나-!” “운명 같아요!” 까다로운 신수학 전문가는 신수의 출신 성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지만, 적당한 감동 스토리로 무마하니 다들 납득하는 모습. 사실 길을 가다가 발견한 건 사실이었다. 그 장소가 네크로맨서들이 우글거리는 키젠 캠퍼스라는 점이 문제지만. “이 아이들 몇 살이에요?” “완전형이에요? 변신형이에요?” “처음 신성을 부여할 때 거부 증상은 없었나요? 저희 아이는 고생 좀 해서.” “신수로 각성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질문이 대처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몬이 곤란한 표정으로 답하려는 그때. -야옹! -냥! 냥! 사람의 손길을 만끽하던 신수들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파바밧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선발생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 방향을 응시했다. 레테가 다가오고 있었다. 레테를 발견한 신수 고양이들은 바로 달려가 레테의 다리에 들러붙었고, 머리를 비비거나 아양을 떨었다. 꺄아아아아! 곧바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학생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역시 레테 성녀님은 다르네요! 초면인데 신수들이 이렇게 쉽게 따르다니!” “성녀님도 전공이 신수학이시잖아요! 신수 친화력이 뛰어나신 게 틀림없어요!” “흠.” 레테 본인도 고양이 신수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달려와 줬다는 사실이 무척 흡족한 것 같았다. 그녀가 익숙한 동작으로 두 고양이를 끌어안고 둥기둥기하자 고양이들은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아주 자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오랜만이야.” -야옹! 그렇게 하양이와 까망이의 귀여움 폭격으로, 본의 아니게 중단된 수업이 다시금 재개되었다. 레테의 신수학과 2학년 후배들이 나서서 선발생들을 한 명 한 명 코치해 주었고, 그사이 레테는 직접 시몬을 데리고 다른 학생들이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찍이 떨어진 위치로 이동했다. “그 곰돌이, 아칼리온은 안 꺼내는 검까?” 풀밭에 앉은 레테가 하양이의 머리를 휙휙 쓰다듬으며 물었다. 시몬이 잠깐 주변과의 거리를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 아칼리온은 원래 다른 프리스트가 가지고 있던 신수였잖아.” “그러다 아칼리온이 당신을 선택했죠.” “아무튼, 누가 아칼리온을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려고.” “네, 네. 제대로 조심해야 한다는 자각이 박혀 있는 것 같아 다행임다.” 레테가 두 손으로 간질간질 하양이의 배를 긁어주니 하양이가 꺄륵거리며 좋아했다. 레테도 환하게 웃었다. 오래간만에 순수한 얼굴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다 시몬과 눈을 마주치니, 바로 표정을 고치고 싸늘한 눈동자로 노려보았다. “뭘 꼬라봄까? 확 죽을라고.” “……내 신수거든.” 레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이제 수업을 시작하죠. 오랜만에 볼까요? 이 아이들의 ‘사물화’를.” “좋아.” 시몬이 후읍 숨을 들이마시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뭘 하려는 걸 아는지, 두 마리의 신수가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들었다. 이내 시몬이 손안에서 잘 빚은 신성의 구를 만들어낸 뒤 공중으로 던져 올렸고, 두 고양이도 그것을 따라 펄쩍 뛰어서 하늘로 치솟았다. 두 고양이가 하나의 신성을 동시에 덥석 문 뒤에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했다. -사물화다! -정말이네! 저 멀리 떨어져 있던 2학년 학생 두 명이 탄성을 흘렸다. 가장 희귀하고, 극소수의 신수들만 가능한 능력인 ‘사물화’. 그것은 무기, 비행선, 작은 요새에 이르기까지 변신할 수 있는 형태가 가지각색이었다. 그리고 시몬의 하양이와 까망이가 변신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마차’였다. 그렇게 공중에 떠오른 새끼 고양이들의 몸이 확 커진 상태로 내려왔다. 주위에서 기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 시몬과 레테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마차가 아니라 흰색과 검은색이 온통 뒤엉킨 잡동사니가 되어 있었다. 바퀴는 위에 달려 있고, 몸통은 꺾인 파이프처럼 구불구불했다. 이 모습이 불편한지 바로 펑! 소리를 내며 두 고양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실패했네요.” 레테가 말했다. 당황한 시몬이 쪼그려 앉았다. “너희들 갑자기 왜 그래? 전에는 잘했잖아? 배고파?” -냐옹! 잠깐 신성도 줘보고 먹을 것도 준 뒤에 다시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삐뚤빼뚤한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마차 바퀴는 아래가 아니라 계속 위에 붙어 있었다. 세 번째 시도도 실패. 네 번째 시도도 실패다. 이쯤 되니 시몬은 패닉에 빠졌다. “오, 오랜만에 해서 신수들이 적응을 못 하는 건가?” “그럴지도요.” 입술이 툭 튀어나온 레테가 시몬의 옆구리를 쿠욱 찔렀다. “그러게, 그쪽에 있어도 연습 좀 하라니까.” “억울해! 파라한 교수님 집에 갈 때 종종 연습했는데……!”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사물화 가능한 신수의 힘으로 당당히 선발생 1번 자리를 따낼 생각이었는데,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물론 그런 이유는 둘째 치더라도, 신수가 전력이 안 된다면 나중에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서 체포할 때 변수가 생길 우려도 있었다. 하늘섬에서는 함부로 칠흑을 쓸 수 없으니까. 신성으로 싸우지 못하면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해진다. ‘어쩌지?’ 시몬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레테는 턱을 톡톡 두드리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뭐, 아까 말했듯 신수란 생물이 워낙 변수가 많아서요. 컨디션이 들쑥날쑥해서 오늘은 실패해도 다음 날에는 거짓말처럼 잘되는 경우도 있슴다.” “……크게 위로는 안 되는데.”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술사인 당신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동안 저쪽 공부만 해왔으니 감각이 떨어진 걸지도요.” “그럼 어쩌지?” 시몬이 애타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린 레테가 검지를 착 세웠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요. 우선 이미지화부터 해보죠.” “이미지화?” “마차 하면 뭐가 떠오르심까?” 시몬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사람이 탈 수 있는 넓은 공간, 그리고 지면에 굴러가는 커다란 바퀴?” “아! 바퀴 좋다. 일단은 바퀴의 이미지에만 집중해 봐요.” 레테의 피드백은 즉각적이었다. 시몬은 하양이와 까망이가 보는 앞에서 바닥에 손으로 바퀴 모양을 그리고 이해시킨 뒤, 신수와 프리스트의 동화력을 순간적으로 올려주는 보조마법을 두 신수에게 걸었다. 그리고 다시 신성의 구를 만들어내서 두 고양이들과 함께 공중으로 던졌다. 이내 내려온 결과물은. “됐다!” 시몬이 쾌재를 불렀다.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거의 시몬의 하반신까지 올 만큼 커다란 마차 바퀴가 만들어졌다. 바퀴 몸체에 달린 두 눈이 끔뻑끔뻑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온전한 바퀴가 아니라 뒤에 살짝 마차가 연결되는 부위가 남아 있다는 점이지만 이 정도면 성공적이었다. “좋슴다. 이렇게 하나하나 확실히 신수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검다. 다음은 몸체로…….” “잠깐만 레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시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어차피 아칼리온은 하늘섬에선 쓰지 못하잖아. 마차를 만들어도 끌어줄 신수가 없어.” “뭐, 그렇긴 하죠.” “이렇게 된 이상.”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바퀴에 더 집중해 보자.” “?” 시몬은 몇 번 더 연습해 보며 형태를 계속해서 다듬어갔다. 레테가 20분 정도 잠시 다른 선발생들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니, 놀랍게도 이제 형태가 꽤 잡혀 있었다. “이것 봐, 레테.” 처억. 시몬이 처음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화려한 외형의 하얀색 바퀴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레테가 ‘오’ 하고 손뼉을 짝 쳤다. “바퀴네요. 그런데 마치…….” “방패 같지?” 바퀴에 신성으로 손잡이까지 연결한 모습이었다. 마치 장난감 같은 하양이의 눈동자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는 이쪽.” 처억! 시몬이 왼쪽 손에 든 바퀴를 보였다. 까망이는 중간이 텅 빈 새까만 고리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면을 달리는 바퀴라고 하기에는 끝이 날카로웠다. 레테의 눈이 커졌다. “당신 설마……!” “맞아.” 시몬이 두 사물화 신수를 앞세운 뒤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바퀴 끝에서 촤랑! 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신수의 칼날이 두 바퀴를 감쌌다. “차크람(Chakram)이야.” 시몬은 아까 전 ‘성투학’ 수업 때 3번 마리첼로의 춤을 추는 듯한 차크람 무기에 마음이 꽂혀 있었다. 바로 그것을 신수학으로 재현한 것. “내가 지금 필요한 건 이동 수단보다 싸울 무기니까.” 시몬이 가볍게 허공에 바퀴 차크람을 휘둘러 보았다. 스릉! 스릉! 청아한 소리와 함께 신성의 날이 번뜩이는 빛을 발했다. 타아악. 시몬이 오른발을 크게 앞으로 내디디며 검은 바퀴를 날렸다. 바퀴는 살벌한 기세로 날아가 근처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고 지나갔고, 시몬이 다시 손바닥을 펼쳤다. “까망아 돌아와.” 우웅! 그 한마디에 검은 바퀴가 공중에서 휘리릭 선회하더니 다시 시몬의 손에 착! 소리를 내며 잡혔다. “이름하여 신수 격투술! 이런 느낌의 신수학 전공 프리스트가 되어보려고. 어때?” 어느새 주위가 조용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2학년들의 코칭을 받고 있던 다른 선발생들도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레테도 팔짱을 낀 채 입꼬리를 올렸다. “무모하긴 한데, 방금 보여준 건 흥미롭네요. 차크람은 다뤄본 적 있슴까?” “처음이야.” “신수를 무기로 만들어 싸우는 프리스트들이 아주 없던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그렇게 레테가 신수마법과 차크람에 대한 조언, 그리고 신수마법으로 칼날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제법인데, 10번.” 멀리서 지켜보던 2번 스웨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물화를 계속 실패하던데, 실패를 디딤돌 삼아 아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버린 건가?” “…….” 그 옆의 1번 메릴은 이글이글 승부욕이 타오르는 눈으로 시몬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디 가냐? 메릴.” “이렇게 밀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성녀님께 갈 거야.” 그녀가 스웨이를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재미있는 제안을 하러. 10번이 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겠어.” “흠.” 앞으로 일어날 상황이 예상이 된다는 듯, 레테에게 다가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스웨이가 입꼬리를 올렸다. “후회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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