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4화 예배회 2일 차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세 가지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전 시간만 해도 신성역학 수업과 성투학 수업. 오후에는 신수학 수업이 있었다. 1교시인 신성역학 수업은 재미는 있었지만, 어제도 그랬듯 네크로맨서로서 흑마법을 쓰던 습관 때문에 애를 먹었다. 지켜보던 동기들도 시몬을 보고 수군거렸다. -10번 유클리드 사제님, 신성은 대단했지만 유독 기본기에서 어려워하시네요. -생각보다 실력은 평범할지도……. 동기들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1번 메릴만큼은 화르륵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나는 안 속아. 절대 안 속아. -……? 그리고 이어지는 성투학 수업. 드디어 몸을 쓰는 수업이다. 이론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신성역학과는 달리 성투술은 결국 격투의 개념이지 않은가. 시몬도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명상의 시간입니다.” 일일 선생님으로 온 3학년은, 아직 정식 학생도 아닌 병아리들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명상을 시키거나 기본적인 스트레칭 정도만 가르쳤다. 몸에 열이 오를 정도의 가벼운 스트레칭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힘들어했다. 시몬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프리스트들은 원래 몸 쓰는 수업을 별로 안 좋아하나?’ 네크로맨서 학생들을 보자면, 마투는 거의 준필수과목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육체적 능력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마법사 타입인 메이린마저도, 2년 내내 끈질기게 마투 수업을 따라갈 정도니까. 반면에 프리스트들은 ‘성투’를 정신수양을 위한 육체 단련 정도로 여기지, 필수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꺄아아아아-!” 2번 스웨이는 별개였다. 그는 수업 시작부터 특별 취급이었는데, 3학년 성투학과 학생과 가벼운 대련을 벌였다. 심문청장 레이트의 피가 어디 간 게 아니었다. 번뜩이는 센스와 타고난 육체, 그리고 짐승 같은 본능까지. 스웨이가 3학년 선배를 정면으로 밀어붙이자 동기들은 손뼉을 치고 펄쩍 뛰며 좋아했다. “흐흥.” 스웨이를 사모하던 메릴도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녀가 전투 중인 스웨이를 홀린 듯이 지켜보고 있는데. “발차기를 날릴 때 발꿈치가 들리는 건 교정해야겠네.” “?”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렸다. 대련에 심취해 있던 시몬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임팩트 순간에만 정확히 끊어 치면 힘의 분산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땅을 박찰 때 상체가 흔들리는 것도 조금만 손보면 완벽하겠고.” “하?” 메릴이 같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꼴에 평가하는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2번 스웨이의 성투를 네가?” 뒤늦게 자신이 중얼거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몬이 얼른 변명했다. “아니 아니, 평가가 아니라 분석인…….” “어이가 없네. 얼마나 자의식이 강한 거야? 열차에서는 3번한테 얻어맞았던 주제에.” 크게 쏘아붙인 메릴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휙 돌려 버렸다. 시몬의 시선이 돌아갔다. ‘……3번.’ 시몬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3번 마리첼로가 팔짱을 낀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간단한 성투 대련이 끝나고. “혹시 성투에 더 관심 있는 형제자매님?” 1번 메릴, 3번 마리첼로. 그리고 10번 시몬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 학생들이 스트레칭을 한 뒤 쉬고 있을 때, 그들은 가벼운 성투 기술들을 평가받았다. 스릉! 스릉! 3번 마리첼로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 신성을 바른 뒤 휘두르는 모습을 보이며 주위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저게 무슨 무기지?’ 중간에 원이 뻥 뚫린 고리 형태의 무기. 차크람(Chakram)이었다. 그것을 양손에 쥔 채 마치 춤을 추듯 허공에 휘둘러댔다. 투척도 가능한 건지, 던졌다가 다시 손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 극도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였다. 선발생들뿐만 아니라 선배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시몬도 그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다른 학생에게 한눈팔 틈이 있습니까? 본인 동작에 집중해 주십시오, 형제님!” 시몬은 간단한 펀치 동작을 한번 보였다가 바로 교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수업 보조로 온 성투학과 2학년 학생이 주먹을 내지른 시몬의 팔 각도를 확 좁히며 말했다. “허리에 한 손을 붙이고, 다른 한 손은 조금 더 아래로! 다시 해봐요!” 시몬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쓱 내질러 보았다. 2학년이 답답해하며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글쎄! 그렇게 해서 실전에서 네크로맨서를 쓰러뜨릴 수 있겠습니까!” 시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된 사람한테 배우고 싶다.’ 이 2학년, 아무리 봐도 현장에서 만나면 ‘취타’ 한 방에 정리될 것 같은 녀석인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교정을 받는 건 꽤 힘겨운 일이었다. 문득 키젠에서 홍펭의 마투학 수업이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한 분야의 극의에 이른 사람이 하나하나 가르침을 떠먹여 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스승을 의심할 필요 없이 배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남의 학교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다. “이렇게 팍! 이렇게 팍! 알겠죠? 해봐요!” 흐물거리는 펀치를 날리는 시늉을 보여주는 2학년을 보며, 시몬은 반항기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살짝만, 홍펭 교수님 스타일대로 해볼까.’ 스윽. 시선은 전방 90도. 몸을 살짝 낮춘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왼 다리를 앞으로 세우며 지면을 강하게 밟는다. 이내 각도를 재고, 허리와 어깨와 팔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전신의 팽창한 근육을 쏘아 보내듯. 짧고 강렬하게. ‘지른다.’ 후콰아아아아아악! 시몬이 뻗은 주먹에 순간적으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지켜보던 2학년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엎어지고, 근처에 있던 몇몇 학생들도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림과도 같은 완벽한 스트레이트.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시몬의 자세가 다시 2학년이 가르쳐 준 두 다리를 벌린 어눌한 지르기 자세로 다시 돌아왔다. ‘살짝 한다는 게 힘이 들어갔네.’ 시몬이 쓰게 웃으며 얼른 말했다. “이런 느낌인거 맞죠?” “…….” 바닥에 자빠진 2학년은 ‘내가 뭘 본거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울컥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형제님. 교정 중에 신성은 쓰지 말라니까요! 육체의 힘만으로 해야죠!” ‘신성 안 썼는데.’ 시몬이 2학년의 잔소리를 듣는 사이, 풀밭에 퍼질러 앉아 물을 마시고 있던 스웨이는 눈을 예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시작됐다. “라우스! 반가워요 여러분!” 리리넷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동기들도 ‘라우스!’ 하고 외쳤다. “오늘 신수학 수업에는 특별한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학생들의 시선이 돌아갔고, 이내 모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별의 성녀, 레테가 걸어오고 있었다. “성녀님이 직접 와주시다니!” “영광이에요!” 모두가 감격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레테가 짧은 순간 시몬 쪽을 바라보더니 눈을 찡긋했다. 시몬도 키득거리며 남들이 안 보는 사이에 조용히 손만 들었다. 이내 리리넷의 통제에 따라 선발생들이 자리에 앉았다. 간단한 설명을 마친 레테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강단에 올라왔다. “그럼 아주 기본부터 시작하겠슴다.” 그녀가 주위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신수학이란 뭘까요?” 기다리고 있던 1번 메릴이 바로 손을 들었다. “신수를 중심으로 한 신성 활동의 총체를 배우는 학문입니다!” “네, 정답임다.” 레테는 손끝에 별빛을 모으더니 허공에 멋들어진 필체로 ‘신수학’이라고 썼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신수학은 조금 이질적인 학문임다. 나 자신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신수와의 유대, 호흡, 감응력이나 친화력 같은 요소들까지. 파트너와 얼마나 합이 잘 맞는지가 중요하죠.” 선발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에 집중했다. “신수는 안 쓰면 손해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무척 다채로운 재능을 가진 생물이에요. 물론 신수 그 자체로도 강력하지만, 주인의 역량에 따라 몇 배나 되는 시너지를 일으킬 수도 있죠.” La— 그녀가 작게 노래를 부르자, 숲에서 새들이 푸드득 날아와 레테의 팔과 어깨에 앉았다. 이내 새들도 입을 벌리더니, 레테의 음성에 맞춰 음파를 토해냈다. 레테와 새들의 선율이 맞춰지더니, 이로운 효과를 주는 광범위 버프로 바뀌어 주위에 퍼져 나갔다. 학생들이 탄성을 흘렸다. 레테는 팔을 가볍게 휘둘러 새들을 돌려보내곤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단점도 있슴다. 신수는 대륙의 그 무엇보다 예민한 생물이거든요. 툭 하면 병에 걸리고, 아프고, 주인과 트러블을 일으켜요. 신수가 오늘 싸울 생각이 없다면 여러분의 전력은 급감하겠죠. 신수의 현재 컨디션이나 상태를 파악하고 디테일한 계획을 세워두는 게 중요함다.” ‘오.’ 시몬은 어쩐지 남 일 같지 않게 들렸다. 신수학도 은근히 소환학과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하기도 싫겠지만, 만약 신수가 전투 중에 목숨을 잃거나 수명이 다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신수와의 유대가 물거품이 되는 거니 리스크가 없다고 말할 순 없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 하루 중에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하늘에서 길고 거대하며 새하얀 백룡이 나타나 레테의 몸을 가볍게 휘감았다. 백룡 란은 레테를 등에 업은 채 몸을 구부렸고, 레테는 푹신한 의자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게 턱을 괴고 미소 지었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학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곳곳에서 열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유명한 성녀님의 신수, 란이에요!” “이렇게 가까이서 백룡을 보게 되다니!” 신입생들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스윽. 갑자기 란의 고개가 돌아가더니 선발생들 쪽으로 다가갔다. 신수의 돌발행동에 선발생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넘어졌다. 그리고. 할짝할짝! 이내 백룡 란이 혓바닥을 내밀어 시몬의 얼굴을 반갑다는 듯 친근하게 핥아대기 시작했다. “?!” 란처럼 지능이 높은 백룡 계열 신수가 다른 프리스트에게 반응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모두가 놀라서 눈만 굴리고 있는 사이, 시몬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만 있었다. 마음속으로 인사할 뿐이었다. ‘나도 반가워 란.’ 레테가 얼른 란을 정신 차리게 한 뒤 자신 쪽으로 돌아오게 했다. “흠흠! 장난기가 많은 녀석이라서요. 아무튼-” 신성 아공간으로 란을 회수한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신수학 수업을 시작하겠슴다.” 먼저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현재 신수를 보유하고 있는 선발생과, 그렇지 않은 선발생으로. 후자의 경우는 리리넷이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여러분의 파트너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에프넬 생활을 하다 보면 한두 마리 정도는 꼭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우선 신수와 친해지는 방법부터 배워볼게요!” 신수가 없는 학생들은 ‘친해지는 수업’부터 했다. 신수와 공명하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혹은 신수에게 먹이를 주는 등 유대감을 쌓는 방법. 그리고 새로운 신수를 발견했을 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해야 데리고 올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신수가 있는 학생들은 레테 앞에서 자신의 신수를 꺼내 보였다. ‘10명 중에 신수를 가진 쪽이 더 많을 줄은 몰랐네.’ 시몬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워낙 희귀한 생물이고 수고도 많이 드니까 신수를 가진 학생이 적을 줄 알았는데, 선발 학생의 경우 시몬을 포함한 6명이 신수를 보유했고, 나머지 4명만 신수가 없었다. 1번 메릴의 경우, 넝쿨에 휩싸여 있고 빛나는 뿔이 달린 아름다운 신수 사슴이었는데, 뿔의 신성으로 주위의 넝쿨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2번 스웨이도 신수가 있었다. 작은 종달새 같은 신수였는데, 스웨이가 신성을 부여하자 거대한 매가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그 외 다른 3명의 학생도 개성 넘치는 신수를 보유했다. 각자 사용하는 방법과 기술도 상이해서 비교하는 맛이 있었다. 시몬은 가슴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역시, 성투학도 좋지만 내가 에프넬에 다녔다면 무조건 신수학을 전공했을 거야.’ 그러다 이제는 시몬의 차례. “유클리드 형제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온 레테가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었다. “형제님의 신수, 볼 수 있을까요?”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시몬에게 집중되었다. -어떤 신수일까요. -유클리드 사제님은 뭔가 조금 무서우니까, 신수도 무섭게 생기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시몬은 자신이 있었다. 활짝 웃으며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에서 신성 아공간을 작동시켰다. “둘 다 나와.” 시몬의 신성 아공간에서 두 마리의 신수가 허공에 반짝이며 튀어나왔다. 그 이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은 순식간에 인기인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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