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0화 호밀리 부인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신성이란! 위대한 어머니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내리는 가장 존귀하고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녀가 찬양하듯 두 팔을 펼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응시하는 눈에는 경애의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믿음에 반응한 주변의 마나가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위대한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똑같은 신성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용기 있는 자에게는 여신의 적과 싸워 이길 듬직한 신성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자에게는 상처 입은 자를 보듬을 포근한 신성을. 여신께서는 늘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라우스! 라우스! 선발생들은 감격한 눈으로 두 손을 맞잡고 수업을 들었다. 가장 멀리서 삐딱하게 서 있는 스웨이만이 흐암 하고 하품을 했다. “여신께서는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대지를 창조하시고 하늘을 지으셨으며, 피조물인 우리와 연결되는 통로인 ‘신성’을 만드셨습니다! 위대한 율법가 사무엘께서 가로되, 인간은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낙원’을 상실하였지만, 여신께서는 모든 죄를 사하시고 피조물에 대한 굳은 믿음을 신성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하였습니다! 신성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딸과 아들이며, 여전히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진실을 신성이 증명합니다! 우리가 이런 큰 은혜에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믿음입니다!” 주근깨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호밀리 부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티아(gratĭa)!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어머니께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진실한 믿음뿐이랍니다. 그럼 다 같이 기도할까요?” 신성연방의 불문율 중 하나. 누군가 기도하자고 하면 무조건 다 같이 따라야 한다. 과장되게 말하면 길가의 거지가 기도하자고 요구해도, 지나가던 드높은 하늘섬의 주교들조차 예외 없이 마차에서 내려와 두 손을 모아야 한다. 기도는 신분을 불문하고 여신과 이어지는 신성한 의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호밀리 부인이 풀밭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손을 모았으며, 학생들도 모두 따라 했다. ‘음.’ 호밀리 부인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은 슬그머니 실눈을 떴다. 저 멀리 스웨이가 따분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야 너도?’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시덕거렸다. 하필이면 엮여도 저 녀석이랑만 엮이는 걸까. 시몬은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고 수업이 재개되었다. “신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성결하고 예절을 갖춘 방법이 바로 ‘개등(開燈)’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녀가 직접 시범을 보였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어깨를 펴고, 두 손바닥을 쫙 펼쳐서 경건하게 맞부딪힙니다. 주의 사항은 체내의 신성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외부의 마나를 즉시 신성으로 바꾸는 느낌으로. 동시에 신성이 일어나는 즉시 ‘파장’의 형태로 방출하여 흩뿌리세요. 여신의 말씀을 대중에 전파하는 전도사들처럼 부드럽고 강하게!” 그녀가 눈을 떴다. 우우우우우웅-! 호밀리 부인의 몸을 중심으로 하얀 신성이 웅장한 ‘종’의 형상으로 일어나더니 퍼져 나갔다. 방대한 신성량에 학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바로 ‘개등’. 과거 성인의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 사용했답니다. 제자들을 위협하고 경계하던 우민들도 이 신성의 등장에는 위대한 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신성연방의 불문율 그 두 번째. 모든 것이 경전에 의해 규율화된 사회이며 이를 신성시해야 한다. 경전에서 요구한 것들은 사회의 덕목이 되고, 경전에 등장한 장소는 성지가 되며, 경전에서 등장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뼈대 있는 예식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나날이 시대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이 보면 고리타분하다며 학을 뗐을 광경이지만, 시몬은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문화들이, 프리스트들이 더 강한 신성을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되는 거겠지.’ 같은 마나 베이스지만. 칠흑의 근간은 의지고. 신성의 근간은 믿음이다. 네크로맨서들이 끊임없는 발전과 경쟁을 추구하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이런 전통적인 방식을 추구한 것도 프리스트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럼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와서 ‘개등’을 해볼까요? 선발 1번 학생부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발 1번 메릴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엘리트답게 교육받은 대로 곧장 척척 해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개등.”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의 몸에서 신성이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마치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형상을 구현한 것 같은 모습이다. “어디 볼까요.” 호밀리 부인이 다가와 메릴의 신성을 느꼈다. 신성이 퍼져 나가는 사이로 손을 넣거나, 포도주를 시향하듯 손을 휘저어 냄새를 맡는 동작을 해보기도 했다. “위대한 어머니께서는 진취적인 성향의 메릴 자매를 위해 올곧고 활력 넘치는 신성을 주셨습니다. 하늘로 높이높이 뻗어 나가는 신성에서 지상의 누구보다도 어머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욕과 믿음이 느껴지는군요.” 메릴이 입을 벌리며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인정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특히 신성역학과 성령학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군요. 남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축복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전공을 선택해도 평균 이상의 실력이 나올 거라 보장해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호밀리 부인!” 그녀는 얼마나 기쁜지 호밀리 부인을 한번 끌어안고는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돌아왔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다음은 2번 스웨이 학생?” “네, 네. 갑니다.” 귀찮고 나른한 목소리로 대꾸한 스웨이가 발을 질질 끌며 등장했다. 호밀리 부인이 활짝 웃었다. “만나고 싶었답니다, 스웨이! 부친 되시는 청장께서 네크로맨서들이 위협하는 국경을 든든히 지켜주는 덕분에, 우리 신도들 안심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지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아, 그래요?” 스웨이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 꼰대는 죽인 적군보다 매단 연방민들이 더 많을 텐데요.” “오, 오호호호!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호밀리 부인이 다급히 스웨이의 말을 수습하고 수업을 재개했다. 그래도 할 때는 하는 성격인 걸까. 꽤 진지해진 표정의 스웨이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중얼거렸다. “개등.” 촤아아아아아아아아! 스웨이의 개등은 특이했다. 보통 신성이란 건 발밑에서부터 일어나도 주변이나 하늘로 퍼져 나가기 마련인데, 마치 나무뿌리가 바닥을 헤집고 나아가듯, 혹은 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아래로 깔려 나갔다. 이내 스웨이의 개등이 끝나고 호밀리 부인이 턱을 짚었다. “으음. 글쎄요. 신성은 기본적으로 위로 올라가려는 상승의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닥을 기는 신성이라, 독특하군요.” 그러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스웨이 형제님은, 여신 앞에서 모든 걸 온전히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군요.” 시몬은 그 순간 스웨이의 눈이 날카롭게 뜨이는 것을 캐치했다. “본인이 본인의 신성을 통제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긴 어렵지만, 기질이 독특한 것에 더해 신성의 질도 우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투학이나 신수학, 혹은 아버지처럼 치유학 전공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스웨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걸어갔다. 호밀리 부인이 오호호 웃으며 다음 3번 선발생을 불렀다. 에프넬에서 호밀리 부인의 수업을 신인 예배회 첫 번째 수업으로 배치한 이유가 있었다. 시몬도 성녀와 살인자의 힌트를 얻을 기회였기에 유의 깊게 한 명 한 명 관찰했다. -자매님처럼 마음이 따뜻해지고 온화한 신성이네요! 위대한 어머니께서도 아주 흡족해하실 것 같습니다. 치유학 전공이 제격이겠어요! -살짝 들뜬 신성에서 특별한 기질이 느껴지네요. 이런 은총을 일으키는 학생들은 성령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죠.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아! 그렇다면 더 볼 것도 없네요! 신성의 성질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성향까지 알 수 있다. 시몬은 선발생들의 신성에 대한 정보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어느새 9번을 지나 10번. “유클리드 형제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시몬의 차례였다. 시몬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자신의 신성 분석 결과를 받고 들떠서 이야기하느라 살짝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10번인 시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동기들은 얼마 없었다. “어서 와요, 유클리드 형제님. 잠시 병치레 때문에 하늘섬에 내려갔다가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호밀리 부인.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호호! 그럼 개등을 해볼까요?”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눈을 감았다. 턱을 세우고, 어깨를 펴고, 두 손을 펼쳐서 경건하게 모았다. 눈을 감았다. 떠들썩한 주변의 소음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신성의 흐름에 집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시몬의 눈이 게슴츠레 떠진다. ‘그 무엇이라도.’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위의 소음이 일순 잦아들었다. 시몬의 몸에서 방대한 신성이 웅장한 고리의 형상을 연달아 그려내며 눈부시게 펼쳐 나갔다. 지켜보던 학생들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건……!” 호밀리 부인이 손을 덜덜 떨었다. 방대한 파장. 그리고 이질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깨끗하고 순수한 신성. 아름답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해서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감격이 차오르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마나를 신성으로 만든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런 종류의 신성이 존재했던 것처럼. ‘대체 이 아이는.’ 호밀리 부인이 홀린 듯한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시몬을 앞에 두니 여신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깨끗한 존재감. 마치. ‘또 하나의……!’ 거기까지 생각한 호밀리 부인이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끔찍한 생각을 할 뻔했다. 강한 믿음일수록, 깨지면 더 지독한 신성 슬럼프가 온다는 걸 호밀리 부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굳건한 믿음이 흔들릴 만큼 놀라운 신성이었다. 스스스스— 신성이 하늘에 흩어져 사라졌다. 모두가 홀린 듯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시몬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큰일 났다.’ 관심을 받을 정도로만 힘을 내야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진심으로 해버렸다. “어, 어땠나요? 호밀리 부인.” “유클리드 형제님.” 호밀리 부인이 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후욱 후욱 숨을 몰아쉬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지만, 눈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당신의 신성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인간의 언어로 이것을 표현하는 것조차 신성모독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어요! 남는 시간은 자유시간이에요! 그럼 저는 이만……!” 호밀리 부인은 도망치듯 후다닥 떠났다. 시몬은 옆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앞을 보았다. “……!” 얼굴이 뚫어질 듯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1번 메릴. 그녀가 성큼 성큼 다가왔다. “야.” 그러고는 시몬의 옷깃을 거칠게 붙잡고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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