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14화 왕과 태수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시몬은 왕 앞의 제단에 제물을 내려놓고, 그것을 감싼 보자기를 손에 쥐었다. ‘이건 대륙의 물건이야. 천년향에는 없는 품목이라는 건 몇 번이고 확인했어.’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틀림없이 반응이 온다. 놓치지 않아.’ 마침내 시몬이 보자기를 잡아당겼고, 제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광석이었다. 표면은 천년의 얼음을 깎아낸 듯 맑고 투명했지만, 광석의 중심부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깃든 것처럼 선명한 파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벽운지 태수가 즉각 말했다. “전하, 이는 벽운지의 광산 깊은 곳에서 발견된 귀물로서…….” 아니다. 이건 마정석이다. 그것도 아주 크고 다량의 마나가 함유되어 있는 마정석. 천년향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왔을 결사라면 모를 리가 없다. 시몬이 눈을 예리하게 뜨며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놀라움, 탄성, 호기심, 소유욕. 대부분의 태수들로부터 그런 반응들이 흘러나왔지만, 크게 참고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도마뱀은?’ 도마뱀 태수의 반응을 살핀 시몬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은 순수한 놀라움이었다. ‘어째서?’ 감정을 숨기려고 하면 티가 난다. 그리고 그 감정을 덮기 위해 다른 감정을 꾸며내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도마뱀 태수는 놀라움에서 의아함으로 감정이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벽운지 태수의 귀한 선물, 아주 잘 받았소.” 왕이 그렇게 말하며 다른 태수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태수들도 마찬가지요. 그대들의 선물은 모두 천년향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것이오.” “합천하옵니다!” 이내 신하들이 와서 시몬이 바친 마정석을 든 채 낑낑거리며 옆으로 옮겼다. 다시 제단이 비자, 왕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소.”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자리로 되돌아간 시몬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주 먼 곳에서 온 자들이요. 천년향이 아닌, 다른 외부 세계에서 넘어온 이들이 과인을 알현하고자 한다더군, 들어오시오.” 덜컹! 한쪽 문이 크게 열리며 시몬은 압도적인 기백이 이 궁궐을 장악하는 것을 느꼈다. 저벅 저벅 저벅. 단색 로브를 두른 열댓 명의 남자들이 무거운 침묵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그중 가장 앞에 서서 걸어가는 자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절그럭 절그럭.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마치 몸 어딘가에 묶여 있는 사슬이 걷는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걸음을 멈추고 깊게 눌러쓴 후드를 걷어내는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일순 숨을 삼켰다. 얼굴 곳곳에 마름모꼴 문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이 순간에도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녹색과 갈색의 오드아이가 음침하게 빛났다. 스으- 그가 왕에게 예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눈매는 날카롭고, 턱선은 갸름했지만 목이 무척이나 굵었다. 목을 지나 퍼져 나가는 어깨 또한 상당히 넓었다. 후드 안으로는 회색 정장과 넥타이가 보이고 있었다. 외견으로나, 의상으로나, 천년향의 인간이 아니었다. “바스테리온이라고 합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가 손짓하자, 네 명의 부하들이 제단에 뭔가를 내려놓고 보자기를 잡아당겼다. “!!” 시몬이 준비한 것보다 더욱더 거대한 마정석이 놓여 있었다. “이럴 수가! 천년향 외부의 인간이라니!” “전하! 어찌 된 일이옵니까?” 태수들이 일제히 들썩였고, 바스테리온이 몸을 돌려 태수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천년향과 교류하기 위해 찾아온 타 세계의 행인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우리를 보고 이렇게까지 놀라는 건 뜻밖이군요.” 그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꽂혔다. “이미 다른 세계의 인간이 이 자리에 있기에, 천년향도 타계와의 교류가 충분히 이뤄진 줄 알았습니다.” 태수들의 웅성거림이 폭발하듯 커졌다. 벽운지 태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고, 세르네가 긴장한 얼굴로 시몬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쩌죠?’ 그러자 시몬이 앞으로 나아갔다. 펄럭! 겉옷을 벗어 던지고 세르네의 환상마법이 걸려 있는 깃털을 뽑아냈다. 그의 바뀐 모습에 태수들이 웅성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전하와 여러분께 정체를 숨기고 이곳까지 들어온 점 사과드립니다.” 시몬이 저벅저벅 태수들 사이로 열린 공간을 따라 나오며 입을 열었다. “저는 이곳과 다른 세계, ‘대륙’의 암흑연합에서 온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전하께 반드시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이럴 수가……!” “다른 세계에서 온 자들이 대체 얼마나 있는 거지?” 태수들이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전하, 저자들을 쫓아내셔야 합니다!” “손님으로 온 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위장을 하고 들어온 자는 너무나 무례한……!” 그때 금발의 왕이 자그마한 손을 들어 신하들의 입을 막았다. “고하라.” “저, 전하……!” 한 태수가 말리려 했지만 왕의 위압감이 서려 있는 눈동자가 그에게 향했다. 뭐라 말하려던 태수가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저희 대륙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시몬의 시선이 바스테리온에게로 향했다. “바로 결사라고 불리는 자들의 무차별적 공세 때문입니다. 저들은 비열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크고 작은 세계들을 손에 넣었고, 이제는 저희 대륙까지 손에 넣고자 하는 야욕을 품고 있습니다.” “…….” 바스테리온은 가만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들은 다른 세계를 병들게 만들고, 무너뜨리는 행위를 ‘구원’이라 부르며 일삼고 있습니다. 이제는 천년향에까지 손을 뻗치려 하고 있고, 우리는 구원을 막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낮은 수군거림이 퍼져 나갔다. 그때 흑사곡의 태수, 도마뱀 머리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위기에 빠진 그대들이 우리를 돕겠다는 것이오? 돌아가서 그대들의 세계를 지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하지 않겠소?” “결사는 다른 세계를 무너뜨릴수록 무언가를 얻고, 더더욱 강대해집니다.” 시몬이 말했다. “천년향이 위험하면 결국 대륙도 위험해지니까요. 이곳 천년향에서 저들의 목적은 명백합니다.” 도마뱀 머리 태수가 여전히 의심이 걷히지 않은 듯 눈매를 좁히더니, 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하, 역시 처음부터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온 자들의 말은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어머, 그럼 이건 어때요?” 이번엔 세르네가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자신의 머리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대륙민들이 보고 겪은 결사에 대한 기억들이에요. 높으신 분들이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요?” “…….” 세르네가 깃털을 건네자, 도마뱀 태수는 수상쩍은 눈빛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전하께 이런 위험한 걸 드릴 수는 없으니 내가 먼저 확인하겠소. 어떻게 하면 되오?” “여러분이 쓰는 부적처럼 그저 몸에 붙이면 된답니다. 머리와 가까운 곳일수록 좋아요.” 그 말에 도마뱀 태수는 망설임 없이 깃털을 이마에 붙였다. 그리고. “……!!!” 몇 분 뒤 창백한 얼굴로 깃털을 떼어낸 채 숨을 헐떡거렸다. “무슨 일이오 흑사곡 태수!” “말을 해보시오!” 주위의 태수들이 몰려들자, 도마뱀 태수는 손바닥을 펼쳐 이들을 가로막고는 입을 열었다. “비명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불타는 도시, 무너지는 탑, 잔혹한 학살…….” 그가 고개를 들어 왕을 보았다. “……정말로 천년향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이 기억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저들이 살던 세계에 외부의 침공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가 깃털을 건넸고 다른 태수들도 직접 기억을 확인했다. 그때 왕이 입을 열었다. “바스테리온. 그대도 저자들의 발언에 대해 반론하겠나?” “물론 그러겠습니다.” 바스테리온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건 거짓과 진실을 교묘하게 섞은 이야기입니다. 저 깃털 또한 조작된 기억 왜곡에 불과합니다.” 그가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내용이 새빨간 거짓이지만, 진실이 있다면 우리와 저들 대륙이 적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제3국에 적대국을 폄하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전략입니다. 저들 또한 우리의 땅을 더럽히고 불태웠으며 많은 이들을 죽였습니다. 무엇보다 저들은 암흑의 존재들입니다.” “암흑의 존재들?” “예.” 바스테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을 응시했다. “저주, 시체, 독, 피, 망령… 끔찍한 것들을 다루며 어둠을 숭배하는 인간들이죠. 모든 세계에 어둠을 퍼뜨리는 것이야말로 저들의 목표입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이 세계에 어둠을 뿌리내리려 하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다시 한번 조정이 들썩였다. 시몬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외부인이 보기에 네크로맨서는…….’ 누가 봐도 ‘악’이나 ‘어둠’ 느낌이 강하긴 했다. 인간으로서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에서 온 프리스트 멤버가 없는 게 여기서는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양쪽의 이야기는 잘 들었소.” 그때 왕이 손을 들어 발언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왕이 용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긴 금발 머리카락이 왕좌에 흘러내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왔다. 창백한 피부에, 어린 얼굴,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중성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왕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이제 천년향의 뜻을 밝히겠소.” 왕에게서 쏟아지는 박력은 정체를 드러낸 시몬과 바스테리온의 존재감을 단번에 덮어 버릴 정도였다. “천년향은 다른 세계의 전쟁에는 관심이 없소.” 왕이 단언했다. “그대들 결사의 ‘구원’도, 대륙의 ‘어둠’도 상관없소. 우리는 불사의 천년향이오. 그 어느 쪽도 두렵지 않고, 그 누구도 우리를 흔들 수 없소.” 그랬다. 천년향의 인간들은 죽지 않기에 전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왕의 그 말에 태수들의 어깨가 자부심으로 펴졌다. “우리가 관심 있는 건 우리 내부의 일뿐이오. 우리가 처한 문제는 지금, 세월에 잠식된 자들이 늘어나고 있단 것이오. 그리고 바스테리온 측에서는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었소.” 왕이 손짓하자, 신하 하나가 잰걸음으로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바쳤다. 왕이 그것을 붙잡아 들었다. “이 신묘한 약은 세월에 잠식된 자들의 의식을 깨우고, 생기를 부여하고 있소.” 왕의 손에 들린 병을 본 순간 시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결사의 약물!’ “세월에 크게 잠식되지 않은 자들이 섭취하면 다소의 부작용이 발견되었으나, 긍정적인 효능이 더 크오. 이는 세월의 잠식된 자들을 다시금 크게 일깨우고 우리들의 곁으로 돌려주고 있소.” 왕이 다시금 약병을 내려놓았다. “바스테리온은 우리에게 이 약을 금년까지 30만 병 공급하기로 약속했소. 그대들, 대륙의 암흑연합에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소?” “…….” 시몬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천년향의 왕을 바라보았다. 발에 채이는 긴 금발의 아름다운 왕은 너무나 태연한 눈으로 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희 암흑연합에서는-” 좌중이 긴장감으로 덥혀진 이때. 시몬은 고민을 접고 비로소 생각해 둔 바를 내뱉었다. “죽음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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