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40화 코어를 찔렀다. 그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내며 쿨럭쿨럭 검은 피를 토해내는 매그너스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가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들어 시몬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런 놈한테 졌다고? 내가 저런 놈보다 약해? 그럴 리가. 저놈은 분명 나보다 약한데 왜 내가 진 거지?" 그의 동공이 격렬히 흔들렸다. "왜!" 그늘성 아래에서 공허한 외침이 퍼져 나간다. "여전히 이해를 못 하네." 싸늘한 표정의 시몬이 입을 열었다. "새로운 몸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나면 흔들리고, 자만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연달아 내리지. 많은 사람들은 그걸-" 시몬이 눈을 치켜떴다. "'약함'이라고 불러. 매그너스." 매그너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어떤 공격에도 태연히 버티던 그가, 이번에는 의표를 찔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내 팔을 축 늘어뜨리더니 흐흐흐. 으흐흐흐흐! 하고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론이 그렇게 가르치더냐?" "당신이 교수님을 입에 담지 마." 시몬이 냉랭하게 말했다. "교수님은 미래를 보고, 넌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지. 같은 일을 겪었어도 그 차이는 명백해." "잘난 듯 중얼중얼. 역시 그 교수에 그 제자로군. 네놈들을 보면 기분이 더러워." 매그너스가 피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크게 젖혔다. 그러다 문득 입을 열었다. "애버리스. 아까 50으로는 부족했지?"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100이야."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발밑에서 이빨 달린 그림자들이 튀어나오더니 매그너스를 휘감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그가 심취한 웃음을 토해내며 두 팔을 벌렸다. 시몬은 움직이지 않고 잠자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까는 뭐라고 했더라? 약하다고? 내가 약할 리가 있나! 나는 절대로......!" 꽈드드득! 그때 그림자의 이빨이 벌어지더니 매그너스의 목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매그너스의 목소리가 멈추며 목에 난 이빨 구멍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뭔......!" [100이면 네 전부를 바치는 거잖아? 매그너스.] 관리자 애버리스의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전부를 가져가도록 할게. 넌 군단을 이끌 자격이 없어.] "잠깐! 애버......! 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살 씹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신이 그림자에게 집어삼켜지던 그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타닥 하고 절벽에 발을 딛고 말았다. 그의 균형이 순식간에 뒤로 쏠렸고. 어쩔 틈도 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시몬은 저벅저벅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늘섬의 아래에는 더 이상 지면이 없었다. 그저 까마득한 나락일 뿐. 그림자에 집어삼켜진 채 버둥거리던 매그너스의 팔이 시몬 쪽을 향하다가, 이내 팔까지 전부 암흑에 삼켜졌다. "......." 선 자리에서 끝까지 매그너스의 최후를 지켜보던 시몬이, 비로소 자리에 주저앉아 힘겨운 숨을 토해냈다. 전신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군단장니임!]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 에르제베트가 거미줄을 타고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이와요!] "5군단은?" 시몬의 외침에 그녀가 답했다. [5군단의 완전 해체를 확인했사와요. 매그너스는 사망했습니다.] * 제5군단의 관리자, 애버리스에 의한 매그너스의 죽음이 확인되었다. 5군단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해체되었고, 살아남은 5군단의 언데드들은 모두 7군단이 흡수하게 됐다. 물론 대부분은 매그너스가 폭주했을 때, 하나가 되라는 매그너스의 절대명령으로 소멸해서 머릿수가 많이 남아 있진 않았다. 그리고 시몬이 그늘성으로 올라와 보니 헤르세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당당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붕대에 꽁꽁 묶인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 브루트가 제압당해 쓰러져 있었다. [자이로스가 흠씬 두들겨 패더라고.]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라도, 역시 북신 자이로스의 힘과 프로스트 필드의 병력은 강력했다. 그리고 5군단의 좀비집사는 곤죽이 되어 흘러내리는 그림자 속에서 무사히 회수했다. 매그너스에게 흡수되지 않고 끝까지 재생능력으로 버텼던 모양. 반면 뱀공주 라미아는 소멸을 확인했다. 하나가 되라는 매그너스의 순응하고 가장 먼저 흡수됐던 것 같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꼬리 일부가 그림자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렇게 좀비집사, 알라제, 브루트까지. 7군단은 이 셋을 생포해서 피어의 유적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 [..........] 군단장이 된 직후부터 가장 큰 적 중에 하나였던 5군단을 쓰러뜨린 큰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7군단의 대장들은 웃지 못했다. 이번 전쟁에서 뱀공주 다음으로 에이션트 언데드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케뮤스의 코어가 파괴된 것을 확인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케뮤스." 다가온 시몬은 한쪽 무릎을 꿇고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아케뮤스의 머리에 이마를 댔다.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하나둘 다가와 그의 완전한 소멸을 애도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존재하는 언데드에게 죽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소멸하기 직전 그가 보였던 힘은 경외심을 느낄 만큼 찬란했다. 그렇게. 전과와 희생 모두를 남긴 채 전쟁은 끝났다. * 매그너스의 말대로였다. 그늘성 지하층에는 이 던전의 던전주가 봉인되어 있었고,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찔러 그것을 흡수하는 것으로 그늘성의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바로 로크섬으로 나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우선 시몬은 언데드들을 초대형 아공간에 불러들인 뒤, 여전히 뚫려 있는 포탈을 통해 결사의 중앙 연구소에 넘어갔다. 콰아아아앙-! 퍼어어엉! 연구소는 폭발하고 있었다. 이쪽에서 완전히 부수기 전에, 결사 쪽에서 먼저 기지에 자폭 명령을 발동한 모양. '결사에서 여길 포기할 줄이야.' 예상치 못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중앙 연구소는 반드시 되찾으러 올 줄 알았는데, 아예 포기해 버린 걸 보면 이번에 들어온 바힐과 그의 동료가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었다. 시몬은 마지막에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인 중앙홀로 달렸고, 금방 일행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바힐, 그리고 아론이었다. 시몬은 아론의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지원군으로 온 사람이 아론 교수님이었어?' 그리고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반으로 비스듬히 갈라진 상태에서 위쪽은 두개골과 갈비뼈가 드러난 해골이 되어 있었고, 나머지 반은 사람의 살점이 남아 있었다. '무슨 흑마법에 당한 거야?' 시몬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피투성이가 된 아론이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아론 교수님!" 그는 무사해 보였지만,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그가 흐릿한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왔나." "괜찮으세요? 교수님!" "나는 괜찮다, 그보다......." 아론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매그너스는 어떻게 됐지?"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죽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 뒤에서 바힐이 보낸 손짓을 본 시몬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론은 여전히 시몬이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매그너스는 자멸했어요. 화이트의 몸을 무리하게 차지하고 나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제가 미르미즈를 완전히 꺼내서 상대한 것도 있었지만, 사실상 매그너스가 자멸한 것에 가까워서...... 운이 좋았죠." "그런가." 아론이 픽 웃음을 흘렸다. "놈이라면 그럴 만하지." 아론은 의외로, 매그너스의 최후가 자멸이라는 말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럼...... 잠시...... 눈 좀 붙이마......." 그가 비로소 눈을 감았다. 놀란 시몬이 가까이 가보니 다행히 숨소리는 들린다. 정말로 자는 것 같았다. "무리도 아니죠. 저 타이론이라는 자는 강했습니다." 바힐이 절반이 해골이 된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힐마저도 몸에 피 칠갑을 할 만큼 싸운 것 같았다. "결사의 핵심 시설을 지키는 인물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역시 결사도 무시 못 할 전력을 가졌군요." "네, 그래도 두 분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타닥. 탁. 그때 열기를 뚫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시몬이 얼른 고개를 돌리자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세르네! 화이트!" 세르네가 뺨에 재가 묻은 채 화사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똑같이 생긴 화이트 3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명은 키젠 교복을 입은 W-1이었고, 다른 둘은 실험복을 입고 있었다. "다들 괜찮아?" "그럼요~" 세르네가 그렇게 답하며 턱짓했다. "다 구해내진 못했지만, 간신히 폐기 처리되기 직전의 화이트를 두 명 구해냈어요." 화이트 두 명이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했다. 다른 화이트들을 모두 구해내지 못한 건 아쉬우나, 기지 자폭 명령까지 내려진 마당에 이 정도의 성과도 기적이었다. "키젠에서 탈출을 위한 장치를 준비했습니다." 바힐이 턱짓하며 등을 돌렸다. "가죠." 그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힐의 뒤를 따랐다. 시몬은 직접 아론을 둘러업은 채 달렸다. 곳곳에서 폭발이 마구 터지는 가운데, 저 멀리 까마귀 요원 알레이스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포탈을 일으키는 장치가 보였다. 포탈로 이 장치를 가지고 온 다음, 역으로 이 장치로 로크섬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젖힌 것 같았다. "다들 서두르게! 곧 폭발할 걸세!" "네!" 그들이 즉각 포탈을 향해 달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알레이스터가 흑마법을 발현해 떨어지는 파편을 받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제일 먼저 바힐이 아론을 직접 데리고 포탈로 들어갔고, 그 뒤를 세르네가 따랐다. 시몬도 바로 뒤따르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화이트!" 어느새 화이트들의 걸음이 멈춰 있었다. 그들 모두 폭발하는 연구소의 투명한 천장. 화염과 연기에 도망치고 있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위험해!' 힘으로라도 데려와야 했다. 시몬이 다시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스윽. 슥. 화이트들이 스스로 새들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더니 포탈 안으로 뛰어갔다. 시몬은 잠시 멍한 얼굴로 있다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도했다. '너희들도 다음으로 나아가는구나.' 비로소 시몬도 등을 돌려 포탈로 들어갔고, 그 뒤로 바로 알레이스터가 따랐다. 이내 포탈에 들어간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연구소가 통째로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 도착한 뒤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저 꿈을 꾸었다. 새가 날아다니는 꿈. 화이트가 늘 보던 광경이 이런 걸까. 시몬은 꿈속에서 자각몽인 걸 인지하고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다 눈을 떴다. 이제는 익숙한 키젠 병동의 새하얀 천장이 보인다. '여기로 옮겨줬나 보네. 근데 뭔가 소란스럽.......' <시몬-!> 강렬한 외침에 시몬의 눈이 돌아갔다. 고개를 돌리니 메이린과 딕, 그리고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보였다. "시몬 괜찮으세요?" 카미바레즈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외쳤다. 가뿐히 상체를 일으킨 시몬은 멀쩡함을 과시하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난 괜찮아. 그보다 병동에서는 조용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시몬! 오늘이야 오늘!" 메이린이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외쳤다. "오늘이 기말고사 날이라고!" 그러고 보니 기말고사 이틀 전에 연구소에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틀이나 자버린 건가? 스윽. 그때 딕이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손끝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시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뒤에서 덜컥! 하고 병동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 학생회장. 일어났군요." 시몬의 담당 병동 의사였다. 그가 손에 든 파일을 훑어보며 말했다. "본부의 특별지시로 학생회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절대안정이 필요하니 우선......." 파밧! 시몬이 즉각 침대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던 키젠 학생회장 코트를 붙잡았다. 딕이 씩 웃으며 창가를 열어젖혔고 시몬이 그 안으로 뛰쳐나가며 말했다. "죄송해요! 오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잠깐, 학생회장!" 병동 의사가 허우적대며 뛰어왔다. "여긴 4층인...... 어?" 이미 창밖에는 로레인과 에슈, 토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로레인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칠흑의 막이 떨어진 시몬을 안전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죄송해요. 실례하겠습니다." 로레인이 꾸벅 고개 숙여 사과했다. "우리도 가자!" "도망쳐!" 우르르르르르! 학생회 멤버들도 빠르게 병동 밖으로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지자 뒤에 서 있던 의사들이 낄낄 웃었다. "그래, 저 나이엔 기말고사가 더 중요하지." "청춘이네." 의사가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뭔 태평한 소릴 하는 거야! 얼른 가서 잡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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