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6화 바힐은 왜 시몬의 마음이 바뀌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저 콤펠로 수업을 시작할 뿐이었다. -기존의 콤펠로니아 마법이 콤펠로 상태를 열어젖히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다릅니다. 바힐이 설명했다. -우리는 만계(萬界)의 진리에 도달하려는 게 아닙니다. 초월적인 사고를 갖추려는 것도 아니죠. 그저 관찰하려는 한 가지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얻고자 하는 겁니다. 타악. 그의 손이 시몬의 어깨에 올라갔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미 강렬한 콤펠로 상태를 한 번 이상 경험했으며, 콤펠로에 대한 적성까지 가진 극소수의 네크로맨서만 가능하죠. 기존의 콤펠로니아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콤펠로 마법.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법 구조의 습득이 필요했다. 원래 여기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겠지만, 다행히 그동안 4대 저주를 복습했던 게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모든 이론 수업을 끝마친 뒤, 시몬과 바힐은 함께 하루앓이 늪으로 나왔다. “이걸 드리죠. 지금부터는 당신 소유입니다.” 시몬은 바힐이 내민 물건을 받아들였다. 알이 하나뿐인 외눈 안경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중간에는 미세한 실금이 가 있고, 안경테 곳곳에 낡고 오래된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의 파장이 손바닥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저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매스꺼운 느낌이었다. ‘……이런 물건은 프린스의 왕관 이후로는 처음이네.’ 시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시작해 볼까요? 배운 대로만 하면 됩니다.” 바힐의 말에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눈 안경을 오른쪽 눈에 착용했다. 스으- 즉각 시야가 회갈색으로 뿌옇게 물들었다. 마치 때가 잔뜩 낀 유리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 시몬은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두 팔을 뻗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우우우우우웅! 공간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준비 단계에서부터 삼차원 마법진이 펼쳐졌다. 수많은 요소들이 마법진에서 튀어나와 마나 스크린처럼 앞으로 뻗어나갔다. 그것들은 다시 중간에서 얽히며 마법진을 이루었고, 또다시 요소를 방출했다. 그렇게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 위로 또 다른 마법진이 만들어져 겹겹이 덧씌워졌다. 이는 마치 허공에 고정된 거대한 마법 천문대를 제작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바힐 오리지널 – 임페라투스 콤펠로(Imperatus Compéllo)> ‘큭!’ 어마어마한 양의 칠흑이 소모되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 엄습했지만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무려 일곱 겹의 마법진을 전개한 시몬이 숨을 헐떡였다. “아주 좋습니다. 관찰할 대상은…….” 바힐이 늪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바위 아래에 엎드려 있는 저 녀석으로 하죠. 붉은 무늬가 선명한 걸 보니, 이미 알을 낳고 죽어가는 것 같군요. 보이시나요?” “……네!”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괜찮으십니까?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조준경의 위치를 옮기도록 하죠.” 시몬은 서서히 이 천문대의 망원경을 돌려 바위 아래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하루앓이 쪽으로 겨누었다. 일곱 개의 흔들리는 렌즈를 모두 통과해 정확히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했다. ‘……이거, 움직이는 대상에게는 절대 못 쓰겠네!’ 초점을 맞추는 건 악몽과도 같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일곱 개의 마법진 중에서 하나라도 각도가 어긋나거나 좌표가 달라지면 초점이 완전히 틀어졌으니까. 그렇게 간신히 방향을 잡고 흑마법의 준비를 마쳤다. “길게 심호흡하십시오.” “후우우우!” 시몬이 호흡을 토해내며 모든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눈을 감고, 손에 든 마법진을 작동시키세요.” 그 말대로 왼손을 펼치자, 또 하나의 마법진이 펼쳐졌다. 시몬은 그것을 압축하여 중심에 모았다. 스스스스! 잠시 후 압축된 마법진 안에서 둥글고 얇은 뭔가가 떠올랐다. 그것을 손에 쥔 시몬이 천천히 움직여 외눈 안경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카가가가가가가각! 그것이 안경알에 달라붙으며, 외눈 안경을 중심으로 검은 가시와도 같은 형상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시몬의 한쪽 눈이 마치 악마의 눈처럼 변했다. “임페라투스 콤펠로를 사용하면 한 시간 동안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그동안 공격을 받으면 폐인이 될지도 모르니, 반드시 동료가 있고 주위가 안전한 상태에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이제.” 바힐의 목소리가 낮고 부드럽게 들렸다. “관찰을 시작하십시오.” 시몬이 악마처럼 바뀐 눈으로 천문대 마법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은 듯한 감각. 소리가 사라지고, 냄새가 사라지며, 촉각마저 희미해졌다. 지금 오직 가능한 것은 ‘보는 것’뿐. 시몬은 시야에 잡힌 하루앓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과 다를 게 없는데?’ 시야가 조금 뿌옇게 변했을 뿐,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 ‘!’ 흐려졌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루앓이가 하루앓이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수백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진 선과 점의 집합체였다. 구조는 좁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며 형태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시몬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저게 하루앓이라고?’ 지금 보이는 광경으로 깨달은 게 있다면, 하루앓이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구성 성분의 일부였다. 선과 선. 점과 점. 이 세계의 모든 것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얽혀 있었다. ‘……명확히 보여, 하루앓이가 죽어가고 있어.’ 알을 낳은 직후 하루앓이에 문제가 생기자, 하루앓이와 연결된 세계가 반응했다. 세계는 하루앓이의 손상을 감지하고 그것을 복원하려 했지만, 하루앓이는 단순한 수복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고, 결국 세계는 해당 개체를 재생성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이해가 돼.’ 지금의 시몬이 보기에는 천년향의 생물이 해체되고, 다시 소생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흐름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세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더 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됐어야 하니 그렇게 된 거였다. 지금까지 왜 이걸 어렵게 생각했을까? 왜 생물의 불사와 소생의 개념을 낯설고 복잡하게 여겼던 걸까? 이 기술을 쓰기 전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 멍청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더 많은 걸 보고 싶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깊은 진리를 통찰하고 싶었다. 그래야 이 답답한 갈증이 해소될 것만 같았다. ‘큭!’ 하지만 시야가 고정되어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것을 볼 수는 없다. 주위를 쭉 둘러보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제야 시몬은. -이것은 족쇄입니다. 당신이 더 넓은 곳으로 가지 않게 막기 위함이죠. 현실에 있는 바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미치지 않고 사물만 관찰할 수 있는 임페라투스 콤펠로가 어떤 원리인지 감이 잡혔다. 그리고 시몬은 현실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를 떠올렸다. <천년향의 생물에 걸어놓은 저주가, 소생한 뒤에도 유지되는 방법> ‘……하찮아.’ 지금 생각하기에 그 과제는 너무나 하찮아 보였다. 애초에 현실의 모든 게 하찮아서 견딜 수 없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세상의 진리 앞에서는 그 무엇도 빛이 바랬다. ‘아니, 정신 차리자.’ 더 거대한 진리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시몬은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은 현실로 돌아가야만 했으니까. 왜 천년향의 생물에 걸린 저주는, 소생된 후에 남아 있지 않은가? 당연했다. 저주란 것은 엄연히 ‘다른 세계’의 것이기에, ‘이 세계’의 법칙 안에서는 유지될 수 없었다. 하지만 유지할 방법이 떠올랐다. 이 세계의 법칙에 통하게끔 구조를 살짝만 바꾸면 되었다. ‘방법은 알겠어. 이걸 기록해야 해!’ 이대로 임페라투스 콤펠로 상태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면, 지금의 깨달음을 모두 잃어버릴 게 뻔했다. 그래서 시몬은 손을 움직였다.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기에, 그곳에 무아지경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륙어는 너무나 하찮아서 견딜 수 없었으니, 그나마 덜 하찮은 브린어로 썼다. ‘어떻게 하면 현실의 나에게 이 내용을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지?’ 최대한 알기 쉽게 썼지만, 현실의 나는 멍청하기에 이 정도조차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깨달음의 정수를 기록하자.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 바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으로!’ 시몬은 고민 끝에,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써 내려갔고. 샤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후 뒤엉킨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몬! 오, 나의 시몬, 정신이 듭니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몬이 눈을 확 뜨며 숨을 들이켰다. 주위가 흐릿해지며 뿌연 렌즈의 색상으로 변해갔다. 갑자기 소리가 들리고, 촉각이 돌아왔다. “허억! 헉!” 시몬은 외눈 안경을 벗어버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그는 이내 ‘우웁!’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속에 든 걸 흙바닥에 게워내고 말았다. 바힐은 묵묵히 시몬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허억! 헉! 몇 번을 토하고 숨을 거칠게 헐떡인 시몬이 동공을 흔들었다. “바힐…… 교수님……!” “어땠습니까? 오랜만에 들어간 콤펠로 상태는요.” 시몬이 이마를 짚었다. “모든 걸 알 것 같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두려워요.” 시몬이 고개를 들어 늪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점과 선, 그 외에 기하학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진 하루앓이가 다시 평범한 개구리 형상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의 기억이 흐릿해요. 몇 가지는 기억나지만 지금의 저는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도 기록은 했는……!” 시몬은 뒤늦게 팔이 따끔거리는 걸 깨닫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손톱으로 팔에 상처를 내가며 시뻘건 글자를 마구 써 내려간 흔적이 보인다. 팔로도 모자라 다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낯선 문자와 그림들이 뒤엉켜 있었다. 가끔 브린어로 쓴 부분도 있었지만 그 또한 이해하기 힘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몬의 상태를 살펴본 바힐이 차분하게 말했다. “조교들에게는 제가 말해둘 테니 숙소로 돌아가 푹 쉬도록 하세요. 물론, 무모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구요.” * * * 시몬은 숙소로 돌아왔다. 조교들이 팔과 다리에 상처가 난 걸 보고 깜짝 놀라며 치료하려 했지만, 시몬은 괜찮다며 얼른 두 손을 들어 막았다. 곧장 숙소 방으로 들어간 그는 우선 몸에 새겨진 내용들을 빈 노트에 빼곡하게 옮겨 적었다. 그 뒤에 상처에 회복 포션을 붓자 다행히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흉터도 남지 않았다. 시몬은 이제 노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최 이게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콤펠로 상태에서는 현실의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엄청 쉽고 직관적으로 메모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쭈욱 돋았다. ‘콤펠로가 진짜 위험하긴 하구나.’ 시몬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뚫어져라 메모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합숙 훈련을 마친 소환학과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몬! 우리 왔…… 아?” 토토가 깜짝 놀라며 말을 멈췄다. “어서 와 토토. 오늘도 고생했어.” “으, 응. 그보다 시몬…….” “응?” 토토가 우물쭈물 말했다. “……그림은 절망적일 정도로 못 그리는구나.” “그림 아냐!” 갑자기 민망해진 시몬이 얼른 바닥에 깔아둔 노트를 접었다. 뒤이어 방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모두 땀 냄새나 독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저주학과 과제 이야기 들었어?” “아직도 합격자가 0명이라던데. 이대로는 다들 일정이 꼬이겠네.” “바힐 교수님은 너무하신 거 아냐? 불가능한 과제를 내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귓가로 흘리며 시몬은 다시 노트를 펼쳐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었어.’ 바로 눈앞에. 그 정답이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