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5화 키젠 1학년 시절, 시몬은 바힐의 제안에 따라 콤펠로니아를 습득했다. 그 흑마법을 사용한 시몬은 초월적인 감각에 사로잡혔고,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문’을 열고 그 너머의 영역에 잠시 도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 통달하고 초월적인 감각에 휩싸였을 때 시몬이 느낀 건 환희나 깨달음이 아니었다. 지독하리만큼 깊은 허무. 방대한 대륙이라는 무대는 먼지의 티끌처럼 느껴졌고, 지금까지 인간으로서 노력하고 발버둥 쳐온 일들이 해변의 모래 알갱이가 굴러다니는 것처럼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모든 걸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았다. 전능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과도 같았다. 그 감각과 사고가 자신을 완전히 잠식하기 직전, 시몬은 자신의 세계에 놓고 온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맹세했다. 설령 자신이 하는 일이 티끌 같은 먼지의 움직임 같은 것일지라도, 나는 나의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그 뒤에 시몬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후 콤펠로니아 사용을 완전히 봉인했다. 너무나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미치거나, 정신이 나가거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감각이었다. “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힐의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예전에 시몬이 겪은 일은 확실히 바힐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시몬은 콤펠로 효과를 너무 잘 받아서 문제였다. “나는 그때의 일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많은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부작용이 적은 리메이크 콤펠로니아를 개발했지만, 결국 그 또한 미쳐 버리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법.” 타악. 바힐이 바퀴 달린 칠판에 손을 올려두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미쳐 버리는 부작용이 전혀 없이, 부분적으로 콤펠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시몬은 조용히 바힐을 올려다보았다. “교수님은 왜 그렇게 콤펠로에 집착하시는 건가요?” “이 세상에는 이성과 합리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힐은 잠시 고개를 돌려, 끊임없이 소생하는 하루앓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당신이라면 콤펠로 없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죠. 다만 규칙은 규칙이니-” 그가 칠판에 콤펠로니아를 익히기 전에 거쳐야 할 4대 저주를 차례대로 다시 한번 썼다. 인돌렌스(Indolence), 호스틸(Hostile), 딜루젼(Delusion), 웨이커(Waker). “도전에 실패한다면 수업을 해야겠죠.” 그가 칠판을 가볍게 두드리며 덧붙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시몬은 긴장했다. 무슨 수업을 하려고 저렇게 서론이 장대한 걸까. 하지만 수업을 듣다 보니, 바힐의 이 두 시간짜리 수업은 평범한 학문 탐구에 가까웠다. 4대 저주의 마법진을 분해해서 그 구조와 수식을 뜯어보고 이론화하는 것. 1학년 시절의 시몬은 그저 바힐이 만들어준 저주를 있는 그대로 달달 외우고, 칠흑의 기억하는 성질에 의존해 흑마법을 구사했지만, 3학년이 된 지금은 확실히 저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왜 분리 수식이 들어간 거죠?” “이건 비마력 동기 계수를 고려한 겁니다. 2학년 때 배운 카운트 방정식 기억나나요?” 시몬이 우려한 바와는 다르게, 수업은 놀랍도록 평범하고 또 유익했다. 마법진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저주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1학년에는 몰랐던 브린어로 쓰여진 부분까지 쉽게 해석할 수 있었다. 시몬은 금방 집중했고, 빈 노트는 빠르게 수식으로 빼곡해졌다. 바힐도 절대로 콤펠로니아에 대해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않았다. 그는 이론적 분석과 탐구를 지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다 됐군요.” 바힐이 아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다음 시몬 학생의 도전도 기대하겠습니다. 만약 실패하면, 지금 수업을 계속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시몬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시몬은 이어서 두 번 하루앓이에게 저주 시전을 도전했다. 첫 번째는 판타서스의 슬립 기반의 저주. 두 번째는 주위의 환경을 이용한 지역 기반의 저주. 두 차례의 시도 모두 실패였고, 바힐의 수업을 두 번 추가로 들어야 했다. 이 두 수업들도 아주 평범했다. 시몬은 마법진 생태계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됐고, 4대 저주에는 아주 오묘한 이치가 들어 있었으며, 콤펠로니아는 3학년이 된 시몬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바힐은 4대 저주와 콤펠로니아에 대해서만 수업을 한 건 아니었다. 시몬의 집중력이 떨어질 즈음에는 바힐이 시몬이 이번 구원자전에서 사용했던 저주들의 개선점과 활용법을 알려주었고, 시몬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바힐 교수님의 1:1 과외라니. -부럽다. 가끔 바힐이 시몬에게만 정성을 쏟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듯한 학생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였다. 키젠은 철저한 실력만능주의. 교수가 학생회장이자 군단장에게 조금 더 많이 알려주려고 하는 건 정상이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그것에 불만을 가지는 걸 오히려 한심하게 생각했다. 학생들은 오히려 더 실력을 올리면 자신도 저렇게 교수의 관심을 받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더 노력했다. ‘슬슬 류운을 만나러 갈 시간이네.’ 그렇게 바힐의 수업을 마친 시몬은 다음 저주를 제작하러 가는 척하다가, 기척을 숨기고 조용히 합숙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산을 거슬러 올라 류운과 만나기로 한 커다란 나무에 도착했다. 주렁주렁 보라색 열매가 맺혀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한 꼬마 소년이 풀밭에 누워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안녕, 류운.” “오셨소 시몬!” 류운이 반가움이 확 드러나는 표정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반겨주었다. 시몬은 남은 재료로 만든 황금호박파이와 함께 새로운 아티팩트를 보여주었고, 류운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방금 누워서 멍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두 눈에는 생명력이 넘쳤다. “이것 참 신기하오!” 류운이 자신의 모습이 담기는 메모리얼 수정구를 이리저리 만지다가, 이내 눈을 깜빡이며 시몬을 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소? 그 합숙이라는 것에서 말이오.” “아, 별일 아냐.” 표정에 티가 났나 보다. 시몬이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옆머리를 긁적이고 있는데 류운이 보챘다. “말해보시오. 그 맹독학 수업이라는 것도 끝났고, 소인이 더 도울 게 없는데 맛있는 것만 얻어먹으려니 찝찝하단 말이오!” “음, 그게…….” 시몬은 콤펠로니아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고, 하루앓이와 저주학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류운이 복잡한 표정으로 턱을 두드렸다. “하루앓이는 인간의 농사를 망치는 존재들이라 들었소만, 그렇게 들으니 또 안타깝구려. 뭐, 인간들 중에는 그보다 심한 경우도 있고.”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심한 경우? 혹시 인간들도 하루앓이처럼 불사의 피해자가 된 경우도 있어?” “…….”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류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보러 가시겠소?” * * * 무엇을 보러 가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나섰다. 시몬은 류운과 함께 나란히 산을 내려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부터 천년향이 죽음이 없는 불사의 세계였던 건 아니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당시 천년향의 왕은 불로불사의 비밀을 찾고 있었다. 불로불사야 어느 세계든 지배자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었고, 백성들도 적당히 찾다가 그만두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던 왕이 전보다 젊어지다 못해 어려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과인은 이 세계의 신과 계약해 불로불사의 힘을 손에 넣었소. 보시오! 과인은 이제 나이를 먹지 않으며, 영원한 삶을 구가하게 됐소! 백성들은 그의 젊어진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그러자 왕이 말했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내 천년향의 신에게 간청하여, 과인뿐만 아니라 만백성들, 그리고 천년향의 모든 동물까지 불사의 힘을 골고루 얻도록 하겠소. 어떠시오? 백성들은 당연히 찬성했고, 궁전의 중심에 신께 제사를 드릴 거대한 제단을 세웠다. 왕은 제단에 엎드려 신께 불사의 힘을 간청했고, 신은 이에 응답했다. 그날은 노란색 빛이 하늘을 뒤덮었고, 백성들이 그 빛에 휩싸이며 환호했다. 그 제사가 끝나고 기적처럼 노화가 사라졌다. 죽음도 사라졌다. 모두가 환호하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천년향의 신과 왕을 찬양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천년향의 사람들은 그 이후로 불사의 삶을 누리게 되었다. 모두가 영원히 행복하리라,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그, 런, 데!” 류운이 울분을 토해냈다. “천년향의 백성들은 천도제(天道祭)를 거행하던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영원을 얻게 되었소! 나는 그때 어렸고, 7세의 몸인 그대로 1,000년을 살아가게 된 거요!” “그, 그렇게 된 거구나.” “덕분에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도 혼자서 못 가져오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이나 당하고!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오!” 그렇게 말하며 산비탈을 내려가는 류운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물론, 지금 만날 사람에 비하면 소인은 운이 그렇게 나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없소.” “응?” “이제 다 왔소.” 어느 순간. 나무와 풀이 가득하던 주위가 싸그리 사라져 있고 황량한 벌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곳곳에 재가 수북이 떨어져 있고, 어느새 하늘도 뿌옇게 흐려진 채 잿더미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남자를 너무 자극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굳은 표정으로 경고한 류운이 앞장섰고, 시몬이 뒤를 따랐다. ‘……탄내.’ 생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에 시몬이 코를 붙잡았다. 잿더미 땅을 푹푹 걸어가고 있으려니, 어느새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끄흑! -아으으으으! -끄아아아아악! 꿈에도 나올 것 같은,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옥이 바로 이런 곳일까. 너무나 소름 끼치는 고통에 겨운 소리에, 시몬은 진저리치게 됐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내 흐릿한 공간에서 불처럼 밝은 지점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본 시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럴 수가.’ 사람이 불타 죽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불이 한 남자의 몸을 계속해서 태우고 있었고, 그는 고통받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불을 끄기 위한 칠흑수류계 마법을 펼칠 생각으로 시몬이 팔을 뻗자, 류운이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됐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저 불을 끌 수 없고, 고통을 막을 수도 없소.” “설마…….” 류운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제가 거행하던 날, 관리의 여식과 사랑에 빠진 죄로 그는 기둥에 묶여 화형당하고 있었소. 그리고 영원히 불타게 됐지.” “아…….” 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겨워하는 그 모습을 본 시몬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는 건 그는 1,000년을 불타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 그 비명이 시몬 자신의 몸마저 불태우는 것 같았다. “본래 현상은 불사의 고리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저자는 예외였…… 응? 뭘 하는 것이오?” ‘조금이라도.’ 자신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마침 저주학을 공부하고 온 뒤라 방법이 바로 떠오른 시몬을 팔을 뻗었다. <시몬 리메이크 - 인돌렌스(Indolence)> 무통의 저주 인돌렌스는 시전자가 받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없애는 저주다. 시몬이 다른 조건을 없애고 무통의 효과만 그에게 부여했다. 그러자 고통에 겨워서 발버둥 치던 남자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는지 천천히 일어났다. “……아, 아.” 그가 벌벌 떨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감격에 찬 얼굴로 자신의 불타는 몸을 바라보았다. “……아, 안 아파. 더 이상 안 아파!” “괜찮으세요?” 시몬이 다가와 말했다. 그때 멍하니 시몬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급기야 평생의 원수를 본 눈빛으로 변했다. “네놈이 한 짓이냐.” “예?” “내 고통을 잊게 한 게 네놈이 한 짓이냔 말이다!” 그가 악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시몬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시몬이 당황하며 류운을 안고는 몸을 던졌다. 퍼어어어어어어엉! 남자의 주먹이 닿은 곳에 화염 기둥이 치솟으며 폭발을 일으켰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시몬이 바닥에 착지하며 외쳤다. “왜 이러십니까!” “내게!” 그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희망을 주지 마!” “!” “영원히 내 옆에서 고통을 없애주지 않을 거면 이러지 말란 말이다! 내가 불타게 내버려 둬! 고통 속에서 뒹굴도록 내버려 둬!” 시몬은 당혹스러움에 주춤거렸다. 그때 류운이 말했다. “그 말대로 해주는 게 좋겠소.” “류운……!” “천년향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1,000년의 과거도, 현재도 아니오.” 그가 참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불사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미래’요. 우리는 너무 많이 살았고, 앞으로 이만큼 더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점점 늘어나는 시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아시오?”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시몬은 비로소 자신이 저주를 건 단목마가 스스로 호수에 뛰어든 기억이 떠올랐다. “아득히 긴 세월 앞에서, 언젠가 나아질 거란 희망은 더 큰 고통일 뿐이오.” 마침 인돌레스의 지속 시간이 끝났고, 다시 남자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발버둥 쳤다. 시몬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앞으로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오.” * * * 그렇게 류운과 불타는 남자를 만난 뒤, 다음 날. 시몬은 저주학 과제 때 바힐을 찾아갔다. “바힐 교수님.” 시몬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콤펠로에 대한 이야기, 계속해 보고 싶습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