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9화 단체합숙 둘째 날, 맹독학 과제가 시작되었다. 공터에는 개인 공방으로 쓸 수 있는 간이 건물과 작업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짐을 챙겨서 적당한 공방을 고른 뒤 실험을 시작했다. 몇몇 학생들은 중독시켜야 할 대상인 ‘단목마’를 먼저 관찰하러 갔고, 자신이 만들 독에 자신이 있는 몇몇은 바로 작업부터 시작했다. 시몬의 경우는 후자였다. ‘밑작업부터 해두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낀 뒤 아공간에서 가열램프, 냉조 장치, 추출기 등을 차례차례 꺼내 정리했다. 이어서 바닐라 그룹에서 준비해 준 커다란 재료 상자를 뒤적거리다가, 커다란 물고기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거 힘들게 구했지.’ 쓱. 쓱. 바로 작업칼을 쥐고 지느러미와 껍질을 도려내자, 허연 살갗과 내장이 드러났다. 시몬은 굳은 얼굴로 칼을 고쳐 쥐었다. ‘독 하나만으로 위험도 6급에 오른 몬스터.’ 구하기 힘들어서 천년향에 딱 한 마리 가져온 재료였기에 손질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우선 독이 든 장기인 ‘비장’에 칼을 푹 하고 꽂았다. 그러자 생선의 허연 살점이, 물감이 번져 나가는 수건처럼 끔찍한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좋아.’ 이 독은 강력하지만 외부에 노출되면 바로 위력이 떨어져서 손질 과정이 다소 번거로웠다. 어류의 몸뚱이 전체가 독을 품어서 완연한 보랏빛으로 물들자, 시몬은 신속하게 그것을 뒤집고 살점을 한 포 한 포 떠서 마른 수건에 올려두었다. 수건의 색도 점점 보라색으로 물들었고, 그 오염된 수건을 모조리 모아 그릇을 받쳐두고 밀폐결계 안에서 전용기구로 독을 짜냈다. 이후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터업! 잘 포장된 불가사리 세 개를 꺼내 관을 꽂아 독을 추출했고. 텅! 텅! 뿌리가 검은 식물들을 잘 으깬 뒤 용액에 섞이게 두었다. 그 밖에도 독성 버섯, 오크의 쓸개, 온갖 종류의 내장 등. 다양한 재료가 작업대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빠르게 밑작업을 마친 시몬이 숨을 고르며 장갑을 벗었다. ‘네크로맨서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과제네.’ 맹독학은 2년 반 동안 배워왔고, 이곳에 챙겨온 재료는 시몬이 다뤄본 재료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위험한 것들이었다. 과연 자신이 만든 독이 불사의 존재에게 어느 정도 먹힐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 * *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고결한 깃펜’의…….” “미안, 방금 녹음 안 됐어. 다시 하자.” “아이 참, 전원 버튼 누르는 거 자꾸 까먹지 말라구요! 이제 말하면 되죠?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고결한 깃펜’의 캐스터, 에리안이라고 합니다!” 키젠에서는 이번 합숙 훈련에 두 명의 언론인을 대동했다.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명분에 더해, 교내 기록 작성과 홍보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렇게 마력 촬영구 장비를 짊어진 남자와 여자 캐스터 콤비가 방문한 곳은 바로 맹독학 합숙 현장이었다. “룬 리그 이후 329기 키젠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뜨겁습니다! 암흑연합의 미래를 짊어질 엘리트들은 과연 어떤 훈련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한데요. 지금 바로 함께 확인하러 가보시죠!” 그녀는 터질 듯한 텐션으로 멘트를 마친 뒤, 앞을 바라보았다. “……으, 으음?” 캐스터의 눈앞에는 진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꾸욱! 꾹! 거대한 악어 몬스터의 시체를 매달아두고 즙을 짜내는 학생. 촤촤촤촤촤! 하나의 해체쇼를 보는 듯, 이빨이 튀어나온 상어류 몬스터의 배를 가르며 장기를 하나둘 뜯어내는 학생. 스윽- 슥- 기묘한 연기가 흘러나오는 마녀의 솥에 국자를 휘저으며 낄낄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뚜껑을 열고 가루 같은 것을 흩뿌릴 때마다 폭죽처럼 펑펑 하고 연기가 튀어 올랐다. “……대, 대단히 네크로맨서스러운 광경이네요.” 캐스터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학생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독의 기운에 주변의 나무들이 시들시들해지고 흙색이 변했다. 저 멀리 흐르는 계곡조차 벌써 오염된 건지 물의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죽음의 작업장. 캐스터는 메모리얼 수정구를 향해 변명하듯 말했다. “이쪽 주민분들의 허가를 받은 합숙이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리고요! 자, 조금 더 자세히 보러 갈까요?” 그녀는 용감하게 한 학생을 인터뷰하기 위해 나섰다. 상어 해체쇼를 감상하기엔 비위가 좋지 않았기에, 그 옆의 악어 즙을 짜는 학생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학생! 뭘 하시는…….” 그때 팔을 걷어붙인 채 숨을 헐떡이던 피츠제럴드가 경고했다. “조심하십시오.” 촤악! 죽은 줄 알았던 악어 몬스터가 갑자기 입을 쩍 벌리더니 캐스터의 바로 앞에서 텅! 하고 입을 다물었다. 한 발만 앞으로 갔다면 머리가 뜯겨 나갈 뻔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캐스터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어어……!” “아직 죽은 게 아닙니다. 언데드화시켜서 독을 추출하는 중입니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캐스터는 애써 웃으며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어, 어떤 독을 추출 중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이끼숲악어의 산성독입니다.” 피츠제럴드가 즙을 짜낸 독이 담긴 통을 들어 보였다. “현장에서 막 추출한 독이 가장 강력하다고 별야 교수님께 배웠습니다. 시중에서 거래되는 독보다 20배 더 세죠.” 피츠제럴드가 시범을 보이듯 젓가락 같은 도구를 통에 넣었다가 뺐다. 통에 넣은 젓가락 끝이 녹아내리며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금속마저 녹이는 독을 본 캐스터가 기겁하며 비명을 삼켰다. “그, 그런 걸 써서 죽지 않는 생물이 존재나 할까요!” “이 세계의 생물은 불사라고 하니, 기대해 봐야죠.”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우리 키젠은 어떤 과제든 완수할 뿐입니다.” “그, 그렇군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캐스터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다른 학생들의 인터뷰도 진행해 보았지만, 매번 독이 튀거나 실험체가 움직이는 바람에 생명의 위협만 느낄 뿐, 대체 이게 무슨 합숙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이러면 하이라이트가 없는데 어쩌죠 감독님? 키젠 측이랑 약속한 촬영 시간이 이제 다 돼가는데…….” 캐스터가 울먹이며 말하자, 마력 촬영구를 짊어진 동료가 옆을 가리켰다. “에리안, 우리가 첫날부터 여기에 온 이유가 있잖아.” “네?” “키젠 학생회장.” “아!” 그랬다. 세간의 가장 핫한 아이콘 중 하나. 1군단에 선전포고를 한 제7군단장이자 학생회장인 시몬 폴렌티아가 여기에 있었다. 그녀가 얼른 손거울을 꺼내 머리를 정돈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시몬 폴렌티아의 공방은 바로 앞이었다. 캐스터가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했다. “고결한 깃펜의 캐스터 에리안입니다! 잠깐 인터뷰 좀 괜찮으실까요?” -아, 들어오세요. 교내를 홍보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키젠의 학생회장이니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을 건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시몬이 상의를 탈의한 채 앉아 있었기 때문. 인체에 통달한 조각사가 정성 들여 깎은 듯한 저 이상적인 등 근육에 캐스터는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그러다 옆의 동료가 ‘흠’ 하고 헛기침을 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무척 근사한 근육…… 아니, 공방이네요!” 확실히 학생회장의 개인 공방은 다른 곳보다 깔끔했고 기괴함이 덜했다. 테이블에는 핏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미리 밑작업을 해둔 뒤였기에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곳곳에 관들이 정렬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놓인 유리병에는 검거나 노랗거나 녹색의 액체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학생회장님은 어떤 독을 만드시려는…… 와악!”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바로 그 보글보글 끓는 액체를 시몬이 들어서 입안으로 원샷한 것이다. 그러고는 근처에 놓은 약초를 들고는 으적으적 씹으면서 말했다. “즈스흡니다. 슬흠증으르.” “아, 아닙니다. 편하게 하세요! 근데 지금 드신 게 혹시…… 독인가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한 시몬은 약초를 삼키고는 가장 구석에 놓인 유리병 하나를 들었다. 딱 봐도 독성이 아주 강해 보이는 독이었지만, 그 유리병 속의 액체를 주사기에 넣더니 그대로 자신의 목에 꽂고 주입했다. 캐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 “괜찮습니다.” 꾸르르륵! 피부 곳곳의 혈관이 검게 물들어가며 선명해졌다. 누가 봐도 독이 퍼지는 증상이었기에 캐스터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지만 시몬은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의 몸에 펼쳐진 마법진들이 체내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게 물든 혈관들이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가고, 왼팔의 혈관만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이에 시몬은 왼팔을 들더니 칼로 손바닥을 얇게 베었다. 주르르륵-! 몸 안에서 나온 독극물이 피와 함께 손을 타고 흘러내려 세숫대야에 담겼다. 시몬이 설명했다. “별야 교수님은 독을 만드는 제조법뿐만 아니라, 혈독의 활용을 강조하셨어요. 독에 면역이 쌓이면 제 몸에서 다양한 독을 해독, 분해, 합성할 수 있죠. 이번 합숙 과제의 해법은 혈독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 “괜찮으신가요? 캐스터님.” “네, 네엡!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 혈독을 뽑아내니 상처에서 검은 피가 아닌 신선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시몬이 얼른 손을 떼어서 소독하고 붕대를 감은 뒤, 방금 자신의 몸에서 받아낸 검은 피를 다시 유리병에 담기 시작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과제를 수행하러 가야 해서요.” * * * 그렇게 맹독을 완성한 시몬은, 바로 단목마에 시험해 보기 위해 분지로 내려가고 있었다. 비슷한 타이밍에 독을 완성한 피츠제럴드도 함께였다. “작업은 잘 풀렸어?” 시몬의 물음에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완벽한 독으로 준비했다.” “자신만만한데.” 그렇게 두 사람이 분지로 내려가고 있을 때, 옆의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단목마들인가 싶어서 경계하고 있는데 수풀 위로 손이 불쑥 들어 올려졌다. “우리야.” 같이 맹독학 합숙을 진행하는 두 남학생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아는 사이인지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시몬도 이들과 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만 얼굴은 알았다. 늑대처럼 뾰족한 귀가 드러나 있고, 몸 곳곳에 털이 보이는 남학생은 글렉 크로우. 귀에 커다란 귀 덮개를 착용한 남학생은 번리 이미터였다. “하하! 너희 둘도 시험하러 가는 거냐?” “같이 가. 성분 공유는 안 되지만, 그냥 정보 공유는 가능하잖아.” 네 소년은 금방 의기투합했고, 함께 분지로 내려왔다. “오.” 말똥 냄새 같은 게 은은하게 퍼지고 있고, 곳곳에 단목마들이 드러누워 있거나, 멍하니 서 있거나, 혹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시몬, 여기.” 피츠제럴드가 쪼개진 나무 기둥을 가리켰다. “건축물의 흔적이 보인다.” “예전에는 사람이 살던 마을인 것 같네.” 우물이나 낡아 문드러진 문짝 등 곳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인간들이 몬스터에게 쫓겨났나 보군. 그러고 보니 죽음이 없는 세계에서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흐흐! 질릴 때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거겠지!” 흥미로운 주제라는 듯 글렉 크로우가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답했다. 그는 점점 늑대인간과 동화되는 건지, 성격이 호전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다 더 피곤한 쪽이 물러나면 지는 거고! 어쩌면 영원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겠어!” “별로 관심 없어.” 피곤한 음성으로 말한 번리 이미터가 앞을 가리켰다. “빨리 독 듣는지 시험해 보고 합격 받아서 끝내자. 안 그래도 조제하느라 속 미슥거리니까.” 네 사람은 이번 시험 1번 합격자라 자신이 거라고 확신했고, 1골드 내기까지 했다.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켜며 웃었다. “시작해 볼까.” -푸륵! 마침 단목마 한 마리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