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8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숙소인 대궐에 도착하자 조교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고, 학생들은 간단한 공지 사항을 듣고 저녁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운 다음 쓰러지듯 잠들었다. 방에는 침대가 없어서 이불을 깔고 자야 했지만 좋고 나쁘고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방 자체는 뜨끈해서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기상! 기상하십시오!” 퀭- 학생들이 힘겨운 얼굴로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시끄러운 확성 수정구의 울림에도 끝까지 잠에서 일어나지 않고 누워 있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바로 토토가 그랬다. ‘토토가 룸메이트일 때는 이런 점이 편했지.’ 시몬이 미소를 지으며 토토를 흔들어 깨웠다. “토토, 아침이야.” “음냐 으음음.” 토토를 깨우고 일어나니 밖은 이미 분주했다. 여벌의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학생들이 기지개를 켜고 나와 있었다. “조-장! 좋은 아침!” 말끔한 새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에슈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전히 졸렸던 시몬이 눈을 비비며 웃었다. “좋은 아침이야 에슈.” 그 옆으로 눈이 퉁퉁 부은 피츠제럴드가 기어 나왔다. “……옷 세탁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난 체육복이 한 벌뿐이다.” “본인이 강가에서 직접 해야 한대! 난 벌써 하구 왔어.” “……성실하군.” 절대 일어나지 않으려는 토토를 다시 한번 일으킨 뒤, 네 사람은 함께 아침밥을 먹으러 나왔다. 훈련을 마치고 비몽사몽해서 공지사항이 잘 기억이 안 나긴 했지만, 합숙 기간에는 학과별로 돌아가며 식사 담당을 맡아야 하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만 하수인들이 만들어 훈련 장소로 가져오고,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는 학생들이 각자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면서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히 식재료는 모두 학 측에서 준비했다. 사각- 사각- 오늘 아침은 칠흑역학과 학생들이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감자 깎는 소리와 화륵화륵 불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 멀리 학생들이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칠흑역학과답게 땅에 박혀 있던 바위를 흑마법으로 세워서 받침대를 만들었다. 바로 그 위에 거대한 냄비를 올린 뒤 물을 끓이고 있었다. ‘진짜 합숙은 합숙이네.’ 이런 캠핑 감성은 또 오랜만이었기에 시몬이 팔짱을 낀 채 웃었다. 밥을 먹으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이 학생들 사이에서 벌써 이런저런 정보들이 오가고 있었다. 다음엔 어떤 과목 훈련을 받을지, 과제는 무엇일지 여러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너희들, 홍펭 교수님의 훈련은 합격했어?” 에슈의 물음에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당당히 말했다. “꼴등으로 합격했다.” 토토가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나는 떨어졌어.” “가, 같이 열심히 해보자! 우리 조장은…… 말 안 해도 될 것 같네! 처음부터 선두에 있었지?” 시몬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됐어.” “에이, 미안해하는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이렇게 된 거 확실히 키젠에서 1등으로 통과해 버려! 파이팅!”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줄이 금방 줄어들고, 시몬 일행의 배식 차례가 되었다. 첫 아침 식사는 감자수프에 삶은 달걀, 빵이었다. “맛있게 먹어!” 배식도 학생들의 몫이었는데,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앞치마를 입은 메이린이 직접 수프를 떠주고 있었다. 그러다 시몬을 보고는 꽃망울이 터지듯 활짝 웃었다. “시몬! 좋은 아침!” 멍하니 있다가 기습적으로 날아온 그녀의 미소에, 시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좋은 아침이야. 메이린.” 음식 냄새가 강렬했다. 배가 고파진 시몬이 식판을 내밀며 말했다. “많이 줘.” “뭐래, 바보야. 정량배식이야.” 메이린이 국자로 수프를 한 움큼 뜨며 말을 이었다. “학생회장이 첫날부터 합숙의 룰을 어길 셈이니?” “미, 미안.” 모처럼 아는 사람이 배식하기에 가볍게 툭 던져봤는데 괜히 핀잔만 받고 말았다. “맛있게 먹어!” 그런데 메이린이 퍼준 감자수프는 양은 다른 사람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안에 든 감자나 야채가 훨씬 많았다. 이게 바로 부회장의 룰을 지키면서 사심을 채우는 방식인가. 시몬은 눈빛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렇게 소환학과 네 사람은 식판에 음식을 받아와 근처에 앉아서 아침을 먹었다. 따뜻하고 짭조름한 감자수프를 먹으니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고 몸에 에너지가 솟았다. 밖에서 먹는 거라 그런지 입맛이 확 돌았다. 식판을 그야말로 싹싹 비웠다. “둘째 날 훈련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대궐 앞 마당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합숙이 시작됐다. 학생들은 찌뿌둥한 몸을 풀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시몬도 줄을 서서 학과 대표들이 인원 파악을 하는 걸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갑자기 그늘이 졌다. 어느새 헥토르가 다가와 있었다. “아, 좋은 아침이야 헥토르. 할 말 있어?” 시몬은 헥토르가 또 누가 다섯 과제를 먼저 해결할지 승부하자는 둥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지만. “합숙을 빠르게 끝내고 이 세계에 대해 조사해 보고 싶다.” 헥토르가 조용히 말했다. “키젠에서 이런 곳에 우리를 보낸 이유가 있을 터.” “……그렇겠네. 그래도 지금은 훈련에 집중하자.”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켜며 말을 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통과할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 * * * 천년향 합숙의 룰은 다음과 같다. 1. 다섯 과목의 과제를 모두 완수해야 합숙 커리큘럼 수료. 2. 하나의 과목 과제를 합격하면, 다음 과목으로 무작위 이동. 마지막 과목은 학생들의 전공과목으로 고정. 4. 8일 훈련에 2일 휴식. 총 10일의 로테이션. 8일 내내 해당 과목 과제를 하나도 수료하지 못한 학생은 무작위 과목 변경. 5. 수료하지 못한 과목 과제까지 모두 수료해야 마지막 전공 과제 도전 가능. 그렇게 조교가 불러준 명단에 따라 시몬은 15명의 학생들과 함께 이동했다. 전부 어제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이었다. 어떤 과목으로 갈지는 무작위이며, 합격한 뒤 다음에 갈 과목도 무작위로 정해진다고 제인은 밝혔다. 그렇게 인솔하러 나온 하수인을 따라 숙소인 대궐에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오늘 훈련 못 끝내면 내일도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빡세네.” 학생들끼리 여러 엄살 섞인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시몬은 비교적 친숙한 피츠제럴드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워낙 과묵한 성격이라 금방 이야기가 끊어졌지만, 그래도 이런 편안한 침묵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들 어서 와라! 어서 와!”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을 쭉 드러내며 웃는 회갈색 머리카락의 여성. 바로 별야 교수였다. ‘다음 합숙 훈련 과목은 맹독학이구나!’ 시몬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사이, 피츠제럴드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별야의 맹독학 수업은 ‘독 먹어서 내성 쌓기’ 같은 워낙 괴팍한 수업 내용이 많았던 탓이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이 세계의 독을 먹는 훈련만큼은 참아주셨으면 합니다.” “뭐래는 거냐, 안경잽이! 나를 뭘로 보고!” 별야갸 쾌활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다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흠, 생각해 보니 좋네. 다음 로테이션 과제는 그걸로 바꿀까?” “…….” 학생들은 일제히 피츠제럴드를 노려보았다. ‘네가 다음에 올 동기들을 죽였어!’ 학생들이 웅성거리는 동안, 시몬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꽤 멀리 걸어온 것치고는 평범한 산악 지역 같아 보이네.’ 주위는 여전히 푸른 하늘과 단풍진 나무들이 많은 산이었다. 이곳에서 과연 어떤 훈련을 치르게 될지 궁금했다. 착. 별야가 웃차, 하고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뒤에서 대기하던 조교들도 하나둘 주위로 몰려와서 기립했다. “그래, 그 불안한 표정들. 이해한다! 이게 다- 너희들을 아끼니까 하나하나 가르침을 떠먹여 주고 몸으로 독을 배우게 한 건데, 내 마음을 이해하는 제자들이 없는 건 아쉽구만!” 그녀가 가슴을 탕탕 치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아무것도 안 할 거다! 아주 자유롭고, 너희들의 창의성을 살릴 수 있는 훈련으로 준비했다!” 그녀가 뒤를 가리켰다. “보이냐?” “네?” “안 보이면 조금 더 앞으로 왓!” 그녀의 외침에 학생들이 엉거주춤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제야 학생들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저건……!” 이 산 아래에는 커다란 분지 지형이 드러나 있었다. 호수를 중심으로 무수한 몬스터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겉보기엔 야생마처럼 보였는데 대륙의 말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걸레솔을 연상케 하는 긴 갈기가 내려와 눈은 물론 얼굴 전반을 가리고 있었으며, 그 갈기 아래로는 송곳니가 번쩍이고 있었다. 덩치도 일반 말보다 훨씬 거대하고, 성질도 사나워 보였다. 영역 다툼이 일어나는지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밀치고 다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가끔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말 한 마리가 걷어차였는데, 그대로 수십 미터를 날아가 암벽에 처박히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 모두가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이 세계에서는 ‘단목마(丹木馬)’라고 불리는 아주 흉포한 몬스터다.” 별야가 씩 웃었다. “눈앞에 살아 숨 쉬는 것을 짓밟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놈들이지. 성격이 극도로 포악해서 통제가 불가능해. 대륙에 저런 게 넘어오면 생태계가 개박살 날걸? 심지어 천년향의 몬스터답게 뒈지지도 않아.” 시몬의 시선이 돌아갔다. 영역 싸움에서 밀려난 말의 몸에 노란빛이 번쩍이더니 벌써 회복되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러진 척추뼈와 함몰된 살이 점점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단목마의 수복(修復) 능력은 천년향에서도 최상위권이라더군. 이번 합숙의 맹독학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별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 단목마의 수복을 뚫고, 숨통을 끊어버릴 ‘맹독’을 제조하는 거다.” “……!”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수석!” “예.” 맹독학 수석조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번 합숙 훈련 과제에 대한 세부 사항을 설명드리겠습니다.” [합숙 과제 : 불사의 몬스터에게 통하는 독 조제하기.] -독을 먹은 단목마가 완전히 ‘해체’되어, 다른 곳에서 ‘소생’하도록 만들 것. -해체되지 않고 중독으로 인한 피해를 ‘수복’해 버리면 실패. -대륙에서 가져온 모든 독극물 사용 가능. -천년향에서 새롭게 채취한 모든 독극물 사용 가능. -중독은 경구투여 방식만 허용. 학생들이 빠르게 내용을 필기하고 있는 동안, 별야가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이 크기, 익숙하지? 조제할 맹독 용량은 대륙 평균 사이즈인 50㎖ 이하로 한다.” 시몬 옆에서 필기를 하던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저 규칙이 핵심이군. 이렇게 용량이 이렇게 적다면 방대한 산성으로 몬스터를 녹여 버리는 건 불가능하다.” “철저하게 맹독의 독성으로 승부해야 하나 봐.” 설명을 하던 별야가 손을 휘휘 흔들었다. “맹독을 완성하면 나나 다른 조교들 앞에서 직접 시연해야 한다! 몬스터에게 독을 먹이고 경과를 관찰한 뒤, 합격 여부를 판단하마! 당연히 레시피와 용량을 적어 내야 하는 건 말 안 해도 알지? 중간 단계에서 같은 시험자끼리 레시피 공유는 허용하지만, 성공한 맹독의 성분을 공유하는 건 부정행위로 두 쪽 다 불합격 처리다. 나는 딱 봐도 아니까 개수작 부릴 생각은 말고.” 별야가 옆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어기 보면 너희들이 가져온 화물들을 미리 다 빼놨다. 조금 더 가면 간이 공방이랑 작업대까지 조교들이 싹 세팅해 뒀는데, 그 시설을 사용해서 독을 만들어봐.” 정말이었다. 소환수를 써서 옮겼는지 학생들의 화물과 물건들이 질서 정연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다들 가져온 재료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끊임없이 수복되는 불멸의 몬스터를 독으로 무너뜨리는 시험이다. 미리 말하지만, 이 시험은 운으로는 통과 못 해. 너희가 3년 가까이 배운 모든 맹독 지식을 총동원해서 쥐어짜 내지 못하면 이 시험은 한 달이 아니라 평생을 가도 합격하지 못할 거다.” 별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합숙 시작이다, 이것들아!” 죽지 않는 몬스터의 숨통을 끊을 독 만들기. 모든 학생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장갑을 끼고 작업대로 걸어갔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