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7화 아론으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키젠은 결사와의 전투를 벌이며 그들의 본거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죽음이 없는 세계 천년향의 좌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키젠은 천년향의 사람들과 접촉하여 교류를 시작했다. 다행히 이곳은 아직 결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세계로 보였으며, 키젠 측은 이 독특한 환경을 연구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한 끝에 방문을 승인받았다. 그러다 대륙의 상황 때문에 연구는 다소 미뤄졌고, 그 대신 대륙의 1시간이 천년향에서는 10시간에 해당하는 점을 활용해 키젠 3학년들의 합숙 훈련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되도록 이곳의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도록.” 아론이 말했다. “이곳에 사는 일반인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게 낫다. 불멸의 존재들이 죽음을 다루는 우리를 달가워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 한 손이 번쩍 올라갔다. “교수님, 딕 헤이워드입니다! 이렇게 많은 키젠 학생이 극독이나 언데드 같은 위험한 물건들을 가지고 왔는데 이걸 활용해도 괜찮은 거 맞나요? 어지간한 생태계라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위험한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허가를 받았다.” 아론이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세계의 기술도 이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없을 거라고, 그들도 자신하더군.” “자, 자신만만하네요.” “물론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생태계 파괴나 인간에 대한 공격은 불허한다. 우리가 연구를 허가받은 건 몬스터들까지다.” 아론이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번 합숙은 이 지역만을 다스리는 자와 합의된 결과일 뿐, 이 세계의 왕과는 합의되지 않았다. 다행히 왕이 거주하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다지만, 혹시 모르니 불필요한 분란은 피하도록.” “네!” 아론이 설명을 끝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홍펭 교수님.” “알겠어요.” 홍펭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머리를 묶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온 그녀는, 그저 앞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환호가 일었다. “자아! 지금부터 첫 번째 합죽 커리큘럼을 지작하겠어요! 여러분도 알다지피, 여러분이 전택한 5개 과목 과제를 각 교주님으로부터 모두 ‘합격’을 평가를 받아내야 해요. 그럼 먼저-” 그녀가 미소 지었다. “공통 커리큘럼으로 지정된 제 마투학부터 지작할까요?” 첫 커리큘럼부터 홍펭의 마투학이라니. 학생들이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 * * “체육복으로 갈아입히더니 이럴 줄 알았어!” 메이린의 힘겨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체육복 차림의 학생들 모두가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옆에서 함께 뛰는 마투학과 조교들이 학생들을 독려했다. “칠흑 체내 분화 상태는 유지하셔야 합니다!” “더 빨리!” 이번 마투학 합숙 과제의 룰은 간단했다. 키젠 3학년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마투기, ‘칠흑 체내 분화’를 유지한 채로 홍펭을 따라 코스를 완주하는 것. 팔에는 잔존 칠흑량을 표시해 주는 아티팩트도 착용한 채였다. 칠흑 체내 분화는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크게 끌어올리는 마투기다. 칠흑이 땀방울처럼 둥글게 변하여 피부로 배출되는 게 특징인데, 덕분에 학생들이 달리는 곳곳마다 검은 물길이 흩날리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허억! 허억!” “어, 어쩐지 대륙에서보다 달리기 힘들어!” 학생들이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가운데, 시몬은 차분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곳에서 체력 훈련도 나쁘지 않네.’ 온 세상이 붉고 노란 낙엽으로 뒤덮인 천년향을 배경으로 달리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대륙의 낙엽보다 훨씬 선명한 색감의 낙엽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더 빠르게 뛰제요!” 선두에 선 홍펭은 두 팔을 벌린 채 자유를 만끽하듯 달리고 있었다. 모두가 홍펭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 사이, 곳곳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칠흑이 모두 소진됐습니다. -칠흑이 모두 소진됐습니다. 휴식을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작정 칠흑 체내 분화를 사용한 채 달리다 보니 금방 칠흑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 팔의 아티팩트에서 경고음이 울린 학생들은 하나둘 풀밭에 주저앉거나 엎어졌다. 홍펭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자리에저 멈춘 학쟁은 마투 주업 때 배운 호흡법을 지작하제요! 칠흑이 회복된 뒤에 다지 뛰는 거예요!” “네!” 학생들이 하나둘 가부좌를 틀거나, 각자 편한 자세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대기 중의 마나를 체내로 받아들인 뒤, 그것을 칠흑 코어에 통과시켜 칠흑으로 한층 빠르게 전환하는 호흡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으윽!” “큭!” 호흡법을 실행한 학생들 사이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식은땀을 흘리며 안색이 흐려진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기침을 하거나 코피를 뚝뚝 흘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렇구나!’ 시몬은 홍펭이 주도하는 첫 훈련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칠흑 체내 분화로 학생들의 칠흑을 전부 소진시킨 뒤, 호흡법을 통해 이 세계의 마나로 칠흑을 보충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마나는 대륙과는 농도도, 성질도 전부 다르다. 평생을 호숫물에 살던 물고기가 갑자기 바닷물에 들어온 것처럼, 학생들은 몸속으로 밀려든 낯선 마나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여러분의 칠흑 코어는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어요!” 홍펭이 호흡법을 구사하는 학생들 주위를 한 바퀴 크게 돌며 조언했다. “다른 제계의 마나를 무작정 코어에 밀어 넣으면 위험해요! 먼저 체내의 마나를 완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코어의 작동 방직도 조정하제요!”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제계의 마나라도 우리의 힘으로 만들 주 있어야 해요! 적응하제요!” 홍펭이 주위를 크게 다섯 바퀴 도는 동안, 결국 시몬을 포함한 모든 학생이 칠흑을 전부 소진하고 풀밭에 앉아 호흡법을 구사했다. 곳곳에서 콜록거리는 소리와, 쉭쉭 바람 새는 소리, 목이 메인 듯한 신음이 뒤섞여 울려 퍼졌다. ‘어려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시몬도 마나를 끌어들여 칠흑 코어에 통과시키다가 인상을 썼다. 코어가 이질의 마나를 거부하듯, 가슴을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칠흑으로 바뀌는 효율도 극히 떨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유난히 주위가 조용해진 걸 느낀 시몬이 눈을 떴다. 어느새 홍펭이 다른 학생들처럼 풀밭에 앉아 호흡법을 하고 있었다. 홍펭 교수의 비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학생들이 모두 그녀를 주목했다.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홍펭이 두 팔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아- 주위의 대기가 그녀를 중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서서히 두 팔을 좁히자, 마치 바람 자체가 그녀에게 빨려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뭘 하시는 거지?” “모르겠어.” 그녀는 이내 양손으로 마나를 모아 서서히 가공하기 시작했다. 마나가 점점 압축되며 크기가 줄어들더니, 이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마나 구슬이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입을 쩍 벌린 뒤. 꿀꺽! 그대로 그 구슬을 한 입에 집어삼켰다. 모두가 숨죽인 채로 지켜보았다. 꿀떡 꿀떡 구슬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비록 육안으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지만, 모두가 그 구슬이 그녀의 코어를 통과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녀가 두 손을 모았다. 패앵-! 그녀의 귀와 코에서 증기기관처럼 검은 연기가 한 차례 흘러나왔다. 이내 그녀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전신에서 칠흑이 새것처럼 흘러넘치고 있었다. “와아아……!” “아까 그 많은 양의 마나를 한번에 칠흑으로 만든 거야?” 홍펭은 제자리에서 워밍업을 하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입맛을 다시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전혀 참고가 안 되는데.” “홍펭 교수님만 가능한 방식이잖아. 따라 할 수도 없고, 너무해.” 학생들이 투덜거리며 다시 호흡법에 집중했다. 몇몇은 홍펭을 흉내 내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시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감을 잡았다. ‘홍펭 교수님만 가능한 방식이니 따라 할 수 없다고?’ -여러분의 칠흑 코어는 여러분이 가장 잘 알고 있어요! 홍펭이 강조한 건 분명 이 말이었다. 남의 행동을 신경 쓸 필요 없고, 자신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내가 잘하는 거.’ 시몬은 마나 기반 에너지, 특히 칠흑과 신성을 섞는 것에 능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게 친위대의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나, 혼돈이었으니까. ‘경직된 사고를 깨뜨려. 뭐든 시도해 보자!’ 동기들이 낑낑대며 호흡을 하는 사이 시몬은 냅다 아공간을 열고 군단형 스켈레톤 몇 기를 소환했다. 시몬은 그들의 코어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빌려갈게.” 키이이이잉! 군단형 언데드들은 모두 시몬의 칠흑으로 움직이는 만큼, 그 칠흑을 뽑아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갑자기 자기 언데드들의 칠흑을 빨아들이는 시몬의 모습을 보며 주위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방식으로 칠흑을 잠깐 얻어봐야, 결국 호흡으로 마나를 칠흑으로 바꾸지 않으면 홍펭을 따라잡을 수 없을테니까. ‘좋아.’ 체내에 충분한 칠흑이 모이자 시몬은 칠흑을 마나와 섞어 조율하기 시작했다. 여러 비율로 조정하면서 변화를 실험했다. 계속해서 두 힘을 섞고 흔들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고도 효율적인 칠흑과 마나의 조합이 탄생했다. 이제 시몬은 천년향의 마나와 칠흑을 새로운 비율로 섞은 뒤 코어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코어의 거부반응이 크게 사라졌고, 마나로 존재하던 에너지도 모두 정상적으로 칠흑으로 변했다. ‘이거야!’ 감을 잡은 시몬이 무럭무럭 칠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진짜 적응했잖아!” “어떻게 한 거지?” 시몬뿐만이 아니었다. “후으으으읍!” 헥토르는 용으로 변신한 뒤 브레스를 사용하기 전의 과정처럼 주위의 마나를 모조리 입으로 빨아들여 칠흑을 생성하고 있었고. [음냐 음냐.] 메리다는 유령화되어 빠져나와, 자고 있는 본인의 몸에 ‘꿈’을 꾸게 해서 몸의 거부반응과 잠재의식을 해제한 채 마나를 칠흑으로 변화시켰으며. <상아탑 고위 계승 – 엘리멘탈 마스터> 메이린은 마법진을 연달아 펼쳐놓고, 엘리멘탈 마스터 특유의 대리연산으로 자신에게 맞는 마나호흡법을 새로 개발했다. 스윽. 슥. 어느새 시몬, 헥토르, 메리다, 쥴, 메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또 Top10 쟤들이야?” “새로운 세계니까 우리가 유리할 줄 알았는데, 천재들은 적응도 빠르네.” 그 밖에도 거인혼혈 샤텔 마에르와, 맹독학과 총과대인 클라우디아 멘지스, 다수의 마투학과 학생들도 합류했다. 전체 4위의 에이젤은 바람과 마나의 흐름에는 스페셜리스트지만, 기존 방식에 너무 통달한 나머지 사고가 굳어져 처음에는 살짝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수의 학생들이 홍펭을 따라 달려갔다. “뛰면저도 본인만의 방법으로 계족 칠흑을 보충하제요!” 홍펭을 따라잡으려면 반드시 ‘체내 칠흑 분화’ 상태를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 그러니 호흡으로 마나를 계속 칠흑으로 바꿔 보충해야 했다. 처음에는 상위권 학생들조차 일정 거리를 달린 뒤 앉아서 칠흑을 보충하고 다시 달렸지만, 시몬이나 헥토르, 쥴처럼 점점 달리기와 호흡을 동시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 “조금만 더 힘내요!” 홍펭이 바위에 깃발을 꽂은 채 앉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숨을 헐떡이며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온 학생은 이번에도 역시나. “합숙 첫째 날, 시몬 폴렌티아 학생 마투학 과제 합격입니다.” 마투학과 조교 브레드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시몬의 이름을 체크했다. 시몬이 올라오자마자 털썩 쓰러지듯 엎어졌고, 다른 조교들과 의료팀들이 다가와 물과 수건을 건넸다. “헥토르 무어 학생 마투학 과제 합격입니다.” “샤텔 마에르 학생 마투학 과제 합격입니다.” “쥴 빈체레 학생 마투학 과제 합격입니다. 마투학과 학생은 전공 과제를 따로 치르셔야 합니다.” 곳곳에서 합격자가 늘어났다. 다들 숨을 토해내며 자리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헐떡이며 아름답게 노을이 물든 하늘을 바라보던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된다.” 놀랍게도. 칠흑의 기억하는 성질 덕분인지 이제는 섞으려고 의식하지 않아도 체내에서 알아서 그간의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날이 완전히 저물 즈음 홍펭이 손뼉을 쳤다. “여기 있는 전원 첫째 날 기본 마투학과 훈련 합격입니다!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세요!” “감사합니다!!” 다섯 개 훈련 중의 하나를 첫째 날에 무사히 해치웠다. 시몬이 뿌듯한 얼굴로 저물어가는 천년향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과를 축하하듯 낙엽 하나가 떨어져 시몬의 얼굴을 부드럽게 덮어주었다. * * * 그리고 합숙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 “저들이오?” “예.” 두 남자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직 숨 쉬는 것도 벅차 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 “지금은 저렇지만, 금방 놀라운 속도로 적응해 다른 모습을 보일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긴 옷을 입은 남자는 머리에 쓴 삿갓을 올리며 눈동자를 드러냈다. “저들이 바로, 우리에게 ‘죽음’을 만들어줄 수 있는 자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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