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62화 본의 아니게 방학 내내 집을 지었던 시몬의 훈련성과가 여기서 드러났다. "......."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린 시몬이 지휘자처럼 손끝을 움직였다. 그의 지휘에 맞춰 스켈레톤들은 떨어졌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각 작업을 효율적으로 구성했다. 나무를 잘라 오게 하고, 그 나무들을 모아서 노끈으로 튼튼하게 엮었다. 힘이 필요한 경우는 스켈레톤의 팔에 다수의 팔이 연결되기도 했으며, 본 아머가 돌아다니며 공구를 공급하는 등 모든 작업이 척척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레스힐에서 집짓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간이 거주지를 짓는 정도는 이제 식은 죽 먹기였다. "버, 벌써 이렇게 지었어?" 메이린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잠시 강에서 식자재를 씻고 돌아온 사이, 풀로 엮은 바닥이 펼쳐져 있고 통나무 기둥들이 균일하게 깔려 있는 등 그럴듯한 집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시몬! 이거 판자 옆에 붙여서 비바람을 막아보자!" "좋네." 딕의 조력도 주요했다. 시몬이 뭘 만들고자 하는지 잽싸게 파악한 그는 필요한 재료들을 척척 꺼내서 조달했다. 나무들을 엮어 만든 벽에 점토를 바르고, 천장에는 빈틈없이 판자를 붙여서 빗물이 지붕을 따라 옆으로 떨어지도록 했다. "하나 둘!" "웃차!" 이내 조립한 지붕을 올리는 것으로 초원 속 작은 집이 완성되었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사이 시몬은 나무를 엮어서 새로운 천장을 만들었고, 뭘 하려는지 눈치챈 딕은 집 밖에 모닥불을 피울 구덩이를 파고 장작을 얹었다. 이내 완성된 집 바로 앞에 천장을 연결하고 막을 두르는 것으로 일종의 간이 공간을 만들었다. "거의 다 완성됐네." 시몬이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사이 불을 피워놓고 기둥이 흔들리지 않도록 재차 고정한 딕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올라가자. 여자애들아, 양해 좀 부탁한다." "이런 곳에서 재워서 미안해." 시몬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다리를 끌어모아 앉아 있던 메이린이 생긋 웃었다. "아니야~ 가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데?" 카미바레즈가 손뼉을 쳤다. "시몬! 딕! 두 사람 다 수고하셨어요!" 그사이 여자들은 요리 준비를 다 해둔 상태였다. 비는 막았지만 습기 때문에 모닥불에 불이 잘 안 붙었는데, 메이린은 마법진을 펼치고 칠흑화염계가 아닌 순수마법으로 불을 붙여 유지했다. 이렇게 마나를 이용한 불로는 음식을 직접 해 먹어도 문제가 없었다. 양고기와 야채 등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꽂아둔 꼬챙이를 모닥불에 고정하자 금방 육즙이 뚝뚝 떨어졌다. 근처에는 간이 냄비를 올렸다.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토마토 수프가 담겨 있었다.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지만, 내부는 온기로 따뜻했다. "이번 방학 최고의 하루네." 메이린이 잘 익은 꼬치구이를 꺼내며 말했다. 시몬도 덩달아 웃으며 웃차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새벽부터 난리였지." "아, 진짜. 마투학과 애들 시비 거는 것부터 시작해서 장난 아니었다고." 딕도 제 어깨를 두들기며 한마디 거들었다.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파닥 흔들었다. "내일 홍펭 교수님 댁에 가면 또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응. 오늘이 1일 차라는 게 믿기지 않네." "자, 자, 술은 없지만 건배해야지! 얼마 안 남은 방학과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다들 높이 꼬치구이를 들어 올려 부딪혔다. "건배!" * * * -저를 직속제자로 삼으시겠다고요? 가,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교수님, 제가 해냈습니다! 흑의에 성공했다구요! 보세요! 솔직히 말해. -제가 시몬 폴렌티아를 꺾는다면, 그때는 저를 봐주실 겁니까. 스승에 대한 존경과 공경, 그 이상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킨터는 상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고는 기둥을 힘껏 붙잡았다. 뭐가 그렇게 초조하고 조바심이 났을까. 고작 놈들의 배를 찾았다는 것만으로 흥분해서 덤비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지금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경과는 다음과 같다. 킨터의 마투학과 일행은 기어이 바다를 헤엄쳐서 초원 하류 기슭까지 기어 올라왔다. 올라올 즈음에는 날이 어두워져 있었고, 일행들은 모두 탈진에 탈수상태라 풀밭에 엎어져 숨을 헐떡이기만 했다. 한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뻗어 있으려니, 이쪽에도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현재의 상황. "하나 둘 셋 하면 올려!" "하나 둘 셋!" 마투학과 두 명이 밧줄을 잡아당기자, 나무와 넝쿨을 연결한 기둥이 쭉 올라왔다. "됐다!" 그들이 환호하기 무섭게, 반대쪽 지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으아악-! 학생들의 얼굴이 피로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아니, 이게 또 왜 무너지는데!" "딱딱한 지면에 박았어야지! 어떤 병신이 이렇게 무른 땅에 기둥을 박냐고!" 비는 그칠 기세 없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고, 남탓과 짜증만 늘어나고 있었다. 킨터가 힘겹게 기둥을 일으켜 세웠다. "사내놈이 넷인데 집 하나 제대로 지을 수 있는 놈이 없냐. 하." 슬슬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당장 비를 피해 불을 쬐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킨터!" 그때 주위 탐색을 나갔던 마투학과 학생 한 명이 돌아왔다. "동굴이야! 내가 동굴을 찾았어!" "......동굴이라고?" "흐하하! 그러게 내가 집 같은 거 지을 필요 없다고 했잖아!" 네 사람이 눈을 빛내며 달려갔다. 온몸이 무겁고, 옷이나 머리카락이나 홀딱 젖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여기야!" 정찰을 맡은 학생이 수풀을 걷으며 앞을 가리켰다. 절벽 아래 큼지막한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너." 킨터가 이마를 짚었다. "......저기 아무도 없는 거 확인했냐?" "그건 이제 다 같이 확인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 "X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두 동공이 드러났다. -그르르르르르! 쿵! 쿵!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동굴 안에서 끔찍한 흉터가 나 있는 커다란 괴물곰이 튀어나왔다. 학생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위험도 6급의 '자이언트 베어'야!" "한두 놈이 아니잖아! 뛰어!" 평소라면 어떻게든 맞서볼 생각이라도 했겠지만, 지칠 대로 지쳐있는 지금 몬스터와 싸우는 건 자살행위였다. 그렇게 괴물곰에 쫓겨서 또 한참을 달려야 했다. "으아아." "허억! 헉!" 그들이 무리하게 강을 건넌 뒤에야, 곰들은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며 돌아갔다. 다들 바닥에 퍼질러 누워 숨을 헐떡였다. "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지?" "엄마 보고 싶다." 사기는 최악. 컨디션도 갈수록 떨어지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슬슬 저체온증 증상이 오고, 먹고 마실 것도 마땅치 않다. 이대로는 정말로 위험했다. 그냥 일반인이었으면 죽어도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킨터! 저기 봐!" 동굴을 처음 발견했던 학생이 팔을 뻗었다.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킨터가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넌 X발 이번 여행 동안 입도 뻥긋하지 마. 새끼야." "아니, 아니! 저기 불빛이 보여!" 다른 학생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불빛이라고?" "이런 곳에?" 그들이 하나둘 불을 관찰하러 갔지만, 킨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라이 같은 새끼들. 이제 슬슬 환각을 쳐보기 시작하나." "아니, 진짜야! 진짜 불빛이라고!" 그 말에 킨터도 벌떡 일어났다. 확인해 보니 정말이었다. 희미하지만 안개 너머로 불빛이 보인다. "마을이다!" "사, 살았다! 분명 초원 하부에 사는 소수민족일 거야!" 킨터 일행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불빛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쟤들 대륙어 할 줄 알까?" "할 줄 아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있겠지." "뭣하면 교수님 이름 대면 돼.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그러면 알아서 넙죽 엎드리고 대접해 주겠지." "아니, 아니, 그냥 저 마을이 홍펭 교수님 일족이 사는 곳 아냐?" "와, 진짜 그럼 개쩔지! 바로 내기에서 이기고 시몬 폴렌티아한테 한 방 먹이는 거지!" 다들 희망차고 화기애애한 얼굴로 마을 앞에 도착했다. "......." "......." 킨터 일행의 대화가 거짓말처럼 끊겼다. 비가 내리는 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마을의 입구는 극도로 으스스했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는 거미줄이 처져 있었고, 동물의 해골 같은 게 걸려 있기도 했다. 비가 내리는 데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알 수 없는 이질감과 공포감. 온몸의 세포가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상식이나 경험을 떠나서 그저 생물의 본능으로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곳이었다. "그, 그냥 다시 돌아가서 집 지을까?"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킨터가 그의 어깨를 팍! 밀치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가고 싶은 사람은 꺼져. 나는 들어간다." "키, 킨터!" "잠깐만!" 일행들은 하는 수 없이 킨터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보통의 마을은 아닌 것 같았다.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건축물들이 보인다. 오래 쓰지 않은 듯 넝쿨과 수풀로 뒤덮여 있었지만 기이한 분위기가 흘렀다. 마치 계단식으로 탑을 쌓아 올리듯, 벽돌로 차곡차곡 만든 건축물도 있었는데 이게 어떤 용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초 치기 싫어서 말 못 했는데." 일행 한 명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원 하부에는 사람이 안 살아. 교수님 가족이랑 소수민족들은 모두 상부에 산다고." 그 말에 다른 두 명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야 이 새꺄! 그런 건 진작 말해야......." "지랄." 킨터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끊었다. "그럼 이 건축물들은 뭔데, 외계인이라도 와서 지었냐?" "아니 그....... 가이드북에도 있었잖아. 옛 고대문명이 이 초원 하부에 번성했다고. 우린 마을에 온 게 아니라......." "입 다물고 걸어." 킨터가 턱짓했다. "책에서 본 자잘한 지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껄이지 마. 난 저 불빛이 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확실히. 마을 깊은 곳에 불빛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들어온 이상 물러날 수는 없다. 사람이 없다면 최소한 비를 피할 장소는 찾아야 했다.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굳은 얼굴로 앞을 향해 걸었다. 차박 차박. 발소리만이 들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단순한 마을의 광경은 더 웅장해진다. 진흙 위를 걷던 그들은 이제 돌바닥을 걸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고대의 도시. 돌로 쌓아 올린 정체불명의 건축물들이 사방에 들어서 있다. 동시에 목표로 한 불빛도 점점 더 가까워진다. "실례한다!" 킨터가 외쳤다. "우리는 키젠에서 왔어!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님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불빛이 있는 곳은 사원처럼 생긴 건물의 중앙에 위치했다. 킨터가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훅- 마치 촛불이 꺼지듯, 불빛이 사라졌다. 도시는 어둠만이 남았다. 일행들은 놀란 비명을 지르며 주위를 휙휙 두리번거렸다. "나, 나와!" "말로 합시다 말로오!" 모두가 허겁지겁 주위를 훑고 있는 그때. "허어어어어어억!" 옆의 학생이 숨넘어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고, 학생이 위를 가리켰다. "저, 저기!" 높은 탑 건축물의 꼭대기. 네 명의 사람들이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뭇잎과 넝쿨로 엮은 옷을 입고, 흰자를 훤히 드러낸 눈에, 고개는 꺾여 있었다. "뭐, 뭔데 대체!" "저거 살아 있는 사람 맞아?" 킨터 일행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킨터도 놀랐지만, 손에 서서히 칠흑을 끌어모았다. 바로 그때. 툭. 등에 뭔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란 킨터가 뒤를 돌아보았고. 전신의 털이 쭈뼛 솟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느샌가 등 뒤에 바짝 나타나 있었다. 곳곳에서 '흐익!', '허억!'하고 놀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쫄보 새끼들.'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킨터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반갑다. 우리는 홍펭 교수님의 제자들이다.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알지?" 대륙어도 안 먹히는 이곳에서, 절실히 의지할 수 있는 건 홍펭의 이름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 말을 듣더니 표정이 살짝 변했다. 어두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봐봐, 어떻게든 말이 통한다니까." 킨터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 다음,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다. 우린 여기서 조난당했는데, 하루만 재워줄 수 있을까?" "......." 남자가 킨터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갸웃 좌우로 흔들던 그가 이내 덥석 킨터의 손목을 붙잡았다. 킨터는 놀라서 하마터면 손길을 뿌리칠 뻔했지만, 친구들 앞이니 애써 담담한 척 있었다. '놀랄 필요 없어. 이게 그들의 악수방식일 수도 있지.' 이어서 남자는 천천히 킨터의 손목에 이어 팔뚝을 쓸기 시작했다. 그의 동작, 그의 눈빛과 손길.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친근감의 표시인 악수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 마치. 상품가치를 매기는 듯한....... "!" 그리고 남자가 웃었다. 선홍빛 벌건 잇몸을 훤히 드러내듯 깊고 크게 웃었다. 소름이 쫙 끼친 킨터가 어깨를 한 차례 떨었다. "키, 킨터!" 동료 한 명이 거품을 물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피가......!" 어느새. 그의 팔뚝에 피로 그려진 선명한 손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이런 X발!" 킨터가 팔을 뿌리치며 뒷걸음칠 쳤다. 동시에 주변이 순간 붉게 물들었다 "!!" 어둠 속에서 주위가 분간이 되기 시작했다. 피가 흘렀다. 높은 탑 곳곳에 사람의 머리통이 보이고, 건물의 꼭대기에서 계단을 지나 바닥까지 피가 강을 이루듯 끊임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시 곳곳에 사람의 시체가 가득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킨터 일행의 비명소리가 널리 울려 퍼졌다. * * * "시몬, 시몬. 일어나 주세요." 잠을 깨우는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시몬은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시원스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곁에는 메이린과 딕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딕의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찼다. "아, 카미." "잘 자고 있었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시몬의 곁에 다소곳이 앉은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시몬은 자신의 불침번 차례인 걸 깨닫고 기지개를 쭉 켰다. "불침번인데 죄송할 필요가 뭐 있어. 수고했어 카미." "네!" "특이사항 같은 건 없지?" "가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 같은데, 원숭이들이 지나가다가 내는 소리 같아요." "알았어." 시몬은 졸린 눈으로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막상 깨니 꽤 추웠다. 겉옷을 대충 두르고 모닥불 쪽으로 다가갔다. 타닥 타닥- 모닥불 앞에 앉아 잠시 불멍을 때리고 있는데, 카미바레즈가 사뿐거리며 따라와 시몬의 옆에 앉았다. "피곤하지 않아? 이만 들어가서 자." 카미바레즈가 웃었다. "아하하, 잠이 안 와서요. 시몬이랑 조금만 같이 있다가 잘게요." "응. 그래." 잠이 안 온다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피곤하지 않은 게 이상한 오늘 하루다. 10분쯤 모닥불을 보고 있었을까, 어느새 시몬은 자신의 어깨에 톡 하고 얹혀지는 무게감을 느꼈다. 새근 새근- 연보랏빛 정수리가 흔들리며 카미바레즈가 잠들어 있었다. 결국 몇 분도 버티지 못했다. 시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 지으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번에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서, 메이린 곁에 눕히고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이내 기지개를 쭉 켜며 다시 모닥불 앞으로 돌아왔다. "......."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장작을 집어넣고 있던 시몬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잘못 본 게 아닌가 했는데. 두 번 보고는 확신했다. '누군가.'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다. 시몬은 등 뒤로 숨긴 손끝에 천천히 칠흑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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