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61화 황천고래 새끼의 뼈로 만든 시몬의 해양전 전용 언데드. 데이모스가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배 위에서 시몬은 데이모스 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클라우드> 청록색의 선이 쏜살같이 날아가 데이모스의 몸을 두른 뒤, 다시 돌아와 시몬의 손에 잡혔다. 시몬은 고삐를 당기듯 한번 크게 당긴 다음, 이내 배를 고정시켰다. "보여주자, 데이모스!" -키이이이이이! 데이모스가 힘찬 함성과 함께 출발했다. 배가 순간 덜컹거리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크왁!" "꺄아아!" 멤버들이 즉각 바닥에 찰싹 들러붙으며 배를 꽉 붙잡았다. 유일하게 서 있는 시몬은 입꼬리를 올리며 고삐를 흔들었다. 쏴아아아아아! 바다가 갈라지듯 좌우로 세찬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그 사이를 데이모스가 올곧게 나아가고 있었다. 앞서나가고 있던 킨터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 미친......!" 그가 뒤의 동료들을 돌아보며 보챘다. "뭐 해! 저거 부숴!" "뭐?" "학생을 직접 공격하는 것 외에는 전부 허용이야! 소환수는 공격해도 된다고!" "그, 그랬지!" 그러나 마투학의 진가는 근접전과 육체적인 힘을 사용할 때 나온다. 배를 타고 나아가는 지금, 원거리에서 '착검' 정도는 날릴 수 있겠지만 위력과 속도가 떨어졌다. 그마저도 데이모스가 피하면서 따라잡고 있었다. "자, 잠깐만! 밑에!" 쏴아아아아아아! 데이모스의 주위로 물거품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온갖 해양 생명체들이 뒤따라 일어났다. 황천고래의 능력인 '지배'. 언데드화된 데이모스는 이 힘을 재현할 수 있었고, 영향권에 있는 해양 생명체들은 데이모스의 부름을 받고 움직였다. "따라잡히겠어! 킨터!" "크윽!" 킨터가 더더욱 흑의의 화력을 끌어올렸지만 뭔가 이상했다. 속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그가 인상을 구기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꾸물꾸물- 해양 몬스터로 추정되는 문어 다리 같은 것이 배를 휘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갑판 위로 게들이 올라왔고, 배 아래로는 물고기들이 찰싹 달라붙고 있었다. 속도가 나지 않으니 킨터도 두 손을 떼어내 흑마법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배는 해양 몬스터와 물고기들에게 포위당한 채 멈춰 있었다. 다들 겁에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먼저 간다아!" "잘 있어! 바보들아!" 딕의 약 올림과 함께, 데이모스가 이끄는 시몬의 배가 쌩하고 나아갔다. 시몬은 데이모스에게 절대명령으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이대로 서쪽 바다 유람이나 시켜줘.] 이내 데이모스가 울음소리를 내뱉었고, 킨터 일행을 둘러싼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위에 들러붙은 해양 생명체들이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쏴아아아! 초원과 정반대 방향으로 배가 나아가고 있었다. 킨터가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이스!" "대단해요 시몬!" "카미도 활강할 때 대단했어." 반면 네 사람은 손뼉을 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힘을 합쳐 이끌어낸 승리였다. 해양 생물들에게 떠밀려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딕이 낄낄거리며 뒷목을 받쳤다. "크으, 이제 마음 좀 놓아도 되겠다!" "그럼 바로 초원으로 출발하자." 시몬이 고삐를 잡아당겼다. 데이모스가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 * * "......." "......." 킨터 일행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배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이미 거리는 너무 멀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데이모스가 내린 명령의 효력이 약해지면서 해양 생물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지만, 아직도 주위에 바글거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이제 어쩌지? 킨터." 킨터는 갑판에 주저앉은 채 분한 표정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는 시몬 일행의 방향을 응시했다. "......준비해." "뭐, 뭘 준비하는데?" 킨터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스트레칭을 했다. "배를 버리고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 초원으로 들어간다." "뭐?!" 다른 세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따라잡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헤엄쳐서 나가야 해." "아, 아니. 헤엄으로 가는 건 너무 무모한......!" "다들 전공 수업 때 바다에서 훈련한 거 잊었냐? 마투학 전공자는 칠흑운용만 잘 관리하면 충분히 건널 수 있어." 그렇게 말한 그가 칠흑을 일으키며 배 밖으로 뛰쳐나갔다. 쿠르르르르르! 물고기와 해양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지점을 단번에 벗어나 바닷속으로 다이빙, 그의 몸이 마치 물고기처럼 뻗어 나갔다. "쟤 진짜 미친 것 같은데." "......편한 맘으로 놀러 왔다가 이게 다 뭐냐." "같이 가! 킨터!" 다른 세 사람도 뒤늦게 칠흑을 밟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첨벙! 첨벙! 첨벙! 물살을 파고들며 물고기처럼 나아가고 있는 킨터의 눈이 번뜩였다. '기다려라!' * * * 시몬 일행은 배를 타고 전진했다. 한동안 수평선만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에 저 멀리 육지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딕이 외쳤다. "다 왔다! 저기가 초원의 강 하류야!" "응. 보이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있는 곳은 샤헤드 왕국의 해역이고, 저기서부터 샤헤드의 영토가 시작된다. 멤버들 모두 고개를 들고 앞을 응시했다. 바다 너머로 안개가 껴 있고, 보는 사람이 압도될 만큼 울창한 대자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높은 절벽과 쏟아지는 폭포가 장엄했다. "수림이 무척 깊어 보여요!"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울창하게 핀 꽃들과 넝쿨들이 나뭇가지에 멋들어지게 휘감겨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각양 색색의 앵무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무지개가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예쁘다." 홀린 듯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메이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근데 초원이라기보단 정글 같네?" "아, 이 강을 따라서 울창한 수림이 형성되어 있거든." 딕이 지도를 펼쳐서 모두에게 설명했다. "우리 위치가 지금 여기야." 그가 바다와 강의 접경지역을 가리켰다. "여기서 강을 따라 쭉 올라갈 거야."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울창한 녹색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이내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연두색과 황토색이 뒤섞인 평탄한 지역이 나타났다. "다 같은 메크리아 초원이지만,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하부. 위쪽은 상부라고 해. 홍펭 교수님이 있는 곳은 여기야." 수풀이 울창한 정글지대인 하부와, 목초지가 펼쳐져 있는 평야지대인 상부의 중간 지점. 딕은 그곳의 마을을 가리켰다. "홍펭 교수님의 풀 네임이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라는 건 알지? 마르라트족은 딱 그 접경지대에서 돌아다니는 소수민족이야. 상부와 하부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모두 경험할 수 있지."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많이 알아왔네?" "음흐흐! 이 몸이 정보담당 아니겠습니까.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시몬 일행의 배는 이제 바다를 벗어나 강 하류로 진입했다. 하류인 만큼 유속이 빠르고 물살이 셌지만, 데이모스가 물살을 쭉쭉 뚫고 정면으로 진입했다. 이내 유속이 빠른 지점을 벗어나니, 물살이 거짓말처럼 잔잔해졌다. 시몬은 칠흑이 다 떨어져 버린 데이모스를 아공간으로 불러들였고, 딕이 배에 달린 마나 엔진을 켰다. 배는 천천히 나아가며, 네 사람은 뱃놀이를 시작했다. "아! 빵 여기 눌렸잖아!" "그냥 먹어!" 바닥에 고즈넉한 나무 접시를 깔고, 차 한잔하면서 준비해 둔 디저트들을 즐겼다. 메이린은 다소곳하게 앉아 머리카락을 넘기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강을 한 차례 보고, 하늘하늘 떨어지는 알록달록한 나뭇잎을 한 차례 바라보았다. 이내 이 모든 걸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하아." 그녀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좋아. 행복해." 나머지 멤버들도 따뜻한 차를 마시니 마음이 풀어졌다. 재잘재잘 이야기를 하면서 나아갔다. 이국적인 풍경도 좋고, 차 맛도 좋고, 무엇보다 곁에 있는 사람이 좋았다. 절로 시라도 쓰고 싶은 날씨였다. "강이 정말 넓은 것 같아요!" 카미바레즈가 배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딕이 '워어' 소리를 내며 팔을 휘저었다. "강 중류까지 오기 전까지는 조심해, 카미. 배 밖으로 고개 내밀면 강 밑바닥의 몬스터가 반응할지도 몰라." "아, 죄송해요!" 화들짝 놀란 카미바레즈가 몸을 움츠리며 배 바닥에 콕 붙었다. 메이린이 눈을 흘겼다. "우리 카미 겁주지 마!" "사실인데 뭘, 뱃놀이도 좋지만 안전이 최고지." "맞아요. 제가 주의할게요." 그때, 그렇게 잘 가던 마나엔진이 툭! 소리가 나더니 끊겼다. 딕은 잠깐 살펴보더니, 장비가 오래돼서 조금 식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몬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촤아- 촤아아- 시몬이 힘주어 노를 저었다. 의외로 모터 못지않게 배가 쭉쭉 나아가니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등과 팔뚝에 핏줄이 선명히 솟았다. 밸런스 잡힌 근육이 이완과 팽창을 반복했다. 여자들의 시선이 시몬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며 엔진을 고치고 있던 딕이 '크흡'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이게 바로 이공계의 비애인가." "뭐래 바보야. 빨리 고치기나 해." "예이, 마님." 그래도 딕은 오늘 하루 안에 충분히 강 중류를 빠져나와, 상부인 초원지대까지 갈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지만.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하늘이 급격히 흐려지더니 초원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도 굵고 바람도 셌다. 배가 출렁출렁하며 흔들렸다. "으악! 초원의 날씨는 변덕스럽다더니!" 방금 뱃놀이를 즐기던 때와는 너무나 달라졌다. 딕은 잽싸게 임시 기둥을 꺼내서 배에 연결하고, 그 위에 비를 막을 용도로 천을 펼쳤다. 하지만 위에서 쏟아지는 것만 막을 뿐 옆에서 오는 비는 막지 못했고, 그 또한 바람에 찢어져 구멍이 나버렸다. -끄르르르르르! 거기에 비가 오자 녹색강에서 커다란 악어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고개를 들이밀며 입을 쩍 벌렸다. 마치 비를 마시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그래도 비를 마시느라 이쪽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다들 입을 꾹 틀어막으며 악어지대에서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비가 많이 오네요." 악어들이 보이지 않자 비로소 안도한 카미바레즈가 중얼거렸다. 비에 흠뻑 젖은 시몬이 결국 결정을 내렸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잠시 육지로 가서 비를 피하는 게 좋겠어." "네! 그게 좋겠어요!" "찬성이야." 네 사람은 하선하기로 했다. 혹시나 배가 떠내려갈지 모르니 배를 땅 위까지 끌어올린 뒤 말뚝과 밧줄로 잘 고정한 다음, 주변을 탐색했다. 투둑 투둑- 쏴아아아아-! 그래도 육지로 올라오니, 빼곡한 나무와 나뭇잎들 덕분에 맞는 비의 양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주위는 처음 보는 이색적인 꽃과 풀로 가득했다. 간혹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얘들아! 저기 나무 엄청 커!" "비 피하기 좋겠네." 일단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부터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네 사람은 비를 피하러 커다란 나무를 빙 둘러싸고 등을 기댄 채 섰다. 추워진 몸을 데울 겸, 따뜻한 차를 나누어 마셨다. "푸핫." 기껏 마법으로 데운 찻잔을 한 모금 마시려니, 빗물이 퐁퐁 들어갔다. 촉촉하게 젖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넘기며 메이린이 웃음 지었다. "아, 이게 뭐야아. 진짜!" 크큭! 아하하! 다들 참고 있던 웃음을 시원하게 터뜨렸다. 시몬도 속을 터놓고 웃었고, 딕은 아예 꺽꺽거리며 쉰 목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아, 근데 뭔가 재밌지 않냐? 이런 변수도 여행의 재미지!" "여러분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좋아요!" 거친 바람에 딕이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갔다. 딕이 허우적거리며 모자를 잡으려고 뛰어가는데, 가까이 갈 때마다 약 올리듯 모자가 바람에 날려서 다른 곳에 떨어졌다. 딕이 으어어! 소리를 내며 계속 달렸고, 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딕이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나무그늘 밖으로 빠져나와 폭우를 한 몸으로 받았다. "초원 악어다!" 그러면서 입을 벌리고 빗물을 받아먹는 시늉을 했다. "아, 진짜. 그만 웃겨!" 메이린이 배를 잡고 웃었다. 뒤이어 딕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유명 극의 주인공처럼 '세상이 나를 저버린다면!'의 대사를 진지하게 읊다가 콧구멍에 물이 차서 꺽꺽댔다. 다들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청춘 아니겠는가. 네 사람은 함께 나무 아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음.' 즐겁긴 했지만 시몬은 슬슬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는 기세가 줄었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주변을 한번 둘러본 시몬이 결심한 듯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자." 그 한 마디에. 모두의 표정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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