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5화 3학년 전원이 무사히 배에 올라탔다. 배는 유람선에 버금가는 크기였기에, 키젠 3학년 200명에 교수진과 조교들, 하수인들까지 모두 타고도 넉넉할 정도였다. 각 학과 대표들이 인원 점검을 마치고 보고하자, 제인은 통신 수정구를 손에 들고 본부 측에 연락했다. “인원 점검 완료, 모든 항행 준비 완료됐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낮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학생들은 들뜬 얼굴로 갑판 위에 뛰쳐나왔다. “이 배로 다른 세계에 간단 거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나!” “어떤 방식으로 차원을 넘는 걸까?” 학생들은 호기심에 갑판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다. 로크섬에서도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것 같았지만 주위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이 수평선뿐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학생들이 하나둘 선실로 들어갔다. “내 생각엔 인근 해역을 빙빙 돌고 있는 듯.” 시몬 일행은 딕이 가져온 게임판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딕이 주사위를 던지고, 눈금에 적힌 수만큼 말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들은 소문으로는 포탈의 사용 조건이 까다롭다더라. 일단 결사가 다른 곳에서 포탈을 열어야 우리도 사용할 수 있다던데?” 그가 말을 움직여 파란색 말을 쓰러뜨리고 자리를 점령했다. 딕이 ‘오예!’를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딱밤을 허공에 툭툭 튕기는 시늉을 했다. “왜 자꾸 나만 지는 거야!” 메이린이 울상이 되어 말했다. “이거 사기 게임이지? 뭔가 흑마법적인 장치가 있는 거지?” “어허-! 내가 평소엔 사기 치고 다닐지 몰라도,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만큼은 정정당당합니다요. 대시오. 대시오.” 메이린이 앞머리를 올려 이마를 드러낸 채 눈을 질끈 감았고, 딕이 그 앞에서 온갖 깐죽이란 깐죽은 다 떨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 채 기다렸다. 메이린이 왜 안 때리나 싶어서 슬그머니 실눈을 뜨는 순간. “따하!” “아야!”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작렬시켰다. 딕이 세상 통쾌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번쩍 든 채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고, 메이린이 부글부글 끓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안 해!” “자, 잠깐! 안 하는 건 알겠는데 왜 나한테 오냐?” “얄미우니까 한 대만 때리게 해줘!” “아, 그런 게 어딨어!” 메이린과 딕이 배 위에서 쫓고 쫓기는 동안, 한 대도 맞지 않은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카미바레즈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 “카미, 추워?” 시몬은 곧바로 학생회장 코트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했다. “저, 저는 괜찮아요! 시몬.” “잠깐만 덮고 있어. 조금 더 기다려도 포탈이 안 보이면 우리도 배 안에 들어가 있자.” 그 와중에 시몬이 입어도 꽤 큰 학생회장 코트는 카미바레즈가 덮으니 이불이 따로 없었다. 커다란 코트 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모습이 케이크 위의 체리처럼 깜찍했다. “얘들아, 저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딕의 머리채를 붙들고 딱밤을 때리려던 메이린도 얼른 앞으로 뛰어갔다. “공간이 열린다!” 망망대해 한복판에 허공이 일렁이더니 거대한 원형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감탄하면서도 그것을 관찰했다. ‘결사가 쓰는 포탈과는 살짝 다른 것 같은데?’ 즉시 방송음이 울려 퍼졌다. -선내의 모든 승객분들께 알립니다. 이제 곧 다른 세계로 진입합니다. 모든 인원은 자리에 앉아서 충격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하나둘 자리에 앉았고, 배는 열린 허공을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궁금하다.’ 시몬도 자리에 앉아 손잡이를 꽉 붙들며 기다렸다. 합숙 훈련을 위한 새로운 세계는 과연 어떤 곳일까. -포탈에 진입합니다. 5. 모두가 들뜬 얼굴로 숨을 삼켰다. -4. 3. 딕이 자리에서 일어나 넘어지지 않아보겠다며 허세를 피우자, 메이린이 등짝을 한 대 후려갈긴 뒤 다시 자리에 앉혔다. -2. 1. 마침내 배가 포탈을 통과했다. “!” 순간적으로 주변 세계가 일그러졌다. 몸을 감쌌던 중력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쏟아지는 듯한 감각. 분명히 배에 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 이상한 미지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시몬의 귓가에 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죽음을 되찾아주세요. ‘뭐?’ 그 음성을 인식한 순간, 갑자기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갑판 위. 시몬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떠들썩한 외침이 주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시몬! 괜찮으세요?” “……아, 응. 괜찮아, 카미.” 시몬이 카미바레즈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 탄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 배는 새로운 세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경관으로 바뀌었다. 신비로웠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가히 ‘단풍의 바다’. 처음 보는 이질적인 나무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고, 단풍진 채로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단풍잎들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마치 붉은 물결처럼 겹겹이 이어져 있었고,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푸르렀다. 구름의 형상도 대륙과는 조금 달라서 띠처럼 펴져 있었다. 선실에 있던 학생들 모두 밖으로 뛰쳐나왔다. “진짜 예쁘다!” “우리 여기서 합숙하는 거야?” 학생들은 지옥에서의 극한 합숙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 놀라울 만큼 이국적이고 신비한 세계를 보는 순간 모두가 기쁜 얼굴로 경치를 즐겼다. “술 한잔 딱 들이켜면 좋겠구만.” 딕이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그사이 메이린은 두 손을 모아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손바닥에 받아냈다. “예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손안에서 단풍이 빛처럼 물들더니 허공에 잔해처럼 흩어졌다. 그녀가 탄성을 흘렸다. “여긴 대체 어떤 곳일까?” “이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제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학생들 모두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도착한 세계의 이름은 ‘천년향(千年鄕)’.”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죽음이 없는 세계입니다.” * * * 강을 따라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 뒤 배가 정박했다. 붉은색과 노란색 단풍이 휘황찬란한 이 세계는 대부분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배가 정박한 이곳은 강 위로 넓은 벌판이 평평하게 펼쳐진 곳이었다. 학생들은 배에 실었던 짐과 화물을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스으으읍- 후우우우-” 제일 먼저 짐을 꺼내둔 시몬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이 세계에 마나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마나는 있어.’ 멸망해서 아무것도 없는 세계가 아닌 이상, 마나는 어떤 세계에든 존재하는 개념인 것 같았다. 시몬은 천천히 손바닥을 펼쳐서 칠흑을 흘려보았다. ‘칠흑도 괜찮은 건가? 아니.’ 시몬은 잠시 칠흑을 꺼뜨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 뒤에 방금 대기 중으로 흡입한 이 세계의 마나만을 코어에 통과시켜 보았다. 이상한 감각이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숨 쉬듯이 이루어지던 마나 조작이, 어쩐지 무겁고 거북하며 힘겹게 느껴졌다. 그 후 시몬이 다시 한번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이번엔 이 세계의 마나로만 만든 칠흑을 일으켜 보았다. “!” 칠흑이 손바닥에 피어오르는 즉시 액체처럼 쏟아지거나 주위로 뭉치는 게 아니라, 허공에 퍼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마나의 성질이 달라! 그래서 칠흑의 성질까지 조금 달라지는 거구나.’ [크흐흐! 칠흑 활용에도 대비해야겠군 소년!] ‘그러네요 피어.’ 시몬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몬처럼 칠흑을 사용하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마 대륙에서 쌓아온 체내의 칠흑을 모두 소진하고 이 세계의 마나로 칠흑을 사용할 때 이 변화를 눈치채게 되리라. ‘여기서 신성은 어떤 성질로 발현하는지도 궁금하네.’ 시몬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카미바레즈가 말하고 있었다. “귀가 조금 멍멍해요.” 카미바레즈가 두 귀를 손바닥으로 살짝 덮었다. 메이린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살던 대륙과는 기압 차가 있나 봐. 코를 막고 흥 하고 풀어볼래?” “흐응! 아, 뚫렸어요!” 카미바레즈처럼 각자 증상이 달랐기에, 조교들은 학생들의 건강을 체크하며 불편한 점이 없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헤이, 시몬. 아까 제인 교수님이 한 이야기, 의미심장하지 않냐?” 그때 딕이 시몬의 옆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뭐가?” “죽음이 없는 세계라는 말 말이야. 그 말이 비유적 표현인지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궁금해. 만약 진짜로 죽음이 없다면, 순환이 안 돼서 어떤 세계든 멸망하고 말걸?” 시몬이 턱을 짚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죽음 없이 세상이 유지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빨리 이 세계의 비밀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화물이 무사히 왔는지 다 확인했으면, 이제 목적지로 출발하겠습니다.” 제인의 지시에 따라 학과생들이 일제히 등반을 시작했다. 강가의 평지는 보기보다 경사가 있어, 다리에 힘을 주며 걸어야 했다. “정말 예쁘다…….” 학생들은 이 세계의 경관에 완전히 넋이 나간 듯했다. 나무 하나, 풀 하나까지도 모두 새롭고 신비했다. 빛이 반짝이며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엽이 바닥을 덮었고. 그 낙엽들은 밟힐 때마다 사박사박 소리를 냈다. 밟힌 낙엽은 빛처럼 반짝이며 분해되기도 했다. 옆에 계곡을 따라 졸졸 흐르는 깨끗한 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 “이상할 정도로 걱정이 사라지네. 어린 시절 가을 소풍 온 기분이야.” 모든 것이 정적 속에 조화롭게 흘러가는 세계. 그것이 천년향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새로운 장소의 신비로움을 즐기며 이동하는 사이,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합숙 기간 동안 묵게 될 ‘대궐’입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숙소도 좋잖아?’ 독특한 건축양식의 목각 대문 너머로 광활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수십 채의 목제 건물이 지어져 있었고, 지붕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살짝 휘어져 있었다. 넓은 마당을 지나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길을 따라 세워진 낮은 담장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해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이루는 듯 했다. 곳곳에 낙엽 떨어지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커다란 연못이 풍경을 완성했다. 길을 잃을 것처럼 방대하면서도 복잡한 구조였다. ‘집이 있다면, 이 세계에도 사람이 살고 있겠네.’ “전체 주목.” 제인이 앞으로 나섰다. “이 세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을 겁니다. 이 세계는 ‘장생종’이라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천년향이라는 곳입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녀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이곳의 인간과 동물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그들 모두가 영원히 살아가는 불멸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죽음이 없는 세계라 부르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죽음이 없는 세계라면…… 네크로맨서들은요?” 그 말을 들은 제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죠. 네크로맨서는 죽음을 다루는 존재들입니다. 죽음이 없는 곳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적응할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찾을지, 또 대륙에서 깨닫지 못한 신비를 이곳에서 찾게 될지 궁금하군요.” 그녀가 팔을 펼쳤다. “한 시간 드리겠습니다. 학과별로 짐을 풀고 정리가 끝나는 대로, 이 세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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