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4화 DMAT 시험을 무사히 치른 키젠 학생들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로크섬으로 돌아왔다. “해방이다!” “내일은 무조건 놀러 가야지!” 학기 초부터 시험 기간이나 다름없는 나날이 이어졌지만, 이제야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학생들은 주말을 맞아 로체스트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우며 들뜬 분위기를 냈으나, 부총장 제인은 학생들의 긴장이 풀리는 걸 내버려두지 않았다. -3학년 전체 대강당 집합. 중요 공지가 있으니 반드시 참석하십시오. 그 어떤 학기보다 밀도 있는 커리큘럼이 될 거라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학생들은 그나마 수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 삼으며 대강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대강당에는 다른 교수들 없이 부총장 제인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단상으로 나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큰 시험을 치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피곤할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다음 주에 있을 ‘3학년 전체 합숙 훈련’에 대해 공지하겠습니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퍼져 나갔다. ‘드디어 소문만 무성하던 단체 합숙이구나! 이게 중요하지.’ 눈을 빛내고 있는 시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DMAT보다는 다음 주에 있을 3학년 전체 합숙 쪽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회장.” 그때 뒷자리에 앉은 한 동기가 불쑥 물었다. “너는 룬 리그에서 합숙 해봤지? 어땠어?” “아, 합숙?”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재밌고 유익했어.” 암흑연합 동료들과 함께 신성연방에 넘어가고, 과성장한 포도밭에서 메시아 고블린을 쓰러뜨린 건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선별된 소수의 학생들끼리 가는 게 아니라, 3학년 200명 전원과 키젠 교수진까지 함께 움직이는 대규모 합숙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선, 여러분이 가장 궁금해할 합숙 장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제인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깨끗이 사라졌다. “이번 합숙의 목적지는 대륙이 아닌 ‘다른 세계’입니다. 키젠 교수와 조교진, 그리고 3학년 모두가 함께 다른 세계로 넘어갈 겁니다.” 대강당이 폭발할 듯 끓어올랐다. “다른 세계라니!” “진짜?” 지금까지 학과별로 중립지대 등을 다녀오거나, 섬을 빌려서 단체 시험을 치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3학년 전원이 대륙이 아닌 다른 세계로 넘어간 합숙은 전례가 없었다. “재밌겠네!” 메이린이 두 손을 모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조금 무섭지만, 다 같이 가는 거라면 안심이에요.”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시몬을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와, 나도 이제 차원병 걸리겠네. 전교생 모두 걸리게 하려는 게 목적 아냐?” 딕이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시시덕거렸다. 다른 세계 합숙이란 말에 궁금증이 폭발한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었다. “어떤 세계로 가는 건가요!” “온통 물이 가득한 세계 아닐까?” “초거대 곤충들이 지배하는 세계일지도 모르지!” 다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가운데, 제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세한 목적지 정보는 보안상의 이유로 당장 공개할 수 없지만, 곧 여러분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 겁니다. 키젠에서 개발한 ‘포탈’ 기술을 재현한 장치로 이동할 예정이며, 키젠 측 인원이 파견되어 목적지 인근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와!” “이미 준비가 다 끝났단 거잖아?” 학생들은 이제 과제의 스케일이 너무나도 커져 버린 것을 느꼈다. “물론 대륙이 아닌 새로운 세계인 만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키젠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서 합숙을 진행하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학생들을 하나하나 지나갔다. “이번 랭거스틴 사태에 활약한 학생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결사는 우리 대륙이 알지 못하는 이질적인 기술과 무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보석 일족이 사용했던 그 주황색 ‘덫’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시몬이 모제의 축복이나 판타서스의 슬립 같은 경험을 한 덕분에 대비할 수 있어서 망정이지,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면 위험했다. 실제로 시몬을 제외한 중위권 학생들은 보석 일족을 상대하는 데 꽤 애를 먹기도 했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의 문명과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게 이번 합숙의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결사의 총공세에 대비하여 여러분의 역량을 최대치까지 빠르게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차원에서는 시간이 대륙보다 10배 느리게 흐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긴 일정을 소화하기엔 제격이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말에 좌중이 다시 한번 들썩였다. “여러분은 키젠의 7개 과목 중 현재 듣고 있는 5개 과목을 중심으로 훈련 과제를 수행할 겁니다. 더 자세한 건 출발 전에 유인물을 배포하도록 하죠. 2차 DMAT를 치르느라 고생했을 테니 주말 동안 푹 쉬도록 하세요. 5일 뒤에 우리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배에 오를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제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네크로맨서로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재료를 총동원해서 가져가는 게 좋을 겁니다. 합숙이 시작되면 여러분만의 ‘개인 공방’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그곳을 채울 만큼 준비하세요.” 그 말에 곳곳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와우, 개인 공방을 차릴 정도로 준비하라고?” 딕이 허허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거 단순한 합숙이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고 이렇게까지 준비를 시키는 거야?” “주말에 느긋하게 쉴 순 없겠네.” 메이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료 주문을 위한 수첩을 꺼냈다. ‘개인 공방이라.’ 시몬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제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십시오. 만약 벽에 부딪혔거나 완성에 이르지 못한 제작물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활용해 보는 것도 좋겠군요.” 그 말에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엇을 가져갈지 바로 감이 왔다. * * * 주말이 찾아왔다. 시험의 피로가 쌓여 있던 시몬은 늦잠을 잤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느지막이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 그리고 문밖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풍경에 입을 딱 벌렸다. 기숙사 앞마당에 대규모 이삿짐이라도 옮기는 것처럼, 온갖 장비와 재료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스켈레톤 세트를 비롯한 언데드 재료는 물론, 무거운 냉조 장비와 마녀의 솥까지 보였다. “어, 저기 조장이다! 조장-!” 에슈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시몬을 불렀다. 그 옆에는 토토와 피츠제럴드도 있었다. 시몬이 그리로 다가가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시몬의 물음에 에슈가 신나게 설명했다. “기숙사 게시판에 붙은 공지 사항 못 봤어? 합숙 때 가져갈 장비랑 재료들 미리 꺼내놓으래! 하수인분들이 운반 장비로 배까지 옮겨주신다구 하더라구!” “아하.” 시몬은 바닥에 쌓인 짐들을 살펴보았다. 에슈가 다른 세계에서 쓰려고 준비한 짐은 소환학과와 저주학과의 물품이 반반 뒤섞인 구성이었다. 약물을 적셔둔 볏짚이나 저주인형이 보였다. 토토의 짐은 데스나이트 전용 장비와 데스웜용 사료.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짐이 가장 난해했는데, 키메라를 주력으로 다루는 만큼 짐마차 안에 온갖 몬스터의 팔다리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애써 그쪽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우리 학과는 약과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맹독학과는 1급 독극물들을 가져가느라 기숙사 앞마당이 난장판이 됐다더군. 벌써 가스 유출 사고가 18차례, 하수인 중독 사태가 6차례나 발생했다.” “엄청나네.”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그때 토토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200명 모두가 이런 것들을 들고 가면…….” “나도 같은 우려를 하는 중이야.” 시몬이 말을 받았다. 200명의 네크로맨서가 개인 공방을 차릴 정도로 많은 암흑 재료와 장비라면, 한 세계의 생태계와 자연환경을 완전히 비틀어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괜히 그쪽 세계에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에슈가 머리를 배배 꼬았다. “……음, 다른 세계의 동떨어진 무인도 같은 곳에서 훈련을 하는 거 아닐까?” “무인도의 생태계가 바뀌는 것도 큰 문제야. 바다에 유출되거나 하면…… 끔찍하네.” 시몬은 다시 한번 주위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헥토르의 화물인 듯, 초대형 드레이크의 뼈가 ‘끼에엑!’ 울음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학생을 덥석 입에 물었다. 학생이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버둥거리고, 하수인들이 뛰어와 그 학생의 다리를 붙잡아 당기는 등 난리였다.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아마 교수님들도 생각이 있으시겠지.’ 키젠의 교수진이 ‘개인 공방을 제공할 테니 철저히 준비해라’라고 말했을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전쟁 준비도 아니고, 과연 어떤 세계길래 이렇게까지 준비하라고 하는 걸까?’ 점점 시몬의 호기심이 커져갔다. * * * 그날 오후. 로체스트 항구는 기숙사 앞마당보다도 훨씬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항구에 정박하고 있었고, 그 선박에서 내려진 물건들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키젠 3학년들이 이번 합숙을 위해 새로 주문한 화물들이었다. 이제 키젠 상위권 3학년들은 여러 귀족들이나 기관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자금 운용에 여유가 생겼다. 그 결과 합숙의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주문했다. 어떻게 보면, 학교 수업 하나를 위해 항구가 꽉꽉 들어차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라헤임 학생! 물건 제대로 왔는지 확인해 주시죠!” “옙!” 학생들이 리스트를 들고 항구에 온 화물을 직접 체크하고 있는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화물 꾸러미가 있었다. 포장부터가 극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화물들이 카트에 실린 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포장에는 멋들어지는 필체로 ‘바닐라’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근처에서 화물 수량을 점검하던 3학년 학생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저걸 전부 바닐라 제품으로 산 거야? 돈이 썩어나나 본데.” “왕가의 후원이라도 받나?” 그런 부러움 반 의문 반인 학생들의 시선도, 그 화물의 주인의 등장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회장이었네.” 시몬이 체크 리스트를 받아 들고 바닐라 측 직원들과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군단장인 시몬이 프로스트 필드의 마정석 수입, 비명의 정글 통행료, 바다에서 활동하는 엘드릭 선단의 수임료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건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다. “제군아!” 그때 직원으로 분장한 벤야 바닐라가 모자를 벗으며 두 손을 흔들었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눈을 깜빡였다. “아, 벤야 선배님! 로크섬까지 어쩐 일로……!” “일이 힘들어서 배달을 핑계로 농땡이 피우러 왔어!” 헤헤 웃어 보인 그녀가 옆으로 비켜서며 팔을 세웠다. “물론, 특급 소환수를 직접 전달해 드려야 하기도 하구.”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바닥에 무력하게 앉은 채 마검을 손에 쥐고 있는 듀라한, 바로 에이션트 언데드 마누스가 있었다. [나는 슬픔을 이해한다.] 마누스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중얼거리는 모습이다. “아직 조정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실전에 투입해도 괜찮겠어?” “실전 투입까지는 아니에요. 그쪽 세계는 시간이 1/10으로 느리게 흐른다니까, 이번 합숙 때 제가 직접 느긋하게 살펴보고 싶어서요.” 시몬이 기대감에 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코랄 리치도 가지고 가볼 거예요.” “그렇구나, 힘내! 경과가 있으면 내게도 공유해 주고!” 시몬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잠시 감회가 남다른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검은색 키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자신의 작업복과 목에 걸린 ‘임시 방문증’ 목걸이를 내려다보더니 쓰게 웃었다. “좋을 때다아.” 그녀의 눈에 어렴풋이 회한과 부러움의 감정이 섞여 있는 걸 본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직 회사에 돌아가시려면 시간 남았죠? 로체스트에 교수님들이 와 계시던데 인사하러 가는 건 어때요?” 그 말에 벤야의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지, 진짜? 하지만 임시 방문증으로는…….” 시몬이 하수인 한 명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더니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잠시 후, 목걸이가 하나 더 준비되었다. <학생회 공식 방문증> “이 정도면 되겠죠?” “여, 역시 학생회장이네! 정말 고마워!” 별야가 흥분한 얼굴로 목걸이를 착용하고는 방긋 웃었다. “제군이는 바쁘지? 그럼 나 먼저 교수님 뵙고 올게!” “네. 천천히 즐기다 가세요!” 별야가 떠나고, 시몬은 산처럼 쌓여 있는 화물을 보며 팔짱을 꼈다. ‘많긴 한데, 많이 준비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 * * 그렇게 주말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새로운 세계로 떠날 날이 다가왔다. “가자! 가자!” “출발할게!” 화물은 먼저 배에 실려 갔고, 그 뒤에 이른 새벽 학생들은 작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이번 합숙은 1급 기밀이었기에 행선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로 함구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학생들의 앞에 마침내. “시몬! 저기 봐요!” “응.”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이며 앞을 가리켰다. 같은 배에 탄 시몬도 고개를 쭉 빼 밀며 시선을 돌렸다. 모두를 새로운 세상에 데려다줄, 거대한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Please login to track prog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