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735화 "당신의 감시입니다." 시몬의 대답에, 리처드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주고받았다. "감시? 나를? 갑자기 왜?" "네프티스 님께서는 요나 사령관의 사생활이 작전에 해를 끼칠 것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푸훗. 킥. 몇몇 부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프티스 님이 보내신 것 맞네." "미래라도 보신 건가." 뒤를 돌아본 리처드가 눈빛만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 다음, 앞머리를 마구 쓸어 넘겼다. "그 노망난 할망구가...... 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래도 일단은 명령이니까요.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리처드는 긴 숨을 내뱉고는 조금 진지해진 눈으로 시몬의 목걸이를 보았다. "너, 그 목걸이." "네." "내게 전달하란 명령이 아니라, 네가 그걸 차고 내 곁에 있으란 게 명령이냐?" "정확하십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리처드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먼저 휙 걸음을 옮겼다. "뭐 하냐? 가자." 시몬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 * * 신성연방 진형. 요새 안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기적의 성녀 만세'를 연호하며 네크로맨서들의 침공을 막아낸 승리를 자축하는 중이었다. "자리로 돌아가! 교활한 네크로맨서놈들이 언제 또 이곳을 노릴지 모른다!" "야습에 미리 대비하라. 성벽을 보수하고, 바깥의 잔당 언데드들을 정화해!" 지휘관급들이 나와서 상황을 정리하자, 그제야 병사들이 움직였다. 곳곳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보수작업이 시작되었다. 프리스트들도 군막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려는데. "비켜어!" 갑자기 과격한 외침이 들렸다. 성녀가 기거하는 순백의 초대형 천막, 그곳에 신원 미상의 거수자가 몰래 들어가려다가 경비병들에게 발각당한 것이다. "이 녀석이 침입자야! 붙잡아!" "허억! 뭔 애가 힘이 이렇게 세?" "이거 놔!" 바로 레테였다. 경기병들을 뚫고 들어온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난 그저 안나 성녀님을 뵙고 싶을 뿐이란 말임다!" "뭐?" "크, 크윽! 성녀님이 아무나 뵐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느냐!" "아 진짜 쪼잔하게! 쫌 본다고 성녀가 닳냐!" 몰래 들어가려다 붙잡힌 주제에 이상할 만큼 떳떳한 침입자였다. 괴력을 발휘하며 기어이 안나가 있는 하얀 천막 안으로 들어왔지만, 병사들이 빼곡하게 틀어막는 바람에 더 들어갈 수 없었다. "꿇어 앉혀!" "판관님을 불러와! 이 여자를 심문해라!" 덥석! 경비병 하나가 레테의 어깨를 붙잡자, 그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감히 어딜-" 경기병의 팔을 역으로 잡아챈 그녀가 무게중심을 오른발로 옮기고 허리를 틀더니, 경비병을 그대로 들어 던져버렸다. "건드려!" 쿠우우우웅! 날아간 경비병이 천막에 강하게 부딪혔다. 천막 전체가 뒤흔들리고 근처의 기둥이 휘청했다. 놀란 경비병들이 기겁하며 흔들리는 기둥을 붙잡았다. 스릉! 스릉! 기어코 경비병들이 창칼을 뽑아 들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성녀를 직접 지키는 정예 팔라딘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레테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주먹을 꾹 쥐었다. "전투 직후라고는 하나 여기까지 침입자를 허용하다니.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군." 긴 콧수염을 만지작거린 중년의 팔라딘이 그렇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필시 암흑연합에서 보낸 암살자렷다." "내가." 레테가 이를 갈며 신성을 방출했다. 화아아아아아악-! 이 자리에 있던 모든 병사들과 팔라딘들이 움찔했다. 방대하고 순도 높은 신성이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정녕 네크로맨서로 보여? 눈깔 뽑아서 빡빡 닦고 다시 집어넣어 줄까?" 순도 높은 신성은 여신에 대한 믿음의 상징. 병사들의 검 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압해서 심문하면 될 일이지." 콧수염 난 중년의 팔라딘은 베테랑답게 응수하며 검술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멈추세요." 미려하고 아리따운 미성이 천막에 퍼져나갔다. 마치 목소리에 마법적인 효과라도 있는 걸까,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홀린 듯 멈칫했다. "성녀님!" 콧수염 팔라딘이 뒤를 돌아보며 다급히 말했다. "여기 오시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괜찮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를 찾는 신민이 있다면, 기꺼이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성녀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뿐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콧수염 팔라딘은 두말하지 않고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뭣들 하느냐. 성녀님께서 나오신다!" 처억! 척!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레테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하얀 성의를 입은 여성이었다. 얼굴은 면포를 쓰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두 손을 곱게 배 위에 올려놓고, 성의 안에는 레테에겐 익숙한 에프넬 교복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 레테는 숨이 가빠오고 손발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성녀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이리로." 레테는 홀린 듯이 성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콧수염 팔라딘은 레테가 신경 쓰이는지 검을 넣었다 뺐다 반복했지만, 감히 움직이진 못했다. 그녀를 따라 걸어가니, 이내 조용한 방이 나왔다. 성녀가 기거하는 곳치고는 큰 특징이 없었다. 불편해 보이는 간이침대와 테이블, 각종 군것질거리가 보인다. 그녀는 다소곳이 의자에 앉고는, 레테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괜찮다면 앉으세요." 맨바닥에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했는데, 자리를 마련해 준다니 고마웠다. 레테는 최대한 정중히 의자에 앉고는 허벅지 위에 두 손을 곱게 접어 내려놓았다. '이 사람.' 목소리 자체는 안나의 느낌이 났지만, 너무 앳되다. 말투나 억양도 달랐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 정말 안나 선생님이 맞을까? 안나 선생님이라는 직감은 처음 본 순간부터 느꼈지만 얼굴을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갑작스러운 성녀의 물음에, 레테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레, 레나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레나. 왜 저를 꼭 만나야 한다고 했죠?" 레테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안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순간 이미 이성이나 생각은 날아간 뒤였다. 머릿속에 준비해 둔 생각들이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떠오르지 않았다. "그, 그게......!" 저 밖에서 팔라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게 느껴진다. 말 한마디 잘못한다면 끝장이었다. "부, 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하지만 이성은 이미 증발했다. 지금 이 순간 레테의 모든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정말로 과거의 안나 선생님인지 확인하고 싶다! 적어도 안나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레테는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음에 꾸민 시나리오도 이미 떠오르지 않는다. "안......." "안?" 얼굴이 빨개진 레테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겨봐도 될까요?" 쿵.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정신 저 멀리 안드로메다 한구석에 있던 이성이 '이 미친 것아!' 하면서 울부짖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불경죄로 끌려가서 참수형 당하거나, 붉은 십자가에 매달린 채 불태워져도 할 말이 없었지만. "얼마든지요." 성녀는 자애롭게 두 팔을 벌렸다. 저 면포가 방해라서 웃는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허락이 떨어지고, 레테는 몸이 먼저 반응했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즉시 성녀에게로 향했고. 포옥- 쓰러지듯 그녀의 품에 안겼다. '아.' 이 순간. 레테는 그녀가 안나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아득한 품, 이 체취, 이 따듯함. 그리고 안아주며 등을 쓸어줄 때의 손길까지 모두 안나의 그것이었다. "어머." 성녀가 놀란 소리를 냈다.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슬픈 일이 있으신가요?" 어느새 레테는 벌게진 눈으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얼른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 너무...... 기뻐서 그래요." 레테는 천천히 팔을 뻗었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부끄러웠다. 충동을 참을 수 없다. 이미 저지른 이상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그녀는 팔을 뻗어 천천히 안나의 얼굴을 가렸던 면포를 걷었다. "......!"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차올랐다. 아름답고 섬세한 얼굴의 앳된 소녀가, 쑥스러운 듯 홍조로 뺨을 물들인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 같았다. 사진에서 봤던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뻤다. "안나 선생니이이이이임!" 레테가 통곡하듯 눈물을 쏟아내며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서, 선생님이요?" 안나가 핑핑 도는 눈동자로 레테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성녀랍니다. 그,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저는 선생님보다는 학생 쪽에 가까운데요." "으흑흑흑!" 팬심에 폭주한 레테가 안나의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안나가 '흐익!' 하며 놀라는 소리를 냈다. '귀여워어어어어어!' 자기 자신과 동갑이거나, 한두 살 정도 어린 것 같았다. 옛날에 안나가 자신을 혼낼 때 그랬듯, 자신도 레테의 뺨을 잡아당겼다. 뺨이 쭉 늘어나며 안나가 흐앵 거리는 의미불명의 소리를 냈다. 이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런 안나 선생님을 어떻게 리처드한테 주냐고! 차라리 나랑 결혼해!' 감격의 눈물은 끊이질 않았다. 안나는 레테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 폭주한 열혈 신도는 멈추지 않았다. "당장 떨어지십시오!" 스릉! 레테의 뒷목에 검이 겨누어졌다. 뒤늦게 냉정을 되찾은 레테가 눈동자를 굴려 뒤를 돌아보았다. "성녀님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신성모욕도 정도가 있습니다!" 어쩐지 귀에 익은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목까지 내려오는 짧은 바다색 단발머리. 왈칵 찌푸려진 표정. 옆으로 쭉 길어진 불만스러운 눈매와 면도칼처럼 예리한 눈빛. 레테는 그녀가 누군지 깨닫고 입을 딱 벌렸다. "......서, 설마. 이스라필 님?" 그녀가 알던 이스라필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렸다. 그 말을 들은 여자가 인상을 확 구겼다. "당신 같은 버러지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겁니까." '버, 버러지?' 그 유명한 온건파의 수장이자 신해의 성녀, 이스라필이 입에 담을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단어였다.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눈을 감은 채 생글생글 웃는 사람이었는데. 지난 수십 년간 저 사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나 언......! 아니, 안나 성녀님! 어서 이 불경한 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모두의 본보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진정하세요, 이스라필." 안나가 살갑게 웃으며 레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아요." "예?" 이스라필이 펄쩍 뛰었다. "나쁜 분이 아니라뇨! 나도 못 만져본 언니의 볼을 꼬집...... 이 아니라! 불경하게도 성녀님의 얼굴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신성을 썼지만, 현재 프리스트들 중에서도 암흑연합에 협조하는 변질자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녀가 쌍심지를 켜고 토로했다. "암흑연합에서 보낸 스파이가 확실합니다. 신성을 쓸 수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여신의 편이라는 이분법적인 낡은 사고로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 말이 틀린 적이 없지 않았습니까! 7군단장 요나가 전선 북쪽에 나타난 건 기만이고, 실은 이 요새를 노리는 것도 정확히 제가 짚었습니다!" "그럼요, 이스라필. 저도 이스라필의 뛰어난 지략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요." 안나는 연약한 척 훌쩍거리는 레테의 등을 쓸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분은 선한 사람이에요. 나는 느낄 수 있어요." "......." 책사로서 이스라필의 전략이 지금까지 모두 맞았듯, 안나의 '사람 보는 눈' 또한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이스라필이 큭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빼꼼. 그때 레테가 안나의 품 안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약을 올리듯 혓바닥을 쏙 내밀고는 다시 안나의 품 안으로 들어갔다. "이, 이이이익......!" 얼굴이 벌게진 이스라필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레테는 새로운 신성연방 생활이 벌써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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