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1화 키젠 실내 경기장. <별야 오리지널 – 천변만화(千變萬化)> 질끈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치자, 별야의 머리카락이 길게 흩날렸다. 투박한 회갈색이었던 머리는 점차 분홍색, 민트색, 보라색 등 여러 형광 물감이 뒤섞인 듯한 색감으로 변해갔다. 그녀가 걷는 발자국마다 바닥이 녹아내리고, 전신에서 튀어 오르는 땀방울들이 주위를 변질시킨다. 겉으로 보기엔 행위 예술가가 흩뿌리는 네온 잉크처럼 보이지만, 그 액체의 정체는 수십 가지의 독이 조합된 치명적인 맹독이었다. 별야의 오리지널 흑마법인 천변만화. 이는 스스로 화학병기가 되는 흑마법이었다. “꺄하하!” 삼각형처럼 삐쭉삐쭉한 상어 이빨을 드러낸 그녀가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단순한 도약이었지만 그녀의 몸과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온 극독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촤아아아아아아아! 퍼어어어엉! 경기장 전체가 알록달록한 형광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범벅이 되어갔다. 별야는 입꼬리가 찢어질 듯 웃으며 계속 맹독을 난사해 댔다. “제대로 즐기고 있어? 신입!” 쏟아지는 맹독 폭탄 속에서, 아보는 차분한 발놀림만으로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가 손에 상처를 내서 푸른 피를 흘러내리게 하더니, 허공에 뿌렸다. 푸른 피가 유리 벽처럼 펼쳐져 떨어지는 맹독 유성을 받아냈다. “저는 별야 교수님 덕분에 즐기고 있지만, 이거 뒤처리는 괜찮은 건가요?” 아보 벨스만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기장 벽면이 온통 두 사람의 맹독과 혈류에 녹아내리거나 찢어져 있었다. “아, 걱정 마! 어차피 여기, 오래돼서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나는―” 꿀렁꿀렁! 별야가 두 발을 모아 바닥에 착지하자, 발밑으로 맹독이 꿀렁거리며 파도처럼 솟구쳤다. “철거를 도와주는 것뿐이지!” 촤아아아아! 별야가 서핑하듯 맹독 파도를 타고 아보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파도가 아보를 집어삼키기 직전, 그의 몸이 사라졌다. 맹독 파도가 그가 있던 자리를 지나친 뒤에야, 바닥에 깔린 납작한 푸른 피 웅덩이에서 아보 벨스만이 멀쩡한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이거 참.” 그가 착용하고 있던 안경을 벗어서 별야의 분홍색 맹독이 묻은 곳을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그러자 손수건이 역으로 녹아내리고, 손바닥의 살갗까지 벗겨지고 말았다. “아끼는 안경이었는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안경을 털어내는 아보의 앞으로, 오색찬란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별야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쩌어어어어어엉! 그녀의 주먹이 아보의 얼굴을 터뜨려 버렸다. 목을 잃은 아보의 몸이 푸른색 피로 변해 주르륵 무너져 내렸다. 별야가 콧방귀를 뀌며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달칵’ 하고 경기장 문이 열리며 새로운 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도 스테이시 세잔, 그 여자처럼 도망만 다니는 더미 기술이 주력이냐? 재미없긴.” 아보가 태연히 웃으며 바닥에 피 웅덩이를 깔고는 그 안으로 쑥 하고 사라졌다. “!” 그러고는 별야가 밟고 있는 피 웅덩이에서 그의 몸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럼 템포를 올려보시겠습니까? 선배님.” “오호!” 그제야 재미있어졌다는 듯 별야가 이를 드러내며 팔꿈치로 아보의 후면을 가격했다. 아보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바닥을 펼쳐 받아냈고, 이어서 별야가 몸을 빙글 돌리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박! 별야의 주먹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형광색 맹독이 튀어서 아보의 몸에 스며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태연했다. 맹독은 몸으로 다 받아내도 펀치만큼은 허용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별야의 연타를 척척 손을 옮겨가며 가뿐하게 막아내는 모습에 별야가 입가를 쭉 찢었다. “이런 실력을 가졌으면서 펜타모니엄의 연구자라고 소개한 거야? 양심 없긴!” 그녀가 펀치를 가하는 척하다가 페이크모션으로 오른발 강렬한 발차기를 날렸다. 아보 벨스만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고. 퍼어어어어어엉! 아보의 뺨 옆으로 지나간 별야의 발가락 끝에서 오색찬란한 맹독이 폭발처럼 터져 나왔다. 아보의 머리칼이 그 여파로 한 차례 크게 나부꼈다가 내려앉았다. “…….” 그가 뒤를 돌아보니, 경기장 한쪽이 마치 녹아내린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닥, 벽, 지지대. 경기장을 이루던 모든 것이 형체를 잃고 진득한 액체로 변해 버렸다. “안 그래도 네놈에 대해 우리 동생이 경고했었지.” 별야가 씩 웃으며 내지른 다리를 회수했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 올 테니 조심해야 한다고! 제비뽑기? 어쩔 수 없던 임용? 내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파바바박! 별야가 다시 한번 달려들어 주먹과 발을 섞어 무차별적 연타를 퍼부어댔고, 아보가 두 손을 옮기며 방어해 냈다. “실상은 후보자들 모두 ‘내가 하고 싶다’는 네놈의 한마디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경쟁을 포기했다며? 제비뽑기는 핑계였지!” “별야 교수님.” 그동안 방어와 회피로 일관하던 아보가 처음으로 주먹을 쥐었다. 훅! 그의 팔이 묵직하게 뻗어 나갔다. 이번엔 별야가 고개를 옆으로 젖혔고. 콰아아아아앙-! 별야를 지나친 아보의 주먹에서 압도적인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별야가 머리카락을 날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맹독으로 녹아내리고 있던 경기장에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나친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일 뿐입니다.” 아보가 주먹을 거두고 가볍게 물러났다. 별야가 ‘하’ 하고 웃으며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고양이처럼 팔뚝에 솜털이 쭈우욱 곤두서 있는 게 보였다. “제가 신뢰가 가지 않는 인간이라는 점은 인정하지요. 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이번에 얻은 이 일자리와 키젠에 진심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별야의 날아차기가 날아왔다. “그 진심을 이렇게 시험해 보는 거잖냐!” 퍼어어어어억! 두 팔을 들어 날아차기를 막아낸 아보가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를 밀어낸 별야가 고양이처럼 쪼그려 앉더니, 바닥에 떨어진 아보의 푸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삼키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위험합니다.” 아보가 말했지만, 별야는 쪽쪽 손가락에 묻은 피를 맛있게 빨아먹었다. 이내 목구멍으로 피가 넘어가자. 꾸륵! 꾸르르륵! 꾸륵! 별야의 목구멍이 고무처럼 좌우로 뒤틀리며 내부의 피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별야의 안색의 창백해졌고, 아보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 보세요.” 하지만 별야는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끝까지 삼켰다. 이제 코를 손으로 잡고 흥 하고 풀자 귀에서 뿌우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오락가락하던 그녀의 표정이 가라앉으며 안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드럽게 맛없지만 내가 소화 못 시키는 물질은 없어.” 그렇게 말한 그녀가 손끝의 손톱을 길게 늘리더니, 스스로 제 팔의 피부를 손끝으로 갈랐다. <혈독> 퍼어어어어어엉! 팔에서 일어난 형형색색의 핏물이 아보의 몸에 끼얹어졌다. 아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멈춰 섰고, 별야가 히죽 웃었다. “이건…….” 분명히 별야의 독은 아보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독을 뒤집어쓴 직후 그의 몸을 이루던 푸른 피가 갑자기 노란색으로 변했다. 전신의 피가 통제를 잃고 흐물렁거리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 ‘처방’이 마음에 들어?” 별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금 먹은 네 피를 분석해서 해독 성분을 내 몸 안에서 제조한 거야. 지금 네 몸에 끼얹은 게 그 결과물이지.” 아보의 몸에 점점 힘이 빠져나갔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게다가 제 피는 독극물도 아닙니다만…….” “에헤이, 이 누나가 독이라고 여기면 독인 거지. 어딜 딴지야?” 별야는 모든 물질을 독으로 취급했다. 단지 용량과 치사량이 다를 뿐. 물론 이는 아보의 푸른 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 신입. 승부는 났지?”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 싸우기 전에 내기했던 대로, 내가 하는 질문에 순순히 답해주실까?” 그 순간. 스스스스! 별야에게 ‘해독’된 노란색 피가 갑자기 청녹색 피로 물들더니, 아보가 자리에서 멀쩡히 일어나 섰다. “세상 사람들이 키젠 교수, 키젠 교수 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별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쓰읍, 뭐야. 피의 성분을 바꾼 건가?” “맞습니다.” 아보가 두 팔을 벌렸다. “혈류학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학문이에요. 무엇보다 선천적인 ‘혈통’이 중요하죠. 저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저보다 우월한 피를 이길 수 없는 운명이었어요. 그래서 한 가지 분야를 극한으로 갈고 닦았습니다.” 그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바로 피를 ‘복제’하는 힘이죠.” 덜컹! 덜컹! 경기장 곳곳에서 문이 열리며 아보와 똑같은 얼굴의 남자들이 하나둘 걸어 나왔다. 전부 아보의 호문쿨루스 실패작들이었다. “즐거운 퀴즈 시간이에요. 이번에 제가 카피한 피가 누구 것인지 한번 알아맞혀 보시죠.” 키이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한 줄기 청록색 핏물이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수백 갈래로 퍼져 나갔다. 그것들이 하나둘 호문쿨루스의 몸에 깃들었다. 별야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너 설마.” 스스스스- 스스스스스스- 호문쿨루스들의 손안에서 청록색 검이 번쩍이며 솟아나고, 등 뒤에는 망토가 펼쳐졌다.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쐐애애애애액! 호문쿨루스들이 일제히 무릎을 굽히더니 에메랄드빛 섬광을 남기며 별야에게 쇄도했다. 별야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움직였다. 퍼억! 쩍! 별야의 주먹과 발차기에 얻어맞은 호문쿨루스들이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들의 칼끝은 그녀의 뺨과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쳇!” 그녀가 맹독으로 뒤덮인 주먹으로 호문쿨루스 하나를 박살 내며 말했다. “우리 귀염둥이의 피는 언제 손댄 거냐?” “혈류학과 연구실에 보관 중인 걸 슬쩍했어요. 저도 이제 교수니까요. 접근할 권한이 있죠.” “근데 이 흑마법!” 퍼억! 그녀가 호문쿨루스의 머리를 걷어차며 말을 이었다. “블러드골렘 기반이라, 소환수와 술사의 체력이 연동되는 걸로 아는데!” “그래서 살짝 손을 썼어요.” 아보가 미소 지었다. “저는 타인의 피를 카피해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조율할 수 있어요. 학생회장의 친위대의 개선점도 감이 잡히는군요. 연구 논문을 작성해서 그에게 도움을 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별야가 히죽 웃었다. “오호, 너도 우리 귀염둥이한테 한몫 쥐여줄 생각이냐?” “부족한 제게 잘해준 사람이라서요. 인간적인 호감을 느꼈습니다.” “에이 씨! 근데 이거 아무리 패도 패도 왜 본체에 타격이 안 들어가는 거야?” * * * 같은 시각. 혈류학관 건물 3층. “여러분!” 키젠 본부 직원이 손을 펼쳤다. “키젠의 신임 교수, 아보 벨스만 교수님을 소개합니다!” 와아아아아! 짝짝! 혈류학관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들, 서무 조교들, 하수인들, 경비들이 박수를 치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2학년과 1학년 혈류학과 담당교수도 있었다. 머리에 땜빵이 커다랗게 난 아보가 옆머리를 긁적이며 굽신굽신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보입니다.” 그가 눈을 슥슥 굴리며 말했다. “펜타모니엄에서 왔어요. 부족한 사람이지만, 한 학기 동안 3학년 학생들을 담당하게 됐네요. 자, 잘 부탁드려요.” 와아아-! 다들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서무 조교들이 쑥덕거리며 자기들끼리 팔꿈치를 툭툭 쳤다. “얼굴 괜찮은데? 약간 범생이같이 생긴 게 내 타입이야!” “진짜? 나는 자신감이 영 없어 보여서 별론데.” “그래도 저런 사람들이 사고는 안 치잖아. 무탈하게 한 학기 보낼 것 같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퍼어어어어억! 무언가에 얻어맞듯 머리통이 터져 버린 아보가 날아가 주위에 내팽개쳐졌다. 푸른 피가 주위에 가득 튀었다. “꺄아아악!” “허억!” 모두가 놀라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문이 달칵 열렸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또 다른 아보가 들어와 친절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까는 제 분신이었어요. 제가 진짜예요. 별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고옥-!” 퍼억! 이번엔 그의 복부에 주먹 모양의 흠집이 생기더니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다시 시끄러운 비명이 울려 퍼지고 뒷문이 끼익 열리더니 새로운 아보가 들어왔다. “이거 실례했네요. 제가 진짜입니다.” 모든 혈류학과 관련자들이 이 순간 깨달았다. 여러모로 ‘진짜’가 나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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