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7화 시몬과 두 군단장이 대륙을 발칵 뒤집어엎은 이후,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추모 행사로 하루 미뤄졌던 개학식이 오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짐을 챙기고 하나둘 로크섬으로 향했다. 한 번에 많은 인원이 이동해야 했기에, 과부하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제외한 이동 수단이 총동원되었다. 운이 좋게도, 여러 이동 수단 중에서 시몬 일행이 탄 건 황천고래였다. 그렇게. “와아아아아아!” 황천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올라 3학년들이 탄 배를 밖으로 내뿜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로크섬의 아름다운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익숙해지다 못해 정겨운 곳이었지만, 새삼 마지막 개학이라고 하니 또 새롭게 느껴졌다. “집에 왔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보자고!” 하늘에서 모두가 열정을 불태웠다. 랭거스틴에서 주민들을 구하고, 구원자를 처치했으며, 1군단까지 막아낸 쾌조의 시작. 다들 용기백배한 채로 학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함께 타고 있던 본부 직원의 흑마법으로 배는 무사히 섬에 안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하수인들과 문지기들이 친절하게 인사했다. “곧 개학식이 시작합니다! 3학년 학생분들은 바로 대강당에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3학년 학생은 이제는 여유롭게 얼굴을 아는 하수인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중간에 만난 친구들과 인사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오전에는 대강당을 2학년들이 사용했는지 막 밖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 오빠아!” 그중에서 한 갈색 단발머리의 여학생이 시몬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2학년 수석이자 전체 1위의 사샤 앤드라실이었다. 그녀가 달려와 시몬을 폭 끌어안았고, 시몬도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잘 지냈어? 사샤.” “응!” “키가 더 컸네.” “앞으로도 계속 자랄 거야!” 그녀가 헤헤 웃다가 그 뒤에 서 있는 메이린과 딕, 카미바레즈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카미 언니! 학생회 선배님들도 안녕하세요!” 메이린이 하늘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훗 하고 웃었다. “안녕 사샤. 2학년들도 오늘이 개학이었나 보네.” “반가워 사샤!” “응응! 카미 언니도 안녕!” 그녀가 선배들에게 한 차례 인사를 한 뒤 다시 시몬을 바라보았다. “랭거스틴에서 있었던 일들 다 들었어! 구원자를 잡고 1군단까지 몰아냈다며? 애들이 개학식 내내 그 이야기만 하더라구!” “벌써 그렇게 소문이 퍼졌구나.” 시몬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자, 딕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도 대형 사건이었지만, 시몬 네가 기름을 부어서 더 활활 불탔지.” “……하하.” 시몬 일행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두 명의 2학년들이 뛰어들어 왔다. “사샤 너 말도 없이 그렇게 가면 어떡하……! 아! 선배님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2학년 전체 2위의 용병왕 아서와, 전체 3위의 몰리 공주였다. 시몬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서, 몰리. 두 사람 다 잘 지냈어?” “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몰리 공주가 앞으로 나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선배님. 저희 드레스덴 왕국의 국민들을 위해 힘써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네가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여러 권한을 준 덕분에 이렇게 피해를 줄일 수 있었어. 고마워해야 할 건 우리 쪽이지.” “선배님……!” 감격한 표정으로 시몬을 올려다보던 그녀가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1군단에…… 선전포고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희 드레스덴 왕국도 힘이 닿는 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물자든 군사든 물류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고마워, 몰리.” “그보다 참 선배님들도 너무하십니다!” 이번엔 불꽃처럼 새빨간 머리가 인상적인 열혈소년, 용병왕 아서가 쾌활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렇게 계속 역대급 업적을 세워 버리시면 전 기수인 저희가 비교되지 않습니까.” “야, 야. 말도 마라, 아서.” 딕이 잘난 척 콧대를 세우며 손을 휙휙 휘저었다. “너흰 그나마 우리 후배라서 다행인 거야. 우리 위에 328기 선배들은 얼마나 비교당했겠냐? 2학년 시절 시몬이 학생회장 됐다면서 견제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그건 맞는데 왜 평민 네가 잘난 척하는 거야?” 메이린이 딴지를 걸고 있는데, 멀리서 조교로 보이는 여성이 ‘학생 여러분!’ 하고 외쳤다. “이제 5분 뒤에 3학년 개학식이 시작해요!” “넵!” 2학년들은 퍼뜩 긴장하며 답했지만, 3학년들은 여유롭게 ‘네에~’ 하고 말꼬리를 늘리며 말을 받았다.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이제는 다년간의 경험이 묻어 나왔다. 딕이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앞으로 내밀었다. “328기 썰은 다음에 계속 들려주마, 후배들!” “서둘러야 해요!” “먼저 갈게!” 시몬 일행이 빠르게 대강당으로 뛰어갔다. 사샤와 아서, 몰리 공주의 ‘파이팅!’ 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 * * 대강당에 도착하니 벌써 3학년들이 다들 자리를 잡고 있었다. 1학년 시절에는 이곳 대강당도 꽉 차서 뒤에 서 있는 학생도 있었지만, 200명 남아 있는 지금은 자리가 무척이나 널널했다. 다들 자리를 크게 크게 사용했고, 아예 두 자리를 차지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은 비어 있는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조교들과 하수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한 조교가 개학식의 시작을 알렸다. “교수님들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지금의 329기 황금세대를 만들어낸, 가히 초호화 라인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담당 교수들이 연단으로 들어왔다. 모든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고 환호했다. 여전히 최고의 인기와 명성을 구가하는 저주학 교수, 바힐 아마가르. 키젠 부총장이자 칠흑역학 교수, 제인 올리비아. 키젠 내 소환학의 부흥을 열어젖힌 소환학 교수, 아론 데이아. 세 사람이 앞장서서 걸어 나오고 그 뒤로 다음 네 과목의 교수들이 들어왔다. 초원에서 온 마투학과 교수,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가 양손을 흔들며 학생들과 인사했고. 야인이자 이단아인 맹독학과 교수, 별야 툰 소쿰 마르라트가 함께 걸어오며 코를 후비적거리고 있었다. 뒤이어 이번 랭거스틴 사태를 지휘한 사령학과 교수, 스테이시 세잔이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어 들어왔다. 이번 사태 지휘로 공을 세워서 그런지 콧대가 조금 더 올라간 느낌이었다. “이번엔 허수아비가 아니라 진짜겠지?” 스테이시를 만난 이후로 의심증이 걸린 메이린이 시몬에게 속닥거렸다. 시몬이 웃었다. “아닐 거야. 그리고 우리가 스테이시 교수님이라고 믿는 사람이 스테이시 교수님이라니까.” “아우! 그 소리 하지 마!” 메이린이 질색하며 말했다.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샥샥 돌려보다가 속닥거렸다. “아보 교수님은 아직 안 오셨네요. 시몬.” “응. 아무래도 신인 교수님이니시까 나중에 따로 소개해 주시려는 것 같아.” 그렇게 교수들이 모두 자리하고, 부총장 제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또각 또각. 여전히 그녀는 차림과 동작에 일말의 빈틈조차 없는 모습이다.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한 정장, 칼같이 반듯하고 어두운 단발, 냉랭하면서도 차분한 눈빛까지. 제인의 등장에 모두가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2년 반 동안 함께해서 이제는 친근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였다. “329기 학생 여러분.” 그녀가 입을 열었다. “키젠의 마지막 학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순식간에 무거운 적막이 강당을 짓눌렀다. 딕이 눈치 없게 ‘와’ 하고 손뼉을 치려다가 주위가 너무 조용한 걸 눈치채고는 황급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붙였다. “2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끊임없는 경쟁을 이겨내고 스스로를 단련한 한 결과, 여러분은 이제 거의 완성된 네크로맨서가 되었습니다. 경험도, 지식도, 힘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1차 DMAT 시험과 수행평가, 그리고 졸업논문까지 모두 합격점을 받은 200명입니다. 3학년 2학기까지 200명이 살아남은 건 역사상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숫자로군요.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결국, 키젠을 졸업할 수 있는 건 100명뿐입니다.” 곳곳에서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학생이 저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지금 남은 학생들은 정예 중의 정예다. 합격하는 100명과 떨어지는 100명의 실력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을 텐데, 반은 평생의 패배자가 되고 반은 키젠의 이름을 영원히 손에 넣게 된다. 이는 너무나 불합리하지 않느냐?” 그녀의 시선이 강당을 가로질렀다. “자, 그러면 어떻게 200명 중에 100명을 선별하는 게 합리적이겠습니까? 딕 헤이워드.” “네, 넵?” 전혀 예상치 못한 제인의 돌발 질문에 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딕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이내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뭐…… 여기서 꼭 100명만 뽑아야 한다면 겨, 경쟁해야죠? 늘 키젠이 해오던 대로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하고 맞장구를 치는 학생도 있었다. 제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대답을 하다니, 이제 당신도 어엿한 키젠이 다 됐군요.” “하, 하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키젠에서의 마지막 학기는 조금 다를 겁니다.” 그녀가 손짓으로 딕을 다시 자리에 앉히고, 모든 학생들과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 “키젠 마지막 학기의 핵심 주제는 바로 ‘기여’입니다.” 강당 안이 술렁였다. ‘기여.’ 시몬이 팔짱을 낀 채 그 단어를 곰곰이 곱씹었다. “네크로맨서들은 그 누구보다 타락하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강하고, 뛰어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더 쉽게 타락하는 법이죠.” 그녀가 연단에서 걸어 나와 확성 수정구를 들고 또각또각 걸었다. “이건 칠흑을 다루는 우리의 근원과도 같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힘을 숭상하고, 기사들의 시선을 피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지하묘지에서 시체를 연구하던 흑마술사들이 발전한 게 지금의 우리들입니다. 지금의 네크로맨서들은 문명 속에 융화되었지만, 힘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그림자에 끈적하게 따라붙어 있죠.” 시몬은 이번에 퇴학당한 ‘일라이저 크로비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제인이 걸음을 멈추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타락한 네크로맨서들은 세상에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겼습니다. 인류의 발전을 50년 이상 후퇴시키기도 했죠. 결사로 혼란이 가중된 지금은 그 폐해가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시몬이 턱을 짚었다. 사실 이는 교육자들에게 흔히 제기되는 논리였다. 네크로맨서는 아는 게 많고 강해질수록 타락하기 쉬운데, 왜 사회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네크로맨서 인재를 교육하려는 건가. 이는 ‘교육의 고찰’이라는 이름으로 논의되던 문제이기도 했다. “지금 명확히 말씀드리지요.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뛰어난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한때’ 키젠에서 교육받았을 뿐인 자와, ‘영원히’ 키젠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의 차이는, 세상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 인재인가로 나뉩니다.” 제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이 키젠의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 나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겁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힘에 도취해 주변을 초토화하는 결점뿐인 강자가 아닙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엘리트죠.”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번 329기의 마지막 학기는 바로 그 점을 집중적으로 평가할 겁니다. 이제 여러분은 키젠의 이름을 지난 자로서 대륙에 영향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딕의 시몬의 어깨를 탁 하고 때리며 웃었다. “……음흐흐! 이러면 벌써 정답을 맞힌 셈이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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