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8화 척. “질문 있습니다!” 여러 학생들 중 한 손이 번쩍 올라갔다. 제인은 그쪽을 보지 않고도 익숙한 듯 지목했다. “질문하세요, 제이미 빅토리아.” “넵!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반장 제이미가 벌떡 일어나 입을 열었다. “마지막 학기의 핵심 주제가 ‘기여’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여를 말씀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기여에도 여러 가지 방향이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제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여러 가지 방향이라고 했나요? 학생이 한번 예시를 들어보겠어요?” “어, 그게…….” 질문을 했다가 질문을 되돌려받을 줄 몰랐던 제이미는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동시에 수백의 시선이 집중되자, 긴장한 그녀는 머릿속에 떠올린 것들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막 그……! 있잖아요! 거리에서 노인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회복지 차원의 기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시간을 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도…….” “물론 그 또한 ‘기여’입니다.” 제인이 미소 지으며 제이미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제이미가 얼른 자리에 앉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클라우디아와 신디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선도, 봉사도, 교육도, 모두 기여에 속하죠. 물론 이런 기여들도 세상이 돌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키젠에서는 엘리트 네크로맨서에게 세상이 기대할 만한, 조금 더 크고 직접적인 요소들을 볼 겁니다.” 주위가 조용해졌고,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간단한 예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녀의 시선이 헥토르에게로 향했다. “강력한 몬스터를 해치우고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도 세상에 대한 기여입니다.” 이번엔 그녀의 시선이 졸업논문으로 화제가 됐던 에이젤을 바라보았다. “학문을 갈고닦아 세상에 없던 이론을 제시하는 것도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기여라고 할 수 있죠.” 그녀의 시선이 차례차례 딕과 메이린에게로 향했다. “인간이 들어가지 못하는 황무지나 정글 같은 위험지역을 개척하는 것도 기여이고, 외교적인 수완으로 전쟁을 해소해 많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준다면 이 또한 기여일 수 있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기여를 떠올리며 들뜬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특히 딕은 흥분하며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이내 즐거운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그의 눈을 보니 벌써 몇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때 제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시몬에게로 향했다. “이번 랭거스틴 사태에서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테러를 막아낸 이들은 이미 한 차례 크게 세상에 기여했군요. 아주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오오-! 곳곳에서 감탄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몬은 양옆의 카미바레즈, 메이린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몇몇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들이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물론 학기 주제를 발표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니 직접적인 점수에는 반영되지 못하겠지만, 임무에 추가적인 메리트를 부여할 생각입니다. 다른 질문 있습니까?” 즉시 한 손이 올라갔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팔에 책을 낀 남학생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일어났다. “피츠제럴드 잉겔스입니다. 세상에 대한 기여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모호하니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혹시 기여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 기준이 있습니까?” 그 말에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거야’ 하고 친구들에게 중얼거리던 여학생이 피츠제럴드를 째려보았다. 피츠제럴드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3학년 1학기 취업 평가에서 단기간에 ‘조직체의 긍정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조금 더 발전되고 스케일이 커진 과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완벽히 이해했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피츠제럴드가 자리에 앉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피츠제럴드 학생의 말대로 주관적이고 모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 각 학생의 기여에 대해서는 해당 사건의 동행자와 영향을 받은 주민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정량적 요소와 정성적 요소까지 모두 고려해 교수진이 직접 평가할 겁니다.” 그녀가 팔짱을 꼈다. “또한 학생 간의 평가 형평성을 위해, 각자가 가진 역량에 비례해 어느 정도로 기여를 했는지도 판단의 기준이 될 겁니다.” 모두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딕이 고개를 쭉 빼 밀며 시몬에게 귓속말을 했다. “이야, 이러면 Top10급들이나 군단장들도 쉽지 않겠는데. 가진 힘이 크니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거잖아.” “그러네.” 시몬은 동의했지만, 동시에 그는 이번 과제에 자신이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여러분이 이 기여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됐을 때의 이야깁니다.” 제인이 새로운 서류를 펼쳐 들었다. “저는 아직 여러분이 100% ‘완성’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3학년 2학기는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교육 커리큘럼이 진행될 겁니다. 우선 일주일 뒤에 DMAT 2차 시험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네에?! 그 말에 학생들이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합친, 그 중요하고 어려운 핵심 필기시험을 개학 후 일주일 뒤에 치른다는 이야기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DMAT가 끝난 뒤에는 바로 ‘3학년 전체 합숙훈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루빨리 여러분의 실력을 완성시켜야 기여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겠죠. 미래 말해두지만, 키젠이 여러분에 원하는 기여의 기준은 높을 겁니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시작됐다’, ‘이게 개학이지’ 하는 볼멘소리, 그리고 기대감이 뒤섞인 반응이 퍼져나갔다. 딕이 실실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이야, DMAT를 앞당기고 바로 합숙? 대체 우리를 어디로 보낼 생각인 거지?” “사, 상상이 안 가요.” 카미바레즈가 긴장한 듯 몸을 움츠렸다. “기여 과제가 이어지기 전에 미리 강조하지만, 여러분의 영향력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큽니다. 선의로 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겠지요.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그때 조교가 뛰어 들어와 제인에게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이야기가 많아 조금 지체됐군요.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분이 있습니다.” ‘드디어!’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유독 긴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무대에 고정했다. 제인이 뒤쪽으로 팔을 펼쳤다. “여러분의 혈류학을 담당해 주실 새로운 혈류학과 담당, 아보 벨스만 교수님을 이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강당 곳곳에서 들뜬 함성이 쏟아졌다. 새로운 키젠 교수라는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쭉 빼 밀었다. “……?” 그런데 새로운 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제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아보 교수님?” “네! 갑니다!” 대답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잠시 후 무대 커튼을 걷고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한 소녀가 등장했다. 6~7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그녀가 뭔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 귀여운 외견에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귀여워! 새로운 교수님의 딸인가 봐!” “그런데…… 점점 늘어나는데?” 점점 똑같이 생긴 소녀들이 늘어나 커튼 뒤의 남자의 손을 잡아당겼다. 이내 머리에 커다란 땜빵이 난 왜소한 남자가 휘청거리며 끌려오더니 ‘하하’ 하고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주위에는 그의 외견과 똑 닮은 소녀와 여자들이 조교복을 입은 채 득실거렸다. “그, 그래. 얘들아.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 그냥 호문쿨루스한테 맡기고 싶었는데…….” 아보 교수가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제인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자 소란이 잦아들었다. “혈류학과의 아보 벨스만 교수님이십니다.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기여’라는 주제의 가장 큰 귀감이 되는 분이죠. 결합항원 이식과 벨스만 공식을 수립하셨으며, 이종 수혈을 통한 유전병과 희귀병 치료법을 연구하셨습니다. 특히 인공 혈청으로 매년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가던 전염병을 근절하는 데 기여하셨죠.” 오-! 생각보다 놀라운 업적에 학생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자신과 똑 닮은 아이들과 부인에게 등을 떠밀려 앞으로 나온 아보 교수가 확성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아, 음. 네! 말씀 감사합니다……! 하하…….” 여전히 힘이 쭉 빠지는 목소리로 대답한 그가 어색하게 웃고는, 제인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는 아, 그러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방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그런 것들이 업적이 되어 있더군요…… 크흠!” 그렇게 말한 아보가 다시 무대 뒤편으로 돌아가려 하자, 제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보 교수님. 키젠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시작할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네. 그래야죠…… 음…….”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아까 ‘기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이런 걸 가르치는 학교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어리신 나이에…… 벌써 ‘세상에 기여하겠다’고 진지하게 의식하는 것부터가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정말……! 나는 대단한 곳에 왔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은 어느새 조용히 아보 교수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아보가 더듬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부, 부끄럽지만…… 하하! 저는 제가 잘하는 일만 잘합니다. ‘가족’이 없으면 포크질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죠. 바깥에 나가면 매번 길을 잃고요! 요리도 맨날 태워 먹어요!” 강당 곳곳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제 편의를 위해 ‘가족’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연구에 손댔을 뿐인데…… 세상은 저를 영웅이라 말하고, 공헌자라며 추켜세우더라구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요. 저는 전쟁 중이나 난세였다면 몇 년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사람일 겁니다. 몸이 허약해서 큰 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선대의 치료 이론으로 목숨을 건졌죠.”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여러분, 기여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나 자신에게 충실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죠. 그게 졸업을 위해서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든, 상관없습니다! 서로가 올곧은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분명 세계는 더 나아질 겁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여러분의 기여를 위해 최대한 돕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연설이 끝나자 강당이 뜨겁게 들썩였다. 학생들이 격렬하게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딕은 아보 교수의 연설에 제대로 꽂혔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휘익- 휙-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마찬가지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던 시몬이 옆을 바라보았다. 카미바레즈도 활짝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아무나 키젠 교수가 되는 건 아니네.’ * * * 개학식 행사가 모두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조교들과 하수인들이 힘을 합쳐 자리를 정리하고 서류들을 분류하는 사이, 교수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상적인 연설이었습니다. 아보 교수님.” 새하얀 백색 정장 차림에 삐딱하게 쓴 베레모, 그리고 세련된 외모의 남자. 저주학 교수 바힐이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지, 진짜 바힐 아마가르……!” 아보는 거의 입에 거품을 물 듯 덜덜 떨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 학기 동안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군요.” 그는 아보의 손을 한 차례 붙잡았다. 흥미로운 듯 ‘오호’ 하는 미소를 짓더니 입술을 쓸었다. “저는 단 한 가지만 약속한다면 당신이 키젠에서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신의 적이 되는 일도 없겠지요.” “약속이요……?” 바힐의 눈매가 일순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나의 걸작에, 질 나쁜 영향을 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 이해하지 못한 아보가 멍한 표정으로 있자, 홍펭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 자람 말은 너무 진경 쓰지 마제요 교주님. 저는 마투학을 가르치고 있는 홍펭이라고 합니다.” “호, 홍펭 교수님!” 교수들이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제인이 다가왔다. “그럼 우리는 회의실로 이동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실례합니다.” 그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이내 일곱 명의 교수 모두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나타난 푸른 머리의 소년을 응시했다. “제인 교수님.” 바로 시몬이었다. “키젠의 학생회장으로서, 지금 바로 네프티스 님과의 면담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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